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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미각 - 설렁탕에서 떡볶이까지, 전통이 살아 숨쉬는 K-푸드 가이드
강설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케데헌의 광풍에 K-푸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발면과 김밥 등이 영화 속에 등장하기에 그 모습을 신기하게 느끼고 직접 맛보고자 하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서울의 종로를 중심으로 이어진 K-푸드를 만나볼 수 있다.
가보지 않았더라도 음식명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동네가 있다. 예를 들자면 무교동 낙지, 남산 돈가스, 장충동 왕족발, 청진동 해장국처럼 한 몸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름들 말이다. 이 책 안에는 그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름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사실 궁금할 때가 있었다. 왜 하필 그 지역은 그 음식이 유명해진 것일까? 그 사정을 알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음식에 얽힌 사연만큼 재미난 게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나 역시 책 안에 많은 음식이 있지만, 읽으면서 가장 많이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던 음식은 돈가스와 떡볶이였다. 나는 경양식 세대는 아니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한다. 동네에 새로 생긴 음식점에 가족들과 함께 갔다. 그때 경양식처럼 코스로 나온 돈가스를 처음 먹어봤던 것 같다. 수프를 먼저 먹고 큰 접시 가득 큰 돈가스와 양배추 샐러드, 옥수수와 마카로니 그리고 밥! 엄마가 칼로 잘라주시는 돈가스를 먹으며 참 신이 났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 이후 꼬마 돈가스나 냉동 돈가스, 집에서 직접 만든 돈가스까지 질리도록 많은 돈가스를 먹었지만 첫 기억은 잊히지 않나 보다. 책에 등장한 남산 돈가스는 명동에 근무할 때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 사실 원조 논란도 있고, 과거에 비해 돈가스 거리가 많이 죽긴 해서 드문드문 빈 가게들이 보이긴 했지만 푸짐한 양의 한국식 돈가스(고추와 김치가 어우러진)는 여전했다.
왜 하필 남산을 올라가는 길을 따라 돈가스집이 많이 생긴 것일까? 원래는 남산 주변의 기사들을 위해 만들어진 메뉴가 돈가스였다고 한다. 큰 접시 가득 돈가스와 부재료를 푸짐하게 올린 남산 돈가스는 입소문이 났다. 뿐만 아니라 구경을 위해 오는 가족단위 고객들을 위한 메뉴기도 했단다. (아무래도 어린 아이들은 매운 음식을 못 먹기 때문에 가장 알맞은 음식이 돈가스가 아니었을까?)
맞벌이를 하신 부모님은 늘 전화기 옆에 하루 용돈 200원을 두고 일을 가셨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당시는 급식을 주던 때가 아니다.), 200원을 들고 동네 포장마차로 향했다. 매일같이 가는 떡볶이집에서 200원을 내면 비닐이 씌워진 초록 접시에 떡볶이를 담아주셨다. 단골 떡볶이집이 문을 열지 않으면, 조금 더 걸어가서 하는 할머니네 떡볶이 노점상으로 향했는데 할머니는 늘 떡볶이 개수를 세서 주셨던 기억이 있다. 내가 가는 단골 떡볶이집 아주머니와는 익숙해져서 그런지, 가끔 다시다가 떨어지면 심부름도 했고 떡볶이와 같이 파는 못난이 김말이가 터지면 서비스로 하나씩 주시기도 했다.
사실 지금이야 K-푸드의 대명사격이자 포장마차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떡볶이가 원래는 임금만 먹을 수 있는 궁중음식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근데 떡볶이 하면 떠오르는 매운맛 떡볶이가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는 사실이 꽤 충격적이었다. 며느리한테도 안 가르쳐 준다는 신당동 떡볶이의 마복림 할머니가 그 매운맛 빨간 떡볶이의 원조였다는 사실! 그리고 통인시장의 기름떡볶이가 사실 궁중 떡볶이라 불리는 원조 떡볶이에 더 가깝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이야 포장마차도 사라지고, 과거처럼 저렴하게 떡볶이를 먹기가 쉽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대부분 동네 떡볶이는 체인점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나 역시 옛날 기억이 하나 둘 떠올라서 즐거웠다. 아마 내가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듯이,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 역시 자신만의 K-푸드를 떠올리며 맛과 추억 여행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