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남자 - 개정판 폴 오스터 환상과 어둠 컬렉션
폴 오스터 지음, 김현우 옮김 / 북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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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폴 오스터를 처음 만났던 작품이 하필 그의 유고작인 바움 가트너였다. 사실 처음 만난 작품이었고, 표지의 아름다운 디자인에 비해 내용에서 깊은 공감과 흥미를 가지지 못했지만 폴 오스터라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평이 좋아서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어둠 속의 남자라는 작품을 읽으며, 주변에서 왜 폴 오스터의 작품을 추천하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거동이 불편하여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문학평론가 할아버지, 5년 전 이혼하고 혼자 사는 엄마, 얼마 전 애인이 사망한 후 깊은 상실감에 빠져있는 손녀. 각자 다른 아픔을 겪고 있는 3대가 한 집에 살고 있다. 23살의 손녀 카티야는 함께 살던 타이터스가 세상을 떠난 후 뉴욕의 영화학교를 그만두고 버몬트에 사는 엄마 미리엄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 집에는 먼저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외할아버지가 오거스트가 있었다. 카티야에게 말을 걸고 싶지만, 혼자 걸어서 계단을 올라갈 수 없는 오거스트는 그저 손녀가 안타깝기만 하다. 미리엄이 직장에 나가고 나면, 미리엄이 돌아올 때까지 두 사람은 영화를 본다. 저녁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도 또 영화를 본다. 그리고 밤이 되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거스트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책 안에는 현실 속에서의 이야기와 내가 쓴 작품 이야기가 교차하며 등장한다. 내가 쓴 작품의 주인공은 오언 브릭이라는 30대 초반의 마술사로, 지난밤 아내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는데 눈을 뜨니 깊은 구덩이 속에 누워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구덩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소리를 질러보지만, 멀리서 총과 대포 소리만 들릴 뿐이다. 자신이 입고 있는 군복을 보니 이름과 함께 상병 마크가 보인다. 그리고 얼마 후, 쇠말뚝을 박는 소리와 함께 밧줄이 던져진다. 오언을 구해준 남자는 자신을 서지 하사라고 소개한다. 지금은 전쟁 중이란다. 이라크 전쟁? 일 거란 오언의 생각과 달리 미국 대 미국의 전쟁. 즉, 내전이란다. 그리고 오언에게는 전쟁을 일으킨 그 사람을 죽이는 임무가 주어진다. 


 꽤 많은 돈과 군복이 아닌 일반 옷을 입고 서지 하사가 말한 웰링턴으로 가서 루 프리스크를 찾으라고 한다. 겨우겨우 도착한 곳에서 비싸고 맛없는 스크램블 에그를 먹고 비싸지만 형편없는 호텔에서 하루를 보내려는 찰나, 누군가 오언의 방문을 두드린다. 낯이 익은 그 여인은 학창 시절 반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동창 버지니아 블레인이었다. 그녀는 서지 하사가 말한 루 프리스크에게로 오언을 데리고 가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몇 시간만 잘 수 있게 해달라는 말로 1시간을 번 오언은 버지니아를 따라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호텔의 뒷문으로 도망쳐 다시 스크램블 에그를 먹었던 식당으로 향한 오언은 종업원 몰리의 신세를 지기로 하는데...


 사실 오언의 이야기보다 책 초반에 카티야와 오거스트가 나눈 영화에 대한 대화가 정말 와닿았다. 영화 학도인지라, 잠깐의 장면 속에 숨겨진 의미를 정확히 찾아내는 카티야의 이야기를 읽으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 찰나에 담긴 의미를(감독이 숨겨두거나 담아낸) 찾아낼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지만, 지금의 마음 상태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잠 안 오는 밤의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오언의 이야기를 만들던 오거스트는 카티야의 질문 덕분에 아내 소니아와의 이야기를 꺼내고,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상실감의 상처에 깊이 파묻혔던 카티야도, 불면증에 힘겨워하던 오거스트도 위로가 된다. 


 마치 두 편의 작품을 마주한 것 같은 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의 진가를 마주했던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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