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아포리아 14
롤랑 바르트 지음, 류재화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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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물론 처음 보낸 백열전구처럼 밝은 빛을 전혀 퇴색하지 않고, 

사랑의 작업이나 언어의 작업은 항상 새로운 그러나 같은 굴곡의 문장을 만난다.

기호의 형태는 반복되지만 기의는 결코 반복되지 않는 여태 없던 언어를 창조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롤랑 바르트를 만나게 되다니! 그와의 첫 만남 치곤 상당히 강렬하다. 사실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다.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쓴"을 매개로 앞뒤에 똑같은 이름 혹은 책 제목? 이 등장한다. 내가 느꼈던 제목에 대한 감정을 역자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언급해 주어서 내심 반가웠고, 기분이 좋았다. 나만 이렇게 느낀 게 아니었구나! 하는 말 말이다. 


한편, 이 제목보다 더 이 책을 잘 설명해 주는 제목이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롤랑 바르트가 자신에 대해서 쓴 자서전이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 가장 많이 고민하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은 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비로소 했던 것 같다. 오히려 어린 시절 보다 더 기억이 안 나는 사춘기 시절을 보내며 내게 남은 감정은 "짜증"이었던 것 같다. 심하게 사춘기를 앓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답답하고 짜증 나는 감정은 강산이 여러 번 바뀐 지금도 느낌으로 남아있다. 


대학 1학년 2학기 교양으로 들었던 수업 시간에 과제 중 하나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써오는 것이었다. 하...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과제가 또렷하게 생각나는 이유는 그 어떤 과제보다 많이 생각하고, 머리카락을 뽑으며 칸을 채웠지만 그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다. 만약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적어도 색다른 방법으로 나에 대한 글을 채워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보통의 자서전과 많이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자서전이라 하지만, 담론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고, 연구 자료 같기도 하다. 자신과 관련이 있는 다양한 소제와 주제가 모여서 마침내 롤랑 바르트를 쓰고 읽게 된다. 쉽게 보자면 쉬울 수 있고, 어렵게 보자면 한없이 어려울 수 있다. 초반에는 롤랑 바르트의 가족과 자신이 경험했던 사진들이 나열되고, 그에 대한 간단한 서술이 곁들여진다. 오히려 그 부분은 일반적인 자서전 같은 느낌이 살짝 풍긴다. 


 물론 그 이후에 담긴 글들은 많이 색다르다. 이 책은 전공서적도 아니고, 앞 장을 이해해야 기억해야  뒷장으로 이어갈 수 있는 줄거리를 가진 책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냥 문장을 곱씹기 보다 소설책 읽듯이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꽤 재미있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롤랑 바르트라는 인물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그의 이름 외에는 없었기에, 책을 읽으며 마주하는 그의 글에서 '이 사람은 참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글 쓰는 것을 숨 쉬는 것처럼 습관적으로 적어온 사람이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느낌은 옮긴이의 글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숨을 쉬고, 밥을 먹는 습관적인 행위가, 때론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몸에 밴 행동이 롤랑 바르트에게는 글쓰기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글쓰기는 그에게 또 다른 위로의 시간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마치 얼마 전 수술하러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전자책과 종이책을 몇 권 가방에 넣어갔던 나처럼 말이다. (물론 무료한 시간이 길어질 거라는 예상 때문이기도 했지만, 서평의 마감일자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의 압박으로 책을 챙겨가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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