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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정원 - 2000년 지성사가 한눈에 보이는 철학서 산책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박재현 옮김 / arte(아르테)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철학에 대해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 철학에 관한 책을 1년에 적어도 5권 이상은 읽는데, 그러면서도 여전히 철학을 찾고 또 찾는다. 나를 이를 이해도의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다르다는 것, 있어 보이는 것과 있는 것도 다르다는 것을 잘 안다. 많이 읽음에도 속 시원하게 이 철학은 이것이다!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내 이해도의 탓이라 생각한다. 읽고 돌아서면 또 백지가 되는 철학에 대한 미천한 이해력이 철학서를 찾고 또 찾게 만든다. 여러 번 읽다 보면 언젠가 아!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철학에 관한 책을 읽고 또 읽는다. (물론 깊이가 깊어지는 건 부담스러워서, 한 권에 철학 한 이론에 대한 강한 통찰이 있는 책보다는 두루두루 살피는 책을 더 자주 읽는다. 덕분에 입문서만 읽는 느낌이랄까?)
생각보다 두꺼운 이 책은 그래도 철학과 정원을 같이 언급하기에 부담도가 좀 덜어지는 효과가 있다. 예쁜 노란색이 가득한 표지도 두려움을 조금 줄여준다. 하지만 두께는... 2,000년의 철학 이야기가 담겨있으니 이만한 두께 면 그래도 어디냐! 싶지만, 한두 장만 넘겨보면 부담감이 확 줄어든다. 이 책안에 각 철학자에 대한 분량이 인당 4페이지 내외다. 100명 * 4페이지 = 400페이지 분량이니 말이다. 당연히 두꺼워질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 그러니 졸지 말고 읽어보자.
책 안에는 그리스 고대철학부터 꼼꼼히 모든 걸 꿰고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철학사가 아닌 그들의 철학의 주제를 가지고 배분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여러 시대를 돌고 돌아 그들의 철학을 마주할 수 있다. 제목은 철학서(혹은 철학 논조)와 저자의 이름이다. 시대순도 아니고, 연결고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 원하는 대로 읽어도 좋겠다. 관심 가는 철학자를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
이 많은 철학자 중에서 기억에 남는 철학자가 있다는 것은 뭔가 진한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부분을 발견해서 기억에 남았고, 한번은 읽고 싶던 책인데 덮어놓고 있던 책을 만나 서기도 하다. 100명을 다 소개하기에는 읽다가 지칠 수도 있고(출판사에서 절대 원하지 않기도 할 테니) 딱 두 명만 이야기하고 싶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에피쿠로스 쾌락과 해리 G.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다. 에피쿠로스가 전자, 프랭크퍼트가 후자다. 당연히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기에 즐기자! enjoy 위주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통찰이 보인다.
'소유물'이 아니라 '즐기는 상태'가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당연히 내가 소유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가지고 있는 게 쾌락이 아닐까 싶었는데, "응! 아냐." 란다. 내가 어떤 생각과 방식으로 행동하고 선택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 그렇기에 인생은 내가 선택하는 것의 결과다. 그렇기에 인생은 고난이 아닌 즐거운 것이다. 무한 긍정주의는 아닌 것이, 당장의 고통은 앞으로의 쾌락을 준비하는 시간이니 고통이 아니다. 물론! 선택을 잘해야 한다. 고통스럽지 않도록 말이다. 내가 만족하면 뭐 OK다. 그리고 그 만족은 내 내면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니, 마음을 잘 잡고 즐거움을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개소리에 대하여는 책의 제목이다. 50여 페이지의 짧은 책인데, 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이 책을 추천한 유명한 교수의 강의를 짧게 들었는데(방송에 자주 보이는 사람이다.), 제목이 너무 특이했다. 50페이지인데,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말에 아마 마음을 접었던 거 같은데 여기서는 4페이지로 축약해 주니 감사할 따름.
왜 사람은 개소리(헛소리)를 하는 걸까? 어떤 주제에 대해 말해야 할 의무나 압박, 혹은 발언의 기회가 그 주제에 대한 지식을 초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아는 척하고 싶은데 차마 자존심 때문에 모른다고 할 수 없어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것이 바로 개소리로 나타나는 것이란다.
'그러고 보니... 나도 개소리를 종종 하고 있네'에 생각이 미친다. 저자가 이 주장을 펴낸 이유가 이라크 전쟁 때 미국과 영국의 정치적 발언에 화가 나서라는데, 지금도 여전히 개소리를 하고 있는 여럿이 있기에...! 이 책은 앞으로도 꼭 필요할 거 같다. 읽어봐야겠다. 꼭!!
짧지만 임팩트 있는 철학의 정원 속에서 100명의 철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을 마주하니 괜스레 뿌듯해진다. 100명을 이렇게 단숨에 만나도 되나 싶어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가성비 넘치고, 시간을 효율적(80/20 법칙이 다시 등장하는 건가?- 얼마 전에 읽은 자기 계발서다.)으로 사용한 것 같아서 괜스레 뿌듯해진다. 이 책을 완독했다고 철학은 좀 알지!! 하는 개소리를 하지는 말자. 재미있었으니, 좀 더 깊은 철학의 세계로 향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