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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워
폴라 호킨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암으로 사망한 은둔의 예술가 버네사 채프먼의 <분할 Ⅱ>라는 작품이 테이트모던에서 전시 중에 있었다. 근데, 이 전시를 감상했던 벤저민 제퍼리스라는 법의 인류학자가 소재 중에 있던 우제류의 흉곽이 사실은 사슴의 뼈가 아닌 인간의 것이라는 메일을 보낸다. 이미 버네사가 사망한 지 5년이 지났고, 버네사가 남긴 유언에 따라 그의 작품은 페어번 재단에 기증되었다. 버네사가 남긴 일기와 노트 등을 가지고 버네사의 유언집행자이자 상속인인 그레이스 해스웰과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이기까지 했던 터라, 작품에 사용된 소재가 실제 인간의 뼈인지에 대한 부분은 풀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 문제가 혹시나 언론으로 흘러들어갈 때 생길 파장이 상당했기에, 페어번 재단 측에서는 이 일을 빨리 해결하기를 원했다. 결국 페이번 재단 소속의 큐레이터인 제임스 베커에게 이 일이 맡겨진다.
임신한 아내 헬레나를 두고 버네사 채프먼이 구매하여 죽을 때까지 은둔했던 스코틀랜드의 에리스 섬으로 향하는 베커. 하지만 이 섬은 특이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밀물과 썰물 시간에 따라 섬으로 가는 길이 열리고 닫힌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하루의 두 번만 열리는 이 섬은 다른 어떤 섬보다 은둔의 섬으로 불린다. 그리고 현재 이 섬에는 버네사의 유언집행자인 그레이스 해스웰이 살고 있다. 일찍 길을 나섰지만, 지름길을 앞에 두고 사고로 길이 막힌다. 결국 베커는 다음 썰물 시간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잠깐 눈을 붙이는 사이 차 문을 두드리는 노파에게 에리스 섬에 그레이스를 만나러 간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썩 좋지 않다.
결국 기다림 끝에 에리스 섬에 다다른 베커. 하지만 그레이스의 반응은 퉁명을 넘어서 그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거부한다. 그동안 페이번 재단과의 일들로 시달렸기 때문이라 생각은 하지만, 선임이자 대학 동창인 서배스천 레녹스에게 보고할 말이 없기에 답답하기만 하다. 결국 쫓겨나듯 섬을 떠나 근처의 펍으로 이동한 베커는 그레이스와 버네사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이었던 펍의 주인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금 용기를 얻어 그레이스에게 메일을 보낸다.
베커의 메일을 보고 다시 그를 받아들이는 그레이스. 우선 작품 <분할 Ⅱ>에 사용된 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들이 의심하는 것은 20년 전 사라진 버네사의 남편 줄리언 채프먼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라진 그의 행적을 어디서도 볼 수 없었고, 그의 차량 또한 발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분할 Ⅱ>에 사용된 뼈가 줄리언의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는데, 그레이스는 이 사실을 한 마디로 일축한다. <분할 Ⅱ>에 사용된 뼈는 줄리언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섬에 머물며 버네사와 그레이스의 이야기를 들은 베커는 뭔가 풀리지 않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그레이스가 숨기고 있는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심리 스릴러의 매력은 인물들의 촘촘한 심리 묘사를 통해 독자가 그 상황을 직접 겪는 것 같이 느끼며 작품 속에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편으로 TMI가 많기도 하다. 아마 이 작품 역시 그런 심리묘사와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들이 촘촘하게 곁들여지기에 빠른 사건 전개를 원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지루하다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건을 연결한 단서와 진실들이 하나하나 풀어지면서 마주하는 또 다른 진실 앞에서 당황스러울 정도로 놀랐다. 예상치 못한 결말까지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와 이름이 같은 그레이스라는 인물에게 처음에는 동정의 눈길을 주며, 긍정적으로 보고 싶었는데 아... 그러기에 너무 많이 와버렸다. 책의 내용과 버네사의 일기가 교차되는 내용 속에 은둔의 섬 에리스의 짙은 안개가 책 전반에 깔려있는 느낌이 가득하다. 그래서 더 개운하지 않은 여운이 깊이 남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