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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 - 이주헌 미술 에세이
이주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때는
건실한 삶을 살지만,
성취하고 난 다음에는 나태해져 패가망신하기 쉽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 좋은 일이 있을수록 스스로 돌아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집은 그런 교훈을 잊고 뿌리부터 허물어지고 있다.
책의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 꾸준히 미술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조금씩 화가의 이름과 작품이 눈에 익는다. 덕분에 익숙함이 두려움을 조금씩 상쇄시키는 것 같다. 사람도 친해지면 조금씩 사적인 이야기들을 하듯이, 안면을 튼 화가들의 인생사와 그들의 삶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가는 것도 꽤 흥미롭다. 마치 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둘 사이에 관계가 더욱 끈끈해지는 것과 같이, 화가의 삶을 보고 나니 그가 그린 그림 속에 담긴 희로애락을 알 듯도 싶다.
사실 책 안에 등장하는 화가들의 이름 중 1/3 정도만 알아봤다. 낯선 이름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이름이 낯선 만큼 그림도 낯설다. 처음 마주하는데, 그들의 삶까지 알아버리니 당혹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삶과 명화가 같이 들어오니, 조금 더 이해가 빠른 것도 사실이다. 그림 하나하나를 풀어내는 저자의 설명이 그림에 한참 눈을 두게 만든다. 덕분에 한 번 더 살펴보고, 한 번 더 감상하고 지나갈 수 있었다.
나는 내 작품을 지극히 사랑하기에 나 자신만을 위해 그림을 그릴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
이 말을 한 사람은 귀스타브 모로라는 상징주의 화가다. 상징주의는 19세기 말 자연주의(사실주의)와 인상파의 개관적 관찰과 묘사. 실증적 표현 등에 반발하여 일어난 미술사조다. 얼마 전 읽었던 미술사조 책을 보니, 대부분의 사조는 선배 미술사조에 대한 반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상징주의 역시 그렇다. 이들은 현실을 초월한 초자연적 세계관이나 인간의 내면의 깊은 속성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그랬기에 한편으로 배타적인 성격을 띠기도 했다. 귀스타브 모로의 작품 중 저자가 설명한 작품은 "환영"이라는 작품이다. 성경 속 세례요한의 죽음에 관한 작품인데, 나체로 춤에 빠진 살로메가 자신이 참수를 요구했던 세례요한의 머리를 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하는데, 인간은 대부분 경고의 의미를 뻔히 알면서도 세속적 욕망의 포로가 되어 이를 무시해 버린다고 말이다. 그림과 설명을 마주하니 비로소 상징주의가 어떤 형태의 그림을 그렸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그 밖에도 프로메테우스와 고대 여성 시인 사포의 죽음을 그린 작품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내면의 당당함과 자신감이 드러난 그림들이 많았다.
또 기억에 남는 화가 중에는 존 싱어 사전트와 그의 작품들이 있었다. 타고난 천재였지만 평생 부지런히 노력한 화가로 알려진 사전트는 수 세기 간의 전통에다 자신만의 생동감을 불어넣어 그림을 그리는 인물이었다. 책에 등장한 그림들은 하나같이 생동감이 있고 실제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담 X는 전에 본 적이 있는 작품이었는데, 이 그림 속 주인공인 마담 고트로는 그동안 무수히 많은 화가들의 요청을 거부했던 사교계의 유명인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사전트의 요청은 수락하고, 자신의 별장에서 작업을 한다. 이 그림에는 참 많은 노력과 고생이 담겨있었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싸늘했다고 한다. 여인의 포즈가 너무 도발적이고 관능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리에서의 반응과 달리 미국과 영국에서는 그의 그림이 큰 환대를 받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사실 그림만 봤다면 그림 안에 담긴 깊은 의미를 많이 놓쳤을 것 같다. 저자의 설명이 어우러지면서 감상의 폭이 깊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설령 당대에 추문을 겪고, 싸늘한 반응을 겪기도 하고, 생활고와 여러 어려움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그들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다. 설령 모두가 아름답다고 극찬하지 않았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