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 1
R. F. 쿠앙 지음, 이재경 옮김 / 문학사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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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든 것의 핵심은 은의 지속적인 축적이야. 우리가 어떻게 이토록 많은 은을 보유하게 되었을까? 

다른 나라들을 회유하고 조종하고 협박해서 돈이 계속 영국으로 흘러들게 하는 무역협정을 체결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 은이 다시 불공정 무역협정을 강제하는 데 쓰이지.

그 은과 바벨의 작업이 만나서 우리 배들을 더 빠르게, 우리 군대를 더 강하게, 

우리 총기를 더 치명적으로 만들거든. 

이건 이익의 악순환이야.

어떤 외력이 이 순환을 깨지 않는 한, 조만간 영국이 세계의 모든 부를 독점하게 될 거야.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성경 창세기 속 바벨탑이 떠올랐다. 신의 자리까지 넘본 인간들이 신까지 닿기 위해 세웠던 바벨탑. 그 일로 인간들은 더 이상 같은 언어를 쓸 수도,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옥스퍼드 대학 안에 지어진 리드클리프 도서관 앞에 있는 왕립번역원은 바벨이라고 불린다. 이 책은 사변소설(과학 소설의 일종이나, 과학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현대인의 사고의 틀을 넓히는 데 중점을 두는 소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1830년대의 옥스퍼드를 배경으로 쓰였다. 


시작은 중국의 광둥의 좁은 골목길을 지난 어느 집이었다. 리처드 러벌 교수는 자신이 가진 주소의 집으로 향한다. 그곳에 살아있는 사람은 소년이 유일했다. 이미 마을 전체가 전염병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아침에 사망한 어머니 옆에 있는 소년 역시 같은 운명이었다. 러벌 교수는 소년의 가슴 위에 은막대를 올리고 트리아클이라고 외친다. 막대가 창백하게 빛난다. 소년은 입 주변에 단 맛을 느낀다. 그렇게 광둥을 떠난 소년은 러벌 교수와 함께 영국으로 향한다. 소년이 탄 배에는 한 중국인이 출입을 거부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유일하게 중국어와 영어를 알아듣는 소년에게 그의 통역을 시키는 러벌 교수. 하지만 소년은 자신이 알아들은 목욕을 안 해서 태울 수 없다는 말을 전하지 않고 그저 탈 수 없다는 말만 한다.



광둥을 떠나 영국으로 온 소년은 중국 이름을 버리고 로빈 스위프트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된다. 또한 러벌 교수는 로빈의 후견인이 된다. 영국에 도착한 후 로빈은 강도 높은 교육을 받게 된다.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수업은 쉽지 않았다. 거기에 한 달에 두 권씩 러벌 교수로부터 영어 책을 받아 읽었기에 영어를 이해하고 말할 줄 알지만 좀 더 체계적인 교육에다 중국어를 잊지 않기 위한 수업까지 들어야 했다. 그렇게 6년의 교육을 받은 로빈은 옥스포드 왕립번역원의 학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입학생 자격으로 가운까지 입었지만, 동양인인 그를 향한 옥스포드 학생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유일하게 외국인 학생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인 왕립번역원. 그곳에서 만나게 된 캘커타 출신의 라미즈 라피 미즈자(라미)와 백인 여성인 레티샤 프라이스(레티)와 흑인 여성 빅투아르 데그라브. 이들은 올해 왕립번역원의 입학생들이었다.


인종차별이 심한 옥스포드의 다른 학생들로부터 가운을 빼앗길 위험에 처한 로빈은 그들과의 충돌을 피하고자 도망을 치고, 라미가 놓고 온 공책을 가지러 다시 바벨 안으로 들어간 로빈은 그곳에서 은막대를 훔치려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하지만 왠지 그들을 신고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조용히 지나간다. 그리고 다시 마주한 일행 중 하나는 로빈과 너무 닮은 도플갱어 같은 모습이었다. 자신을 그리핀 러벌이라고 소개한 그는 지금 로빈이 사용하고 있는 다락방과 기숙사의 전 주인이자, 자신의 이복형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후 도망자의 신세가 된 그는 헤르메스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가 로빈을 찾아온 이유는, 바벨의 은막대를 비롯한 번역본을 훔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멋있게 보였던 왕립번역원 바벨에 감춰진 탐욕과 타국의 언어로 쓰인 책은 영어로 번역되지만, 반대의 경우는 일어나지 않는 상황. 또한 그렇게 축적된 부가 영국과 선진국들의 배는 불릴지언정, 원 국으로는 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듣게 된 로빈은 고민에 빠지는데...



 번역과 통역은 단지 언어를 전달하는 의미 이상으로 그 상황과 문화를 제대로 알아야만 제대로 된 전달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 또한 공감한다. 왕립번역원 바벨이라는 곳은 겉으로 보기에는 타국의 문화와 언어를 수용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좋은 일을 하는 곳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모든 부와 지식을 자신들만 누리려고 하는 독선적인 모습이 깔려있었다. 바로 그 사실을 깨닫고 일을 벌이는 그리핀과 헤르메스 협회. 그런 그리핀의 말을 듣고 조금씩 바뀌어가지만, 자신이 누린 것과 진실 사이에서 고민에 빠지는 로빈. 2권에서는 과연 로빈과 그리핀 그리고 러벌 교수는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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