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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백영옥 지음 / 김영사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별은 앞으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실연은 늘 뒤로 온다.
실연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각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고,
끊임없이 자신 쪽으로 뜨거운 모래를 끌어들여 폐허로 만드는 사막의 사구다.
특이한 제목의 이 책을 몇 년 전에 보고 지나쳤다. 당연히 제목 말고는 본 적이 없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옷을 입고 나온 이 책을 왜 이제서야 읽게 되었을까? 그냥! 이 책의 제목이 너무 궁금했다.
조찬모임 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조찬 기도모임과 사장단 등 꽤 힘 있는 사람들의 조찬모임. 근데 이 모임은 뭔가 이름이 특이하다. 그리고 모이는 사람들 또한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 "실연당한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고, 그 모임은 7시에 시작한다.
책 안에는 윤사강과 이지훈, 정미도라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사강의 이름을 보자마자 한 연예인이 떠올랐는데,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한 권의 책을 읽고 오!!! 떠올랐다. (흠흠! 나 이 책 읽었다!! 프랑스 작가 사강) 그만큼 특이한 이름의 사강은 L 항공 비행 승무원이었는데, 함께 승무원으로 일하는 정수와 헤어졌다. 그가 유부남이었기 때문이다. 캠퍼스 커플로 만나 10년간 사귀었던 현정과 헤어진 지훈. 지훈은 아주 잘나가는 기업 강연 강사다. 매너도 좋고, 타고난 신체적 조건 덕분에 강의를 끝나고 나면 러브콜을 꽤 자주 받을 정도로 소위 괜찮아 보이는 남자다. 하지만 그에게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사랑의 큰 상처가 있다. 어렵게 잡힌 C 전자의 강의 날. 강의를 마치고 아주 어렵게 잡힌 연수원장과의 독대 시간도 있는, 앞으로의 커리어의 정말 중요한 날이었던 그날, 그는 강의를 펑크 내고 서울로 향한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현정의 회사. 그날 그는 커리어와 여자친구 둘을 모두 잃고 만다. 이미 둘이 떠났던 파리 여행에서부터 이별의 전조가 보였다. 아무렇지 않게 "우리 헤어지자."는 말을 내뱉는 현정의 말은 결코 애정이 있는 남자친구에게 하는 불만의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날. 현정에게 내뱉은 "우리 헤어지자."의 대답은 지훈의 예상과 달리 "고마워."였다. 폭설로 서울 전체가 마비된 그날. 모든 커리어를 던져버리고 현정을 만나러 올라오며 겨울에 핀 동백꽃을 보고 현정에게 어떻게 이야기해 줄까를 고민했던 그 말 말이다.

지지 않는 것. 상대를 먼저 지치게 하는 것.
때론 이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상대보다 한 발 더 움직여야 한다.
살다 보면 이기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해 살 때가 더 많다.
맞아도 쓰러지기 않기 위해서!
그리고 책의 첫 장면부터 이상한 여자로 각인된 정미도의 정체가 드러난다. 완전히 반전이었다. 속은 듯한 기분도 들었고, 그녀의 정체를 알고 나니 왜 유난히 튀는 행동을 그렇게 해대었는지 알 듯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 모임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 그녀 역시 사내커플이던 지혁과 헤어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클릭한 모임에 마음이 동해서 가지만, 쉽지 않다. 그곳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이별의 물건들을 교환하고, 이별과 관련된 영화를 보는 것.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비롯한 책 꾸러미를 내놓은 사강과 현정의 첫 번째 선물이던 로모 카메라를 내놓는 지훈. 이들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이들의 이야기가 좀 더 진하게 드러난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쉽게 할 수도 있지만, 막상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픔이 되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상처가 옅어지기도 하지만, 상처의 자국은 남기 마련이니 말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잔잔한 이별과 사랑의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좋았다. 에세이로 먼저 만난 백영옥 작가의 소설이어서 그런지, 여기저기 눈에 띄는 멋진 문장들도 마주칠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