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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를 배달합니다
최하나 지음 / 한끼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
누군가에게는 못 견디게 지루한 똑같은 날들의 연속이겠지만,
내게는 포장지를 벗길 때마다 새로운 맛을 맛볼 수 있는 사탕 같은 날들이다.
26살의 주인공 김여울은 어린 나이에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베테랑 청년이다. 어린 시절부터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여울은 그 흔한 선물하나 받아본 적이 없다. 혼자 힘으로 지금껏 살아온 여울의 희망은 3년 안에 1억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몸이 힘들지만, 벌이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여울은 그렇게 요구르트 배달원이 된다. 새벽부터 나가 배달을 준비하는 여울은 같이 일하는 여사님들에게 특유의 친화력(이 또한 다년간의 알바를 통해 터득하게 된 능력이다.)을 발휘해 사랑을 듬뿍 받는다. 늘 계란을 챙겨오는 서계동 여사, 두유를 챙겨주는 동계동 여사, 여울을 싸늘하게 대하는 남게 동 여사까지... 여울이 맡은 지역은 얼마 전 담당자가 퇴사를 했다. 얼른 단골 고객도 확보하고 신규 계약도 많이 따서 목표를 이루고 싶은 여울을 힘들지만 배달 머신 콩콩이를 끌고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하며 요구르트 언니로 활약한다. 비 오는 어느 날, 갑자기 품속으로 뛰어든 강아지 한 마리. 그리고 강아지가 없어졌다고 혹시 봤냐고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여울에게 또 다른 삶을 선사한다. 아파트 부녀회장이라는 아줌마는 자신의 딸을 밖으로 좀 꺼내달라는 요청을 한다. 대가는 신규 계약 20건이다. 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신규 계약 20건을 놓칠 수 없었던 여울은 그렇게 히키코모리 청임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실 청임은 계속되는 입사의 낙방으로 자신감을 잃고 집안에 처박혀서 지내는 청년이었는데, 가족과도 말을 안 할 정도로 혼자만의 생활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청임이 빵을 좋아하는 사실을 알게 된 여울은 매일같이 와플을 구워서 청임의 방 앞에 둔다. 하지만 청임의 방은 열릴 생각이 없다. 토핑을 바꿔가면서 와플을 굽던 어느 날. 아이스크림을 올린 와플을 문 앞에 두고 가며 꼭 먹으라는 말을 하고 여울은 청임의 집을 나간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처음으로 청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늘 같이 와플을 먹으며 청임과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하는 여울. 그리고 그렇게 여울의 도움으로 청임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책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환경 속에 살고 있다. 히키코모리 청임과 전직 여경출신의 트러블메이커 욕쟁이 할머니, 여울의 썸남이자 보이스피싱을 당해 자살을 시도하는 함군 최경인까지...사실 이들은 여울의 도움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다시금 소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여울만 이들의 삶에 도움을 준 것이 아니었다. 이들을 통해 여울 역시 조금씩 자신이 진짜 원하는 삶을 찾아가기 시작하는데...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여울이 참 안쓰러웠다. 3년 동안 1억을 모으려고 열심히 사는 모습도 대견하지만, 타인과의 만남과 그들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열어주면서 여울 또한 자신의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자신만 위하고 타인의 삶에 관심도, 참견도 하기 싫어하는 요즘 세대에 여울의 삶은 과한 오지랖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여울이기에 타인의 필요를 정확히 알고 행동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오늘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
누군가에게는 못 견디게 지루한 똑같은 날들의 연속이겠지만,
내게는 포장지를 벗길 때마다 새로운 맛을 맛볼 수 있는 사탕 같은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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