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파괴자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몇 달 전 한 영상을 보고 심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해당 화면에는 6살 난 아이를 가르치는 엄마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근데 그 영상을 중지한 전문가는 엄마를 향해 지금 아이를 향해 심한 가스라이팅을 하고 계신 걸 아냐는 말을 했다. 이건 엄연히 아동학대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전문가의 말을 듣고 놀랐던 이유는, 그 모습이 내가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말투와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늘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다. 사실 피해자라는 걸 인지하게 된 것은 해당 사건들이 마무리된 이후였다. 십수 년 동안 한 회사를 다녔다. 결혼 전부터 다녔던 회사였고, 결혼 후 임신과 출산 그리고 복직의 단계를 거쳤다. 진통을 하면서 회사 대표의 전화를 받았고, 조리원에 들어가서도 조리원에 있는 노트북으로 일을 했다. 아이를 데리고 회사에 출근했던 날도 있었다. 물론 그 기간은 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기간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대표는 그때마다 고마움을 표시하기는커녕 다시는 결혼 안한 여직원은 뽑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내가 급하게 복직을 앞두고 있을 즈음, 대표는 나랑 같이 일하는 직원이 내 복직 때문에 무척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를 본사가 아닌 지점으로 발령을 내겠다고 했다. 당시 지점이 본점보다 집에서 가까웠기에 나는 그 상황을 수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도 애 엄마를 어느 회사에서 쓰겠냐, 우리 회사나 되니 니 사정을 봐주는 것이라는 등의 말과 회사가 어렵다는 말로 내 급여는 최저시급 수준까지 내려갔다. 14년을 다닌 회사였다.


 10년 넘게 장기근속하던 직원들이 줄줄이 사표를 던졌고, 그 틈에 나 역시 사표를 내고 나왔다. 대표는 여러 가지 회유 작전을 폈지만, 나보다 먼저 나갔던 사람들의 조언(?) 덕분에 사표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다른 회사에 입사를 했다. 새로 들어간 곳의 대표와 직원들을 내 능력을 인정해 주었고, 아이가 갑자기 아픈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오히려 걱정해 주면서 연차나 재택근무를 하라고 먼저 배려해 주었다. 그리고 이직을 하고 나서야 나는 능력이 없는 것도, 애 엄마라서 일을 못하는 게 아닌,  내가 아주 오랫동안 가스라이팅을 당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책 안에는 4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친밀한 사람들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한다. 애인이나 남편, 친구, 어머니, 회사 상사로부터 크다. 사실 가스라이팅을 하는 가스라이터들이 문제지,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가스라이티들은 지극히 피해자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가스라이티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가스라이팅을 외부에서 보면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가혹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러한 관계는 항상 두 사람의 합작품이다......

당신이 옳다는 주장을 그만두거나 상대방이 옳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가스라이팅을 끝내는 것이다.

 가스라이티들이 생산되는 이유 중 하나는 낮은 자존감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되기 때문이다. 특히 어려서부터 그런 상황에 오래 노출되는 경우 결정권을 가스라이터들에게 넘기는 가스라이티가 될 확률이 높다. 또한 사회적 분위기와 환경도 가스라이팅을 부추긴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엄마의 경우 6살 아이가 한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자 여러 가지 협박과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스라이팅을 했다. 한글을 못쓰면 바보가 되고,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으며, 인생을 망치게 된다는 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들에 대해 극도의 불안감을 조장하고, 아이로 하여금 그 상황에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가스라이팅이다. 

 

 책 안에는 실제 사례를 통해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1,2, 3 단계로 가스라이팅을 이야기하는데 한 단계가 오래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3단계에 이르게 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스라이터의 말에 완전히 귀속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책 안에는 가스라이팅을 구별하는 방법도 나온다. 그렇다면 가스라이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의 가스라이티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가스라이터와의 관계가 끊어질까 봐다. 그래서 알면서도 끌려다니는 경우도 벌어진다. 하지만 단호하게 현 상황을 인지하고 이야기했을 때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다. 만약 그래도 변화가 없다면, 관계로부터 멀어질 필요가 있다. 나처럼 직장을 나오거나, 지인과의 거리를 두는 경우가 그 예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가스라이팅에 대해 정확히 인지할 수 있었고, 나 역시 가스라이터이자 가스라이티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스스로 가스라이팅으로 벗어나기 위한 인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