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에 아는 언니가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십수 년 후에 박사학위와 함께 대학 강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책의 첫 장을 넘기며 언니가 떠오른 이유는, 저자의 상황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한국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었다. 그런 언니가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문학이다. 자세한 사정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놀라울 따름이었다. 내가 느끼는 피아노와 문학은 괴리가 컸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영화의 맛을 알게 되면서 프랑스를 동경하게 된다. 결국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프랑스로 떠난다. 프랑스어 초보반 부터 해서 다음 해 대학 입학의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고군분투한 저자는 결국 대학에 입학한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졸업에 비해 입학이 어려운 편인데 비해(물론 요즘은 토익점수나 등등 졸업이 예전보다 쉽지 않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수능을 뚫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싶다.), 프랑스는 입학은 수월하지만 매년 학생 정원 줄어들기에 졸업까지 가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당연히 그녀가 쓰는 언어인 프랑스어 자체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3년 동안 프랑스어를 배웠는데, 기억에 남는 건 인사 정도다.(나는 3년 동안 뭘 배운 걸까?) 그것도 20세 성인이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지 우리도 잘 알고 있지 않나?
책을 읽으며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자신들만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산다는 생각은 올해 파리 올림픽을 보면서도 느꼈는데, 책 안에 담겨있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은 또 다른 맛과 멋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답답하고 고지식해 보이는 면도 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내용은 남편인 R 과의 이야기였다. 프랑스인인 남편도 대학에서 알게 되어 결국 결혼을 한 저자는 또래의 한국인-프랑스인 친구와 만난 적이 있었는데, 친구가 하는 프랑스어를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의 행동이 그녀 옆에 있는 프랑스인 남자친구를 상당히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어에서는 백지와 같은 외국인들인지라, 아무래도 상대의 말투나 어법 더 나아가 행동까지 닮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저자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R에게 의탁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그때부터 비로소 독립할 수 있었다는 말이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들이 떠올랐다. 우리 아이들 역시 백지상태로 내 언어습관을 받아들이고 있을 텐데 싶어서 식은땀이 났다.
20년 넘게 외국인으로 살면서 여전히 프랑스어는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저자. 능숙하게 말을 해도 여전히 가슴 한 편에는 생각하지 않고 내뱉을 수 있는 고국에 대한 애정이 남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럼에도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 을 알고 그것을 선택하는 용기와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