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펀트 헤드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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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행복을 곱씹을 때마다 기사야마는 격렬한 불안에 휩싸였다.

어딘가에 작은 균열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단 하나의 작은 균열이......

자타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만한 남자 기사야마 세이타. 미모의 배우인 아내 기키, 얼굴을 노출하지 않은 가수로 유명해진 큰딸 마후유, 지병을 앓고 있지만 꿋꿋하게 재 삶을 개척해나가는 작은 딸 아야카. 그리고 행복한 가정 안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기사야마는 자신의 삶에 꽤 만족해하고 있다. 왜 인간은 행복할 때, 불행을 떠올리는 걸까? 모든 상황이 행복을 가리키고 있는 상황에서, 오직 기사야마만 불안을 생각한다. 행복을 깨뜨릴 불행의 균열이 갑자기 다가올까 봐 불안하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의 행복을 깨뜨릴만한 상황을 모조리 제거한다. 아니, 그동안 그는 그렇게 자신만의 행복을 지켜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야카는 기사야마가 속한 병원의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같은 게임을 하던 상대와 우연히 알게 되지만, 아야카와 기사야마가 나눈 말을 이상하게 들은 그는 아야카를 지키기 위해(?) 무모한 일을 벌이게 된다.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그는 과거의 병력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 조치된다. 그날 이후 아야카는 보이지 않는다. 우연히 길에서 아야카를 다시 만나지만, 갑자기 폭발하고 마는 아야카.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것일까?

기사야마에게 상담을 받는 환자 우라시마 가즈토시는 악마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이야기한다. 악마가 자신을 괴롭히는 여러 상황에 대해서는 꼼꼼히 이야기하지만, 악마의 정체에 대해서만은 함구하는 그.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보이지만, 기사야마는 그런 환자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근데, 뭔가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떠올랐다. 악마의 정체. 기사야마 기지 덕분에 우라시마는 위기의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추리소설 같은 느낌이 가득하다.

근데 이렇게 괜찮아 보이는 기시야마의 정체가 점점 드러난다. 어린 시절 마술사였던 아버지와의 일, 그리고 사고를 당한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고 결국 그 원인이라 생각했던 어머니를 살해했던 일. 그리고 살해한 어머니를 아버지에게 보여주며 아버지까지 살해한다.(당시 일은 사고사로 마무리된다.) 그런 기시야마는 기키를 만나 결혼한다. 하지만 기키가 배우로 이름을 알리자 나타난 스토커 페페코를 납치해 자신의 성적 노리개로 사용한다. 페페코는 여러 가지 이유로 살려주었지만, 기키를 스토커하던 남자들은 기시야마에 의해 살해된다. 얼마 전부터 자신의 집을 감시하는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는 기시야마. 그녀가 방송에 나오는 기자 이즈미 사키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이번에도 행복을 깨는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 결국 이즈미를 살해하고 과거 자신의 집에 숨겨둔다. 페페코를 둔 집에 말이다. 이미 사이코패스 같은 그지만 갈수록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더욱 드는 건, 성욕을 풀기 위해 그가 버린 일들이다. 페페코로 부터 봉변 아닌 봉변을 당한 기사야마는 우연히 한 남자를 구해주고, 그로부터 성욕을 푼다. 얼마 후 마후유의 남자친구인 하루가 집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남자가 바로 하루였던 것이다. 그날로 그의 집은 풍비박산이 난다. 그가 그토록 지켜왔던 행복이 무참히 깨져버린 것이다. 목숨을 끊으려던 차에, 얼마 전 하루와 함께 갔던 모텔에서 만난 과거 마약상으로부터 신종마약 시스마를 구입했던 게 생각난다. 50%의 확률로 환각 증상이 나타난다는 마약이었다. 반은 마약을 주사해도 아무 느낌이 없는 반면, 반은 엄청난 환각 증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물론 판매하는 사람 역시 아직 접해보지 못해서 어떤지 알려줄 수는 없지만 말이다. 결국 깨져버린 행복 앞에서 유일한 선택은 시스마 뿐이었던 기사야마는 시스마를 주입하게 된다. 그런데 시스마를 주사한 후, 행복이 깨져버린 그날 저녁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과연 기사야마는 어떤 선택을 할까?

정말 말도 안 되는 요소를 다 갖춘 끔찍한 주인공 기사야마와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평범하지 않은 일상들이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 간다. 그러고 보면 그가 원했던 행복의 완전한 조건은 정말 손가락 하나로 낭떠러지에서 버티고 있는 것과도 같았던 것은 아닐까 싶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이 모든 게 맞춰지면서 정말 어안이 벙벙했다. 도표까지 등장하니 꼭 놓치지 말길 바란다.

참고로 엘리펀트 헤드는 주인공인 기사야마에게 형사인 이모쿠보가 붙인 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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