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묵혀뒀던 책을 꺼내 읽었다. 광야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렸을 때 주일학교 예배시간이나 공과 시간에는 광야를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여 40년간 훈련받은 곳 정도로만 배웠던 것 같다. 그런 내가 광야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받아들였던 때는 유년부 교사를 하면서다. 당시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던 때였다. 어린 시절부터 10년 넘게 꿈꾸던 직업의 시작은 수능 점수가 너무 안 나와서 포기했고,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준비했던 시험 역시 커트라인과는 너무 떨어져 있어서 접었다. 도대체 나는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너무 답답하고 암담했다. 직장에 들어갔지만, 생각지 못한 괴롭힘과 말도 안 되는 업무들 속에서 과도한 스트레스로 숨도 쉬기 어렵고 눈 밑이 쉬지 않고 떨리는 일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때, 부서의 담당 교역자이자 내 멘토였던 목사님을 통해 광야에서의 삶에 대해 설교와 나눔을 통해 묵상할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내 길이 열렸고, 그때 열렸던 길 덕분에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동종업계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답답하고 고통스럽기만 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꾸준히 성경을 3장씩 읽고 있는데, 오늘로 여호수아를 마치고 사사기에 입성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멀지 않은 거리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을 돌고 돌고 돌아 40년을 광야에서 지냈다. 사실 이집트로부터 노예생활을 마치고 나올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입에 불만을 붙이고 살았다. 그 들 앞에 홍해가 있고, 이집트 군대가 뒤따라오는 상황에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광야(사막)을 건너면서도,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을 때도, 여러 위협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늘 불평이 가득했다. 물론 그럴만한 상황이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셨다. 물과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그들의 필요를 충족해 주시고,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기어코 이스라엘을 지키셨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철이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현재의 내 모습과 지독하게 닮아있다.
나이가 들면, 좀 더 성숙해질 줄 알았다. 10대보다는 20대에, 20대보다는 30대에, 30대보다는 40대에 좀 더 유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상황을 좀 더 깊고 넓은 눈으로 톺아볼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여전히 나는 매일을 허덕이고, 매일을 불평하며 짜증을 부리고 있다. 내 삶의 운전대가 지극히 내 손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 못했던, 오랜 시간 꿈꾸었던 길들이 계속 막히고 결국 생각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 내가 하는 성과만큼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 속에서 내 인생은 실패한 것일까? 하는 꾸역꾸역 올라왔다. 그때 이 구절이 내 뇌리를 깊이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