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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매매소
우츠로 시카타로 지음, sakiyama 일러스트, 안소현 옮김 / 소담주니어 / 2024년 8월
평점 :
내가 학교를 다닐 시절에는 홍콩할매귀신과 빨간 마스크가 엄청 유명했었다. 밤에 돌아다니면 빨간 마스크가 입을 찢어놓는다는 괴담이 한차 유행했던 터라, 밤에 집 밖을 나가는 걸 무서워했던 기억이 있다. 각자가 겪은 괴담을 매매한다? 신선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당연히 픽션일 거라는 생각 때문에(괴담을 사고파는 게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섭다는 생각을 안 하면서 책을 읽었다. 길지 않은 책이라서 금방 다 읽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두꺼운 벽돌 책을 읽는 것처럼 진도가 정말 더뎠다. 책 안에 들어있는 괴담들이 그렇다고 이해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 나름의 괴담이라면 괴담이 된 것 같다. 책을 읽는데 거의 3주 가까이 걸린 거 같으니 말이다.
괴담매매소는 한 달에 두 번 오픈한다. 주인인 우츠이 쇼타로는 이 특이한 가게의 주인이다. 손님들은 저마다 자신이 겪었던 기묘하고 무서운, 이해되지 않는 기억들을 가지고 와서 우츠이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 들은 우츠이는 100엔을 주고 이야기를 산다. 물론 곁들이는 말들은 일종의 해설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괴이한 이야기만 나오고 끝나면 뭔가 찝찝할 텐데, 그런 상황에서 우츠이는 이야기를 잘 정리해 준다. 그리고 단지 이야기의 정리뿐 아니라, 이야기를 건넨 사람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두려움과 찝찝함도 말끔히 해결해 준다. 그렇게 보자면 가게를 방문해서 괴담을 들려주는 손님들은 100엔 보다 더 큰 위로와 안도감 등을 가지고 가기에 도움이 되고, 괴담을 수집하는 우츠이 역시 이렇게 책을 통해 그 괴담을 다시금 이야기해주니 나름 윈-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책 안에는 총 13개의 기묘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특히 미술실) 일도 있고, 집이나 료칸(여관)에서 일어난 이야기도 있다. 무섭지 않은 산타클로스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고, 한식구처럼 지내는 사촌을 잃은 후 벌어진 이야기, 산에서 고립되었을 때 겪은 이야기 등 다양한 괴담들이 담겨있다. 대부분은 자신이 겪은 이야기이고, 어렸을 때 겪었던 이야기를 풀어낸 것도 많다. 50년 넘게 흐른 사건들도 있는데, 그만큼 끔찍하고 무서운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서 인 것 같다.
그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지워지지 않는 동영상이라는 제목의 이야기였다. 두 번째 방문한 36세의 이시즈카 미사라는 여성의 괴담이었다. 얼마 전 엄마의 친구분의 부탁으로 한 할머니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던 이시즈카는 80대의 기사키 할머니로부터 스마트폰 안에 있는 동영상을 지우는 법을 알려달라는 부탁이었다. 핸드폰 안에는 많은 영상들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지우고 싶어하는 동영상만 이상하게 삭제 버튼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동영상을 열어본 이시즈카는 제단 앞에 둥근 거울 안에 여자의 얼굴이 반만 보이는데, 얼굴이 나왔다가 사라지고 또 나왔다가 사라지고 하는 장면이 찍혀있었다. 그리고 스님의 뒷모습과 함께 불경을 외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신사 같았지만, 스님이 등장하기에 그곳은 절이라 볼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소리도 그렇고 영상도 좀 무섭고 어둡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제는 노부부만 생활하고 있었던 터라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자는데, 이 동영상이 갑자기 재생된 적이 여러 번 있다는 것이다. 무서운 생각에 기사키 할머니 부부는 이시즈카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결국 이시즈카는 휴대폰을 가지고 서비스센터를 방문해서 동영상을 삭제한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기사키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듣게 되는데...
하필 동영상을 지우고 나서 일주일 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이시즈카는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자신이 서비스센터로 안내하고, 거기서 동영상을 지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츠이는 괴담을 들은 후 자신만의 풀이법을 통해 이시즈카에게 또 다른 위로를 건넨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마지막 장을 넘겼다가 무척 놀랐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있을까? 그 한 줄을 읽은 후 머리가 쭈삣쭈삣 섰다. 그 이유는 앞으로 책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양보하겠다. 우츠이의 괴담매매소의 다음 괴담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 무척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