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을 읽으며 혹시 오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잡사 보다 집사가 익숙해서였다. 하지만 첫 페이지를 넘기며 잡사(雜史)의 뜻을 알게 되었다. 원래 잡사의 뜻은 '민간에 전하는 체재를 갖추지 못한 역사책'이라는 뜻이지만, 저자는 책 속에서 잡사의 뜻을 '잡스러운 역사'로 사용했다고 한다. 잡스러운 역사라... 이 말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소위 비하인드 스토리적 이야기를 다룬다고 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책 안에 담긴 15가지의 스토리 안에는 그동안 마주하지 못했던 속 얘기들이 담겨있었다. 물론 잡사 앞에 있는 "명화"와 더불어 명화를 통해 본 잡사, 또는 잡사를 통해 본 명화를 마주할 수 있었다.
책 안에 담긴 역사는 연결이 된다. 앞 이야기가 뒷이야기로, 뒷이야기는 그다음 이야기로 말이다. 그렇기에 이 책 안에서 다루는 역사는 지극히 유럽 사다. 익숙한 이름과 익숙한 그림도 상당수 있었다. 그럼에도, 낯선 이야기들도 꽤 있다. 덕분에 더 흥미롭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3일 천하가 있지만, 유럽에는 9일 천하가 있다. 3일 천하는 왕은 아니었지만, 9일 천하는 여왕이었다. 물론 자신이 원해서 왕이 된 것은 아니었고, 내려올 때도 원해서가 아니다. 오로지 타의에 의해, 타인의 욕심에 의해 그녀는 결국 처형된다. 반대파 역시 그녀를 처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은 그렇게 그려졌고 그녀는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망하게 된다. 제인 그레이의 이야기다.
유명 화가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둘 다 화가와 그의 연인에 대한 이야기다. 아마 이 두 화가의 이름은 무척 익숙할 테지만, 화가의 여인의 이름은 낯설다. 능력이 출중하면, 그만큼 탐을 내는 사람이 많다. 당시에도 유명했고, 지금도 유명한 화가 라파엘로와 렘브란트가 그 주인공들이다. 라파엘로는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갑작스럽게 사망해서, 렘브란트는 사랑하는 여인을 병으로 잃어서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꼽자면 단연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닐까 싶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황후인 그녀는 아름다운 미모를 지녔지만, 후대에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물론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과한 감이 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로 그의 이미지를 최악으로 만든 말인데, 그녀가 실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과소비와 사치의 대명사로 불린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인 그녀는 14세의 프랑스 왕세자비가 된다. 하지만 산만하고 집중력이 없었던 그녀는 공부를 싫어하다 보니 외국으로 시집을 갔음에도 불어를 잘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친정엄마인 마리아 테레지아 역시 딸을 시집보내고 염려를 할 정도로 걱정이 컸다고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된 비사에는 목걸이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드로앙 추기경의 꿈은 총리대신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보석상 주인인 라모트는 자신이 만들어 둔 거금의 목걸이를 팔기 위해 그런 둘을 이용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필체를 흉내 낸 편지를 드로앙 추기경에게 보냈던 것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 마리 앙투아네트를 닮은 매춘부를 통해 드로앙 추기경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라모트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환심을 사려면 목걸이가 필요할 것이라는 말로 드로앙 추기경에게 고가의 목걸이를 판매한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이 거짓이라는 사실이 탄로 나고, 라모트는 유죄 판결을 받는다. 문제는 이 사건이 이상하게 퍼져서 전혀 상관없었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목걸이를 챙기고 누명을 씌웠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다. 그 일로 그녀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고 그렇게 마리 앙투아네트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치의 대명사로 전해진다.
각 단원의 말미에는 인문학 카페라는 이름으로 해당 파트의 역사 이야기가 정리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명화 보다 잡사에 좀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느낌이 든 것이 알지 못했던 역사의 뒤편 이야기가 더 진한 인상을 주어서 그런 것 같다. 덕분에 책에 등장한 명화들을 볼 때마다 곁들여진 이야기가 함께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