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사건 편 두 번째 이야기에 담긴 사건들 중에는 유난히 낯설거나 궁금했던 사건들이 많았던 것 같다. 현 인도 총리인 나렌드라 모디가 계급 중 하위계급인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것도 놀라웠는데, 코빈드 대통령에 이어 2022년 당선된 무르무 대통령 역시 불가촉천민 출신이라고 한다. 그래서 불가촉천민이 과연 인도 안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궁금했는데, 2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우리 입장에서도 씁쓸한 내용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의 전범에 대한 재판에 관한 내용도 만나볼 수 있었다. 일본의 총리가 바뀌거나, 8.15 광복절이 되면 유난히 뉴스에 많이 등장하는 내용 중 하나가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다. 우리도 과거사(친일파를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를 지닌 민족이지만, 일본 역시 전범들에 대해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않았다. 특히 A급 전범으로 분류된 인물 중 겨우 28명만 재판을 받았는데, 그들 역시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못했다. 책 안에는 그 A급 전범들 중 몇 명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인간으로 그런 짓을 할 수 있고, 어떻게 그래놓고도 태연하게 자신의 죄과에 대해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책에 담긴 내용의 상당수는 그래도 들어본 적이 있는 내용이었는데, 제일 신선했던 것은 바로 중국 현대사의 굵직한 역할을 했던 쑹씨 세 자매다. 사실 쑹씨 자매들은 무척 낯설었는데, 그녀들의 남편의 이름은 익숙하다. 큰 딸인 아이링의 남편은 중국의 대부호인 쿵샹시였고, 둘째인 칭링의 남편은 중국의 국부로 불리는 쑨원이다. 셋째인 메이링의 남편은 중화민국(대만)의 대총통인 장제스다. 어떻게 이 세 자매는 대단한 남편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사실 이 세 자매는 남편들을 그 자리에 올리는 데 정말 큰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었다. 쑹씨 자매들의 아버지인 쑹자수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친척 집에 일꾼으로 미국에 가게 된다. 미국에서 기독교 신자가 된 쑹자수는 교회의 도움으로 대학 교육을 받고 중국으로 돌아와 가족을 꾸리고 사업을 시작한다. 다행히 영어와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부를 쌓은 쑹자수는 딸에게도 아들과 동일한 교육을 받게 하고 딸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다. 당시 중국 문화에서는 놀라운 일이었고, 이들은 신여성으로 교육을 받고 중국으로 돌아온다. 큰 딸 아이링은 아버지의 친구인 쑨원을 돕는 비서 역할을 했었는데, 당시 아내와 자녀들이 있던 쑨원은 그런 아이링에게 반하지만 아이링은 쑨원을 거부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주선으로 은행가 출신인 쿵샹시와 결혼해 부를 쌓는다. 아이링의 빈자리를 채운 건 둘째 칭링이었는데, 그녀는 평소 쑨원을 존경해왔다. 쑨원은 그런 칭링에게 애정을 느끼고 청혼을 한다.(그러고 보면 쑨원도 참 금사빠인 거 같다.) 문제는 쑨원은 자녀들도, 아내도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칭링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쑨원과 결혼을 하고, 결국 쑨원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중국 공산당에서 유력한 역할을 한다. 셋째 메이링은 어떻게 장제스를 만나게 된 것일까? 장제스 역시 이혼 후 재혼을 한 지 1년여 밖에 안된 상황이었다. 메이링은 영웅을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다분히 언니 칭링의 영향이다.), 그때 뜨고 있던 별이 바로 장제스였던 것이다. 장제스 입장에서도 메이링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났고, 신교육을 받아 깨어있는 데다가, 무려 쑨원의 처제였기에 무척이나 매력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결국 둘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자매들은 일본을 중국에서 몰아내기 위해 서로 힘을 합하여 고군분투한다. 문제는 일본이 중국에서 물러난 후였다. 자매들은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고 지내게 된다. 왜 쑹씨 세 자매는 원수가 되었을까?
흥미로운 세계사의 두 번째 사건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시대는 다르지만, 역사는 여전히 되풀이된다. 때론 틀을 깨고 벗어나고 바뀌어야 함에도 결국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기도 한다. 그 틀을 깨는 데는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변화는 꼭 필요하다는 것. 변화를 위해서는 그에 대한 희생이 요구된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그리스, 인도, 중국, 스페인, 러시아, 미국 등 다양한 세계사 속 이야기를 통해 깊이 있는 역사적 지식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교훈까지 마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