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느껴지는 느낌(즐겁고 행복함?) 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던 저자 타라 웨스트오버.
선진국이지만 나라가 커서 그런 것일까?
타라의 삶의 절반의 이야기를 보면서 경악이라는 단어 외에는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혹은 신념)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 또한 볼 수 있었고 말이다.
나 역시 집안 대대로 종교를 가지고 있기에, 종교의 신념 안에서 생활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지만 그 신념이 때론 터무니없거나 그로 인해 발생되는 다른 어려움들에 대해서는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타라의 아버지는 모르몬교의 독실한 신자이다. 그 신념 안에서 국가나 정부를 죄악시하였다.
덕분에 타라를 포함한 7명의 자녀는 출생신고를 안 하기도 하고(차후 병원 문제 때문에 늦은 출생신고를 하기도 했다.), 학교를 홈스쿨링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7남매 중 막내인 타라는 그런 집안 분위기 속에서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복숭아 통조림을 계속 만들어서 비치하거나, 엄마가 하기 싫은 산파일을 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실제로는 재정적 필요 때문에- 강요하는 모습 등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는 하기 힘든 행동들을 하며 신의 뜻을 강조한다.
또한 어머니 또한 약초 등의 대체의학으로 병을 고치거나 타라의 형제자매들이 크고 작은 사고가 났을 때조차 병원을 가지 못하게 하는 등의 방조를 통해 철저히 사회로부터 분리된 생활을 했다.
자녀는 태어나면 가장 먼저 접하는 사람이 부모일 수밖에 없다. 그런 부모의 생각이 나 신념이 자녀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타라의 다른 형제들 중 일부는 그런 부모의 뜻에 동조하거나 그에 맞게 행동하곤 했다.
과연 우리나라였다면 이 모든 게 가능했을까?
(물론 미국은 의료비가 턱없이 비싸기 때문에 직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큰 병원비에 대한 부담으로 산파를 찾는 것 같긴 하지만...) 아이의 인권을 중시하고, 우리보다 더 한 잣대로 아동학대를 처벌하는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아이러니하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대학을 가고, 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
다행이라면 그녀의 오빠 중 타일러 덕분에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
오빠로부터 그녀가 들은 내용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과는 너무나 다른 삶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삶을 동경하게 된다. 학교에 다녀본 적 없는 그녀가 독학으로 시험에 합격하고 대학생활을 하게 된다.
무에 가까운 상태에서 이루어낸 성과 치고는 너무 대단하다.
물론 그런 결과를 얻기 위해서 그녀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눈물을 흘렸을까?
누군가에게 공부는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는 강요에 의한 것인 경우가 많다.
(아니 우리 자신만 봐도 학창시절과 학교에 다니는 것이 고역이고 힘든 기억이 있지 않은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당연하게 누리지 못한 타라에게 그 모든 것은 꿈과 같았고, 그래서 그녀는 더욱 노력했다. 27살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박사학위는 타인에게도 큰 의미가 있겠지만, 그녀 자신에게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나에게도 상당히 큰 의미가 있었다.
책을 읽으며 왜 책 제목이 배움의 발견일까를 계속 곱씹었다.
배움의 길을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물론 과거의 타라의 가정과 같은 경우도 있지만...;;), 그 길을 발견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게 아니라 노력이었다는 사실.
타라의 이야기를 통해 안이하게 생각하고, 때론 배부른 투정을 부렸던 내 과거가 민망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