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몸값 2>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
-
올림픽의 몸값 2 ㅣ 오늘의 일본문학 9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88올림픽을 앞둔 1988년의 서울이 그랬듯이,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둔 도쿄도 모든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손꼽아 올림픽을 기다렸을 거다. 전 세계의 모든 언론과 시선이 일본을 주목하고 있다는 뿌듯함, 세계인의 축제의 장이 바로 자신들의 땅에서 열리고 있다는 자부심, 이제는 폐전국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한 나라로 거듭난다는 자신감 등이 도쿄를, 나아가 전 일본인들을 열광케 했고 흥분케 했다. 그들에게 올림픽은 간절한 염원이었고 희망이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일본을 한껏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다. 도시를 활보하던 야쿠자들도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는 숨죽이며 지내기로 서로가 합의를 했고, 좀도둑들도 국가적인 망신을 피하기 위해 잠시 도둑질을 멈춘다. 깨끗하게 단장한 거리를 보여주기 위해 흉물스러운 건물들은 전부가 철거되었고, 최신식 경기장을 짓기 위해 밤낮없이 인부들은 땀을 흘렸다. 당장의 생계가 힘들어도, 쉬지 못해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그들에게 올림픽은 꿈이었기에 전혀 힘든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때에 찬물을 끼얹는, 아니 찬물 정도가 아니라 빙하같은 얼음을 쏟아 붓는 편지가(그것도 일본인이 쓴), 경찰서에 도착한다.
"나는 도쿄올림픽의 개최를 방해할 것이다. 며칠 안으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
두말의 설명이 필요 없는 유쾌한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이번에는 <올림픽의 몸값>이라는 장편소설로 찾아왔다. 도쿄대생 주인공 구니오가 도쿄올림픽 개최를 인질로 국가를 대상으로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며 벌이는 거침없는 한 판 승부다. 전 2권이지만 빠른 전개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 길지 않은 문장 호흡으로 속도감을 높여줘 잡으면 2권까지 순십간에 읽히는 책이다. 특히나 올림픽 개최의 날이 점점 다가오면서 쫓고 쫓기는 관계가 숨막히게 조여오면 절대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주인공 구니오는 도쿄대생으로 부모님과 형이 보내주는 돈으로 착실하게 공부를 하며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구니오에게 형의 부고 소식이 전해진다. 올림픽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인부로 일하던 형이 심장 발작으로 쓰러져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형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건설 현장을 찾은 구니오는 형의 죽음을 급하게 덮으려고만하는 건설업체 측에 의문을 품게 된다. 더하여 형이 자신을 위해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는지 본인이 스스로 체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한 구니오는 그 두가지 이유로 인해 자신도 건설 현장에서 인부들과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된다.
건설 현장에서 구니오가 본 올림픽은 철저하게 자본가를 위한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할 수 밖에 없었으며, 프롤레탈리아들은 더 처절하게 짓밟히고 있었다. 올림픽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은 허울 뿐이었다. 하루 3교대, 올리픽이 닥쳐와서는 2교대까지 하는 인부들은 오히려 자본가들에게 봉이었다. 장갑 등 각종 장비를 비싼 돈으로 되팔아먹었으며, 짧은 시간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그들에게 형편 업는 주먹밥을 인근 식당에서 파는 밥보다 비싸게 팔아먹었다. 힘든 노동을 견디기 위해 필로폰 등 마약을 찾아 전전하는 인부들을 못본척 했으며, 그로 인해 발작을 일으켜 위험 상태에 이르러도 외부에 알려지면 안된다며 덮어버리기에만 급급했다.
"도쿄만 부와 번영을 독차지하다니, 결단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에요. 누군가가 나서서 저지해야 합니다.내게 혁명을 일으킬 힘은 없지만, 그래도 타격을 주는 것쯤은 할 수 있어요.
올림픽 개최를 구실로 도쿄는 점점 더 특권을 독차지하려 하고 있어요. 그걸 말없이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요."
_ <올림픽의 몸값>1권, 404쪽
구니오는 자신의 형이 이러한 착취 속에서 철철한 외로움과 싸워가며 쓸쓸히 죽어간 사실을 알고 국가에, 세상에 분노하게 된다. 그리고 국가가 지금 가장 두려워 하는 것,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인질로 한 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하지만 역시 일개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싸우는 건 쉽지 않다. 건설 현장에서 몰래 빼돌린 다이너마이트로 경찰청장의 집, 경찰 학교 등 폭파 사건을 일으키지만 그 사건이 일어난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덮여진다. 신문에 단 한줄도 언급 안된 건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의 철저한 입막음은 구니오를 더욱더 분노하게 한다.
이렇게 보면 마치 올림픽을 앞두고 계급투쟁을 하는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결 구도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소설 자체가 그렇게 무거운 건 아니다. 오쿠다 히데오 역시 겉으로는 프롤레타리아의 편에서 그들을 옹호하고 자본가를 비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계급 투쟁을 한다는 대학생들이 실은 사상과 신념 보다는 자기 몸 챙기기에 급급한 연약한 존재들이고, 행동이 아닌 자신들이 쳐 놓은 울타리 안에서 자기들끼리 벌이는 탁상공론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것을 보면 말이다. <남쪽으로 튀어>에서도 그렇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이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을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중간 줄타기를 잘 해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을 뒤로 하더라도 구니오와 경찰 마사오의 쫓고 쫓기는 관계, 협상금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기차 역에서의 숨막히는 추격신, 그리고 최후의 날인 올림픽 계회식 날 경기장 안에서 두 사람이 마주하는 순간까지 그 스릴과 긴장감은 단연 이 소설의 최고라 할 수 있겠다. 구니오는 과연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경찰 마사오가 모든 일본인의 염원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이 둘을 둘러 쌓고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과 사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이 한데 어울려 맛깔나게 버무러진 정말 말 그대로 '재밌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