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악마들 - 중앙아시아 탐험의 역사
피터 홉커크 지음, 김영종 옮김 / 사계절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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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최악의 사막"_ 스벤 헤딘, "아라비아 사막은 타클라마칸에 비하면 '길들여진' 것" _ 오렐 스타인, "죽음의 땅" _ 퍼시 사이크스 경(카쉬카르 주재 영국 총영사), "너무나 소름끼치는 황료함" _ 누이 엘라(사막 여행 전문가), "들어가면 당신은 나오지 못하리라" _ 투르크어로 타클라마칸의 뜻

북쪽에는 장엄한 천산 산맥이 있고, 서쪽으로는 세계의 지붕인 파미르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카라코람과 곤륜 산맥이 뻗어있다. 오직 동쪽에만 산맥이 없지만 그 대신 롭 사막과 고비 사막이라는 두 개의 장애물이 놓여 있다. 2천 년 전 유사(流沙), 즉 움직이는 사막이라 불리는 타클라마칸을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비단길이 불리는 실크로드의 한 가운데 있다. 실크로드는 장안(오늘날의 서안)에서 시작하여 감숙성의 난주를 지나 고비 사막 안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인 돈황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길은 두 갈래로 갈리는데, 옥문관을 지나 타클라마칸의 북쪽으로 투르판, 카쉬갈 등을 통과하는 서역북로와 양관을 지나 롭 노르를 끼고 가면서 누란을 지나 가는 서역남로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두 길은 다시 합쳐져 파미르를 건너 서쪽의 투르키스탄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순식간에 하늘이 어두워지고..... 잠시 후 폭풍이 무서운 힘으로 대상들 위에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엄청난 양의 모래가 자갈과 뒤섞여 공중으로 올라가 소용돌이치면서 사람과 동물 위로 덮쳤다. 더욱 어두워지면서 무엇인가 꽝 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폭풍의 으르릉거리는 포효 소리와 뒤엉켰다. 모든 게 마치 지옥의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 ...

이런 폭풍의 습격을 받은 여행자는 아무리 푹푹 쪄도 털담요를 뒤집어쓰고서 머리 위로 미친 듯이 쏟아지는 돌에 부상을 입지 않도록 해야 했다.

사람과 말은 몸을 엎드린 채 폭풍의 분노를 참아내는 수밖에 없었고, 이는 때로 몇 시간씩 계속되었다.

_ <실크로드의 악마들>, 24-25쪽

 
     

 

이름에서부터 그렇듯 '실크로드'는 화려한 비단이 하늘거리고, 딸랑거리는 낙타가 석양을 걸어가는 매우 낭만적인 길로 여겨져지지만 사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실크로드만큼 험난하고 불안한 역사를 가진곳도 없다. 수많은 침략과 약탈, 역사의 발견까지 '고고학적 침략'이라고 명명된 실크로드. <실크로드의 악마들>은 바로 이 실크로드의 역사를 탐험가 6인의 이야기를 통해 되짚어 본다.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오렐 스타인, 독일의 폰 르콕, 프랑스의 폴 벨리오, 미국의 랭던 워너, 일본의 오타니 백작까지 후대의 평가를 떠나 실크로드를 발견한 핵심 인물 6인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그 역사를 이야기 한다. 

모래로 뒤덮여 있던 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소설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삽을 잃어버려 그것을 찾기 위해 사막을 헤매다 신비의 왕국 '누란'의 유적을 발견할 수 있었던 스벤 헤딘이나, 고문자에 열광하는 서구인들을 보고 아애 본인이 글자를 만들어 고문서를 만들어벼려 서구의 고고한 학자들을 웃음거리로 만든  이슬람 아훈, 스타인의 현련한 말에 막고굴의 모든 것을 내준 왕안석까지 실크로드 위를 거쳐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편 한편이 픽션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또한 이 책은 더이상 실크로드를 낭만의 길로 묘사하지 않는다. 실크로드가 생겨나게 된 이유만 보아도 결코 '교류'가 그 중심에 있지는 않다. 실크로드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건이 타클라마칸을 넘은 이유는 강해지는 흉노에 대항할 방법이 없자 중앙아시아에 사는 월지국과 손을 잡기 위해서였다. 정복과 피정복의 관계, 사막이라는 환경에서 오아시스 도시가 갖는 물자의 풍족함 등이 침략과 약탈로 반복되며 자연스레 하나의 길이 만들어지고, 훗날 교역의 중심길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거다.

이 책의 저자는 이 6명의 탐험가에 대한 도덕적인 평가는 뒤로 미루자고는 하지만 역시 그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는 없었나보다. 중국인들의 입장에서야 이들 6명의 탐험가는 사실 무자비한 약탈자와 다름 없었다. 페리오는 돈황 천불동의 '비밀의 서고'를 들어간 범죄를 저질렀고, 스벤 헤딘 역시 누란의 중요한 역사 문서를 다 가져가 버렸다. 수집광들이 칼질해 놓은 석굴 사원의 벽화들과 본국으로 가져간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수많은 유물들... 하지만 이에 대해 피터 홉커스는 말한다. "유물의 손상을 가한 것이냐, 유물을 구출한 것이냐를 묻느다면 두 가지 다 맞는 말이다. 유럽인들이 유물을 빼앗아 간 것도 맞고, 그대로 두었다면 무슬림들에 의해 손상을 당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실크로드 발굴을 둘러싼 탐험가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야 각자 하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을 떠나 실크로드를 둘러싼 중앙아시아를 탐험한 그들의 공은 인정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실크로드는 누구의 역사도 아니다. 그냥 실크로드의 역사일 뿐이다. 그 길을 걸었던 소그드 상인들을 어느 국가의 민족이 아닌 그냥 '소그드 상인'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실크로드의 역사도 그냥 실크로드의 역사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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