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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최후의 20년 - 유랑하는 군자에 대하여
왕건문 지음, 이재훈.은미영 옮김, 김갑수 감수 / 글항아리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52살에 노나라 대사구의 자리까지 올랐던 공자. 제나라 협곡에서 벌인 협상에서 군사적 병력 하나 없이 뛰어난 기지 하나로 제나라에게 빼앗겼던 땅도 되찾고, 순장과 같은 사회적 악습도 뿌리 뽑았지만 무력한 노나라의 정공과 마치 자신들의 나라인양 권력을 휘두르는 삼환의 세력에 공자 나이 55세에, 제자들과 함께 자신의 고향을 떠나 천하주유를 시작한다. 노나라를 떠나 제, 위, 정, 진, 채 등 춘추전국 시대의 천하를 떠돈 14년 간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바로 이 책 <공자, 최후의 20년>이다.
우리가 공자를 매우 고리타분한, 혹은 어려운 인물로 여기는 건 그동안 우리는 공자를 '사상가'로서만 읽어왔기 때문이다. 최근 주윤발이 공자 역으로 열연을 했던 영화 <공자>도 그렇고, 이 책 <공자, 최후의 20년>도 공자라는 인물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공자를 사상가 공자가 아닌 역사 속 한 인간인 공자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음에 대한 인간적인 고뇌, 14년을 떠돌며 생활의 궁핍에서 오는 제자들과의 갈등, 자신의 뜻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반성까지, <춘추>와 <논어> 등의 공자를 대표하는 계급장을 떼버리고 인간 공자를 조망한 것이다.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지위를 감당할 만한 능력을 갖출 일을 걱정하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남들에게 알려질 만한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하라.
_ 『논어』, 「이인」
공자가 말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남들에게 알려질 만한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하라"고. 공자의 일생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음에 대한 고뇌가 주조를 이루고 있었다. 노나라에서 결국 그의 뜻을 펼치지 못한 공자는 위나라와 진나라 등에서도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떠돌았다. 그와 일평생을 동고동락한 제자들까지도 공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라고.
그럴만도 하다. 제 아무리 옳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등을 돌린다면 자기 자신도 그것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십상이다. 그런데 14년간 가족의 얼굴도, 제대로 된 밥 한번 먹지 못하고 공자의 신념을 따라 14년을 떠돌이 생활을 하며 생활의 고통을 겪고 있는 제자들은 오죽했을까. 어찌되었든 등용이 되어야 도도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 않은가. 답답한 제자들은 그에게 물음을 던지지만 공자의 대답은 하나다. "군자는 능한 것이 없음을 병으로 여기고,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결국은 공자의 말이 맞았던 셈이다. 73년 평생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지만 공자는 도를 아는 자들은 결국 자신을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고, 그의 사상과 가르침은 수천 년을 지난 지그의 우리들까지 읽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조망한 부분 중 제자들과의 갈등을 묘사한 부분도 재미있다. 흔히들 14년을 쫓아다니며 공자를 받든 제자들은 공자에게 불만 하나 없었을 것 같지만 그들도 인간인지라 떠돌이 생활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을거다. 먹지도, 쉬지도 못하며 공자 하나만을 바라보며 척박한 땅을 떠돌던 제자들은 이렇게 외친다. "우리는 코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데 왜 정착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이리저리 방황해야 합니까?_ 120쪽" (공자는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로 그에 대한 대답을 한다.)
"안회라는 자가 있는데 배우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으며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단명하여 지금은 없습니다. 그처럼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를 이제껏 보지 못했습니다."
_ 『논어』, 「옹야」
공자에게는 수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도 유독히 안회를 아꼈다고 한다. 이는 물론 안회가 공자의 뜻을 가장 잘 이해했으며 영민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허구가 많이 보태어지기는 했으나 영화 <공자> 속의 안회는 얼음 바다에서 숨이 멎어가면서도 공자의 글이 적혀있는 죽간을 하나라도 더 건지려고 애쓴다. 그만큼 공자의 말씀을 소중히 여겼던 제자였다. 공자 역시 그를 아들 이상으로 생각했는데 안회의 죽은 시신을 끌어안고 며칠을 슬퍼했다고 전해진다. 자로 역시 공자가 아끼던 제자였는데 그 또한 공자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고리타분해 보이기만 하던 공자도 한 인간으로 만나면 재미있다. 그의 사상이 어떠한 배경을 바탕으로 나왔는지도 자연스레 이해되고,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이해하면서 그의 사상까지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쓰디쓴 처절한 방랑기, 갈등과 끈끈한 유대의 두 면모를 가지고 있는 제자들과이 관계, 동거동락하며 겪는 뭉클한 감동의 스토리까지 인간 공자가 궁금하다면 만나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