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심리학 / 꿈꾸는 20대, 史記에 길을 묻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울의 심리학 -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관한 심리 치유 보고서
수 앳킨슨 지음, 김상문 옮김 / 소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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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감기처럼 흔할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사실 우울증은 그 이름조차 아까울 정도로 우리 삶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너무 심각해서 우리의 삶을 통째로 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
_ 41쪽 중에서

지금, 혹은 종종 슬프고, 외롭고, 비참하고, 우울함을 느끼는가? 그렇다면 여기 당신을 위한 책이 있다. <우울의 심리학>은 우울함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방법론'을 이야기 하기 보다는 그것의 근본을 찾는 '원인론'을 밝히는 책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발칙하게 주장한다. '당장 낫는 치유법은 없다'고. 우울증의 실체를 밝히고, 그것을 만든 원인을 찾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며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자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한 정신과 의사는 우울증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우울증은 인류가 알고 있는 최악의 비육체적인 고통이다"라고. 우울증은 발병률이 엄청나게 높으나 불행히도 그에 대한 적절한 치료법은 아주 적은 병이다. 우울증에는 그 정도에 따라 단계 구분을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은 다행히도 스스로 극복을 하며 지나간다. 하지만 무기력함이 점점 깊어져 혼란스러움과 절망감을 동반하게 되는 심각한 단계로 번지면 치료를 위해 약물 치료나, 전기 치료까지 감행해야 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아는 유명 인사 가운데도 이러한 우울증을 앓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베토벤, 슈만, 뉴턴, 카프카,다윈, 처칠(처칠은 우울증을 자신의 '검은 개'라고 불렀다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우울증이 극단적으로 발현되어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몇몇의 배우들이나 대기업의 CEO, 정치인들이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주장하는 흥미로운 사실은 적정한 우울증은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조울증이라 부르는 특별한 형태의 우울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때는 아주 우울하지만 어떤 때에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맞이 하는 형태의 우울증. 조증이 찾아오는 시기에, 아주 창의적이 되기도 하고 평상시 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일을 해내기도 하는데 세계적인 발명가들의 경우 이러한 조증기에 많은 것들을 이루어냈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우울하다고 느꼈던 날들을 떠올려보자. 대부분 무언가에 좌절되었을 때,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을 때, 이 세상에 나 혼자라고 느끼는 그런 순간들이 대부분이었을 거다. 자신에게 좀대 관대해지는 것, 자신에게 배려하는 방법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우울증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이 책의 주장대로 우울증을 치료하는 치료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 대한 믿음과 나에 대한 배려만이 그것을 달래줄 수 있을 뿐. 

* 우울한 날을 위한 조언
1. 무엇인가를 하라!
: 지금 이 순간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고, 차 한잔하면서 라디오를 듣는 여유를 가져 보자. 상황이 조금 나은 날에는 왜 슬픈지, 당신이 느끼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좀 더 악화되었을 때에는 이러한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2. 당신만의 그 동굴은 바깥보다는 따뜻하고 눅눅하지 않다.
: 당신만의 동굴을 찾아서 그곳으로 피신하고 당분간 머물러라. 당신이 그곳에 잠시 머문다고 해서 당신의 가족이 굶어 죽지는 않는다. 당신의 회사가 당신이 없다고 파산하지는 않을 것이다. 잠시 당신의 동굴에 머물면서 당신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3. 최악의 상황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을 명심하라.
: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상 모든 것에는 결말이 있다. 이와 같이 당신의 고통스러운 느낌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저 '오늘'그러한 느낌이 들어서 당신을 힘들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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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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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少數意見, dissenting opinion] 

 1. 합의체(合議體)에서 다수결에 의하여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다수의 찬성을 얻지 못한 채 폐기된 의견.
2. 대법원 등의 합의체 재판부에서 판결을 도출하는 다수 법관의 의견에 반하는 법관의 의견.

 

자기 생각에 100%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다 모두가 나의 생각이 틀렸다며 내 의견을 소수의견으로 치부해버린다면? 다수의 힘은 무섭다. 사람을 주눅들게하고 가치를 송두리째 짓밟아버리며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마저 부정하게 한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는 용기"를 말한 한 광고가 유행을 했듯이 다수에 반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만큼 다수에 반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소수의견'. 이 소설을 다 읽고 그 사전적 정의부터 찾아봤다. 다수결에 의하여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다수의 찬성을 얻지 못한 채 폐기된 의견. "폐기된 의견"이라는 부분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모든 사람은 각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배워왔건만, 그렇게 가치있는 사람의 의견이 다른 사람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폐기 될 수 있다니. 그 말이 너무 쓰라리게 다가왔다. 하지만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음을 깨닫고 말았다.

<소수의견>은 소설을 표명하고 있지만 읽다보면 작년 1월 6명의 사상자를 낸 용산참사를 연상케 한다. 소설은 아현동 뉴타운 재개발 지역에서 시작한다. 철거 농성을 벌이던 지역 주민들과 경찰이 대치를 이루던 중 16 철거민 소년과 20살 진압 경찰이 죽임을 당한다. 검찰은 경찰을 죽인 살인범으로 16 철거민 소년의 아버지를 지목하고 기소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죽인 것은 경찰이었고 자신은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하는 소년의 아버지 변호는 이 책의 주인공인 국선변호사 윤 변호사가 맡게 된다. 사건은 그렇게 용산 참사와 닮아 있었다.  

   
 

"이제 법률적인 견해란 말은 지겨워요. 나한테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비겁한 말로 들립니다. 인간적으로 말해보세요. 윤변호사님도 변호사이기 이전에 자기 생각을 가진 인간 아닙니까? 윤변호사님이 제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_ <소수의견>, 243쪽 중에서

 
   

 

철거민 지역의 한 힘없는 가장이 국가를 상대로 낼 수 있는 목소리는 얼마만큼일까? 사건 현장에 있었던 전경들과 철거민의 목소리 중 어느 목소리가 더 크고 강력하게 전달 될 수 있을까? 민변을 유령처럼 떠돌다 국선변호사가 된 변호사와 권력과 신념으로 똘똘 뭉친 잘나가는 검사가 법정에서 싸우면 누구의 의견이 더 유리하고 설득력있게 들릴까? 

윤 변호사는 소년의 아버지에 눈빛에서 진실을 읽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다. 경찰 진압 중에 사람이 죽은 사건. 담당검사는 수사 자료를 숨겼고, 철거민 아버지를 위해서는 그 누구도 나서려고 하지 않는 상황. 윤 변호사는 여기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큰 판을 벌이기로 결심한다. 피고는 대한민국. 청구 금액은 100원. 100원? 이라며 다시 그 금액을 확인하게 되지만 정말 100원이다. 결국 윤 변호사가 원한건 배상금이 목표가 아니었던 것이다. 국가가 소수의견에 귀를 기울여주기를, 오히려 100원? 이라며 다시 한번 사건을 들춰봐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소설의 전개는 후반부 법정 싸움으로 넘어가면서 더 흥미진진해진다. 민간배심원단까지 꾸려진 이 사건은 며칠에 걸쳐 공판이 계속 되고,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들의 지속적인 출현으로 판세는 계속해 변해간다. 결정적 증거를 가진 윤변호사측을 막기 위해 검찰은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한 압수 수색이 진행되고, 또 이를 뒤엎을 반전이 이어지는 등 잠시 뒤 쉴 틈이 없이 책장은 계속해 넘어간다.

이 사건에서, 이 소설에서 승자는 없었다. 윤변호사는 국가라는 적과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국가는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누가 국가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 있으며, 누가 국가의 손을 잡아본 적 있으며, 누가 국가의 심장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검사는 또 어떠한가. 자신들이 누구를 위해 싸우는지 알지 못하며, 자기의 신념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권력은 언제든 제 입맛에 맞게 사람을 바꿀 수 있기에 권력을 누리면서도 권력 앞에 몸 사리는 존재였다. 책장을 덮으며 씁쓸함과 무력감이 몰려왔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남아 있다는 작은 희망만은 남겨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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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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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상관없어요.
나는 당신의 글과 사랑에 빠졌어요.
당신은 쓰고 싶은대로 쓰면 돼요.
난 모든 것을 사랑하니까요.

_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153쪽 중에서

세상 모든 것이 깊은 잠에 빠져버린 고요한 새벽 세 시. 오늘도 그녀는 언제 올지 모르는 그의 이메일을 기다리고 있다. 모니터를 앞에 두고 애꿎은 마우스만 계속 만지막거리다 아애 와인을 한잔 따라 모니터를 술친구 삼아 기다린다. 그의 생김새도, 체격도, 말투도, 목소리도 그 어느 것 하나 아는 게 없지만 그의 이메일은 어느새 그녀의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모니터의 저 건너 편 이메일을 쓰고 있는 상상속 그와 그녀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이메일이라는 것을 처음 쓰게 된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이었다. 고심에 고심 끝에 '아이디'라는 것을 만들고, 손으로 쓴 편지가 아닌 자판으로 두드려 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이메일의 세계를 접했다. 매일 만나는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이메일이라는 것을 통해 마주하고는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기쁨과 슬픔을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나누기 시작했다. 그치만 그건 모두 현실세계에서의 친구들과 가능했다. 생면부지의 사람과 이메일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나로서는 상상이 불가한 세계였다.

그런데 레오와 에미는 그렇게 사랑에 빠졌다. 우연히 아니 어쩌면 운명적으로 잘못 보내지게 된 메일 한통은 이들을 이어주었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는 레오와 에미가 주고받은 수백통이 넘는 이메일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이메일을 매개로 한 환상의 사랑, 끊임없이 고조되는 감정,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그리움, 가라앉을 줄 모르는 열정.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의 만남이라는 목표로 펼쳐진다.   

   
 

1월 15일
제목 : 구독 취소
정기구독을 취소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이메일로 취소 신청을 해도 되겠지요?
그럼 이만 줄입니다. E. 로트너.

 
   
 

소설의 첫장은 에미가 잘못 보낸 한통의 메일로 시작한다. 에미는 잡지 정기구독을 취소하려고 메일을 보내지만 실수로 주소를 잘못 적는 바람에 그 메일은 레오의 메일함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 둘의 메일 연애는 시작된다. 처음 레오와 에미가 서로를 편하게 여길 수 있었던 건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없는, 현실감이 없는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그 익명성이 이 둘을 무장해제 시키기 시작했고, 이들은 차차 글로써 서로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까지 나누게 된다.

점차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만 가는 에미, 잠을 자는 순간까지도 노트북을 옆에 끼고 그녀에게 오는 메일 알람을 기다리는 레오. 이 둘은 그 환상을 깨려 계속해 만남을 시도하지만 막상 만남의 날이 오면 그것이 두려워 피하고만 싶어한다. 만나고 나서는? 이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이들을 압박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느낄 실망이 한없이 두렵기만 하고, 서로가 지켜야만 하는 현실의 사람들과 상황이 부담으로 느껴진다. 레오와 에미는 이미 자신들이 쓰는 글이 그들의 실제 모습, 실제 삶이 아니며 서로가 서로를 상상하며 그렸던 수많은 이미지가 실제 모습을 대신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이들을 서로를 갈망하면서도 자꾸만 주저하게 된다.

 소설 구성 자체가 이메일이고, 시간 순서대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재미 못지 않게 메일과 메일 간격 사이를 가르는 '기다림'을 경험하는 즐거움(?)이 있다. 때로는 1,2초 간격으로 메일이 도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2주일이 넘게 상대로부터 오지 않는 메일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게 바로 이메일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레오가 되어, 때로는 에미가 되어 초조함, 불안함, 설레임, 떨임으로 상대방의 답변을 기다리는 그 감정.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이다.

 그래서 그들은 과연 현실에서 만났을까? 이메일로 나눈 그들의 사랑은 현실의 사랑으로 맺어질 수 있었을까? 물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이 소설의 핵심은 아니겠지만 이 소설의 결말은 멋졌다(궁금하다면 책을 보시기를). 새벽 세 시, 당신이 있는 그곳에는 바람이 부나요? 라고 묻는 레오의 이 메일이 받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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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 이론의 쓸모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택광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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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을 사용해야 걷거나 달릴 수 있듯이,
이론이 있어야 우리는 모든 것을 집어삼켜버릴는 현실의 중력에 대항해서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다.

_ 저자 서문 중에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 이론이 우리 삶에, 우리 생활에 가져다주는 '쓸모'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학자를 현실과 동떨어진 상아탑에 갇혀 쓸모 없는 것들을 위해 시간응 허비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도 바로 이 아이러니 때문이다. 인문학이 굶어 죽는 학문이고, 철학은 지적 사치에 불과하다고말하는 것. 학문과 실용의 갈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지점에 있어 이 책은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 이론의 쓸모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이론은 인간의 몸의 근육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그 근육을 단련시켜 써먹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고, 근육이 있는한 써먹을 수 없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책의 목적은 이론의 역할을 말하는 것이다. 철학의 고전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인 관점에서 그 문제의식들에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만한 계기들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인문좌파'이다. 정치적 의미에서의 좌파가 아니다. 인문좌파는 기존의 정치 지형도에서 합의한 우파와 좌파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주체이다. 우파와 좌파의 이념 모두를 회의하는 독특한 사유의 주체가 바로 인문좌파이다. 합의된 공동체의 윤리를 의심하고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그래서 인문좌파들의 역할이다. 

인문좌파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를 시작해 벤야민, 헤겔, 라캉, 사르트르, 지젝과 데리다로 이어진다. 네그리, 랑시에르 등과 같이 내게는 생소한 사람들의 이름도 등장한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중간중간 '간주곡'이라고 들어간 팁들은 읽는 것을 조금 더 수월하게 도와준다. 한번에 다 소화해내기 힘든 내용을 담고는 있지만 철학자들의 사상과 주장이 잘 정리 되어 있다.

책 제목은 '인문 좌파를 위한'이라는 센 단어로 겁 먹게 하지만 그보다는 "이론의 쓸모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철학 교양서"정도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현대 철학자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음직한 책이다. 버겁기는 했지만 읽고난 뒤 보람은 남는 책이었다.


* 학문하는 자를 위한 처세술 5계

1. 일단 학문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기존의 제도와 질서를 몽땅 거부하지 마라. 결국은 자가당착에 빠진다.

2. 좋은 교수나 학자들과 친하되, 그들의 일에 깊이 관여하지 마라.

3. 되도록 돈 생각은 하지 마라.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아무리 돈을 벌려고 해도 돈을 벌 수 없을 것이니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4.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문을 하겠다면 자기 학문활동을 극대화햐아한다. 돈을 많이 버는 자본가가 항상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5. 자기보다 학문적 수련이 덜 된 사람의 비판에 발끈해서 우왕좌왕하지 마라. 하찮은 사람은 같은 비판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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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세상에서 죽다
리루이 지음, 김택규 옮김 / 시작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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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백사(蛇)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런 그녀의 바람을 안 숲 속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선택을 만류했다. "뭣 하러 힘든 인간 세상에 가려고 해. 지금처럼 자유롭게 살지 못할거야. 인간이 되는 게 뭐 좋을 게 있다고." 하지만 인간이 되고 싶었던 그녀의 욕망은 이미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도록 강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백사는 아미산 가장 깊은 곳 '백운동'이라는 동굴로 들어가 3000년이라는 시간을 명상에 들어간다.  처음 천 년은 인간의 육체와 꽃 같은 미모를 얻기 위한 시간이었고, 다음 천 년은 인간의 머리와 치혜를 얻기 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천 년은 인간의 마음을 얻기 위한 시간이었다. 이것이 가장 어려웠고 동시에 성패를 가르는 관문이었다.  

2999번째 해가 되던 어느날, 동굴 속에서 지내던 백사는 난데없는 비명 소리를 듣는다. "살려달라"는 처절한 부르짖음이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오직 그녀만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단 1년만 버티면 인간이 될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 그 울부짖음을 듣는 순간 백사는 앞뒤 생각할 겨를 없이 뛰쳐나가 할머니의 목숨을 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 순간 할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더니 관음보살이 나타났다. "너는 인간이 될 자격이 없다. 나는 방금 너를 시험에 들게 한 것이다. 너는 끝내 인간이 가져야 할 잔인함을 갖추지 못했구나. 이제 너는 영원히 뱀도, 사람도 아니니 요괴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백사는 그렇게 완전한 인간도, 완전한 뱀도 아닌 반인반사 요괴가 되어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백소정. 백소정이 그녀가 인간 세상에서 얻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채 가지지 못한 인간의 잔임함 때문에 또 한번 아파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의 남자를 만난다. 그가 바로 허선. 백소정과 허선의 운명은 인간도 뱀도 아닌 요괴가 된 그녀가 동굴에서 뛰쳐나온 2999년 째 되던 해 결정되었다. 그들이 안타까운 운명을 피할 수 없었던 것도, 이 소설의 제목이 <사람의 세상에서 죽다>인 이유도 다 그녀가 가지지 못한 단 하나의 인간의 마음 '잔인함' 때문이었다.


누가 그녀의 마음속에 인간 세상의 등불을, 남녀 간 사랑의 등불을 켰을까?
그 등불이 켜지면 영원히 취소할 수도, 앗아갈 수도 없는 한 가지 약속이 삶에 생긴다. 영원히 길을 잃어 고향인 반도원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_ 228쪽 중에서


 

"하늘에는 천당이,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는 말이 있다. 소주와 항주는 상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도시로 물과 함께하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 중 하나다. 두 도시중에서도 항주는 서호라는 아름다운 호수를 품고 있는데, 말이 호수지 하루에 둘러보기도 힘들만큼 어마어마한 넓이의 호수다. 서호에는 뇌봉탑이라는 높은 탑이 있는데, 그 탑에는 아프고도 슬픈 전설이 담겨있다. 앞서 이야기 한 백소정의 이야기. <사람의 세상에서 죽다>의 모티프가 바로 그 전설이다.

<사람의 세상에서 죽다>는 중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전설인 <백사전>을 소재로 새롭게 써내려간 소설이다. 인간이 되고 싶었으나 요괴가 되어 인간의 세상에서 살아가다 요괴를 쫓는 법사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뇌봉탑 안에 갇혀 영원히 봉인된다는 내용의 전설이다. 현대 작가 리루이는 중국 4대 설화 중 하나로 꼽힌다는 이 전설을 현대의 언어로 새롭게 각색해 다시 한번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백소정은 동생 청아와 함께 인간 세상에 내려와 허선이라는 남자를 만나 분해아라는 아이를 낳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유난히 뱀이 많이 출몰했던 항주에서 그녀는 자신의 피로 독사에 물린 동네 사람들을 치료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요괴를 쫓던 법사는 허선을 찾아 백소정의 실체를 밝힌다. 처음에는 그녀가 요괴였다는 사실에 겁을 먹었던 허선이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보여준 마음과 정성, 사랑에 그녀의 허물을 덮고 자신이 지켜주기로 한다. 하지만 그 비밀을 오래가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밝혀지고 만다. 마을 사람들이 그녀의 집을 포위한 마지막 날, 백소정은 허선에게 아들 분해아를 부탁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법사의 호리병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영원히 뇌봉탑 아래에 봉인되고야 만다.

이야기는 분해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며(아들 역시 뱀의 피를 물려 받아 뱀의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아버지인 허선에게 묻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동안 숨겨뒀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이 소설의 대부분의 내용이다. 그리고 그 모든 비밀을 듣고 난 분해아는 오히려 가뿐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한다. 모든 부와 명예를 버리고 광대패를 따라다니면 뱀 흉내를 내며 살아가게 된다.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삶을 사랑했고, 거절할 수 없는 삶을 증오한다."는 그의 말대로 그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남은 생을 보내게 된다.  

"하루를 못 봤는데 3년은 떨어진 것 같아"는 분해아가 사랑한 향류냥이 분해아를 만날 때마다 했던 말이다. 향류냥의 입을 빌어 한 말이지만 결국 백소정의 남기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3천 년을 기다려 찾을 만큼 그녀에게는 너무나 간절했던 인간 세상. 그리고 인간 세상에 온 그날 만나 목숨을 걸만큼 사랑했던 남자 허선.  그녀는 결국 사랑하는 마음 뿐, 잔인한 마음은 가질 수 없어 스스로 인간 세상에서 죽음을 택했지만 그 누구보다 행복한 하루를 살고 떠날 수 있어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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