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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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상관없어요.
나는 당신의 글과 사랑에 빠졌어요.
당신은 쓰고 싶은대로 쓰면 돼요.
난 모든 것을 사랑하니까요.

_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153쪽 중에서

세상 모든 것이 깊은 잠에 빠져버린 고요한 새벽 세 시. 오늘도 그녀는 언제 올지 모르는 그의 이메일을 기다리고 있다. 모니터를 앞에 두고 애꿎은 마우스만 계속 만지막거리다 아애 와인을 한잔 따라 모니터를 술친구 삼아 기다린다. 그의 생김새도, 체격도, 말투도, 목소리도 그 어느 것 하나 아는 게 없지만 그의 이메일은 어느새 그녀의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모니터의 저 건너 편 이메일을 쓰고 있는 상상속 그와 그녀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이메일이라는 것을 처음 쓰게 된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이었다. 고심에 고심 끝에 '아이디'라는 것을 만들고, 손으로 쓴 편지가 아닌 자판으로 두드려 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이메일의 세계를 접했다. 매일 만나는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이메일이라는 것을 통해 마주하고는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기쁨과 슬픔을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나누기 시작했다. 그치만 그건 모두 현실세계에서의 친구들과 가능했다. 생면부지의 사람과 이메일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나로서는 상상이 불가한 세계였다.

그런데 레오와 에미는 그렇게 사랑에 빠졌다. 우연히 아니 어쩌면 운명적으로 잘못 보내지게 된 메일 한통은 이들을 이어주었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는 레오와 에미가 주고받은 수백통이 넘는 이메일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이메일을 매개로 한 환상의 사랑, 끊임없이 고조되는 감정,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그리움, 가라앉을 줄 모르는 열정.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의 만남이라는 목표로 펼쳐진다.   

   
 

1월 15일
제목 : 구독 취소
정기구독을 취소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이메일로 취소 신청을 해도 되겠지요?
그럼 이만 줄입니다. E. 로트너.

 
   
 

소설의 첫장은 에미가 잘못 보낸 한통의 메일로 시작한다. 에미는 잡지 정기구독을 취소하려고 메일을 보내지만 실수로 주소를 잘못 적는 바람에 그 메일은 레오의 메일함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 둘의 메일 연애는 시작된다. 처음 레오와 에미가 서로를 편하게 여길 수 있었던 건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없는, 현실감이 없는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그 익명성이 이 둘을 무장해제 시키기 시작했고, 이들은 차차 글로써 서로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까지 나누게 된다.

점차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만 가는 에미, 잠을 자는 순간까지도 노트북을 옆에 끼고 그녀에게 오는 메일 알람을 기다리는 레오. 이 둘은 그 환상을 깨려 계속해 만남을 시도하지만 막상 만남의 날이 오면 그것이 두려워 피하고만 싶어한다. 만나고 나서는? 이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이들을 압박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느낄 실망이 한없이 두렵기만 하고, 서로가 지켜야만 하는 현실의 사람들과 상황이 부담으로 느껴진다. 레오와 에미는 이미 자신들이 쓰는 글이 그들의 실제 모습, 실제 삶이 아니며 서로가 서로를 상상하며 그렸던 수많은 이미지가 실제 모습을 대신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이들을 서로를 갈망하면서도 자꾸만 주저하게 된다.

 소설 구성 자체가 이메일이고, 시간 순서대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재미 못지 않게 메일과 메일 간격 사이를 가르는 '기다림'을 경험하는 즐거움(?)이 있다. 때로는 1,2초 간격으로 메일이 도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2주일이 넘게 상대로부터 오지 않는 메일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게 바로 이메일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레오가 되어, 때로는 에미가 되어 초조함, 불안함, 설레임, 떨임으로 상대방의 답변을 기다리는 그 감정.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이다.

 그래서 그들은 과연 현실에서 만났을까? 이메일로 나눈 그들의 사랑은 현실의 사랑으로 맺어질 수 있었을까? 물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이 소설의 핵심은 아니겠지만 이 소설의 결말은 멋졌다(궁금하다면 책을 보시기를). 새벽 세 시, 당신이 있는 그곳에는 바람이 부나요? 라고 묻는 레오의 이 메일이 받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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