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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소수의견 [少數意見, dissenting opinion]
1. 합의체(合議體)에서 다수결에 의하여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다수의 찬성을 얻지 못한 채 폐기된 의견.
2. 대법원 등의 합의체 재판부에서 판결을 도출하는 다수 법관의 의견에 반하는 법관의 의견.
자기 생각에 100%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다 모두가 나의 생각이 틀렸다며 내 의견을 소수의견으로 치부해버린다면? 다수의 힘은 무섭다. 사람을 주눅들게하고 가치를 송두리째 짓밟아버리며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마저 부정하게 한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는 용기"를 말한 한 광고가 유행을 했듯이 다수에 반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만큼 다수에 반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소수의견'. 이 소설을 다 읽고 그 사전적 정의부터 찾아봤다. 다수결에 의하여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다수의 찬성을 얻지 못한 채 폐기된 의견. "폐기된 의견"이라는 부분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모든 사람은 각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배워왔건만, 그렇게 가치있는 사람의 의견이 다른 사람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폐기 될 수 있다니. 그 말이 너무 쓰라리게 다가왔다. 하지만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음을 깨닫고 말았다.
<소수의견>은 소설을 표명하고 있지만 읽다보면 작년 1월 6명의 사상자를 낸 용산참사를 연상케 한다. 소설은 아현동 뉴타운 재개발 지역에서 시작한다. 철거 농성을 벌이던 지역 주민들과 경찰이 대치를 이루던 중 16 철거민 소년과 20살 진압 경찰이 죽임을 당한다. 검찰은 경찰을 죽인 살인범으로 16 철거민 소년의 아버지를 지목하고 기소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죽인 것은 경찰이었고 자신은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하는 소년의 아버지 변호는 이 책의 주인공인 국선변호사 윤 변호사가 맡게 된다. 사건은 그렇게 용산 참사와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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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법률적인 견해란 말은 지겨워요. 나한테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비겁한 말로 들립니다. 인간적으로 말해보세요. 윤변호사님도 변호사이기 이전에 자기 생각을 가진 인간 아닙니까? 윤변호사님이 제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_ <소수의견>, 243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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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 지역의 한 힘없는 가장이 국가를 상대로 낼 수 있는 목소리는 얼마만큼일까? 사건 현장에 있었던 전경들과 철거민의 목소리 중 어느 목소리가 더 크고 강력하게 전달 될 수 있을까? 민변을 유령처럼 떠돌다 국선변호사가 된 변호사와 권력과 신념으로 똘똘 뭉친 잘나가는 검사가 법정에서 싸우면 누구의 의견이 더 유리하고 설득력있게 들릴까?
윤 변호사는 소년의 아버지에 눈빛에서 진실을 읽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다. 경찰 진압 중에 사람이 죽은 사건. 담당검사는 수사 자료를 숨겼고, 철거민 아버지를 위해서는 그 누구도 나서려고 하지 않는 상황. 윤 변호사는 여기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큰 판을 벌이기로 결심한다. 피고는 대한민국. 청구 금액은 100원. 100원? 이라며 다시 그 금액을 확인하게 되지만 정말 100원이다. 결국 윤 변호사가 원한건 배상금이 목표가 아니었던 것이다. 국가가 소수의견에 귀를 기울여주기를, 오히려 100원? 이라며 다시 한번 사건을 들춰봐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소설의 전개는 후반부 법정 싸움으로 넘어가면서 더 흥미진진해진다. 민간배심원단까지 꾸려진 이 사건은 며칠에 걸쳐 공판이 계속 되고,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들의 지속적인 출현으로 판세는 계속해 변해간다. 결정적 증거를 가진 윤변호사측을 막기 위해 검찰은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한 압수 수색이 진행되고, 또 이를 뒤엎을 반전이 이어지는 등 잠시 뒤 쉴 틈이 없이 책장은 계속해 넘어간다.
이 사건에서, 이 소설에서 승자는 없었다. 윤변호사는 국가라는 적과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국가는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누가 국가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 있으며, 누가 국가의 손을 잡아본 적 있으며, 누가 국가의 심장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검사는 또 어떠한가. 자신들이 누구를 위해 싸우는지 알지 못하며, 자기의 신념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권력은 언제든 제 입맛에 맞게 사람을 바꿀 수 있기에 권력을 누리면서도 권력 앞에 몸 사리는 존재였다. 책장을 덮으며 씁쓸함과 무력감이 몰려왔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남아 있다는 작은 희망만은 남겨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