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들이 얼마나 책을 안 읽으면 추천도서까지 만들어주며 보라고 하는지 조금은 씁쓸해지는 리스트이지만, 그래도 이 리스트로 휴가 때만큼이라도 제대로 책 한권 읽으면 참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응원하며 나도 리스트를 만들어본다. 알라딘과 함께 하는 Sorry CEO 추천도서! "보고있나, CEO?"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고 이윤기, 아르고 원정대와 떠난 마지막 신화 여행

고 이윤기가 남긴 마지막 신화 이야기.  1권에서 아르고 원정대의 수장 이아손의 이야기로 독자들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세계로 안내한 그가 신화 완결인 5권에서 모든 영웅들이 한 배에 타고 여행을 떠난다는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으로 대정장을 마무리 한다.  아르고 원정대가 40여 개의 크고 작은 강이 흘러드는 무시무시한 물살을 뽐내고 해협인 쉼플레가데스를 뚫고 지나 황금모피를 찾아 돌아왔듯이 고 이윤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방대한 세계로 떠나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우리에게 남게 되었다. 

  

 


 
 긍정의 배신
'긍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건 아니잖아?

'왜'라는 반문이 금기시 된 영역 '긍정'. 긍정에 대한 광기 어린 믿음에 대해 그 믿음이 과연 옳은 것인지, 혹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맹목적인 낙관주의는 아닌지, 그에 따른 부작용은 없는지 등등을 저자 특유의 반골 어투로 풀어낸 책이다. 낙관주의가 등장했던 칼뱅주의에서 시작해 1930년 긍정적 사고의 교과서가 된 나폴레온 힐의 '셍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까지 긍정의 역사를 돌아보고, 그것이 지금의 우리 경제와 기업 문화에 어떻게 파고 들어갔는가를 파헤친다.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이 묻는다. 정의로운 국가는 과연 가능한가?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박상훈의 <정치의 발견>까지 역사와 철학을 바탕으로 2011 대한민국의 현실을 짚어 볼 수 있는 7가지 질문을 던진다. 40여 권의 책을 인용해 분석했고, 현실 정치에 몸담으며 키워온 경험을 담아냈다. 국가의 역할과 의미를 생각하며 정부와 국가의 관계를 짚어보고, 과연 어떤 정부가 시민들에게 자유롭고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인지를 모색한다. 정치인의 책인가 지식인의 책인가의 논쟁 이전에 인류의 정치 사상가를 공부하기에는 잘 정리된 훌륭한 참고문헌이 되어주는 책이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조선의 글쟁이, 이옥과 김려의 아름다운 우정

조선의 '문장'을 사랑했던 두 남자의 이야기가 소설로 부활했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인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를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그들이 남긴 작품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어져 태어났다. 책의 제목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는 이옥이 남긴 글, 김려가 평생 잊어 본 적 없고 이옥이 남긴 가장 멋진 글이라 생각하는 마지막 문장에서 따왔다. 문장 때문에 유배를 가고, 많은 이들이 등을 돌렸지만 문장 덕분에 이 세상을 사라가는 힘을 얻었고, 그 문장 덕분에 아름다운 세상을 그릴 수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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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들의 연애
어맨더 필리파치 지음, 이주연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린은 어느날 갑자기 자기가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전에는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뭔가를 욕망하는 상태가 그리웠다.
주변을 둘러봐도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러한 이유로 그녀는 욕망을 가진 모든 사람을 부러워하게 되었다.
_ 5쪽 중에서

날씨 탓인지, 체력 탓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나이 탓인지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요즘, 서가를 거닐다 이 책에 눈이 들어왔다. 이 책의 첫장은 린의 심리 상태로 시작한다. 아무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바라는 것도 없는 상태. 어느날 자신이 '욕망상실증'에 걸리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말이다. 

 

서른 두살의 린은 갤러리를 운영하는 그래도 꽤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그의 갤러리에는 유명 화가들이 자신의 그림을 팔기 위해 드나들었고, 성공한 기업가나 사업가들이 그 그림을 살기 위해 그녀를 찾았다. 그런데 앞만보고 달려왔기 때문일까? 그녀는 어느 순간 일종의 회의감을 느끼는 동시에 모든 것에 의욕을 상실하는 욕망상실증에 걸리고 만다. 대체 이 난국을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 것인가!

 

린에게는 스토커가 한명 있었는데, 린은 스토커의 눈빛을 보는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깨달았다. 스토커에게는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 살아 있는 눈빛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지고 싶고, 이루고 싶은 강렬한 욕망. 순간 그 스토커가 너무나 부러워진 린은 자신도 스토킹을 시작해보기로 한다. 그날로 린은 매일같이 갤러리를 지나가는 남자 하나를 무작위로 정했고, 스토커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스토킹을 시작한다. 삶의 의욕을 되찾기 위해서!

 

이렇게 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스토킹에서 시작된 이들의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삼각관계 연애담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욕망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다양한 군상들이 담겨 있다. 린과 스토커는 물론 린의 친구 주디는(그녀 역시 갤러리 대표였는데) 삶의 욕망을 상실한 나머지 주기적으로 일부러 가벼운 교통사고를 낸다고 했다. 병원에 있다보면 다시금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고 열심히 살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호텔 지베인 맥스는 일부러 자신의 정사 장면을 남들에게 들키는 방식으로 욕망의 씨를 유지했다. 주디와 맥스 모두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지만 말이다.

 

욕망상실증의 처방전이 삶의 극단, 죽음과의 접점을 통해 해결된다는 마지막 결론은 조금 씁쓸했지만, 자신의 욕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내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좌절을 경험해보는 것, 무작정 한 가지를 갈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상실감을 맛보는 것, 그리고 욕망을 찾기 위해 욕망을 갈망해 보는 것이 생의 욕망을 다시 찾아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로도 개봉한다니 영화로 보는 것도 재밌겠다. 영화가 하루빨리 개봉되기나 욕망해 볼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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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 팻,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
돈 쿨릭.앤 메넬리 엮음, 김명희 옮김 / 소동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뚱뚱한 사람들을 모델로 한 그림을 즐겨 그렸던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 


 

'뚱보 포르노'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뚱뚱한 여자가 출현하는 포르노를 뜻하는 것인데, 이 뚱보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자는 기본 300파운드(약 130킬로그램에 육박하는)가 넘는다.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스타는 500파운드(220 킬로그램)이상이라고 하니 따지고 보면 이 뚱보 포르노도 아무나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뚱보 포르노는 등장하는 배우들의 몸무게 말고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여배우들이 성교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포르노인데 어떻게 성교 장면이 없냐고? 이 포르노에 출현하는 여배우들은 성교를 하는 대신 침실에서 속옷차림으로 누워 있거나, 거실 소파에서 비키니 혹은 평상복 차림으로 앉아 있거나, 부엌에서 나체로 서 있는 등의 포즈를 취한다. 그리고 배우들은 섹스 대신 음식을 먹는다. 피자를 우겨넣거나, 아이스크림을 퍼먹거나, 스파케티를 후루룩마신다. 여기서 포르노 연기란, 성기 대신 각종 기름진 음식을 뚱뚱한 여자 입 속으로 우겨 넣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전부이다.

 

그냥 뚱뚱한 여자들이 음식 먹는 것을 보여주는게 전부라면, 왜 굳이 거기에 '포르노'라는 이름을 붙여줬느냐 반문할 수 있겠다. 착안점은 바로 그 아무것도 아닌 장면에 사회적 금기를 일컫는 '포르노'라는 말을 붙여줬다는 것이다. 포르노는 금지된 것을 환영한다. 또 비위에 거슬리며 자극적이며 인간의 극한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들을 만들어낸다. 뚱보 뒤에 '포르노'라는 것을 붙였다는 건 뚱뚱한 여성을 보는 건(혹은 뚱뚱한 여성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으며 은밀하게 관찰되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함축한 것이다. 뚱뚱한 여자는 우리 사회에서 금기다.

 

이 책 <팻>은 본격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비만'에 관한 시선을 담아냈다. 왜 뚱뚱하면 비난받고 마르면 여신이 되는지를, 언제,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뚱뚱한게 죄가 되었는지 등등을 열 세명의 인류학자가 각각의 주제어를 중심으로 현지조사를 통해 그 이유를 밝혀냈다. 니르제의 사막에서부터 미국 여피족의 카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돌며 '뚱뚱함'이라는 것이 문화에 따라 얼마만큼 다르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어인 '뚱뚱함'을 보여준다.

 

실례로 저자 중 한명이 찾았던 아프리카 니르제의 여성들은 마른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나르제에서는 풍만한 엉덩이가 여성성의 상징이라고 여겼기에 조금이라도 더 살이찌기 위해 여성들을 노력하고 있었다. 일을 하는 건 남자의 몫이고 여성은 육아와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이해 오히려 몸을 풍만하게 해야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마른 여성은 남자 같은 사람이라 여겨져 피하고 있었다. 

 

반면에 스웨덴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삼삼오오 모인 여고생들이 서로 살이 쪘다며 고민을 털어 놓고, 친구들로부터 '아니야 넌 아직 말랐어'라는 위로를 얻고 있었다. 마른 것이 미의 상징이고, 늘어나는 팔뚝 살은 죄악시 되는 사회를 살아가도 있는 어쩌면 지금의 우리 사회와 너무나 닮아 있는 모습이었다. 니르제의 여성들과 비교해 생각하면, 사회가 만들어 놓은 '뚱뚱함'의 기준이 얼마나 잔인하고 잔혹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뚱뚱함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허상에 불과하다. TV나 각종 광고 속에 등장하는 늘씬한 모델들을 바라보며 얻게 된 사회적 학습에 불과한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그 허상을 쫓아가기 위해 얼마나 스스로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10년 전 내게 '너 몸무게가 50이 넘는단 말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말했던 친구가 떠오른다. 그 친구는 지금도 여전히 저지방 우유와 다이어트 콜라, 쥐꼬리만한 음식들로 연명하며 살아가고 있겠지? 친구야, 그때는 말 못했는데 난 너보다 더 나가는 단 5킬로그램의 몸무게로 너무나 달콤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단다. 세상이 얼마나 달콤한지 넌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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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확히 1여년 만에 다시 이 책을 손에 집어 들었다. 더욱 강해지는 햇살만큼 삶의 무게가 무거워지는 2010년 초여름날 이 책을 처음 만났다. 제목은 <순수 박물관>, 저자는 <내 이름은 빨강>으로 국내에 널리 알려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제목과 저자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 독서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책이란 때가 있는 법이듯 당시에 이 책은 내가 읽기엔 너무나 벅찬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시 잡은 이 책. 각각 400페이지가 넘는 2권의 분량에도 불구하고 잡은 그날부터 쉬지 않고 읽어내려갔다.

 

이 책의 뒷 표지에는 이런 말이 쓰여있다.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집착". 어찌보면 참 아리송한 말이지만, 이 말만큼 이 책을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표현할 말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퓌순을 향한 케말의 30년간의 이야기가 바로 이 2권에 집약되어 있으니 말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터키 이스탄불. 시대는 1975년으로 자유연애(성적인 것을 포함한)가 아직 정착하지 못한 구시대적인 사고가 팽배한 때이다. 부유한 집안에 잘 나가는 회사, 게다가 결혼을 약속한 아름다운 연인 시벨을 곁에 둔 우리의 주인공 케말은 약혼식을 앞둔 어느날, 시벨을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 들른 상점에서 먼 진척 퓌순을 만나게 된다. 케말은 매력적인 외모에 누구보다 따뜻한 감성을 가진 퓌순에게 한순간 매료되었고 그날 이후 그들은 은밀한 사랑을 나누게 된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야 했던 이들이 선택한 곳은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케말의 옛 아파트. 그곳은 어릴적 케말의 물건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먼 친척인 관계로 어린시절 몇번 만났던 퓌순과 케말의 추억의 물건들도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십여 년이 지난 시간, 다시 케말과 퓌순의 추억의 물건들로 채워져 나간다.

 

하지만 케말에게는 약혼자가 있었고, 시벨과 그의 약혼식 당일날 퓌순은 홀연히 모습을 감춘다. 그녀가 떠나버린 후에야 그녀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사랑을 깨달은 케말은 자신의 약혼녀에게 자신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파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1여 년간 퓌순을 찾아 헤매고 339일 만에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있는 퓌순을 만나게 된다.

 

여기까지가 1권의 중후반부까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책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유부녀가 된 퓌순을 만나게 된 이후의 8년, 그리고 그 이후의 30년 간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의 결말이라 할 수 있는 케말과 퓌순의 사랑에 대해서는 여기서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물건의 힘은 그 안에 쌓인 기억만큼이나 우리의 상상과 기억력의 추이와도 연관되어 있다.

다른 때라면 전혀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그저 평범하다고 여겼을 바구니 속에 든 에디르네 비누나

비누로 만든 포도, 모과, 살구, 딸기는 한 해의 마지막 날 밤에 마음속 깊이 느꼈던 평안함과 행복감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감정들은 내게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은 이 물건들과 마주하는 관람객들로

그렇게 느끼리라고 진심으로 순수하게 믿는다."

_ <순수박물관 2>, 91쪽

 

 

이 책의 제목이 <순수박물관>인 이유는 케말이 했던 퓌순에 대한 사랑의 방식 덕분이다. 이 책의 주요 모티프로 등장하는 '한 쪽 귀걸이'나 '손수건' 등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데, 케말은 퓌순의 물건들을 수집해 처음 둘이 만났던 그 옛 아파트에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한다. 후에는 그것은 성냥갑, 퓌순의 담배꽁초(총 4213개가 되었다), 소금 통, 커피 잔, 머리핀, 슬리퍼 등으로 더욱 다양화 되고 퓌순은(그리고 그의 어머니도)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둔다. 그리고 30년 뒤에 케말은 그 모든 것들로 박물관을 세울 것을 결심한다. 퓌순에 대한 30년의 역사를 담은 순수 박물관을 말이다.

 

그리고 실제 그 박물관은 이스탄불에서 개관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책에 2권에 보면 입장권이 들어 있다. 실제 이걸 가지고 가면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2010년 개관 예정이라고 했던 이 박물관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 알게 되시는 분 제게 꼭 알려주시기를...)

 

2권의 마지막 장에는 실제 작가 오르한 파묵이 등장한다. 자신의 사랑의 역사를 기록해달라는 케말의 부탁을 받는 부분부터 이 책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제3자 적인 시각이 등장한다. 이 책을 처음 받고 의아했던 '소설 책에 웬 인명 색인?'에 대한 비밀도 그곳에 가서야 풀린다. 실제 작가가 등장하니 반갑기도 하고, 그 매끄러운 구성력에 놀랍기도 했다.

 

<롤리타>가 한 권의 책을 통해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보이는 광적인 사랑을 표현했다면, 이 책 <순수박물관>은 평범한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보이는 순수한 사랑을 표현했다고 하겠다. 퓌순은 행복했을 것아다.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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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양장)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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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방주'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다. 방주의 아버지는 버들가지로 고리를 만들며 사는 백정이었다. 비록 신분은 천했지만 사람 하나는 진국이었다. 게다가 백정치고는 드물게 글도 읽을 줄 알았다. 그의 딸 방주 또한 백정의 딸로 살기에는 아까운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방주는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아 글을 읽을 줄 아는 것은 물론 외모도 빼어났다.

 

그런데 어느날 방주의 집에 군관의 복장을 한 한 남자가 찾아왔다. 반상의 구별이 엄격하고 특히나 천대받는 백정의 집에 군관이 찾아오다니 이는 필경 좋지 않은 징조였다. 방주의 아버지는 머리를 조아리며 군관 앞에 나섰다. "어쩐 일로 이리도 누추한 곳에 찾아오셨는지요.." 그러자 군관이 어렵게 입을 뗐다. "방주를 내 며느리로 삼고 싶소."

 

군관이라면 지방에서는 꽤 큰 권력을 쥔 자리였다. 그런 사람이 백정의 딸에게 자신의 아들과 혼례를 치렀으면 하고 청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둘의 혼례는 아주 조용히 치러졌다. 실력과 지위에 더한 상당한 재력을 갖춘 군관이었으니 함부러 하기는 어려웠을 터, 그렇다 해도 그들의 혼례에 양반들은 난색을 표혔다. 모든 양반도, 모든 천민도 등을 그들의 혼례에 참여한 건 두 가족과 한 남자가 유일했다.


 

위 이야기는 조선 정조 때 세상을 어지럽히는 문체를 썼다는 이유로 유배보내진 김려의 <방주의 노래>의 내용을 글로 풀어 쓴 것이다. 그 혼례에 참여한 유일한 한 남자, 그는 당시 진해로 유배를 내려가 방주라는 처녀의 사연을 접하게 된 조선의 글쟁이 김려였다. 그는 당시 그 마을에서 벌어진 방주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그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 그들의 결혼식에 <방주의 노래>라는 시를 써 바쳤다.

 

그 후로 몇년,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아 올라온 김려는 그 일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방주의 가족과 군관의 가족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었던 이 방주의 노래를 우태라는 청년의 입을 통해 듣게 되었다. 자신도 즉석에서 써서 건네주고 단 한번도 보지 못한 그 시의 전문을 완벽하게 외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놀란 김려는 그의 정체를 물었고 그는 자신을 '이옥의 아들 우태'라고 소개했다.

 

조선시대 명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들은 성균관 시절부터 우정을 나눈 오랜 친구로 뛰어난 글쓰기로 촉망받는 인재였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이옥의 문장은 지나치게 뛰어났다. 여기서 뛰어났다는 것은 후대의 평가이고 당시에는 반상을 어지럽히고 법도에 어긋나는 사악한 문체였다. 정조는 지나치게 문체에 민감했던 사람이었다. 소품체를 경멸했고 성균관 유생들이 달마나 내는 작문의 답안지를 꼼꼼히 검토하며 비평하고 통제하였다. 이런 시기에 이옥의 문장은 정조의 눈을 거슬렀다.

 

가량 이옥의 문장은 이런식이었다. 장날의 풍경을 묘사하라는 시제에 이옥은 이렇게 답했다.

 

"소와 송아지를 몰고 오는 자, 두 마리 소를 끌고 오는 자, 닭을 안고 오는 자, 문어를 끌고 오는 자, 돼지의 네 다리를 묶어서 메고 오는 자, 청어를 묶어서 오는 자, 청어를 엮어서 늘어뜨려 가져오는 자, 복어를 안고 오는 자 ...."

 

"시장에 사람이 많았다"고 한 줄만 쓰면 그만일 것을 이옥은 이리도 세세한 것 하나하나 생생하게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정조에게는 쓸데없는 시간과 정력낭비였으니 그에게 반성할 것을 요구했고 유배를 보내버렸다. 당시의 문장이란 격식과 형식에 맞춰 써야 하는 것이고 간결하며 이성적으로 써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이옥과 두터운 우정을 쌓았던 김려도 그 여파를 받게 되었고 그와 다른 곳으로 유배보내진다.

 

김려는 한때 이옥을 원망했다. 그냥 반성을 하고 자신의 문체를 고치면 될 것을 이옥은 끝까지 자신의 문장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려는 이옥 때문에 자신 역시 유배되었다 생각했고, 오랜 친구의 마지막 부름에도 응하지 않아 결국 다시는 이옥을 이승에서는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 김려는 이옥의 아들 우태를 만나게 되고, 유배지를 떠도는 오랜시간 이옥이 썼던 글들을 통해 그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문체가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는 '문장'을 사랑했던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리에게는 낯선 두 조선의 문장가의 이야기에 픽션을 가미해 너무나 멋진 한편의 소설을 완성했다. 이 책의 제목인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는 이옥이 남긴 글, 김려가 평생 잊어 본 적 없고 이옥이 남긴 가장 멋진 글이라 생각하는 문장의 마지막 문장에서 따왔다. 김려가 느꼈던 것 처럼 나 역시 이 문장을 읽으며 '멋지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문장 때문에 유배를 가고, 문장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렸지만, 이옥은 그 문장 덕분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었고, 그 문장 덕분에 아름다운 세상을 그릴 수 있었다.

아마도 유배지를 돌며 자신이 본 멋진 세상을 그렸을 이옥의 문장. 그의 마지막 문장은 이 세상에 놀러왔다간 그의 마지막 소회가 아니었을까?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이렇게 멋진 것이 없었다면 이렇게 와 보지도 않았을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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