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 팻,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
돈 쿨릭.앤 메넬리 엮음, 김명희 옮김 / 소동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뚱뚱한 사람들을 모델로 한 그림을 즐겨 그렸던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 


 

'뚱보 포르노'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뚱뚱한 여자가 출현하는 포르노를 뜻하는 것인데, 이 뚱보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자는 기본 300파운드(약 130킬로그램에 육박하는)가 넘는다.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스타는 500파운드(220 킬로그램)이상이라고 하니 따지고 보면 이 뚱보 포르노도 아무나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뚱보 포르노는 등장하는 배우들의 몸무게 말고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여배우들이 성교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포르노인데 어떻게 성교 장면이 없냐고? 이 포르노에 출현하는 여배우들은 성교를 하는 대신 침실에서 속옷차림으로 누워 있거나, 거실 소파에서 비키니 혹은 평상복 차림으로 앉아 있거나, 부엌에서 나체로 서 있는 등의 포즈를 취한다. 그리고 배우들은 섹스 대신 음식을 먹는다. 피자를 우겨넣거나, 아이스크림을 퍼먹거나, 스파케티를 후루룩마신다. 여기서 포르노 연기란, 성기 대신 각종 기름진 음식을 뚱뚱한 여자 입 속으로 우겨 넣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전부이다.

 

그냥 뚱뚱한 여자들이 음식 먹는 것을 보여주는게 전부라면, 왜 굳이 거기에 '포르노'라는 이름을 붙여줬느냐 반문할 수 있겠다. 착안점은 바로 그 아무것도 아닌 장면에 사회적 금기를 일컫는 '포르노'라는 말을 붙여줬다는 것이다. 포르노는 금지된 것을 환영한다. 또 비위에 거슬리며 자극적이며 인간의 극한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들을 만들어낸다. 뚱보 뒤에 '포르노'라는 것을 붙였다는 건 뚱뚱한 여성을 보는 건(혹은 뚱뚱한 여성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으며 은밀하게 관찰되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함축한 것이다. 뚱뚱한 여자는 우리 사회에서 금기다.

 

이 책 <팻>은 본격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비만'에 관한 시선을 담아냈다. 왜 뚱뚱하면 비난받고 마르면 여신이 되는지를, 언제,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뚱뚱한게 죄가 되었는지 등등을 열 세명의 인류학자가 각각의 주제어를 중심으로 현지조사를 통해 그 이유를 밝혀냈다. 니르제의 사막에서부터 미국 여피족의 카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돌며 '뚱뚱함'이라는 것이 문화에 따라 얼마만큼 다르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어인 '뚱뚱함'을 보여준다.

 

실례로 저자 중 한명이 찾았던 아프리카 니르제의 여성들은 마른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나르제에서는 풍만한 엉덩이가 여성성의 상징이라고 여겼기에 조금이라도 더 살이찌기 위해 여성들을 노력하고 있었다. 일을 하는 건 남자의 몫이고 여성은 육아와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이해 오히려 몸을 풍만하게 해야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마른 여성은 남자 같은 사람이라 여겨져 피하고 있었다. 

 

반면에 스웨덴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삼삼오오 모인 여고생들이 서로 살이 쪘다며 고민을 털어 놓고, 친구들로부터 '아니야 넌 아직 말랐어'라는 위로를 얻고 있었다. 마른 것이 미의 상징이고, 늘어나는 팔뚝 살은 죄악시 되는 사회를 살아가도 있는 어쩌면 지금의 우리 사회와 너무나 닮아 있는 모습이었다. 니르제의 여성들과 비교해 생각하면, 사회가 만들어 놓은 '뚱뚱함'의 기준이 얼마나 잔인하고 잔혹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뚱뚱함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허상에 불과하다. TV나 각종 광고 속에 등장하는 늘씬한 모델들을 바라보며 얻게 된 사회적 학습에 불과한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그 허상을 쫓아가기 위해 얼마나 스스로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10년 전 내게 '너 몸무게가 50이 넘는단 말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말했던 친구가 떠오른다. 그 친구는 지금도 여전히 저지방 우유와 다이어트 콜라, 쥐꼬리만한 음식들로 연명하며 살아가고 있겠지? 친구야, 그때는 말 못했는데 난 너보다 더 나가는 단 5킬로그램의 몸무게로 너무나 달콤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단다. 세상이 얼마나 달콤한지 넌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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