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죽이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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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부터 아멜리 노통브 답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죽이기"라니. 보통 사람의 정서로는 이해하지도 못할 저 말을 소설의 제목으로 버젓이 올려 놓다니말이다. 하지만 그녀도 이 제목을 달고 자신의 아버지가 볼까 조금은 걱정이 되었나보다. 책을 열자 그녀의 헌사엔 '나는 아버지와 아주 잘 지내고 있으며,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써 놓았다.

 

 

"아버지를 죽인다는 것은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부모님들의 희망에서 벗어난다는 것, 즉 성인이 됨을 의미합니다."

_본문 중에서

 

아주 짧은 이 소설은(작은 판형에 170쪽 남짓의 분량이다) 술집에서 만난 한 남자(조 위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술을 마시고 있는 조를 뒷편에서 계속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남자의 정체가 궁금했던 술 친구는 그의 정체를 물었고, 조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조에게는 사실 아빠가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와 단 둘이 살았는데 그녀의 어머니에게는 늘 새로운 남자가 있었다. 남자들은 몇달씩을 같이 살다 떠나버리곤 했는데 어느날 데려온 조 아저씨(그와 이름이 같았다)는 달랐다. 조의 엄마는 조에게 조 아저씨를 잃고 싶지 않다고 했고, 그날로 조는 집을 나와 그의 아버지가 되어줄 노먼 테런스를 만난다. 그 당시는 노먼 테런스는 최고의 마술사였는데 그 비법을 전수받고자 했던 조는 그의 집으로 들어갔고, 노먼은 그를 아들로 받아들여 키우기 시작한다.

 

여기서 노통브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차용하며 이 부자의 갈등을 그리기 시작한다. 조는 노먼과 함께 사는 여자친구를(노먼이 아버지이니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는)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이 깊어질수록 아버지 노먼에게 적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에게 아버지는 복수의 대상이 되고 그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노먼은 조가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욱 강한 부성애를 느끼며 그를 잡으려 한다. 오히려 이 과정 속에서 그는 자신이 조의 친아버지라는 착각까지하게되고 아버지로서의 사명감까지 가지게 된다.

 

결론은 나름 반전이 있는 조의 이야기로 마무리되고, 조를 따라다니는 남자의 정체와 그가 그렇게 쫓아다니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끝난다. 우리는 누구나 부모라는 마음의 굴레를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고, 그 과정 속에서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 그 과정을 노통브는 '아버지 죽이기'라는 메시지로 전달했고 소년의 성장기를 통해 보여주었다. 내용 자체가 특별한 건 아니었지만, 조와 노먼이라는 두 부자의 관계를 지켜보는 건 신선한 일이었다. 친부자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진 모르겠지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나는 경험하지 못한 부자관계를 노통브식의 능구렁이 같은 말투와 유머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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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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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행사로 찾아온다는 환절기 감기에, 요즘은 좀 과하다 싶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어느날 책 한 권을 받았다. 지금 말하려고 하는 <피로사회>.  "요즘 이상하게 회사에서, 인터넷에서 열정적인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피곤해져"라고 투정을 부린지 며질 지나지 않아 받은 책이라 모든 책을 젖혀놓고 이 책부터 읽기시작했다. 피곤한 우리들을 위해 분량도 아주 가벼운 128쪽. 나의 피곤함을 걷어낼 수 있는 방법을 이 책에서 찾기위해 밑줄 박박 그어가며 읽기 시작했다.

 

 

노동사회, 성과사회는 자유로은 사회가 아니며 계속 새로운 강제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오히려 주인 스스로 노동하는 노예가 되는 노동사회를 낳는다.

이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다. _ 44쪽

 

 

저자는 이전과 지금의 사회를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변화로 규정한다. 이전이 푸코가 말한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 등으로 구성된 '~해서는 안 된다'의 부정성이 강한 규율사회였다면 지금의 21세기는 그 모든 것이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 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등으로 바뀐 성과사회라는 것이다. 이 성과사회에서는 규율사회와는 달리 '할 수 있음'의 긍정 과잉 사회다.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는 프로젝트, 인센티브, 모티베이션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이 각 사회에서 발생되는 부정적 효과인데 규율사회에서는 부정의 과잉이 광인과 범죄자를 낳았다면, 긍정 과잉인 성과사회에서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전사회 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더 심각한 심리적 경색을 야기한다.

 

열정을 강요하고 가시적 성과를 강조하는 사회. 그리고 그렇게 되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자기 스스로를 옭아매고 스스로를 착취하는 사람들. 지금의 성과사회는 자신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이로써 지배 없는 지배사회가 가능해지고 사람들은 끝없는 우울감과 상실감에 시달리며 '피로사회'를 낳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 하지 않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끊임없이 할 수 있는 것들 찾고 목표를 세우며 좌절감과 패배감을 느끼는 사람들. 이 책을 읽는 내내 찌들어있는 우리네 모습이 비쳐지는 것 같아 서글퍼졌다.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번뜩이는 몇몇의 문장들 덕분에 큰 위로를 받은 책이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탈진한 영혼들이 심심한 위로를 얻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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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뿌리는 자 스토리콜렉터 8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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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의 눈을 일순간 선한 고양이 눈으로 바꾸는 몇 가지가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먹지 못해 죽어가는 기아 문제, 죄 없이 죽어가는 전장의 민간인들과 전쟁 포로 문제, 그리고 지구의 축복이자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산인 환경 파괴 문제가 그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을 찾아보기 힘들다. 무조건 인간이 잘못한 것이고, 탐욕이 문제이며, 무조건 도와야 한다. 만약 이 문제에 의문부호를 제시한다? 상상도하기 힘들만큼의 비판과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여기 그 중 환경 파괴 문제를 건드린 이야기가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타우누스 마을에 풍력에너지 개발을 위한 윈드프로 회사가 들어온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줄이고, 곧 고갈될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바람을 이용한 에너지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이 살아오던 땅을 내놓아야 했다. 바람이 가장 잘 들어오는 입지가 필요했고, 그를 위해서는 주민들의 이전이 우선 되어야 했다. 여기서 주민들과 윈드프로 사이에 실랑이가 시작된다. 거대 기업과 정부가 들고나온 환경 문제와 풍력 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충돌한 것이다. 시민단체는 윈드프로가 말하는 것과는 달리 이 지역은 바람이 없기 때문에 풍력 발전 자체가 불가능하며 이 모든 것이 기업들이 돈을 벌기 위해 추진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윈드프로는 엔할텐 상부 타우누스 산에 거대한 풍력 발전기 10대를 설치해 풍력발전 단지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바람이 부족해 풍력발전소를 만들어봐야 소용없는 곳이라는 사실이 조사 결과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윈드프로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돈으로 환경부 담당자를 매수하고, 숲에 가스를 뿌려 야생 햄스터들을 죽이고,

사업 승인을 받기 위해 평가서를 위조했습니다."

_ 328쪽

 

"윈드프로가 작년에 몇몇 단체의 스폰서를 했는데 모두 환경단체라는 거야.

예를 들면 브렘탈 물줄기 생태 환경 복원 사업, 포켄하우젠 풍해 지역 조림 사업,

니더요스바흐의 어미 잃은 야생동물 보호소 설립 사업 같은 거야. 타이센은 환경연합의 명예회원이기도 해."

_ 109쪽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로 국내독자들에게 알려진 넬레 노이하우스의 책 <바람을 뿌리는 자>는 시작부터가 범상치 않다. 이 조용한 마을에 풍력 발전소 건립을 둘러싸고 시끄러운 대립이 이어지다 살인 사건까지 터진다. 처음에는 한밤중에 윈드프로 경비원이 숨지더니, 다음에는 윈드프로에는 땅을 팔지 않겠다며 고액의 보상금도 외면하고 버티던 마을 주민이 살해된다. 윈드프로 정반대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재니스와 리키는 더더욱 윈드프로를 압박하고, 사건은 미궁 속에 빠져버린다.

 

풍력 발전소가 환경을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윈드프로와 그것 자체가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시민단체. 그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지 쉽게 판단이 안 선다. 왜냐하면 이들은 환경 문제가 아닌 서로 다른 문제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운동을 하는 재니스는 윈드프로에서 해고 당한 전적이 있고, 윈드프로는 이 기업의 후원을 받는 기후학자가 제공한 입지 타당성 보고서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환경 문제를 가지고 서로의 선의를 내세우며 싸우는 듯 하지만 알고보면 모두가 서로 다른 입장에서 자신의 복수와 챙길 이득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사람은 단 한 사람 마르크였다. 윈드프로 사장의 아들이지만 시민단체 편에 서서 그들을 도왔던 마르크는 자신들이 믿었던 시민운동가 재니스와 리키마저 거짓과 음흉함을 선의로 포장했던 것을 알아채고 절규한다. 인류의 생존권을 개인의 돈과 바꿔치기한 기후학자나, 개인적인 보복을 위해 시민운동의 탈을 썼던 시민운동가나, 돈으로 매수해 더 큰 돈을 벌고자했던 기업이나 모두가 자신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거짓말쟁이에 불과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때문에 읽기 시작한, 별 기대 없이 시작했던 책이었는데 처음에는 범인을 찾다가, 다음에는 분노하고, 그 다음에는 곳곳에 숨겨진 반전에 놀라다가, 마지막에는 허망함을 느끼게 하는 의외로 놀라운 구석이 있는 책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 작가의 모든 책을 찾아 읽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너무 친한 친구들> 빌려주실 분 어디 안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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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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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읽었다. 그녀의 소설은 다 읽고나면 찾아오는 불편함 때문에 연달아 읽기가 힘들다. 무거운 주제와 미미여사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 때문에 읽으면서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지만, 읽고나서도 한동안 그런 기분이 이어진다. <모방범>도, <이유>도 읽고나서 꽤 오랜기간 휴유증에 시달렸기에 한동안은 그녀의 작품에 눈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잊고 있었던 그녀의 작품이 다시 떠올랐던 건 영화화 소식 때문이었다. <화차>가 곧 영화로 개봉한다는 소식이었다.

 

<화차>는 1992년 발표한 작품으로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초기작에 속한다. 1987년 단편으로 추리소설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했고, <화차>는 1993년 제6회 야마모토 슈고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후 미미여사의 대표작인 <이유>와 <모방범>이 탄생하는데 <이유>는 1999년 제120회 나오키 상을, <모방범>으로는 2001년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대상을 수상한다. 대부분의 일본 추리소설 작가들이 그렇듯 미미도 다작을 하지만 단연 그녀의 최고의 작품은 <이유>와 <모방범>이며 아직 그 작품을 뛰어넘는 작품은 탄생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책 <화차>는 <이유>와 <모방범>을 탄생하게 한 발판이 된 작품이다. 그 주제와 문제의식이 <이유>나 <모방범>과 상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사고로 다친 다리 때문에 휴직중인 형사 혼마에게 어느날 가즈야가 찾아온다. 가즈야는 사고로 죽은 아내의 친척이었는데 사라진 자신의 약혼자를 찾아달라며 나타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세키네 쇼코. 1여년간의 데이트 끝에 결혼을 약속한 그들은 함께 결혼식 준비를 하던 중 쇼코의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발급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파산을 신고한 전적이 있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가즈야가 쇼코에게 확인을 하기 위해 묻자 다음날로 그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불쑥 찾아와 부탁을 하는 친척이 얄밉기는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 사건은 묘한 흥미를 끄는 구석이 있었다. 혼마는 그 사건을 수락하고 쇼코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녀의 파산신고를 도왔다는 변호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두던 중 파산신고를 한 쇼코와 가즈야가 약혼한 쇼코가 동일인이 아님을 알게 된다. 가즈야에게서 건네 받은 사진을 보여주자 변호사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다. 대체 사라진 쇼코는 어디로 갔고, 파산신고를 한 쇼코는 누구란 말인가? 이때부터 그 의문을 풀기위한 본격적인 탐문이 시작된다.

 

 

과거를 숨겨야 하기 때문에 위험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 '버려진 이들'이 이삼십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죠. _ 169쪽

 

 

앞서 <화차>가 <이유>나 <모방범>의 밑바탕이 된 소설이라고 한 것은, <화차>의 주제가 바로 '신용사회'에 대한 고발에 있기 때문이다. <화차>의 그 문제의식은 <이유>에서의 가장 따뜻해야 할 가족들의 보금자리를 자본주의의 도구로 탈바꿈시킨 부동산 문제로 이어졌고, <모방범>에서는 인간의 선과악에 대한 문제로 확장되었다. <화차>는 신용카드로 인해, 그리고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신용대출로 인해 망가진 선량한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용불량자를 단순히 개인의 무절재한 삶으로, 사치스러운 소비행태로 치부해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많은 부분이 기업과 정책, 제도로 인해 만들어진 피해자라는 것이다.

 

(이하 스포일러 있음)

이 부분은 혼마가 파산 신고를 도운 변호사를 찾아갔을 때 더욱 극명화 된다. 갖가지 수치로, 수많은 상담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그의 이야기는 암울한 현실을 투영해 보여준다. "지금 상황은 완전히 '정보파산'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하면 돈을 왕창 벌 수 있다. 입는 옷은 이게, 차는 저게 좋다... 제도와 법률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자들은 너나없이 돈을 빌려주겠다고 설쳐대고.  그것이 성실하고 소심한, 그리고 나이어린 소비자들을 움직여 다중채무의 빚더미에 올려놓죠" 

 

우리보다 앞서 일어난 일본 사회의 카드 버블은 수많은 개인 파산자를 양산했고, 어떤 이들을 빚에 시달리다 자살하거나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 야반도주를 하는 등 수많은 비극을 만들었다. 가즈야의 약혼녀 쇼코가 자신의 원래 이름인 신조 교코의 이름을 버리고 세키네 쇼코의 삶을 살고자 했던 것도, 신조 교코의 새로운 삶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내어주고 사라져야했던 실재 세키네 쇼코도 모두가 신용카드, 신용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이자 비극이었다.    

 

세키네 쇼코도, 신조 교코도 모두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느 순간 이 사회에서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빚쟁이들로 부터 쫓기는 도망자가 되었다. 버는 족족 빚을 갚지만 빚은 줄기는커녕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고, 평범한 직장인을, 평범한 가정 주부가 되는 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이 지구상에 내 이름을 가지고 살아있는 그 누구도 이 악의 굴레에서 빼어내줄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의 극단적 선택에 그 누가 돌을 던지고, 그 누가 비난의 말을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화자>도 역시 미미여사의 명성에 걸맞게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던 작품이다. 쇼코가 한 시간을 기점으로 두 명의 사람으로 나뉘어지고, 그 두 명의 끈이 하나둘 밝혀질때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했다. 쇼코와 교코가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나란히 발견되었을 때, 신조 교코를 만나기 위해 커피숍에서 대기하고 있는 순간, 그리고 다모쓰(쇼코의 친구)가 신조 교코의 어깨에 손을 얻는 순간은 나 역시 숨을 죽이며 읽어내려갈 정도로 긴장됐다.

 

책을 다 읽고나니 더더욱 영화는 원작을 뛰어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행간의 긴장감을 스크린으로 옮겨올 수 있을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의 변화를 글이 아닌 연기로 표현할 수 있을지, 작품 전반에 심어놓은 문제의식을 진부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의미 있게 영화에서 나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가지만 더, 아직까지 일본에서도 이 작품은 영화화 되지 않았다. 일본 최고의 스릴러이자 일본에서도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던 이 작품에 영화감독들이 눈독들이지 않았다는 거다. 왜? 그만큼 영화로 표현하기 힘든 작품이니깐. 그리고 작품의 명성만큼 제대로 못 만들면 관객들에게 엄청난 실망감을 안겨주게 될 것이 두려웠을테니깐. 그럼에도 아직 영화를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대를 걸어본다. 부디 잘 만들어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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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읽다 1980-2010 - 세계와 대륙을 뒤흔든 핵심 사건 170장면
카롤린 퓌엘 지음, 이세진 옮김 / 푸른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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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관한 책은 많다.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중국 역사와 고전에 관한 책이다. 방대한 역사 그 자체가 담고 있는 인류의 다양한 군상, 역사의 부침 속에서 탄생한 수많은 사상과 철학자들, 동양 고전이라 불리는 지금 인문학의 기반이 된 고전들까지 그에 관한 책들이 첫번째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최근 중국 경제 부상과 관련해 위기와 기회를 포착하는 류의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중국 경제에 대한 다양한 분석, 현대 중국을 읽는 키워드, 향후 세계 경제 속에서 중국의 위치 등이 그것이다.

 

그 지점에 있어 이 책은 유독 눈에 띈다. <중국을 읽다>는 1980년에서 2010, 이 30여 년간의 중국의 변화를 세밀하게 읽어낸 책이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마오 이후의 중국,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본 중국의 현대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마오에 대한 재조명을 다룬 책은 많지만 덩샤오핑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은 많지 않았고, 개개인의 삶에서 시작하는 것이라 거시적인 측면에서 정국의 변화를 읽은 것 역시 흔치 않았던 시도였다. 그 지점에서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1980년에서 2010년까지의 30년은 21세기의 중국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기로 남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30년간 일본과 서구 열강에게 느꼈던 피해의식을 털어버리고 대국의 야망을 되찾았다" _ 570쪽

 

프랑스 기자 출신인 저자가 중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80년대 이후부터는 더욱더 상세하게 다뤄진다(저자는 30년간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과 인민들의 삶을 관심있게 지켜봤으며, 98년부터는 베이징에 상주하면서 중국에 관한 기사를 썼다). 덩샤오핑이 화궈펑을 밀어내며 권력을 되찾는 과정, 주석 자리에 오른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개혁개방 정책, 구시대를 끊어버리겠다며 이루어진 4인방에 대한 재판, 홍콩과 마카오 반환 등을 위한 외교 관계 등에 대해 자세하게 다뤄진다.

 

중국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인 톄안먼 사태에 대해서는 각종 보도자료와 취재 재료를 바탕으로 더욱 더 생생하게 그려낸다. 장쩌민이 지도부의 수장이 된 90년대의 중국 역시 자세하게 그려진다. 다른 책에서는 '개혁개방'정도로 짧게 훑고 지나갔던 시기다. 후진타오가 집권하고 이뤄진 화평굴기 운동, 그로 인한 티베트 탄압, 베이징 올림픽 개최등 현대 중국의 역사를 장면 위주로 만날 수 있다.

 

저자의 독특한 시각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30여년간의 중국을 잘 정리해 놓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표지 역시 중국 현대를 상징하는 웨민쥔의 그림을 담아 그 상징성을 부여했다.(표지가 벗겨지길래 펼치면 그림 포스터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왜 굳이 이렇게 표지를 만들었는지 의문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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