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시체들의 연애
어맨더 필리파치 지음, 이주연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린은 어느날 갑자기 자기가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전에는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뭔가를 욕망하는 상태가 그리웠다.
주변을 둘러봐도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러한 이유로 그녀는 욕망을 가진 모든 사람을 부러워하게 되었다.
_ 5쪽 중에서

날씨 탓인지, 체력 탓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나이 탓인지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요즘, 서가를 거닐다 이 책에 눈이 들어왔다. 이 책의 첫장은 린의 심리 상태로 시작한다. 아무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바라는 것도 없는 상태. 어느날 자신이 '욕망상실증'에 걸리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말이다. 

 

서른 두살의 린은 갤러리를 운영하는 그래도 꽤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그의 갤러리에는 유명 화가들이 자신의 그림을 팔기 위해 드나들었고, 성공한 기업가나 사업가들이 그 그림을 살기 위해 그녀를 찾았다. 그런데 앞만보고 달려왔기 때문일까? 그녀는 어느 순간 일종의 회의감을 느끼는 동시에 모든 것에 의욕을 상실하는 욕망상실증에 걸리고 만다. 대체 이 난국을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 것인가!

 

린에게는 스토커가 한명 있었는데, 린은 스토커의 눈빛을 보는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깨달았다. 스토커에게는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 살아 있는 눈빛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지고 싶고, 이루고 싶은 강렬한 욕망. 순간 그 스토커가 너무나 부러워진 린은 자신도 스토킹을 시작해보기로 한다. 그날로 린은 매일같이 갤러리를 지나가는 남자 하나를 무작위로 정했고, 스토커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스토킹을 시작한다. 삶의 의욕을 되찾기 위해서!

 

이렇게 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스토킹에서 시작된 이들의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삼각관계 연애담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욕망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다양한 군상들이 담겨 있다. 린과 스토커는 물론 린의 친구 주디는(그녀 역시 갤러리 대표였는데) 삶의 욕망을 상실한 나머지 주기적으로 일부러 가벼운 교통사고를 낸다고 했다. 병원에 있다보면 다시금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고 열심히 살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호텔 지베인 맥스는 일부러 자신의 정사 장면을 남들에게 들키는 방식으로 욕망의 씨를 유지했다. 주디와 맥스 모두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지만 말이다.

 

욕망상실증의 처방전이 삶의 극단, 죽음과의 접점을 통해 해결된다는 마지막 결론은 조금 씁쓸했지만, 자신의 욕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내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좌절을 경험해보는 것, 무작정 한 가지를 갈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상실감을 맛보는 것, 그리고 욕망을 찾기 위해 욕망을 갈망해 보는 것이 생의 욕망을 다시 찾아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로도 개봉한다니 영화로 보는 것도 재밌겠다. 영화가 하루빨리 개봉되기나 욕망해 볼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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