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공주 1 - 만신의 왕
김나임 지음 / 북치고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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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웹툰의 인기작품 <바리공주>가 단행본으로 나왔습니다. 짝짝짝! 작가님이 전설의 고향 같은 작품을 그리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그 시절, 그 때, 그 느낌으로 전설의 고향이 되살아나는 듯 했어요. 넘 잼나다는 말씀!! 얼쑤!!

오구대왕이 일 년을 못참고 길대부인과 결혼하는 바람에 아들은 하나도 못나고 공주만 내리 일곱 명을 낳았지요. 그 일곱째 공주가 버려도 버릴 것이요 던져도 던질 것이니, 아비라는 것이 이 따위를 이름이라고 붙여 강물에 유기한 바리공주였습니다. 하늘의 뜻을 어기고 딸을 버린 죗값을 달게 받아 부부 모두 병에 걸렸는데 신하란 것들이 하는 말, "내다버린 바리공주를 서천서역국으로 보내 무장승의 생명수를 얻어오라 하시지요." 너네는 양심도 없니? 얼굴에 철판 깔았어?? 아주 주먹이 우는데요. 착한기만한 바리공주는 남장을 하고 삼천리 육천리를 타박타박 걸어 기어이 무장승 앞에 당도합니다. 삼 년을 나무하고 삼 년을 불 떼고 삼 년을 물 길어 생명수를 얻은 바리공주가 무사히 제 부모를 살렸더라, 하는 것이 여태 제가 바리공주에 대해 아는 전부였지요. 그러나 21세기 웹툰을 빌어 새로이 태어난 바리에게는 그 뒤로 이어지는 낙낙한 사연이 훨씬 많았습니다.

어찌저찌 맘이 통했는지 무장승과 혼인하여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일곱이나 낳은 바리공주! 많이 사랑했고나♡ 반듯하니 아들들도 잘 키우고, 아들 중 하나는 오구지옥의 판관이지 뭐에요, 부부가 해로하는가 했는데 무심한 남편에게 바리공주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거에요. 만신들의 왕이어서일까요? 삼신과도 연이 있던 바리공주는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인간으로 환생, 이승으로의 가출을 단행합니다. 신으로써의 기억을 잃고 무당이 된 15세 소녀 바리! 집 나간 부인을 찾는다는 무장승이라는 남자를 신스승으로 삼아 큰무당이 되기 위한 길을 떠나는데요. 안 돼 바리!! 양세바리!! 바리바리 에브리바리!! 죄송해요. 좀 웃겨 보고 싶었어요ㅠㅠ

미명귀 : 미련이 남아 남편의 후처를 괴롭히는 젊은 여자 귀신, 손말명 : 처녀귀신, 몽달귀신 : 총각귀신, 구렁이 등을 만나 귀신들의 원한을 풀고 억울한 이를 구제하며 차츰차츰 성장해가는 바리와 15년째 독수공방 이제나저제나 부인 찾아 서천서역국으로 돌아갈까 애가 끓는 무장승을 만나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오싹한 재미를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무서웠다 화가 났다 슬펐다 통쾌햇다, 예전 전설의 고향 그 재미에 결코 뒤지지 않으니까요. 여태 귀신 중의 귀신은 처녀 귀신인 줄만 알았는데 1편에서는 미명귀가 제일 소름 끼치고, 덜덜덜덜. 전설의 고향, 요즘 애들은 아마 모르겠지요? 코 쓱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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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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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벽돌책! 읽는데 꼬박 삼일이 걸렸다. 삼일 내내 새벽 한 시, 한 시, 두 시까지 읽고 오늘 아침에 눈뜨자마자 또 읽고서야 겨우 본편이랑 작가 후기까지 완료했다. 그러고도 역자 후기가 남아서 저녁까지 다시 읽게 만든 가공할 벽돌, 철야책이다. 참고로 밤을 꼴딱 새지 않은 것은 참을만하게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다음날 출근을 염두한 피치 못할 선택이었다ㅠㅠ

처음엔 13.67이라는 제목이 어떤 식으로 지어졌는지 영 감을 못잡았다. 첫 편을 읽을 때만 해도 사부라 불리는 관전둬가 주인공인 줄 몰랐다는 사실도 부끄럽게 밝힌다. 젊은 형사 뤄샤오밍, 뤄 독찰이 주인공인 줄 알았지 뭔가. 변명하자면 사건해결기계, 천리안, 천재 탐정이라 칭송받은 관전둬도 이 책의 등장시엔 이미 노년, 간암 말기의 환자로 몇 번이나 혼수 상태에 빠진 상황이었고 때문에 첫단편 홍콩 대부호 살인사건 때도 침상에 누워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컴퓨터에 연결한 뇌파측정기기로 O, X 정도의 간단한 의사표시는 가능했지만 이마저도 뤄독찰의 연기였던 것이 밝혀졌으니 실질적으로 그는 천리안이라는 자신의 이미지만 제자에게 빌려준 느낌이었달까? 물론 뤄독찰이 후안무치라 스승을 미끼 삼은 것은 아니었고 대의를 위해 죽는 날까지 경찰로써 쓸모를 다하고 싶다는 소망이 뤄독찰을 움직인 근원이었다. 독자 역시도 그의 뜨거운 사명감에 감동 받아 훌륭한 스승 밑에 훌륭한 제자가 났구나, 뤄독찰이 홍콩의 더욱 거대한 범죄에 맞서나가겠구나 예상했던 거고 말이다. 그런데 홍콩 연예인을 육교에서 떠밀어 사망케한 다음 살인사건에서 더 젊은 관전둬와 풋내기 같은 뤄독찰이 등장한다. 아뿔싸, 역순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구나! 그럼 제목은 관전둬의 나이를 이르는거군! 무릎을 쳤는데 결론적으로는 이것도 틀렸다. 2013년과 1967년. 이야기가 시작하는 때와 이야기가 끝나는 때 아니지 역순이니까 경찰로서의 사건이 끝나는 때와 사건이 시작하는 때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 해의 년도들을 딴 거였다. 신박하기도 하지.

13.67을 읽다 보면 90년대 즐겨보았던 홍콩 영화 속의 풍경이 잡힐 듯이 그려진다. 마약, 삼합회, 비리경찰, 조직간의 다툼과 연예계를 장악한 어두운 그림자, 의리있는 따거들과 그들의 뜨거운 피. 익숙하지만 아주 오래 잊고 있던 풍경들이다.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중국에 반환되며 겪게 되는 폭압적이고 복잡한 현대사의 짙은 그림자에 남일 같지 않은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한 편 한 편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더욱 단단하고 견고해지는 사건과 추리와 반전에 놀라고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설령 그것이 불법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뚜렷한 주관의 관전둬에 매료된다. 능숙하게만 보이는 뤄독찰의 발로 차고 싶은 신입 때 이야기를 읽으며 깨소금 물기도 하고 소설의 끝에 다다라 개안하듯 밝혀지는 인연에 잠시 멍. 무거운 허리를 단숨에 일으켜 단편들을 하나씩 되짚게 된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을만큼 잘 써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재밌다고 추천하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찬호께이의 13.67. 강력추천 또 추천이다. 별 다섯 혹은 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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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밤의 양들 - 전2권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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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성전 돌에 머리가 으깨진 소녀. 범인은 거룩한 성전의 문설주를 더럽히기 위해 소녀의 목을 치고 전리품처럼 소녀의 등짝을 네모낳게 뜯어갑니다. 새벽 같이 몰려들 순례자들을 생각하면, 그 순례자들이 성스러운 곳에서 벌어진 이 비극적인 사건을 목도하고 벌일 소요를 생각하면, 성전 수비대장 조나단은 온몸에 식은땀이 다 날 지경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안토니 요새 지하 감옥의 문을 엽니다. 한 때는 조나단의 밀정이었고 또 한 때는 희생양을 죽이는 도살꾼이었던 자. 로마의 검투사로 두 손으로 헤아리기 힘들만큼의 사람을 죽이고 로마 병사가 된 후엔 무찌른 적군이 너무 많아 헤아리기를 포기했던 자. 예루살렘 뒷골목의 사기꾼이자 포주이며 기둥서방이었으나 이제는 로마 백인대장을 죽인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에 못박힐 날만 기다리는 마티아스만큼 지금 그에게 필요한 사람은 또 없으니까요.

"넌 지금껏 수많은 죽음을 보았고 수많은 자를 죽였어.

그러니 너보다 살인자의 의도와 행동을 잘 추적할 자는 없을 거야." (p25)

살고자 하는 마티아스의 욕망을 너무나 잘 아는 조나단은 말합니다. 살인자를 찾아라! 그럼 사형 직전의 너를 구제해주마! 실낱같은 희망에 명줄을 걸고 까끌한 모래바람이 이는 예루살렘의 뒷골목을 샅샅이 훑어가며 범인을 추적하는 마티아스. 죽은 이가 평범한 소녀가 아니라 창녀임을 알고, 그 창녀의 살던 곳을 알고, 간밤 그 창녀에게 화대를 지불한 이까지 찾았건만, 살아날 구멍이 솟았다고 생각한 때에 두 번째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실로암 샘물을 핏빛으로 물들인 소녀의 시체. 옆구리와 목덜미를 찔린 피해자는 밤새 응고되지 않은 피를 성전의 샘으로 흘려보냈습니다. 사각으로 오려진 등의 자국도 첫 번째의 소녀와 동일한 연쇄 살인입니다. 살인죄인을 체포하지 못했다며 뺨을 내리치는 조나단의 발목에 매달려 마티아스는 구걸합니다. '한번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나리.' 뒷골목의 쓰레기라 손가락질 받은 인생이 결코 자의가 아니었기에 구걸은 구차하기 보다 눈시울 붉어지게 마음이 아픕니다. 말간 예루살렘의 아침, 감란산의 향기가 실린 바람, 성전을 비추는 따사로운 햇살, 이 모든 것이 축복임을 일찍이 깨달았다면 그는 조금 더 이르게 운명과 대적할 수 있었을까요?

낮에는 살인현장을 개처럼 기고 밤에는 피와 고름으로 썩어가는 지하감옥에서 밤을 뒤채우는 마티아스. 살인범을 뒤쫓으며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예루살렘의 진실을 목도해야만 했던 마티우스. 기적을 믿지 않으면서도 죽음과 진실의 무게를 헤아릴 줄 알았던 마티아스. 보이지 않는 손에 휘둘리면서도 끊임없이 투쟁하고 진화하며 생의 결정권을 되찾아 평화를 획득한 마티아스. 그가 감당해야 했던 일주일의 기록에 잠겨 단 한번 밟아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이스라엘을 떠올립니다. 성전의 그늘 아래서 웃음 짓는 마티아스와 그 위를 드리운 축복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집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재가 그 자체로 반전 같았던 이정명 작가님의 신작 <밤의 양들>입니다.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어 로마 황제가 된 티베리우스의 재임 기간, 속국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신성한 명절 유월절을 앞두고 성전의 한 가운데를 물들인 핏빛 기운에 로마와 예루살렘의 긴장감이 한껏 높아집니다. 예루살렘에 붙어 거머리처럼 세금을 징수하는 로마의 집정관은 언제든 봉기를 일으킬 마음가짐이 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민족을 깔아뭉개고픈 마음뿐이고 예루살렘의 성전기사단은 로마에 한 꼬집 꼬투리도 아니잡히기 위해 살인자를 살인자로 잡겠다는 계책을 새웁니다. 한 명, 한 명, 연이어 죽어 나가는 자들이 가진 비밀이 <밤의 양들>의 묘미이므로 더 상세한 내용은 생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라고만 생각했던 이 책의 반전을 이 리뷰를 읽는 다른 분들께서도 몸소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핫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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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나에게 - 고흐와 셰익스피어 사이에서 인생을 만나다
안경숙 지음 / 한길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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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만나도 질리지 않는 소재가 있다면 책 속의 책 이야기입니다. 나 이런 책을 좋아해요, 책 속의 이런 구절을 또 좋아하고요, 혹시 여러분도 읽어본 적 있나요? 없다면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은근하게 권유하고 유혹하는 말들에 매료되곤 합니다. 요즈음 취미를 붙인 분야는 또한 미술인데 아직은 낯설지만 보고 또 보다 보면 화가와 작품도 능숙하게 익히고 예쁘다 안예쁘다 수준(;;)을 벗어난 감상도 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희망하는 중입니다.

안경숙 작가의 에세이 <사랑이 나에게>는 제가 좋아하는 두 소재를 합쳐 만든 책입니다. 고흐와 셰익스피어 사이에서 인생을 만나다 라는 부제처럼 그림과 문학에서 발견한 삶에 대한 감상을 엮었습니다. "나로 살아가는 기쁨, 사랑 우리를 살게 하는 것, 작지만 단단한 삶을 위해" 작가가 품고 써온 이야기들이 소녀스럽고 아기자기하고 어여쁘더군요. 몇 번 이직을 하긴 했지만 만만치 않은 내공으로 현 직장에서 10년째 장기근속 중인 근로자. 그런 그가 꾸준히 글을 쓰는 일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예상 밖으로 전업작가가 아니라는데 별 불만없이 사부작사부작 글 쓰는 재미를 이야기했습니다. 영감이 없을 때에도 노동하듯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일과, 끊임없는 삽질과 맨땅에 헤딩으로 일궈낸 풍요로운 결과물, 꼼짝않고 앉아 책을 읽으며 흡혈귀처럼 빨아들인 문장들로 벌써 세 권이나 되는 책들을 펴낸 작가의 삶도 인상 깊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처음"이라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애쓰고, 하지 않고 죽어도 좋을 일들만 내일로 미루려 노력하며, 작은 씨앗을 뿌려 숲을 이루는 내일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결심에서 본 받을 점도 많았구요.

색을 고스란히 입은 미술작품들을 안고 침대에 누우면 책 한 권으로 미술관에 온 것만 같았구요. 제인 오스틴, 존 스타인벡, 몽테스키외, 생텍쥐페리, 나쓰메 소세키, 셰익스피어 등 유명 작가의 작품 속 공감가는 멋진 문장들을 만나면 책장에서 먼지를 덮어쓰며 잠수해 있는 고전들을 죄다 꺼내 읽고 싶었습니다. 로시니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는 "나는 이 거리의 만물박사"를 찾아듣기도 하고요. 맛집 기행을 하기 위해 오페라 작곡을 그만뒀다는 (설이 있는) 로시니의 삶을 부러워하면서 말이죠. 부담 1도 없이 휴식 같이 편안한 책입니다. 머리맡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펼쳐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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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게일 허니먼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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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너 올리펀트는 한 회사에서 9년을 일했다. 고전학 전공에 다른 경력사항 전무, 팔이 부러지고 이는 숭덩숭덩 눈은 멍든 상태였는데 어찌저찌 면접에 통과했다. 물론 그만큼 급여가 작았지만 면접에 통과한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생각했는지 엘리너는 별다른 불만없이 장기 근속 중이다. 8시 30분 출근. 5시 30분 퇴근. 변동없는 구 년의 규칙적인 일과 중 가장 꿀맛 같은 시간은 말할 것도 없이 점심과 휴일이다. 혼자 점심을 먹으며 신문에 있는 크로스워드 퍼즐을 풀고 주말이 오는 금요일 밤이면 마르게리타 피자와 와인 한 병, 보트카 두 병을 사서 벌컥벌컥. 취한 것도 취하지 않은 것도 아닌 상태로 이틀을 보낸 후 월요일을 맞는다. 그리고 다시 출근, 다시 일주일, 다시 한 달, 다시 일 년, 찍은 듯이 똑같은 해를 아홉번이나 넘겼다.

감방에 있는 엄마 이외엔 가족이 없다. 친구도 없어서 지난 구 년 동안 사회복지과 직원 이외엔 엘리너의 집을 방문한 사람도 없다. 구 년 동안 그 흔한 점심 한 번 직원들과 먹지 않았다. 자발적 아싸 엘리너는 혼자인 시간에 너무나 익숙해 인간관계를 만들거나 넓히려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멍청한 타부서 직원들과는 얼굴도 마주하기 싫은 게 속마음이다. 혼자여도 완벽한 인생에 뭐하러 타인을 끼워넣는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온 초대장으로 방문한 콘서트에서 운명같은 남자를 만난다. 이런 게 한눈에 반한다는걸까? 걸어나오는 그를 봤을 때, 조끼의 맨아래 풀려있는 단추를 봤을 때 엘리너는 그냥 그렇게 알 게 되었다. 그가 자신의 남편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두근두근. 구 년 만에 처음으로 평소와는 다른 주말을 맞았다. 스토커가 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그의 각종 정보를 검색한다. 혹시나 모를 밤을 대비해, 물론 그는 아직 엘리너의 존재조차 모르지만, 비키니 왁싱도 한다. 지나치게 앞서나가는 준비에 화들짝할 놀랄 겨를도 없이 다시 사건이 터진다. 눈치코치 없는 신규 입사자 레이먼드와 함께 퇴근하는 길. 앞서 가던 할아버지가 휘청휘청한다. 벌건 대낮에 술에 취해서는,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데 아뿔사!! 꼴도 보기 싫은 영감님이 툭 옆으로 쓰러져버리고 눈치도 없는 놈이 오지랖까지 넓어서는 재빨리 달려가는 레이먼드에 엘리너까지 휩쓸려 버린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 털털한 엘리너의 눈물을 쏙 뽑고야 마는 감방에서의 전화, 단 한번도 얼굴을 보인 적이 없는 아버지, 위탁가정을 전전해야만 했던 어린 시절, 수수께기가 많은 엘리너는 그러나 여태 잘 살아왔다. 남들이 뭐라고 수근거리든 위탁가정의 부모들이 어떻게 거짓말로 그녀를 내쫓든 잘 버텼고 잘 견뎠고 잘 이겨냈다. 나는 엘리너의 완벽하게 괜찮다는 말이 결코 자기위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엘리너는 정말로 괜찮았을 것이다. 더 나은 관계, 더 나은 경험, 더 쾌적한 환경과 더 따뜻한 관계의 충만함을 애초에 알지 못했을테니. 그런 것을 바라기에는 구 년 전의 엘리너의 삶이 너무 위험하고 불안전했으리라 면접 때의 모습으로 짐작하고도 남으니까. 엘리너가 앵무새 식물 폴리와 수다를 떨며 위안 삼는 삶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앤의 말처럼 진짜 친구가 생기면 상상 속의 친구로는 도무지 만족할 수가 없는 법이므로 앨리너에게도 그런 기회가 꼭 오기를 바란다. 동료직원 레이먼드와 병실에 누운 새미 영감님과 첫사랑이 된 가수가 엘리너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지 않을까 예감하며 엘리너가 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는 사실을 얼른 깨달았으면 좋겠다. 일방적이기만 한 엄마와의 관계도 사회복지과 직원의 감시하는 눈초리도 터부시하는 직원들의 경멸 어린 태도도 한발로 빵 차주었으면. 그래서 그녀 말처럼 완전완전 괜찮은 하루하루를 기대하며 술에 취하지 않고 잠드는 주말 밤을 맞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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