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성전 돌에 머리가 으깨진 소녀. 범인은 거룩한 성전의 문설주를 더럽히기 위해 소녀의 목을 치고 전리품처럼 소녀의 등짝을 네모낳게 뜯어갑니다. 새벽 같이 몰려들 순례자들을 생각하면, 그 순례자들이 성스러운 곳에서 벌어진 이 비극적인 사건을 목도하고 벌일 소요를 생각하면, 성전 수비대장 조나단은 온몸에 식은땀이 다 날 지경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안토니 요새 지하 감옥의 문을 엽니다. 한 때는 조나단의 밀정이었고 또 한 때는 희생양을 죽이는 도살꾼이었던 자. 로마의 검투사로 두 손으로 헤아리기 힘들만큼의 사람을 죽이고 로마 병사가 된 후엔 무찌른 적군이 너무 많아 헤아리기를 포기했던 자. 예루살렘 뒷골목의 사기꾼이자 포주이며 기둥서방이었으나 이제는 로마 백인대장을 죽인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에 못박힐 날만 기다리는 마티아스만큼 지금 그에게 필요한 사람은 또 없으니까요.
"넌 지금껏 수많은 죽음을 보았고 수많은 자를 죽였어.
그러니 너보다 살인자의 의도와 행동을 잘 추적할 자는 없을 거야." (p25)
살고자 하는 마티아스의 욕망을 너무나 잘 아는 조나단은 말합니다. 살인자를 찾아라! 그럼 사형 직전의 너를 구제해주마! 실낱같은 희망에 명줄을 걸고 까끌한 모래바람이 이는 예루살렘의 뒷골목을 샅샅이 훑어가며 범인을 추적하는 마티아스. 죽은 이가 평범한 소녀가 아니라 창녀임을 알고, 그 창녀의 살던 곳을 알고, 간밤 그 창녀에게 화대를 지불한 이까지 찾았건만, 살아날 구멍이 솟았다고 생각한 때에 두 번째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실로암 샘물을 핏빛으로 물들인 소녀의 시체. 옆구리와 목덜미를 찔린 피해자는 밤새 응고되지 않은 피를 성전의 샘으로 흘려보냈습니다. 사각으로 오려진 등의 자국도 첫 번째의 소녀와 동일한 연쇄 살인입니다. 살인죄인을 체포하지 못했다며 뺨을 내리치는 조나단의 발목에 매달려 마티아스는 구걸합니다. '한번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나리.' 뒷골목의 쓰레기라 손가락질 받은 인생이 결코 자의가 아니었기에 구걸은 구차하기 보다 눈시울 붉어지게 마음이 아픕니다. 말간 예루살렘의 아침, 감란산의 향기가 실린 바람, 성전을 비추는 따사로운 햇살, 이 모든 것이 축복임을 일찍이 깨달았다면 그는 조금 더 이르게 운명과 대적할 수 있었을까요?
낮에는 살인현장을 개처럼 기고 밤에는 피와 고름으로 썩어가는 지하감옥에서 밤을 뒤채우는 마티아스. 살인범을 뒤쫓으며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예루살렘의 진실을 목도해야만 했던 마티우스. 기적을 믿지 않으면서도 죽음과 진실의 무게를 헤아릴 줄 알았던 마티아스. 보이지 않는 손에 휘둘리면서도 끊임없이 투쟁하고 진화하며 생의 결정권을 되찾아 평화를 획득한 마티아스. 그가 감당해야 했던 일주일의 기록에 잠겨 단 한번 밟아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이스라엘을 떠올립니다. 성전의 그늘 아래서 웃음 짓는 마티아스와 그 위를 드리운 축복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집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재가 그 자체로 반전 같았던 이정명 작가님의 신작 <밤의 양들>입니다.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어 로마 황제가 된 티베리우스의 재임 기간, 속국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신성한 명절 유월절을 앞두고 성전의 한 가운데를 물들인 핏빛 기운에 로마와 예루살렘의 긴장감이 한껏 높아집니다. 예루살렘에 붙어 거머리처럼 세금을 징수하는 로마의 집정관은 언제든 봉기를 일으킬 마음가짐이 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민족을 깔아뭉개고픈 마음뿐이고 예루살렘의 성전기사단은 로마에 한 꼬집 꼬투리도 아니잡히기 위해 살인자를 살인자로 잡겠다는 계책을 새웁니다. 한 명, 한 명, 연이어 죽어 나가는 자들이 가진 비밀이 <밤의 양들>의 묘미이므로 더 상세한 내용은 생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라고만 생각했던 이 책의 반전을 이 리뷰를 읽는 다른 분들께서도 몸소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핫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