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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의 벽돌책! 읽는데 꼬박 삼일이 걸렸다. 삼일 내내 새벽 한 시, 한 시, 두 시까지 읽고 오늘 아침에 눈뜨자마자 또 읽고서야 겨우 본편이랑 작가 후기까지 완료했다. 그러고도 역자 후기가 남아서 저녁까지 다시 읽게 만든 가공할 벽돌, 철야책이다. 참고로 밤을 꼴딱 새지 않은 것은 참을만하게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다음날 출근을 염두한 피치 못할 선택이었다ㅠㅠ
처음엔 13.67이라는 제목이 어떤 식으로 지어졌는지 영 감을 못잡았다. 첫 편을 읽을 때만 해도 사부라 불리는 관전둬가 주인공인 줄 몰랐다는 사실도 부끄럽게 밝힌다. 젊은 형사 뤄샤오밍, 뤄 독찰이 주인공인 줄 알았지 뭔가. 변명하자면 사건해결기계, 천리안, 천재 탐정이라 칭송받은 관전둬도 이 책의 등장시엔 이미 노년, 간암 말기의 환자로 몇 번이나 혼수 상태에 빠진 상황이었고 때문에 첫단편 홍콩 대부호 살인사건 때도 침상에 누워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컴퓨터에 연결한 뇌파측정기기로 O, X 정도의 간단한 의사표시는 가능했지만 이마저도 뤄독찰의 연기였던 것이 밝혀졌으니 실질적으로 그는 천리안이라는 자신의 이미지만 제자에게 빌려준 느낌이었달까? 물론 뤄독찰이 후안무치라 스승을 미끼 삼은 것은 아니었고 대의를 위해 죽는 날까지 경찰로써 쓸모를 다하고 싶다는 소망이 뤄독찰을 움직인 근원이었다. 독자 역시도 그의 뜨거운 사명감에 감동 받아 훌륭한 스승 밑에 훌륭한 제자가 났구나, 뤄독찰이 홍콩의 더욱 거대한 범죄에 맞서나가겠구나 예상했던 거고 말이다. 그런데 홍콩 연예인을 육교에서 떠밀어 사망케한 다음 살인사건에서 더 젊은 관전둬와 풋내기 같은 뤄독찰이 등장한다. 아뿔싸, 역순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구나! 그럼 제목은 관전둬의 나이를 이르는거군! 무릎을 쳤는데 결론적으로는 이것도 틀렸다. 2013년과 1967년. 이야기가 시작하는 때와 이야기가 끝나는 때 아니지 역순이니까 경찰로서의 사건이 끝나는 때와 사건이 시작하는 때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 해의 년도들을 딴 거였다. 신박하기도 하지.
13.67을 읽다 보면 90년대 즐겨보았던 홍콩 영화 속의 풍경이 잡힐 듯이 그려진다. 마약, 삼합회, 비리경찰, 조직간의 다툼과 연예계를 장악한 어두운 그림자, 의리있는 따거들과 그들의 뜨거운 피. 익숙하지만 아주 오래 잊고 있던 풍경들이다.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중국에 반환되며 겪게 되는 폭압적이고 복잡한 현대사의 짙은 그림자에 남일 같지 않은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한 편 한 편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더욱 단단하고 견고해지는 사건과 추리와 반전에 놀라고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설령 그것이 불법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뚜렷한 주관의 관전둬에 매료된다. 능숙하게만 보이는 뤄독찰의 발로 차고 싶은 신입 때 이야기를 읽으며 깨소금 물기도 하고 소설의 끝에 다다라 개안하듯 밝혀지는 인연에 잠시 멍. 무거운 허리를 단숨에 일으켜 단편들을 하나씩 되짚게 된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을만큼 잘 써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재밌다고 추천하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찬호께이의 13.67. 강력추천 또 추천이다. 별 다섯 혹은 그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