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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리턴즈 ㅣ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3월
평점 :
"미안해. '혼자라도 괜찮다'고 우기지 않으면 내가 견디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
".... 그랬구나? 난 반대야. 소중한 사람한테 '당신이 필요하다'고 전하지 않으면, 내가 견디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p75)
어른들의 사정으로 3년 전 남매가 된 동갑내기 료카와 히지리. 금사빠인 료카의 엄마는 허구헌 날 진짜 사랑에 빠졌다며 료카를 못살게 굴어요. 엄마가 재혼한다는 결심을 밝혔을 때 반대하는 것도 아니면서 새아빠의 성으로 바꾸지 않은 건 이번 사랑도 금방 끝날 걸 예상했기 때문이랍니다. 아니나 다를까, 료카와 히지리가 대입시험을 앞둔 가장 중요한 때에 두 사람은 이혼을 결정했구요. 한번 결심하면 속전속결로 해치우는 성격의 엄마는 다리를 다쳐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료카를 시켜 이혼서류를 법원에 접수하게 해요. '어지간하면 정신 좀 차리고 혼자서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돼.'(p15) 한심한 엄마를 향한 료카의 속마음,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도 잘 사는 어른이 되겠다는 료카의 결심이 너무 이해되는 거 있죠.
소문의 펭귄철도를 타고 법원으로 향하던 료카. 고등학교 내내 철도를 타고 다녀도 보지 못했던 펭귄을 오늘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어요. 거기다 펭귄이 그 깜찍뽀짝한 발을 료카의 신발 위에 턱 하니 올려놓기까지 했다니까요. (귀여워>_<)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며 휴대폰에 한 눈을 판 게 이후 벌어진 모든 사건의 원인이었어요. 엄마의 전화를 받으려다 전철에서 철푸덕 넘어졌구요. 펭귄을 찾는 모히칸 헤어의 건달에게 위협도 받아요. 수갑, 검은 눈가리개, 길이가 다른 밧줄까지 들고 다니는 이 남자 대체 정체가 뭐죠? 설마 펭귄 납치범?? 무서워서 옴싹달싹 못한 채 끌려가는 료카를 구한 건 다름 아닌 히지리였답니다.
집에서는 서먹서먹, 학교에서는 알은 척도 하지 않는 두 사람이지만 차마 곤경에 빠진 누나를 두고 볼 수 없었던가 봐요. 히지리의 도움으로 의문의 모히칸 남자는 떨쳐냈지만 더 큰 문제는 부모님의 이혼접수장까지 사라졌다는 거예요. 이혼 서류를 찾아 빨간머리가 인상적인 분실물센터 역무원을 만났구요. 역무원 모리야스 소헤이와 대화하던 도중 히지리가 펭귄 주둥이에 물려있던 종잇조각을 떠올린 덕분에 의도치 않게 펭귄 찾아 삼천리 철도모험도 떠나게 되요. 부모님이 갈라서는 판국에 우정을 만들기도 우애를 쌓기도 어색하잖아요. 이거 혹시 애정물인가 추측했는데 전혀요. 비슷한 상처를 가졌지만 다른 방법으로 상처를 극복 중이던 두 아이가 정말로 잃어버렸던 아니 잃어버릴 뻔 했던 아주 소중한 것을 찾아 다음 전철에 탑승한다는 그런 사랑스런 얘기입니다.
반짝반짝 데이지, 나의 졸업여행, UFO와 유령, 원더매직. 2월 15일 펭귄철도를 찾은 네 쌍의 남매 혹은 형제, 혹은 도저히 남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관계성을 띈 사람들이 펭귄을 만나고, 무언가를 분실하고, 펭귄철도 분실물센터를 찾아 잃어버린 물건과 소중한 마음=우애를 찾아 돌아가는 이야기들이에요. 전편 펭귄철도 분실물센터와 마찬가지로 4년 만에 독자들을 만나러 온 속편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리턴즈도 무척이나 다정다감해서 마음이 포근해졌어요. 펭귄은 사건의 주요한 화제로 떠오르는 일은 없지만 존재 자체로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하구요. 꽃미남 역무원 소헤이도 넘넘 반갑습니다. 이야기마다 등장하는 모히칸 헤어의 건달 양반은 도대체 누구냣! 궁금했는데요. 그의 정체는 마지막 단편 원더매직에서 밝혀져요. 기적같은 만남에 살짝쿵 미스터리를 가미한 매력적인 소설이예요. 속편만 단독으로 읽어도 재미나지만요. 빨간머리 역무원 소헤이의 사정을 알고 싶은 독자는 꼭꼭 전편도 만나보세요.
"'온전하게 산다'는 말에 담긴 의미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다고 생각해요. 전 병원에 있었을 때 건강한 사람처럼 사는 게 '온전하게 사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아주 괴로웠어요. 나 자신이 마치 이미 죽은 사람처럼 느껴져서, 죽은 주제에 소중한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고 민폐를 엄청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더는 못견디겠다 싶었는데... 하지만 그분한테서 '사람은 태어나면 살아야 할 의무가 있어'라는 말을 듣고 나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의무가 있다고. 의무가 있는 거면 별 수 있나. 그냥 힘내서 살자,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p206-207)
+현대문학 지원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