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너 올리펀트는 한 회사에서 9년을 일했다. 고전학 전공에 다른 경력사항 전무, 팔이 부러지고 이는 숭덩숭덩 눈은 멍든 상태였는데 어찌저찌 면접에 통과했다. 물론 그만큼 급여가 작았지만 면접에 통과한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생각했는지 엘리너는 별다른 불만없이 장기 근속 중이다. 8시 30분 출근. 5시 30분 퇴근. 변동없는 구 년의 규칙적인 일과 중 가장 꿀맛 같은 시간은 말할 것도 없이 점심과 휴일이다. 혼자 점심을 먹으며 신문에 있는 크로스워드 퍼즐을 풀고 주말이 오는 금요일 밤이면 마르게리타 피자와 와인 한 병, 보트카 두 병을 사서 벌컥벌컥. 취한 것도 취하지 않은 것도 아닌 상태로 이틀을 보낸 후 월요일을 맞는다. 그리고 다시 출근, 다시 일주일, 다시 한 달, 다시 일 년, 찍은 듯이 똑같은 해를 아홉번이나 넘겼다.
감방에 있는 엄마 이외엔 가족이 없다. 친구도 없어서 지난 구 년 동안 사회복지과 직원 이외엔 엘리너의 집을 방문한 사람도 없다. 구 년 동안 그 흔한 점심 한 번 직원들과 먹지 않았다. 자발적 아싸 엘리너는 혼자인 시간에 너무나 익숙해 인간관계를 만들거나 넓히려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멍청한 타부서 직원들과는 얼굴도 마주하기 싫은 게 속마음이다. 혼자여도 완벽한 인생에 뭐하러 타인을 끼워넣는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온 초대장으로 방문한 콘서트에서 운명같은 남자를 만난다. 이런 게 한눈에 반한다는걸까? 걸어나오는 그를 봤을 때, 조끼의 맨아래 풀려있는 단추를 봤을 때 엘리너는 그냥 그렇게 알 게 되었다. 그가 자신의 남편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두근두근. 구 년 만에 처음으로 평소와는 다른 주말을 맞았다. 스토커가 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그의 각종 정보를 검색한다. 혹시나 모를 밤을 대비해, 물론 그는 아직 엘리너의 존재조차 모르지만, 비키니 왁싱도 한다. 지나치게 앞서나가는 준비에 화들짝할 놀랄 겨를도 없이 다시 사건이 터진다. 눈치코치 없는 신규 입사자 레이먼드와 함께 퇴근하는 길. 앞서 가던 할아버지가 휘청휘청한다. 벌건 대낮에 술에 취해서는,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데 아뿔사!! 꼴도 보기 싫은 영감님이 툭 옆으로 쓰러져버리고 눈치도 없는 놈이 오지랖까지 넓어서는 재빨리 달려가는 레이먼드에 엘리너까지 휩쓸려 버린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 털털한 엘리너의 눈물을 쏙 뽑고야 마는 감방에서의 전화, 단 한번도 얼굴을 보인 적이 없는 아버지, 위탁가정을 전전해야만 했던 어린 시절, 수수께기가 많은 엘리너는 그러나 여태 잘 살아왔다. 남들이 뭐라고 수근거리든 위탁가정의 부모들이 어떻게 거짓말로 그녀를 내쫓든 잘 버텼고 잘 견뎠고 잘 이겨냈다. 나는 엘리너의 완벽하게 괜찮다는 말이 결코 자기위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엘리너는 정말로 괜찮았을 것이다. 더 나은 관계, 더 나은 경험, 더 쾌적한 환경과 더 따뜻한 관계의 충만함을 애초에 알지 못했을테니. 그런 것을 바라기에는 구 년 전의 엘리너의 삶이 너무 위험하고 불안전했으리라 면접 때의 모습으로 짐작하고도 남으니까. 엘리너가 앵무새 식물 폴리와 수다를 떨며 위안 삼는 삶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앤의 말처럼 진짜 친구가 생기면 상상 속의 친구로는 도무지 만족할 수가 없는 법이므로 앨리너에게도 그런 기회가 꼭 오기를 바란다. 동료직원 레이먼드와 병실에 누운 새미 영감님과 첫사랑이 된 가수가 엘리너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지 않을까 예감하며 엘리너가 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는 사실을 얼른 깨달았으면 좋겠다. 일방적이기만 한 엄마와의 관계도 사회복지과 직원의 감시하는 눈초리도 터부시하는 직원들의 경멸 어린 태도도 한발로 빵 차주었으면. 그래서 그녀 말처럼 완전완전 괜찮은 하루하루를 기대하며 술에 취하지 않고 잠드는 주말 밤을 맞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