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 함께하는 여름
실뱅 테송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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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tvn "책 읽어드립니다" 같은 방송이 프랑스에도 있더라구요. 우리는 티비고 그쪽은 라디오라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요. 몽테뉴, 프루스트, 보들레르, 빅토르 위고뿐 아니라 호메로스가 그들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는데요.

단연코 최고 인기는 호메로스였던 듯 합니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3일 만에 초판 3만부가 매진되고 그 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해요. 프랑스 라디오이니 영영 들을 일 없겠지만 열광하며 책을 구입하셨을 독자들의 마음은 이해가 되요. 저도 이 책! 등장하자마자 무지무지 궁금했단 말이죠>_<

전 호메로스 하면 기다란 수염의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를 떠올리곤 했는데요. 호메로스의 정확한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같습니다. 학자들의 연구 끝에 신빙성 있는 가설이 세 가지쯤 추려졌나봐요. 첫째는 호메로스는 그냥 천재다! 라는 가설이에요. 트로이 전쟁 후로부터 4백 년이 지나 태어났지만 신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이 괴물 같은 음유시인이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거대한 문학을 창조했다는 겁니다. 둘째는 호메로스는 한 사람이 아니라 음유시인, 음영시인들의 집단이라는 건데요. 이야기꾼 종족(?)이, 일종의 집시 같은 사람들일까요?, 수 세기에 걸쳐 수집한 텍스트를 추려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집대성 했을 가능성이 있대요. 셋째 가설은 호메로스가 표절자라는 거였어요. 그 시절 널리 알려져있는 전통 이야기들을 하나의 항아리에 모아 연금술사처럼 재구성하지 않았겠냐는 건데요. 브람스가 헝가리 농민의 춤곡을 재구성해 고전음악에 편입시킨 걸 예로 들었더라구요. 물론 가설 중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언제까지고 알 수 없겠지만요.

일리아스의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편이었어요. 아마 매들린 밀러의 "아켈리우스의 노래"를 읽은지 얼마 안되서 그런 것 같아요. 아킬레우스는 어머니 테티스로부터 예언을 듣는데요. 트로이 전쟁에서 헥토르를 죽이면 그 자신도 전사하게 될 거라는 거였어요. 그는 긴 시간 헥토르와의 정면 승부를 피합니다. 헥토르는 내게 잘못한 게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죠. 아가멤논에게 모욕 당한 후에는 아예 전투에서 빠져버리기도 해요. 그 바람에 그리스 진영에서는 전사자가 속출하지만 주변의 간청에도 아랑곳 없어요. 연맹의 안위보다 제 명예가 우선이거든요. 언제까지? 친우인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의 손에 죽어 그가 입고 있던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강탈 당할 때까지요. 이때만큼은 죽음의 예언도 그를 말리지 못해요. 되찾아야 할 명예가 너무도 컸으니까요. 신기한건요. 미친개처럼 날뛰던 아킬레우스가 정작 프리아모스 왕이 찾아와 간청할 때에는 정중하게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준다는 거에요. 이또한 명예 때문이었구요. 그보다 앞서 헥토르가 죽기를 결심하고 아킬레우스 앞에 나선 것도 이 명예 때문이었대요. "아! 싸워보지도 않고 영광 없이 죽기는 싫다. 후세 사람들이 들어서 알게 될 위업을 이루고 죽으리라!!"(일리아스 22편, p181) 잊히지 않기 위해 집단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으리라는 야심으로 죽으려 하다니요. 소시민인 저로서는 도통 이해 못할 사고 방식이지만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다는 사실도 부정 못하겠어요. (추신 : 훗날 저승의 아킬레우스를 오디세우스가 만나게 되는데 엄청 후회를 하더랍니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데 명예는 개뿔~ 했다는 썰이 ㅎㅎㅎ)

작가 샤를 페기의 말입니다. "호메로스는 오늘 아침에 읽어도 새롭다. 어쩌면 오늘 신문만큼 낡은 게 없을지도 모른다."(p166) "2천8백 년 묵은 신선함"(p343)이라니 이토록 요물 같은 책이 또 있을까요? 올여름 더는 미루지 않고 무명으로 남지 않으려는 영웅들의 욕망 같은 일리아스와 이케아로 돌아가기 위해 갖은 고난의 항해를 지속하는 오디세우스를 만나고 말리라 다시 한번 작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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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 - 짐 로저스의 어떤 예견
짐 로저스 지음, 전경아.오노 가즈모토 옮김 / 살림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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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짐 로저스라는 인물을 이 책으로 처음 알았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가로 불린다는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하건데 저중 내가 들어본 사람은 워런 버핏이 유일하다. 뉴스는 헤드라인만 읽는다. 정치, 사회, 경제 모두에 무관심하다. 게으르고 겁도 많아 투자라고는 모르고 개미처럼 매달 월급을 쪼개어 저축만 한다. 투자가가 쓴 책에는 관심을 둔 적도 없고 그걸 읽겠다고 작정해 본 일도 없다. 독서 카페의 강력 추천이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쌩 하니 흘려버렸을 책을 얼떨떨 하게 만나 얼떨떨 하게 읽었다. 여태 읽어온 영역의 책들 이래야 온통 소설뿐이라 짐 로저스의 책은 읽을 때에도, 읽고 난 후에도, 지금 리뷰를 쓰면서도 솔직히 얼떨떨 하다.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1.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

소제목이 짐 로저스의 어떤 예견이다. 그의 예견에 따르면 "한반도는 앞으로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장소가 된다."(p43) 단 통일이 된다면.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여성 인구 부족,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일본은 이를 해결할 방안이 미비한 반면 한국은 단번에 이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있다. "통일". 북한은 여성 수가 부족하지 않다.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북한의 젊은 여성들은 출산을 원한다. 통일이 된다면 저출산 고령화로 국가가 쇠락할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다 라는 게 짐 로저스의 예견이었다. 북한의 성실한 국민성, 남한의 경영능력과 자본에 대한 노하우, 여러 인적물적 자원이 더해진다면 "한반도는 5년 후 아시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다"(p44)라는 단언도 있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의 신경전에 이리 처이고 저리 처이는 우리 입장에서는 보이지도 않고 믿기지도 않는 희망적인 미래가 외부인의 시선에 포착됐다는 사실이 어쨌든 기분 좋고 흥미로웠다. 다만 북한 여성들이 통일 후 충분한 교육을 받고 사회진출을 이루고 난 후에도 계속해 출산을 원할는지, 저출산의 문제가 장기적으로 해소될른지는 의문으로 남았다.

2. 일본에 사는 열 살짜리 아이라면 당장 일본을 떠나라

짐 로저스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라 중의 하나이고 큰 가능성을 가진 나라임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본의 미래를 밝게 보지 않는다. 오죽하면 "만약 내가 일본에 사는 열 살짜리 아이라면 AK-47(총)을 구입하거나 아니면 이 나라를 떠날 것이다."(p78)라고 얘기할까. 그가 예견한 2050년의 일본은 범죄대국이다. 아베가 망쳐놓은 일본 경제는 회복될 가능성이 거의 없고 저출산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을 배척하는 폐쇄적인 문화가 일본의 발목을 잡는다. 50년 100년 후의 일본은 지금과 같은 경제대국이 아닌 정도에 그치지 않고 국민들은 살면서 끔찍한 일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세계인들이 박수를 보내는 손꼽히는 근면성과 품질에 대한 엄격성, 탐구심, 그 밖의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다면 일본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빚과 저출산, 짐 로저스가 지적하는 일본의 문제점 다수가 한국에도 해당되는 사안이다 보니 책을 읽는 내내 섬뜩했다.

3. 폭발적인 성장 가능성, 중국은 폐권국에 가장 근접한 나라다

짐 로저스는 두 딸을 데리고 싱가포르에 거주 중이다. 스물한 살의 나이에 자신이 충분히 현명했더라면 옥스퍼드대가 아닌 중국에 갔을 것이라 이야기하는 그는 자신의 후회를 발판 삼아 딸들의 교육을 싱가포르에서 시키기로 결정했다. 동아시아의 불어올 훈풍을 믿고 있는 것이다. 기술로 중국을 견인하는 리더들, 리더를 뒷받침 하는 인재들을 홍수처럼 쏟아내는 초대국, "먼저 시도하라, 문제가 있으면 나중에 정부가 규제하겠다' 라는 선상시 후관제의 정부방침, 신경제 속 중국의 약진은 무서울 정도다. 중국을 읽는 일이 한국과 일본, 전세계 경제의 행방을 바로 보게 하는 나침반이 될 날이 올 것 같다. 한국 한정으로라면 이미 그런 예견은 현실같기도 하고. 트럼프의 무역전쟁에 대한 우려와 아직은 진정한 국가라 할 수 없는 것 같다는 인도, 외부에서 바라보는 비관적인 시선과는 달리 낙관적인 미래를 점치게 만드는 러시아의 변화들에 대한 예견도 쏠쏠한 흥미를 더한다.

투자가의 책이라길래 경제서적 많이 봐라, 시사에서 눈 돌리지 마라, 돈은 어떻게 모으고 또 투자는 어떻게 해나가라는 이야기가 주일 줄 알았다가 많이 당황했다. 미래를 알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꼭 역사를 공부하라는 짐 로저스. 역사는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는 건 아니지만 리듬에 따라 움직이고(마크 트웨인, 그러나 그가 한 말이 아닐 수도 있다) 역사를 아는 사람만이 그 리듬을 눈치채고 리듬에 맞춰 움직일 수 있다. 나는 변화가 두렵기만 한데 짐 로저스는 "변화를 두려워만 하지 말고 먼저 다가가 여러분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기 바란다"고 인사를 전한다. 분명 즐겁고 가슴 설레는 경험이 될 거라고. 이 책으로 미래에 한 발짝 더 다가섰는지 아닌지는 그의 말처럼 앞으로의 일을 지켜봐야만 알 수 있겠지만 어제까지 읽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장르의 세상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컸다. 책을 읽으며 제일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바로 이거. "투자를 배우면 돈으로 돈을 낳을 수 있다. 일하지 않을 때에도 돈은 당신을 위해 거기에 앉아서 일을 해준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p198) 돈이 돈을 낳는 구조를 한방에 알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부지런히 공부하는 건 어쩜 이렇게 힘이 드는지 퓨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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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습니다 - 58일간의 좌충우돌 자전거 미국 횡단기
엘리너 데이비스 지음, 임슬애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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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 <달려라 스미시> 라는 작품이 있다. 부모님을 교통 사고로 떠나 보낸 후 외톨박이처럼 살고 있는 스미시씨. 여느 때처럼 공장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공허한 마음에 맥주를 홀짝이던 그는 누나의 시체를 확인하라는 전화에 몸을 일으켜 어린 시절에 탔던 자전거를 꺼내 무작정 길 위에 오른다. 길은 그에게 공포이지만 정신병에 걸려 집 나간 누나를, 누나일지도 모를 그 시체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거다. 그의 묵묵한 페달밟기가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만들지는 않았다. 길 위에서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난 것도 아니요 비만이던 그가 홀쭉 살이 빠져 미남으로 변모하는 일도 없었다. 시체가 누나가 아닌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꺼졌다. 자전거를 타기 전이나 탄 후에나 스미시씨는 43세, 독신남성, 어쩌면 무직(회사가 그를 받아줬을까?), 돌아갈 곳은 친구 같이 편안한 소파가 있고 수다쟁이 티비가 있는 지저분한 빈집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묵묵한 페달밟기가 좋았다. 길 위에서 자유를 느끼고 부푸는 마음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그에게서 내게 없는 용기를 보았기 때문일까. 이번에 만난 책의 주인공 또한 스미시씨랑 똑같이 자전거를 탄다. 홀로 2736km의 거리를 58일간 횡단하는 여정. 스미시씨와의 차이점이라면 작가가 머릿속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몸으로 직접 체험한 일기라는 거다. <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습니다> 다분히 충동적으로 시작된 엘리너 데이비스의 미국 횡단기. 그 속에서 나는 또 어떤 용기를 보게 될까?

엘리너의 계획은 이렇다. 자전거를 타고 애리조나주 투손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조지아주 애선스에 있는 그녀 집까지 달려볼 생각이다. 자전거 여행을 결심한 이유를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2세 계획이 있다고, 아빠가 조립해준 자전거를 택배로 부치기 싫어서 직접 배송 중이라고 말한다. 실상은 힘들어서, 살기 싫어서, 그래도 자전거를 타면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건데. 부모님과 남편의 걱정을 배웅하고서 길 위에 올랐다. 언니 멋져! 피스 사인으로 응원하며 맞으편에서 자전거를 타는 여행자를 만날 땐 괜히 울컥했고 오토바이족을 만나 농담 따먹기도 한다. 사막 한구석에 캠핑하던 날도 있었고 무릎이 아파 엉엉 울던 밤도 있었다. 포기할 생각으로 부모님께 전화한 적도 있지만 고지를 넘어 고비를 지나고 보니 그또한 지나간 일이 되어 즐겁게 노래 부르며 자전거를 달리기도 한다. 국경 순찰대에 쫓겨 가는 사람, 홀로 여행하는 길손이 걱정되어 집으로 초대하는 사람, 무릎에 좋은 운동을 알려주는 스포츠 닥터도 만난다. 일상을 벗어났다고 해서 아무 스트레스도 없이 오로지 즐거운 일만 가득할 거라는 낭만만큼은 와장창 깨트린다. 자전거를 타는 일은 몸에 큰 무리가 가는 노동이고 내가 이걸 왜 시작했을까 때려치고 싶은 순간들이 주기적으로 돌아온다는 걸 알려준다. 포기를 생각하면 창피하고 우울할 내일을 미리 걱정할 때도 있다. 56일째 되던 날 태양이 있고 시원한 공기에 새, 나뭇잎이 풍요로운 길 위에서 으쌰으쌰 힘내다가 돌연 엘리너는 결심한다. 포기하겠다고. 먼 길을 묵묵히 자신을 끌고 온 몸에 더는 할 짓이 아니라고 느낀 그녀는 마지막 960킬로를 포기하고 집에 있는 남편에게 SOS를 친다. 횡단성공의 목표를 달성했다면 기분이 무척 좋았겠지만 포기를 허락하는 일 역시 기분 좋은 일임을 깨닫고서 더는 우울해질지도 모를 내일도 걱정하지 않는다. 어쨌든 오늘의 기분은 그렇다.

책이 독특하다. 저자의 요청으로 옮긴이 주를 제외한 모든 글자가 손글씨로 쓰여 있다. 선이 단순해서 찌질함은 강조되는 연필 드로잉은 또 어떻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채로 남편을 불러 차를 탄 것까지 취향이라면 저자한텐 좀 미안한 일인가? 성공만이 의미있나 뭐.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 용기를 냈다는 것, 즐겁게 포기하고 이를 실패라 생각하지 않는 것, 여전히 자전거를 좋아하는 것, 더욱 즐겁게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 포기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니 한도 끝도 없는걸. 대학생 땐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차 옆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이 무서워져 버렸다. 자전거 도로가 더욱 잘 정비되서 씽씽 쌩쌩 달려보면 좋겠는데. 나도 언젠가는 자전거를 타고 단순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스미시도 느꼈고 엘리너도 느낀 그 마음을 품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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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천문학 -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그림 속 시리즈
김선지 지음, 김현구 도움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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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역사 전공자인 김선지 작가와 한국천문연구원에서 근무 중인 천문학자 김현구 박사 부부의 협업으로 출간된 책이다. 웹진에 올린 "명화 속 별 이야기"라는 짧은 글이 출판사의 눈에 띄어 지금 분량의 책으로 쓰여지게 되었다는데 작가님도 감사감사 출판사도 감사감사. 신화도 좋아하고 명화도 좋아하고 우주는 잘 모르는 나 같은 독자한텐 흥미진진 참말 신선하고 재미난 책이었다. 책은 두 개의 파트로 묶여 있다. 파트 1은 그림 위에 내려앉은 별과 행성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태양계 이야기와 명화들을 설명한다. 주로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을 선보이지만 종종 기원전 작품, 고야 같은 19세기 작가, 니키 드 생팔 같은 현대 작가를 등장시킨다. 파트 2는 그림 속에 숨어있는 천문학 이야기다. 별, 우주, 밤하늘을 그린 화가들 속에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고흐가 등장한다! <별이 빛나는 밤>만으로도 그의 등장 이유는 충분한데 내가 놀라버린 이유?? 나도 모르는 새 고흐의 작품들을 풍경화라기보다는 상상화처럼 느꼈왔던게지. 그의 별도 그믐달도 원체 환상적이니까 말이다. 뒤러, 랭부르 형제, 엘스하이머, 루벤스, 미로 등 처음 보는 작가의 작품들도 여럿 등장해 알딸딸 얼떨떨. 주제가 천문학이니까 여태까지 읽어왔던 명화 관련 책들과는 등장 그림이 많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특히 명화 속 외계인과 비행물체의 진실을 탐구하는 부분이 색달라 블로그랑 인스타에 올릴 생각으로 사진을 엄청 찍었는데 지나친 노출 같아 삭제했다. 책으로 읽어야 진짜 재미지!!

목성은 주피터, 금성은 비너스, 명왕성은 플루토, 토성은 사투르누스, 해왕성은 넵튠, 천왕성은 가이아, 태양은 아폴로 등. 우리 태양계의 별과 행성들은 어쩌다 그리스 로마 신들의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행성과 신들의 공통점을 탐구하고 그리스로마 신화와 신화를 담은 미술작품들을 감상한다. 행성 중 가장 거대해 태양계의 왕자라 불리우는 목성의 4개 위성들은 모든 주피터의 연인들의 이름을 갖고 있다. 하다 못해 NASA가 개발한 1조 1천억원의 무인탐사선의 이름마저 주노, 주피터의 아내 헤라와 동명이다. 구름으로 변신해 바람 피우는 주피터를 재빠르게 감시하고 출동한 주노처럼 목성을 잘 분석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2021년에 목성으로 추락하는 주노와 조우할 주피터의 운명 앞에 낄낄 웃음이 나는 건 왜인지. 회화로는 코레조의 <주피터와 이오>가 실려있는데 구름 속에서 주피터의 얼굴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깜짝 놀라버렸다. 그림을 발로 감상했던지 몇 번이나 봐온 그림인데도 주피터를 못알아봤다. 12주신에 들지 못한 플루토와 마찬가지로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박탈 당하고 만 명왕성. 미국인 천문학자가 발견한 이 행성은 소형 망원경으로는 잘 안보여서 지하 세계의 신인 플루토라 이름을 붙였단다. 미국애들은 성명학 그런 거 잘 모르나? 운명이 이름따라 간다는데 좀 짱짱한 이름을 지을 것이지. 농담이다;; 궁금한게 왜소행성 134340이 명왕성의 또다른 이름이라는데 "또다른"인 거니까 명왕성 이름을 박탈당한 건 아니겠지? 이름까지 잃으면 넘 서운한데 아니면 좋겠다. 갈릴레오보다 먼저 달의 분화구를 관찰해 그림으로 남긴 화가의 이야기도 있다. 세밀화의 천재 엘스하이머. 그가 그린 미술사 최초의 밤 풍경화 <이집트로의 피신> 속에는 분화구로 그늘진 보름달과 1,200개의 별이 담겨있다. 천체현상의 정확한 기록은 아니어서 과학자를 앞선 미술가라 하면 많이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미술가가 과학자를 앞서간 예로써 등장시킬 수 있는 재미난 연구라 기억에 남는다. 페미니스트에게 등을 찢긴 로키비 비너스, 고체 다이아몬드가 둥둥 떠다닐 거라 예상되는 해왕성, 여성이 수학을 잘하는 건 마녀이기 때문이라며 피부가 벗겨지는 잔인한 죽음을 당한 히파티아, 베리 공작의 기도서 등등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다 풀어놓으려니 리뷰가 넘 길어질 느낌이라 이하 생략한다.

명화 속 별도 그림으로 읽는 천문학도 나로써는 난생 처음. 이렇게까지 재미있을 내용인가 싶은데 이렇게까지 재미있더라며 자랑을 해본다.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으로 우주를 첨벙첨벙 명작들을 쏠쏠하게 배웠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읽었으면 참으로 낭만이 넘쳤을텐데 집순이는 그런 거 없구요 ㅋㅋ 화가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별들만으로도 환상적이니까 됐다.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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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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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란 띠지의 문구가 눈에 띕니다.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우리는 글을 쓴다." 15살 반의 나이에 서른을 훌쩍 넘긴 중국인 남자의 초대에 응해 리무진에 올라탄 소녀. 섬세한 감수성의 지적이고 강인한 그 아이는 가난과 어머니라는 폭력에 내몰린 상태였어요. 남자의 독신 아파트에서 벌거벗은 육체로 뒹구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해방구도 찾을 수가 없었죠. 베트남에서 프랑스로 돌아간 소녀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순간에 글을 썼던가 봅니다. 한때 소녀의 어머니가 폄훼해 마지 않았던 무가치하고 직업이라고도 할 수도 없는 글쓰기로 소녀는 작가가 되었고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고도 남을 돈을 벌었으며 문학이 이어준 사랑과 죽는 날까지 함께하며 삶을 개척합니다. 1930년대 무더운 계절 위를 흘러가던 메콩 강의 바람 또한 독자들에게 남겨주었지요. 뒤라스 뿐만이 아닙니다. 도리스 레싱, 버지니아 울프,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프리다 칼로, 앤 카슨, 실비아 플라스, 제이디 스미스, 에밀리 디킨슨,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크리스타 볼프, 마거릿 애트우드, 글로리아 스타이넘, 수전 손택, 에밀리 브론테, 토니 모리슨, 나딘 고디머, 가네코 후미코, 박경리, 헤르타 뮐러, 이사벨 아옌데, 이자크 디네센, 제인 구달, 이윤 리, 제인 제이콥스. 낯익은 이름, 이미 읽어본 작품도 있었지만요. 솔직히 모르는 이름, 표지 한번 들춰본 적 없는 작품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쓰고 싸우고 살아남는 이야기에는 하나 빠짐없이 가슴이 뛰었어요. 글쓰기에 온전히 몰입한 작가들의 인생 이야기가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거든요.

 

도리스 레싱은 얘기합니다. "80세가 훌쩍 넘어 생각해봐도 평생 제일 좋았던 날은 책이 도착하는 날들"(p26)이었다구요. 1919년에 태어난 작가님도 우리처럼 책택배를 받으며 기뻐하셨던 걸까요? 책을 제일 많이, 모든 걸 다 읽는 사람들이 다름아닌 공산주의자들이라 공산당 작가 모임에까지 들어간 작가님의 이야기에는 큭큭 웃음이 터졌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글쎄, 천국을 피곤하지 않은 상태로 영원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해요. 누군가의 칭찬 다른 어떤 이의 인정도 필요없이 앞으로 나아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글쓰기에 대한 찬양에 완독에 실패한 자기만의 방을 다시금 시도하고픈 욕망이 일었습니다. 실비아 플라스의 죽음에 대해 세간에서는 남자에게 버림받고 자살한냥 떠들어댔다지요? 그러나 작가의 삶의 기록을 더 샅샅이 들여다보면 글을 쓰지 않고 사는 삶이 더는 불가능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이것은 어디까지나 글쓴이의 추측일 뿐이라지만, 독자인 저도 이 의견에 지지를 보내고 싶었어요. 40여년의 시간을 집 밖을 나가지 않은 채로 글을 쓴 에밀리 디킨슨, "군함없이도 책 한 권이면 돼 / 우리를 대륙으로 데려다주지"(p97) 답답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조금도 들지 않았습니다. 부럽다는 생각뿐! 세 권? 네 권? 표지가 예뻐서 소장만 하고 여태 읽지 않고 있는 특별판의 주인공 마거릿 애트우드 작가 또한 반갑습니다. "역사상 인간이 어딘가에서 한 일"(p127)만을 쓴다는 애트우드의 책을 이제는 읽어야 할 때인가 봅니다. "문학은 자유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권"(p148)이라고 말한 수잔 손택과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한 브론테 자매들, "실전을 경험하고 전쟁 이야기만 늘 쓰는 남성 작가에게는 왜 사소설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는가"(p192) 일침하는 박경리 작가님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니 그냥 솔직히 말해 시작하는 쪽부터 끝나는 쪽까지 버릴 문장, 그저 그런 작가, 인상 깊지 않은 작가님의 삶이란 없었다고 봐도 좋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운명과 싸우며 자신 안의 한계를 극복하고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 작가 25인의 이야기를 꼬옥 만나보시라고 강추합니다. 6월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좋았을 뿐만 아니라 2020년에 읽은 책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마음에 남는 책이었어요. 재미있고 웃기고 섹시하고 감동적이고 설레고 아주 혼자 다하는 책!! 소설도 아닌데 이만큼 몰입해서 읽고 적극적으로 강추한 책도 없지 싶어요. 꼭꼭꼭 읽어보십셔. 꼭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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