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버스터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처음으로 읽은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의 책이다. 스릴러가 아니라 SF로 접하게 되었지만 어찌됐든 미미 여사님 반갑습니다~^^/ 몽실북클럽 안에서도 팬분들이 많고 화차라는 영화의 원작자로도 유명하신 터라 책 소개글 보다 작가님 이름으로 더 읽고 싶은 책이었다. 표지가 미미 여사님스럽지 않다는 평도 있지만 나야 작가님에 대한 뚜렷한 이미지가 없다 보니 기분 좋게 패스. 단지 표지 인물의 이미지가 대단히 판타지스럽다보니 책 내용을 두고는 조금 착각한 부분이 있었다. 주인공 셴의 복장이 책에서 묘사키로는 서부 카우보이 같은 복식이다 라고 되어 있는데 반해서 내가 표지를 보고 받은 인상은 그냥 딱 강철의 연금술사였어서^^;; 과학과 마법이 혼재하는 근세 유럽 비스무리한 세계속 인물의 느낌을 물씬 받았기 때문에 대체 근세풍(?) SF는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되려나 하고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근세는 커녕 첫 이야기부터 등장하는 현대 일본의 불타오르는 주택가 모습에 깜짝 놀라는 나만의 반전을 맛보게 됐다고나 할까. 거기다 마법도 전혀 없었고 말이다. 물론 가볍고 산뜻하고 놀라운 반전의 첫만남으로 표지의 셴 이미지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소년이고 말이지^^;; 이건 어디까지나 내 독서 버릇에 기인한 반전이라. 가만 보면 소개글을 안읽는 것도 아니면서 표지나 제목으로 지나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보니 나 혼자만의 이런 헤프닝이 종종 발생하곤 하는 것 같다.


미미 여사님의 이번 책 <드림 버스터>는 지구 인간의 꿈으로 흘러 들어간 흉악범들을 잡으러 시공간의 축을 넘나드는 테ㅡ라의 현상금 사냥꾼인 셴과 마에스트로의 좌충우돌 사건일지랄지. 유쾌하고도 발랄한, 그리고 인간미 넘치는 SF 판타지물이다. 시공은 달라도 괴로운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자체는 동일한 탓인지 테ㅡ라 별 과학자들은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민간인들을 돕겠다는 사이언티스트 정신으로 기억 선별 삭제 기능을 가진 '빅 올드 원'이라는 기계를 탄생시킨다. 문제는 이 '빅 올드 원'이 알 수 없는 폭주 끝에 터져버리며 핵폭탄에 맞먹는 파괴와 후유증을 테ㅡ라에 가져왔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복병으로 우리 지구와 테ㅡ라 사이의 시공간을 초월한 접촉면까지 발생시키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접촉면으로 인해 뜻밖의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드림 버스터! 차원에 뚫린 구멍을 통해 우리 꿈속으로 로그인 하며 구멍의 비밀을 찾아 내는 안내인이자, 범죄자를 잡는 정부 인증 마크를 지닌 민간 용병인 동시에 현상금 사냥꾼들 되시겠다.  

'빅 올드 원'의 기억 선별 삭제 기능을 가능하게 했던 기술이라는 것이 원래도 이런 형태를 목표로 했던 것인지 아니면 폭주 후유증인지는 내가 채 이해를 못해 가늠할 수 없지만 비유하자면 이런 식이다. 거북이 특공대의 뇌 괴물 "크랭"처럼 몸체 없이 찌끄래기 같은 지능 내지 의식만 남겨 생명을 유지, 연장하는 것. 그리고 그 의식 자체는 노화하는 육체가 없으므로 불로불사. 영생불멸 상태로 세세손손 생존하게 된다. 공자나 맹자, 부처님께서 영생불사 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누군가의 불로불사는 한 사회에 거대한 공포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테ㅡ라는 '프로젝트 나이트메어'라는 실험으로 그런 크랭을 한 두명도 아니고 자그마치 쉰 명도 넘게 탄생시킨다.  

 

닌자 거북이 속 크랭이 분홍색 뇌로 물 같은 용액 속에서 뽀글뽀글 거품을 내며 말하고 명령하며 악행을 일삼았다면  드림 버스터 속 크랭들은 어떤 빛 덩어리 같은 의식의 뭉치로 변화해 지구와 테ㅡ라 사이의 시공 접촉면을 통해 일본으로 날아들어 범죄를 획책한다. 미국으로 날아가는 크랭도 있지만 어찌됐든 셴과 마에스트로가 '잭 인' 할 수 있는 공간은 일본뿐이라 책 속 배경도 오로지 일본만. 한국으로는 안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식에서도 안전하더니 (십이국기의 태풍) 빅 올드 원에서도 안전한 이 곳 대한민국;; 어쨌든 크랭이 간이 워커와 안드로이드 로봇에 탑승해 움직였던 것처럼 테ㅡ라의 크랭들도 자신이 올라타 조종할 수 있는 육체를 찾아 움직인다. 그럼 여기서 테ㅡ라의 크랭들은 누구냐. 바로 '빅 올드 원'의 폭발로 실험의 마루타로 참여했다 의식만 남겨지게 된 흉악범들! 살인범도 있고, 강간범도 있고, 아동학대범도 있는 이 각양각색의 사형수 집단이 여기 드림 버스터의 크랭들이다. 언제 테ㅡ라로 돌아와 사회의 위협이 될지 알 수 없는 이 크랭들은 지구 인간들을 안드로이드 삼기 위해 끊임없이 지구인의 정신을 파고 들어 몸체를 뺐으려 하는데, 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서라기보다는 현상금을 쫓아, 그리고 마루타의 일인이었던 흉악범 어머니를 찾아 드림 버스터가 된 셴과 고아 셴을 키워낸 대머리의 근육덩어리, 그러나 어딘지 어른미가 엿보이는 마에스트로의 세 가지 이야기가 환상적이기보다는 좀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두 가지 지구 이야기 다음으로 반전있는 세 번째 테ㅡ라 이야기를 통해 2권에서 좀 더 짱짱한 세계관과 규모있고 거대한 이야기가 나올 낌새가 보이기는 하는데 어찌됐든 1권 자체는 남편의 바람을 걱정하는 바람에 흉악범에게 로그인 당한 아이 엄마와 자신이 입양아임을 알고 고뇌에 빠지며 연쇄 아동 살인범에게 로그인 당하는 남성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만큼 오밀조밀한 SF (성장) 소설 느낌이었다. 이야기 하나가 그 자체로 완결성 있는 단편 느낌이라 읽기도 편하고, 서스펜스가 좀 떨어지긴 하지만 지나치게 우주적이거나 과학 용어가 난무하지는 않다 보니 어렵지 않은 것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SF라지만 어딘지 빙의물 같은 설정에 꿈속이 배경이라는 점에서 퇴마록  국내편 <어머니의 자장가>가 떠오르기도 했고, 셴과 마에스트로가 등장할 때마다 타고 나타나는 비행선 바렌 쉽 때문인지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가 생각나기도 했다. 유우우우웅, 우유유유융 뭐 이런 식의 소리를 내며 바렌 쉽이 등장하면 뭔가가 떠오를 듯 말듯하며 좀 안달이 났었는데 어느 순간 머리속에서 원더키디의 만화 주제가가 주절주절 흘러가고 있더라. "달려라 아이캔~ 달려라 예나~ 원더원더 원더키디~~" 완전히 잊고 있던 또 하나의 애니메이션! 원더키디! 소싯적 원더키디 풍선껌도 씹었고, 일요일이면 전국노래자랑 전이였나 후였나 하여튼 하니와 영심이와 둘리랑 같이 번갈아가며 KBS1에서 틀어주던 만화였는데 내 인생에도 재미있게 본 걸출한 SF가 있었구나, SF는 잘 몰라요 하고 속단할 게 아니었어 하며 혼자 재미났다. 그러고보니 악당에게 끌려간 아이캔의 아빠 찾기는 어떻게 됐었을까. 도통 결말이 기억나지 않는다. 반면 드림 버스터 셴의 엄마 찾기 결말은 내년쯤 후속권이 나오게 되면 알 게 되지 않을까 싶어 기대 기대. 총 4권으로 신간이 아니라 출판사를 바꾼 재발간이라니 후속권도 빠르게 나올 것 같으므로 완결이 나면 마저 읽고 리뷰를 남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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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서의 꿈 십이국기 7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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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쇼의 새> 때와 같은 단편모음집이다. 겁이 안날 수가 없었다. 내일이 월요일이고 일찍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냥 후딱 읽어버리고 혹시라도 <히쇼의 새> 와 같은 실망을 느끼게 된다면 더는 십이국기를 모으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익숙하고도 궁금한 인물들, 라쿠슌과 요코, 다이키와 교소 등이 나와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서 가끔 김연아 선수의 뉴스를 접할 때와 비슷한 반가움으로 읽을 수 있었다^^;; 재주국의 보물 화서화타와 왕 시쇼, 그의 가신들을 다룬 단편 화서도 나쁘지 않았고 말이다. 무엇보다 6백년의 치세를 이룬 주국 종왕 일가의 화목함에 막판까지 흐뭇함을 느껴 여기서 점수 쬐끔 추가. 딱 잘라 재미있었다곤 말하기 힘들지만 그냥 무난무난하게 읽히는 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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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남의 날개 십이국기 6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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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오자마자 곧장 꺼내읽은 십이국기 6부 <도남의 날개>이다.
4부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에서 잠시 등장한 바 있는 공국 여왕 슈쇼가 이번 편의 주인공이었다.
당시 슈소는 공국의 패물과 요수를 훔쳐 달아난 방국 공주 쇼케이를 동정하는 기린의 뺨을 야무지게 때려주었다.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기린의 인성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기준도 절제도 없이 좀 헤픈 부분이 있게 마련인데 여타의 왕들이 어쩔 수 없지 하며 체념하고 기린을 배제한 채 혼자 일을 진행해 나갔다면 슈소는 그 점을 야물딱지게 지적한다. 그런  성격의 면면이 이번 <도남의 날개>에서 속 시원하고 청량하게 기술되어 <히쇼의 새> 때 실망한 내 마음을 씻은 듯이 달래주었다. 완전 감격. 남은 권수를 생각해도 이번 편의 재미는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중간 한 권 때문에 시리즈 전체에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것도 흔치 않은 경험이라 그냥 속편하게 십이국기를 처분할까 하는 고민도 얼마나 했었는지 어후ㅠㅠ  그런 감정이 싹 희석될 정도로 <도남의 날개>는 십이국기 안에서도 가장 유쾌하고 신선한 명랑 판타지였다. 물론 다른 편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슈쇼의 경우에도 여러 실수는 있었고 12살 어린 나이로 인한 성격적 결함도 엿보였지만 부잣집 아가씨로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을 봉산에 승산하는 그 용기가 대단하고도 깜찍했다. 강씨 (승산자를 호위하는 자) 간큐와의 다툼이나 해고;;도 나는 썩 철없다거나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고작해야 12살이니까. 반은 농담이었다 하더라도  스스로 왕의 재목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 어린 아이가 세상과 사람에 대한 그 어떤 이상이나 믿음도 없이 바로 현실과 타협한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했을 것 같아서 오히려 더 좋았던 것도 같다. 자존감도 높고 똑똑하고 그래서 실수에의 인정도 빠르고 거침없는 성격이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러면 어째서 내가 태어났을 때 오지 않았어, 이 멍청아" 하며 기린을 또 후드려패지만 그것까지도 귀엽게 느껴지는 공국 여왕 슈쇼와의 즐거운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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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어 데스 스토리콜렉터 50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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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백조라는 동화가 있다. 여타의 세계명작동화전집에서는 백조왕자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내가 가진 계몽사 세계의 동화에서는 야생의 백조로 번안이 되어 그 옛날의 동화책을 찾는 분들로 하여금 계몽사판 백조왕자가 분명 있었는데 왜 없지 하며 잦은 혼란을 주는 책 중의 한 권이다. 안데르슨의 동화로 이야기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멀고 먼 남쪽나라의 임금님에게는 엘리자라는 공주와 11명의 왕자들이 있었는데 사악한 마녀의 저주로 공주는 왕궁에서 쫓겨나고 왕자들은 밤이면 백조로 변하여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밖에는 살 수가 없다. 엘리자 공주는 백조왕자들과 함께 바다를 건넜다가 한 요정의 도움으로 왕자들에게 쐐기풀 옷을 지어 입히면 저주를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신에 옷을 다 지을 동안에는 누구를 만나든 어떤 일을 겪든 절대로 입을 열어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말을 하게 되면 그 말이 칼이 되어 11명의 왕자들의 가슴에 가 박히고 왕자들은 죽게 된다. 공주는 밤낮으로 쐐기풀을 뜯어다 발로 밟아 실을 잣고  맨손이 넝마가 되도록 가시에 찔려가며 옷을 만든다. 그 모습을 본 지나가던 임금님의 구애로 공주는 왕비가 되고 임금님을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는 그에게 아무 말도 전할 수가 없다. 대신에 더 열심히 백조 왕자들의 옷을 짓고 쐐기풀을 구하기 위해 무덤가로 몰래 들어가는 기행까지 벌이게 된다. 공주로서는 두려움을 무릅쓴 용기였으나 그녀를 미행한 임금님과 대신은 공주를 마녀로 오해하게 되고 그녀는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사형 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라이프 오어 데스는 동화가 아니다. 오디 파머라는 이 이름부터가 점진적 인내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한 남성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싶은 이야기이다. 제목 그대로 죽음과 삶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생의 고통과 고뇌로 주인공을 진탕시키는 이 범죄 스릴러물을 앞에 두고 왜 계속 엉뚱한 동화 얘기냐고 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 소설이 시작하는 그 첫 장, 두 번째 페이지에서부터 관통하여 이야기의 끝까지 치달아 오르는 엘리자 공주의 이미지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찔레덤불을 헤치는 장면(p8) 때문일 수도 있고, 수영을 하지도 못하면서 호수를 건너는 그 용기 때문일 수도 있고, 공교롭게도 오디의 삶이 구제되기까지의 기간이 "11"년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요다와 부처와 검투사를 한데 합쳐 버무려 놓은 존재(p44) 같은 오디의 정체성이 내가 미루어 생각했던 엘리자 공주의 성격과 일치했기 때문인지도. 어째됐든 그러한 사정으로 나는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틀림없이 그에게 저주를 건 누군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틀림없이 그가 구해야만 하는 백조 왕자도 있을 거라고 믿었다. 엘리자와 왕자들이 아무 잘못도 없이 마녀의 저주에 걸렸던 것처럼 오디의 인생에도 저주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사건이 찾아왔고, 엘리자가 무덤가의 쐐기풀을 뜯었다는 이유로 마녀로 오해받아 사형을 언도받은 것처럼 오디 또한 은행 강도 털이범으로 사람을 죽인 살인범으로 감옥으로 가야했다. 산산조각나 간신히 이어 붙인 머리를 안고서 그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오디는 검사단이 들이대는 모든 죄를 떠안아야만 했다. 7백만 달러라는 어마무시한 돈을 숨겼다는 오해까지 등에 써붙이고서 말이다. 마녀의 저주를 풀기 위해 가시 가득한 쐐기풀을 뜯고 밟고 자아 11벌의 옷을 지어야 했던 엘리자처럼 오디 또한 11년을 죽음과도 같은 고통 속에서 인내하며 살아야 했다. 감옥 안에 있는 절반의 인구가 돈 때문에, 누군가의 사주로 10년에 걸쳐 그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탈옥 후 1년, 도망과 추격 그 그림자 속에서 또다시 웅크린 잠을 자야했다. 다시금 생을 걸어야 했다. 그럼에도 엘리자처럼 오디 또한 마지막 그 순간까지, 마법이 풀려야만 하는 그 지점의 그 사람의 앞에 서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에 인내하며 평온을 유지했고 이타적으로 타인을 도왔다. 사형을 언도 받고도 사랑하는 남자에게 한 마디 말조차 하지 못한 채로 남은 쐐기풀로 왕자들의 옷을 자아내는 것에 몰두했던 공주님과도 같이 오로지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켜야 할 약속 하나만을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엘리자의 인생에 요정이 있었던 것처럼 오디의 인생에도 요정 같은 많은 인연들이 등장한다. 감방 동료 모스와 틴에이저 같은 체구의 특수요원 데지레. 살인범의 멍에를 짊어진 아들을, 동생을 여전히 사랑하는 어머니와 누나. 그 밖에도 소소한, 그러나 가슴 아픈 사연의 인물들이 등장했고, 이 인연들의 가장 최초라 할 수 있는 자리에 뜨겁게 사랑한 여인도 존재했다. 오디라는 남자 그 자체의 매력도 컸지만 자칫 지나치게 침착하고 선하고 외곬이라 무겁게만 느껴질 수 있는 오디를 주변 인물들이 얽히고 섥혀 만들어 내는 앙상블로 조금 중화시켜 주지 않았나 싶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남자의 쉽게 토해지지 않는 비밀들에 숨통을 틔워줬달까. "라이프 오어 데스"도 여느 범죄 스릴러물과 마찬가지로 결말로 갈 수록 점점 더 재미나고 점점 더 흥미롭고 점점 더 긴장감이 높아져 갔는데 백조 왕자와의 가장 뚜렷한 차이점이라면 동화를 읽으면서는 울지 않았던 내가 라이프 오어 데스의 결말 앞에서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라이프 오어 데스를 보며 나는 총 세 번을 울었는데 세 번 다 에필로그를 보면서 울었다. 에필로그 한 번 볼 때 울고 곧장 앞페이지로 쭉 돌아가서 다시 한 번 더 보면서 울고 리뷰 쓴다고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가 또 한 번 읽으며 울었다. 뜨거운 사랑과 가족애와 우정과 의리가 빛나는 이야기 앞에서는 도무지 울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멋진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백조 왕자, 계몽사판 야생의 백조 결말은 다음과 같다.  

엘리자는 사형 집행일 수레를 타고 도끼를 둔 사형수 앞으로 끌려 가면서도  쐐기풀로 옷을 짓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포기할 수가 없다. 그 순간 일년 만에 그녀의 형제들, 백조로 변한 11명의 왕자들이 그녀의 수레로 날아온다. 엘리자는 백조들을 향해 11벌의 쐐기풀 옷을 날려보내고 백조들은 그 옷을 머리에 씌우며 사람으로 변신한다. 그제서야 엘리자는 임금님에게 그간의 진실을 말하여 오해를 풀고 11명의 백조왕자와 임금님과 함께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아간다. 아참참, 쐐기풀 옷 중의 한 벌은 팔이 채 완성돼지 않았던 탓에 백조 왕자 중의 한 명은 여전히 날개를 달고 있다. 오디의 시작부터 백조왕자를 떠올렸던 나로서는 동화의 결말과 라이프 오어 데스라는 이 걸출한 스릴러물의 결말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여하튼 두 이야기의 결말이 다 나에게는 긴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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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사람, 그래도 사람 - 숨기고 싶지만 공감받고 싶은 상처투성이 마음 일기
설레다 글.그림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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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리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리뷰의 정의가 "중요한 내용이나 줄거리를 대강 풀어낸 것" 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런 감성 그림책의 줄거리를 요약할 방도를 모르겠어서 좀 혼란스럽다. 감상문이라고 한다면 굳이 줄거리가 없더라도 그저 책을 읽고 든 생각이나 느낌을 자유롭게 풀어 놓는 것이니 그것으로 충분하려나 싶기는 한데.... 어쩔까나... 불안한 마음으로 괜히 변명하듯 덧붙여 본다. 누군가 다 보는 곳에 짧은 리뷰라도 써올리는 것에 대한 부담인 것 같다.



공시생으로 몇년을 기약없는 니트족으로 보내던 때 나는 가급적 아무 생각도 없이 살고 싶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되도록이면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울화가 화르륵 치솟을 때도 있었지만 그 때만 참으면 되었다. 뭘 어쩔 도리도 없었다. 왜냐면 지금 내 인생과 우리 가정이 겪는 고통의 가장 큰 가해자는 나 자신이고 가족들은 모두 피해자일 뿐이었으니 조금 말로써 타박한댄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내 실패에 대한 동정과 위로를 구하는 것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얼토당토 않았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지만 그냥 내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인 일들의 가해자가 된 느낌. 그냥 살아있으니까 숨 쉬고, 먹고, 자고, 싸고는 하는데 도통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존재에 대한 자신감은 매일 한뼘씩 작아지는데 누군가에게 위로를 구하는 것조차 사치인 것 같은 죄의식과 불안감이 동시에 발발하는 때의 상처란 아마도 거개 비슷비슷한 부분이 있으리라. 내게는 큰일같이 느껴졌지만 요즘 시대엔 고난이라 언급하기도 부끄러운 그 시절, 동생에게 얹혀 독립을 하고 직장을 가지고 돈을 벌고 내 삶이 평범하다 말해지는 궤도를 찾았을 때 동생이 그랬다. "누나 그때 우울증이었어" 나는 한번도 내가 우울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냥 성격 더럽고 무능력한 기집애 지 화를 못이겨 무기력해지는 지랄병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은 그런다. 내가 우울증이었고, 그러다 누나 진짜 잘못될 것 같았다고. 그랬냐며 별스럽게 웃고 말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그 시절의 나와, 내가 느꼈던 감정들과, 동생의 말을 떠올리게 됐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똑부러지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 나처럼 자기가 겪는 감정이 우울인지도 모르고 넘어가는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 감정적으로 무딘 사람은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싶으면서도 동시에 난 무뎌서 다 잊었어, 별 것도 아니었어 하던 그 마음들이 어쩐 일인지 이 책을 읽으며 자꾸만 자꾸만 위로 떠올랐다. 내 상처가 설토가 짚어주는 아픈 마음들과 함께 복기되는 느낌이 들었다. 귀 한쪽이 짧은 짝짝이 토끼 설토가 내 마음의 바둑돌들을 움직여 가시 푹푹 박혀 구멍 나있던 자리를 드러내주었다. '여기 나도 있어!', '나도 아파 여기여기!' 하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 상처가 자신의 존재를 알려오는 느낌. 상처 자리가 살아나는 느낌. 근데 그게 싫지 않은 기분. 자기가 안고 있는 우울이 뭔지도 몰랐던 사람이 그 우울에 이름을 붙이고 더듬더듬 어루만지는...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자기 위안? 자가 위로? 뭐라고 이름 붙이던 나쁘지 않은 무엇이었다. 폭폭한 작은 흉들과 큰 흉들이 책을 읽으며, 설토의 말과 작가님이 전달하는 마음으로 좀 메워지는 것 같았다. 작은 흉들은 꽉 차게, 큰 흉들은 좀 부족하지만 그래도 빈 것보다는 낫게. 그림으로 심리치료한다는 말 같은 거, 실제 효과가 어떻게 검증됐단들 내가 겪어 보지 않아 믿지 않았는데 정말로 뭔가 심적으로 나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신기했다. 책을 읽는 시작부터 설토가 내보이는 장면들에 나를 대입해 생각해 그런 효과가 나온걸까. 의자에 앉아 광합성 하는 설토를 보면서는 햇볕 아래 서 있는 나를 상상했다. 젖은 빨래 같던 내 마음들이 바삭바삭 산뜻하게 마르는 것만 같아 이불 속에서도 기분 좋았다. 설토가 딱 보기에도 무겁고 쨍한 캔디의 양갈래 머리채를 걷어 내리고 (가발이다^^;;) 민머리로 울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땐 짠한 한편으로 빵 터졌다. 내 닉네임이 캔디캔디여서 반가운 마음에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냥 그 벗겨진 머리가 참지 않고 흐르는 눈물만큼이나 시원하고 통쾌했다. 흐부지게 피어있는 꽃들 아래 엎드려 사랑하는 사람과 앉아 있는 설토를 보며 내 봄날도 그려 봤다. 그것이 설토의 꽃 같은 꿈을 빌어온 것일지라도 내 마음에 여운과 향기로운 색감을 남겼다. 아... 이래서 그림을 보는 가봐. 손바닥 만하게 작은 글에 한 페이지 가득, 어떤 장은 두 페이지 꽉 차게. 이런 삽화들을 페이지 낭비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내가 뭘 몰랐던 거구나. 이 그림들이, 이 일러스트가 긴 호흡의 감동적인 이야기들 못지 않구나. 이 여운으로 감성 일러스트라고 이름을 붙이고 감상을 하는 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주말 아침 느긋이 일어나 하품 하듯 한 장, 또 한 장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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