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리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리뷰의 정의가 "중요한 내용이나 줄거리를 대강 풀어낸 것" 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런 감성 그림책의 줄거리를 요약할 방도를 모르겠어서 좀 혼란스럽다. 감상문이라고 한다면 굳이 줄거리가 없더라도 그저 책을 읽고 든 생각이나 느낌을 자유롭게 풀어 놓는 것이니 그것으로 충분하려나 싶기는 한데.... 어쩔까나... 불안한 마음으로 괜히 변명하듯 덧붙여 본다. 누군가 다 보는 곳에 짧은 리뷰라도 써올리는 것에 대한 부담인 것 같다. 공시생으로 몇년을 기약없는 니트족으로 보내던 때 나는 가급적 아무 생각도 없이 살고 싶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되도록이면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울화가 화르륵 치솟을 때도 있었지만 그 때만 참으면 되었다. 뭘 어쩔 도리도 없었다. 왜냐면 지금 내 인생과 우리 가정이 겪는 고통의 가장 큰 가해자는 나 자신이고 가족들은 모두 피해자일 뿐이었으니 조금 말로써 타박한댄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내 실패에 대한 동정과 위로를 구하는 것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얼토당토 않았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지만 그냥 내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인 일들의 가해자가 된 느낌. 그냥 살아있으니까 숨 쉬고, 먹고, 자고, 싸고는 하는데 도통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존재에 대한 자신감은 매일 한뼘씩 작아지는데 누군가에게 위로를 구하는 것조차 사치인 것 같은 죄의식과 불안감이 동시에 발발하는 때의 상처란 아마도 거개 비슷비슷한 부분이 있으리라. 내게는 큰일같이 느껴졌지만 요즘 시대엔 고난이라 언급하기도 부끄러운 그 시절, 동생에게 얹혀 독립을 하고 직장을 가지고 돈을 벌고 내 삶이 평범하다 말해지는 궤도를 찾았을 때 동생이 그랬다. "누나 그때 우울증이었어" 나는 한번도 내가 우울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냥 성격 더럽고 무능력한 기집애 지 화를 못이겨 무기력해지는 지랄병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은 그런다. 내가 우울증이었고, 그러다 누나 진짜 잘못될 것 같았다고. 그랬냐며 별스럽게 웃고 말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그 시절의 나와, 내가 느꼈던 감정들과, 동생의 말을 떠올리게 됐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똑부러지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 나처럼 자기가 겪는 감정이 우울인지도 모르고 넘어가는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 감정적으로 무딘 사람은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싶으면서도 동시에 난 무뎌서 다 잊었어, 별 것도 아니었어 하던 그 마음들이 어쩐 일인지 이 책을 읽으며 자꾸만 자꾸만 위로 떠올랐다. 내 상처가 설토가 짚어주는 아픈 마음들과 함께 복기되는 느낌이 들었다. 귀 한쪽이 짧은 짝짝이 토끼 설토가 내 마음의 바둑돌들을 움직여 가시 푹푹 박혀 구멍 나있던 자리를 드러내주었다. '여기 나도 있어!', '나도 아파 여기여기!' 하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 상처가 자신의 존재를 알려오는 느낌. 상처 자리가 살아나는 느낌. 근데 그게 싫지 않은 기분. 자기가 안고 있는 우울이 뭔지도 몰랐던 사람이 그 우울에 이름을 붙이고 더듬더듬 어루만지는...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자기 위안? 자가 위로? 뭐라고 이름 붙이던 나쁘지 않은 무엇이었다. 폭폭한 작은 흉들과 큰 흉들이 책을 읽으며, 설토의 말과 작가님이 전달하는 마음으로 좀 메워지는 것 같았다. 작은 흉들은 꽉 차게, 큰 흉들은 좀 부족하지만 그래도 빈 것보다는 낫게. 그림으로 심리치료한다는 말 같은 거, 실제 효과가 어떻게 검증됐단들 내가 겪어 보지 않아 믿지 않았는데 정말로 뭔가 심적으로 나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신기했다. 책을 읽는 시작부터 설토가 내보이는 장면들에 나를 대입해 생각해 그런 효과가 나온걸까. 의자에 앉아 광합성 하는 설토를 보면서는 햇볕 아래 서 있는 나를 상상했다. 젖은 빨래 같던 내 마음들이 바삭바삭 산뜻하게 마르는 것만 같아 이불 속에서도 기분 좋았다. 설토가 딱 보기에도 무겁고 쨍한 캔디의 양갈래 머리채를 걷어 내리고 (가발이다^^;;) 민머리로 울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땐 짠한 한편으로 빵 터졌다. 내 닉네임이 캔디캔디여서 반가운 마음에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냥 그 벗겨진 머리가 참지 않고 흐르는 눈물만큼이나 시원하고 통쾌했다. 흐부지게 피어있는 꽃들 아래 엎드려 사랑하는 사람과 앉아 있는 설토를 보며 내 봄날도 그려 봤다. 그것이 설토의 꽃 같은 꿈을 빌어온 것일지라도 내 마음에 여운과 향기로운 색감을 남겼다. 아... 이래서 그림을 보는 가봐. 손바닥 만하게 작은 글에 한 페이지 가득, 어떤 장은 두 페이지 꽉 차게. 이런 삽화들을 페이지 낭비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내가 뭘 몰랐던 거구나. 이 그림들이, 이 일러스트가 긴 호흡의 감동적인 이야기들 못지 않구나. 이 여운으로 감성 일러스트라고 이름을 붙이고 감상을 하는 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주말 아침 느긋이 일어나 하품 하듯 한 장, 또 한 장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