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은 이제 개를 키우지 않는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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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같은 미혼 여성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작가님이시죠. 마스다 미리의 신간 <사와무라 씨 댁은 이제 개를 키우지 않는다> 가 출간되었습니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내누나속편, 차의 시간. 어쩌다 보니 이렇게 두서 없이 그녀의 책을 만났지만요. 매 권 한살 한살 들어가는 나이와 미혼의 불안과 그럼에도 지금이 좋다라는 공감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 저는 이제 마스다 미리를 꽤 좋아하는 팬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가족들과의 아기자기한 일상 또한 너무 좋구요. 물론 이 모든 게 만들어진 가공의 이야기라는 걸 알지만 저는 수짱도 마이코도 사와코도 그리고 여기 이 책 사와무라 씨 댁의 70세 아버지 시로와 69세 어머니 노리에, 40세의 히토미의 일상이 너무나 저희와 같아 꼭 저기 일본 그리고 한국에 실제로 있는 사람들인 것만 같단 말이죠. 특히 마흔의 미혼, 부모님과 함께 살다 독립을 놓쳐버린 이 아가씨의 고민과 생각들 중 저와 일치하는 게 너무너무 많아 국경은 달라도 우리들의 걱정은 정말 똑.같.구.나 라는 동질감으로 뭔가 흐뭇했습니다.

눈 깜빡할 새 나이를 먹은 부부가 함께 먹고, 자고, 취미를 공유하는 즐거움. 평생을 함께 해왔지만 종종 발견하게 되는 낯설음을 제 인생에서 느끼게 될 일은 아마 없을 것 같지만요. 마흔이 되도 애기 같은 딸에 대한 사랑, 은퇴 후의 삶의 여로를 생각하며 준비하는 자서전, 미혼의 자녀를 어쩌면 홀로 남겨두고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럼에도 하나하나 준비해가는 사후 준비는 눈물까진 나지 않았지만 어쩐지 마음이 쓰리고 속상해 문득 엄마에게 전화하고픈 마음이 생기게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 엄마는 놀러가서 전화를 안받으시더라구요. 놀러 간 거 깜빡함. 회의 중이니 나중에 전화하겠습니다 라는 문자 한통만 딸랑 보내셨어요. 저 수신차단 당한 거 맞죠? (;;;;) 미혼의 친구들끼리 모여 몇 살까지 결혼 안하면 우리 같이 동거하자고 하는 약속이나 그러나 속으로 얘랑은 힘든데 하는 장면!! 전 작가님이 저희 대화 엿들은 줄 알았습니다. (키득키득) 엄마 노리에의 히토미에 대한 영 엉뚱한 걱정도 저희 모녀 같더라구요. 외향적인 엄마는 내향적인 딸의 성향을 잘 이해를 못하니까 혼자 놀아 버릇하는 저를 엄청 걱정하시거든요. 아마 저 유치원생 때부터 내내 걱정해 오셨을 거에요. 그때부터 친구 만들어 주려고 엄청 애를 썼는데 친구들 초대해도 제가 막 혼자 놀더라는 얘기를 그렇게 막 하십니다. (미쵸미쵸) 제가 괜찮다고 해도 절대 믿지 않으시고 나이 들어 외로워진다 돌림노래 하시다 친구들 몇 명 결혼하고 나니 친구들이 남편 없다고 무시하진 않냐 은근히 떠보시기도 하고, 애들이 저랑 안놀아줄까봐 (엄마 제발!! ) 무슨 초등 학부모님처럼 걱정하셔서 요즘도 가끔 기함을 합니다. 자식이 결혼을 안하니 엄마도 그쪽으로는 철이 덜 드는건지도 모르겠다고 부모자식동반성숙론을 제시하고 싶을 정도로 이상한 걱정을 하시는 것만 빼면 모녀 사이 아무 문제가 없을텐데 말이죠. 요즘은 이것도 사랑이라고 그냥 웃고 넘깁니다. 재미고 귀엾죠 뭐. 상조 가입한다고 하실 때엔, 무슨 영문인지 너무너무 화가 나서 막 다투기도 했지만요.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ㅠㅠ) 부디부디 오래 사셨으면. 더 늙지도 마시고 아프지도 마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하고픈 그 마음이 히토미와 제가 꼭 같습니다. 아마 모든 자식들 마음이 저희와 같겠지만요. 사와무라 씨 댁이 치비를 떠내보내고 이제 더는 개를 키우지 않는 이유는 "언제까지 돌봐줄 수 있을지 모르니까"라는 불안감 때문인데요. 독립할 줄 알았던 딸도 아직 안나갔으니까 딸을 믿고 배짱으로 귀여운 가족을 늘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생은 예측불허고 사는 날까지 더 많은 반려견을 만나 많이많이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스다 미리 신간엔 이런 초판 책갈피나 사은품이 꼭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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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된 시간
사쿠 다쓰키 지음, 이수미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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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와타나베 쓰네조는 개천의 용 같은 사나이입니다. 탐욕스럽고 부도덕하고 이기적인 짓을 서슴치 않으며 가난한 목수의 삼남에서 와타나베 토건의 사장으로 부를 공고히 했습니다. 정재계에 끈을 대고 뇌물을 먹여 인연을 쌓고 그들을 수족처럼 부리기까지 그가 들인 공과 지력은 어마어마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끈이 부작용이 되어 자신의 딸을 헤치고 범인조차 잡지 못하게 만들 줄은 몰랐겠지만요.

와타나베의 외동딸 미카가 늦은 밤까지 돌아오지 않는가 싶더니 뒤이어 1억엔을 요구하는 협박전화가 옵니다. 딸을 인질로 데리고 있으니 1억엔을 준비하라. 와타나베와 아내는 두려움과 분노로 덜덜 떨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희망은 있었습니다. 범인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와타나베의 어조에 비추어 어쩌면, 1억엑만 들려준다면, 범인은 무사히 미카를 귀환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그러나 일찍이 와타나베의 뇌물을 받아 그와 교류해 온 경찰 수뇌부는 와타나베의 돈에 대한 탐욕이 딸에 대한 애정보다 크리라는 잘못된 짐작으로 1억엔만 회수한 채 범인을 놓쳐버립니다. 미카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여기서부터 제목과도 같은 조작된, 사실과는 전연 관계가 없는 새로운 스토리의 범행 하나가 만들어지게 되지요.

진범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경찰 수뇌부의 갖은 약점을 쥐고 있는 와타나베 쓰네조의 분노의 화살을 돌려라! 1억엔에 대한 협박이 있기 전에 범인이 미카를 죽였다는 증거를 만들어야 한다! 이 모든 목적성에 하필이면 딱 부합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우연히 산나물을 캐러 들어갔다가 미카를 발견하게 된 기가 약하고 비뚤어진 청년 쇼지. 일찍이 세 차례의 절도죄를 저지른 적이 있는 그가 미카의 가방에서 돈을 훔친 것이 증거가 되어 절도가 아닌 살해의 누명을 쓰고 체포가 됩니다. 그리고 그와 연관된 경찰과 검찰과 변호인과 법원, 피의자 가족과 피해자 가족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하는데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증거조작을 명시하는 경찰, 윗선의 지시를 받아 조작을 눈감는 경찰, 자신만의 정의로 증거보다 감을 우선하는 경찰, 피고인에 대한 보호보다 돈과 유명세에 집착하는 변호인, 진실보다 집행 체계를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무심한 사법부, 의로우나 아직은 서투른 햇병아리 국선 변호사. 진범에 대한 추측에도 끝내는 입을 다무는 피해자 가족들. 힘없고 가난한 피고인의 가족들. 그리고 무엇보다 경찰의 책략과 폭행에 대한 두려움,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후회와 원망과 희망 사이에서 오며가는 나약한 죄인 쇼지. 그들의 이야기가 아주 차분하고 간략하게 진행됩니다.

구구절절한 서술이나 꽈배기처럼 꼬인 감정선, 복잡한 미사여구는 없습니다. 어떤 때는 신문기사처럼 또 어떤 때는 설명문처럼 또 어떤 때는 법조인의 간략한 논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객관적 구술로 독자를 방척객과 같은 위치에서 작품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 자체가 일본 경찰 앞에 선 피의자들의 보호받지 못하는 권리에 대한 작가의 고발문일지도 모릅니다. 평범한 모든 국민이 증거없이도 범인으로 몰릴 수 있다는 위험을 인식시켜주는 투고문일 수도 있구요. 소설의 시작에서부터 쇼지는 범인이 아니라고 알려주는 적극적인 작가의 개입을 유념한 채 체포해서 판결까지의 과정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읽는다면 더욱 재미난 독서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덧붙여 피고인 쇼지는 분명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연쇄 절도범이며 사건의 그날에도 범죄를 저지릅니다. 그러나 가와이 변호사의 말처럼 누구도 저지른 죄 이상으로 처벌 받아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점에 동감하는 바, 쇼지에 대한 상고가 무사히 치루어져 어머님의 산소나마 찾아뵐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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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映 2017-08-16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캔디님의 서평처럼 미사여구없고 문장이 간단명료하여 읽기 정말 좋았어요
But 내용은 너무 분통터져서 참...
현실에서 비일비재하다는 사실도 화나고
어쨌든 돈없고 백없는 사람들만 서러운거죠
 
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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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여교사 에이바는 남편 짐과 이혼 수속 중에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문득, 부부의 침실에서 곤히 잠들었다 깨어난 남자가 그 잠이 채 깨기도 전에, 눈가의 잠기운을 다 물리치기도 전에, 부스스한 뒷머리칼조차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20년을 넘어 함께 해온 아내에게 말해온 겁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그 여자와 살고 싶다. 그리곤 부리나케(까지는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짐을 꾸려 나가 버립니다. 낯 모르는 독자도 이렇게나 손이 떨리고 화가 나는데 사랑한다, 불륜을 깨라, 상담을 받자, 우리는 헤쳐나갈 수 있다 메달린 에이바의 심경은 어땠을까요. 짐이 다먹은 과자 봉지 터트리듯 가정을 박살내고 나갔음에도 그녀는 그녀 등의 짐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에이바의 생활은 혼란해지고 우울해지고 다시 격려하며 용기를 냈다가 여린바람처럼 무력해집니다. 파괴본능이 일었다가 후회를 했다가 그 옛날을 그리워했다가 헤어짐을 복기하는 등으로 홀로 괴로워하던 그녀를 사람들 사이로 이끈 것은 북클럽이었습니다. 친한 친구가 속한 북클럽에 때마침 빈자리고 있었고 어쩌다보니 그 해의 주제 "내 인생 최고의 책"의 11월의 주인공으로 뽑혀 책 한 권을 추천하게 됩니다. "클레어에서 여기까지". 어린 시절 여동생이 죽고 어머니가 자살한 뒤 낯 모르는 여인이 그녀 손에 쥐어주었던 책 한 권, 여러 낮과 여러 밤을 몇 번이고 페이지를 돌려 그 책을 읽었던 이후로 그녀에게서 독서의 즐거움을 단절시켜 버렸던 그 때 그 책. 갑자기, 문득, 그 책이 에이바의 영혼 속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 에이바의 그 때 그 책을 프랑스 작은 서점에서 잡게 되는 또다른 여인이 있습니다. 에이바의 딸 매기. 어려서부터 음주, 마약, 섹스로 몸과 마음을 망가트린 아이입니다. 매기를 보며 세상의 어떤 아이들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영혼의 어느 부품이 망가진 채로 조립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화목한 가정, 정력적인 아버지, 다정한 어머니, 이해와 아량을 가진 오빠. 가족을 사랑하고 인생에 별다른 고난이 없고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를 동경하고 작가를 꿈꾸는 어린 소녀가 어떻게 해서 인생의 불합리성을 깨치기도 전에  술과 남자와 약에 빠져드는지 그 경로를 이해하지 못하여 매기를 바라보는 내내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에이바의 삶이 책과 함께 희망으로 종주하는 느낌이었다면 매기의 삶은 마약들과 함께 소멸로 폭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에이바가 밝아지는 내내 매기는 니코틴과 알콜, 대마, 헤로인으로 넋을 놓았고 늙거나 젊거나 처음 보거나 위험한 남자로의 섹스로 휘청이고 있었으니까요. 원인을 모르는 방황, 평범한 삶과 괴리된 절망, 약을 떨치기엔 너무나 나약한 의지, 무엇이 이 빈 영혼을 붙들어 줄 수 있을까 싶던 걱정은 결국 에이바 때와 마찬가지로 독서와 책으로 종식됩니다. 왠지 모르게 편안한 서점과 어린 시절의 책, 어머니의 책, 그리고 서점 주인이 가져다 준 영혼을 매료시키는 한 권의 책. 에이바에게 그랬듯이 이 책은 매기의 손에도 열쇠를 쥐어 줍니다. 대체 무슨 사연으로? 어떤 깊은 인연이 있기에 책 한 권이 모녀를 이토록이나 구원하는 걸까요?

<내 인생 최고의 책>은 어머니 에이바의 북클럽, 딸 매기의 작은 서점, 북클럽 회원들의 다양한 애환과 역사가 담긴 추천책들과 클레어를 쓰고 잠적해버린 작가 로절린드 아든의 미스터리가 얽힌 낭만적이고도 매력적인 책입니다. 무엇보다 책 속에 또 다른 책으로 가는 문이 자그마치 10개나 있다는 것이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안나 카레니나와 백 년 동안의 고독, 앵무새 죽이기, 브루클린에는 나무가 자란다, 호밀밭의 파수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제5도살장. 엘리자베스의 자부심과 개츠비의 푸른등불과 남편을 기억하려는 레베카의 의지와 앵무새의 순수와 브루클린 나무에 돋아나는 새싹과 삶의 반대편에 갇혀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호밀밭의 파수꾼과 존재의 가벼움 속 자유에의 갈망과 전쟁의 포화 속 트랄파마도어 행성을 꿈꾼 커트 보니것을 헤아리며, 그리고 우리가 결코 읽을 수 없는 가공의 소설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를 상상하며 독서와 책에 대한 낭만과 사랑과 깊은 애정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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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 죽음을 질투한 사람들
제인 하퍼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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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하퍼의 소설 드라이를 읽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나요 재미나. 습기 하나 없이 깡말라버린 강, 긴 가뭄으로 인해 3분 안에 끝내야만 하는 샤워, 손실을 막기 위해 죽여야 하는 동물들, 마른 풀들과 뜨겁고 건조한 바람을 휘감는 총소리, 대출과 이자와 불황과 가뭄의 연이은 엇박으로 인한 주민들의 폭발직전의 스트레스, 메말라버린 인심 등 호주의 외딴 시골 마을 키와라의 버석버석하고 뜨거운 열기들을 상상하면서 읽었더니 대여섯 시간이 그냥 후다닥 지나가 버리는군요.  

"루크는 거짓말을 했어. 너도 거짓말을 했지. 장례식에 와라."

거짓말, 장례식, 뭔가 굉장히 의미심장하지요? 드라이는 크게 두 개의 전지적 파트로 나뉘어집니다. 주인공 포크의 과거와 포크의 현재. 금융계 형사 포크가 친구 루크와 그 일가에 닥친 불행한 사건을 조사하는 현재 속에 그의 십대 시절을 다룬 과거의 일들이 드문드문 등장하며 안타까움과 아련함, 긴장감을 더하는데요. 어린 시절의 포크에게는 루크와 엘리라는 아주 친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저 어린 아이들이기만 했을 때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던 그들의 관계가 사춘기를 지나 여성, 남성이라는 성에 대한 인식이 끼어들기 시작하며 우정과 사랑 사이에 뭔가 미묘한 틈이 생기기 시작하지요. 서투름과 어색함과 풋내나는 열정 사이에서 헤매이던 이들에게 들려온 충격적인 소식은 엘리가 강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것, 그녀의 뒷주머니에 포크라고 적힌 메모가 있었다는 것이었지요. 사건 발생 추정 시각의 알리바이가 없던 포크를 위해 루크가 그들이 함께 토끼를 잡았다는 거짓된 증언을 하여 포크의 혐의를 벗기지만 자살이냐 타살이냐 확정적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엘리의 아버지와 사촌은 포크 부자를 살인마, 변태로 고립시켜 그들이 키와라를 떠나게 만듭니다. 그러나 실은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고 포크는 내내 의심하고 있어요. 포크에게 알리바이가 없던 것과 마찬가지로 루크에게도 알리바이는 없었다는 것. 꼭 무언가를 덮기라도 하려는 듯 다급히 범인을 만들어 여론몰이 하던 엘리의 아버지 등으로 말이죠. 그러나 묵은 상처를 들추기엔 포크 자신의 아픔이 너무 깊었고 도시 생활에 일말의 만족감도 있었기에 외면하던 고향땅이 다시금 포크를 부릅니다. 그의 친구 루크가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고 스스로 자살을 했으며, 나는 너희들의 지난 거짓말을 알고 있다는 루크 아버지의 한 장의 편지 때문에 금의환향도 아닌 엉거주춤한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죠. 모든 사건에서 눈을 감고 도시로 돌아가고 싶은 포크의 갈등, 엘리의 사건을 기억하는 주민들이 주도하는 포크에 대한 냉대와 터부, 모두의 생계가 거미줄처럼 이어진 시골 사람들이 느끼는 고립에의 공포, 가깝지만 먼 이웃들의 비밀, 외부인에 대한 비상식적인 경계, 카리스마 있지만 어딘지 짖궂고 잔인한 구석이 있는 루크와 비밀을 간직한 캐릭터 특유의 신비한 매력을 가진 엘리, 정직하고도 강건한 경찰 라크, 루크와 긴 시간 연애한 전적이 있는 미혼모 그레천 등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심리와 의도, 행위들이 더해져 긴장과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소름끼치게 잔인한 류의 묘사나 폭풍처럼 몰아치는 사건 전개와는 거리가 멀지만 호주의 뜨거운 햇볕과 폐쇄적인 시골의 분위기, 매력적인 인물만으로도 높은 몰입갑을 만들어내는 소설이에요. 작가분이 2권을 집핍할 예정이라고 하니 시리즈로 포크의 활약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의 로맨스도요. 물론 스릴러 소설 속 주인공의 사랑 따위 사치일 수도 있지만 포크는 너무 외로워보여요. 정 로맨스가 힘들다면 브로맨스도 괜찮습니다 작가님! 브로맨스 대환영!! (루크가 포크의 창을 열고 들어가 알리바이를 외우게 하는 장면 두근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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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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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를 읽고 대위의 딸을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 싶었다. 러시아 제정 역사의 면면을 담은 채 비판하는 작품이지만 겉으로는 "동화다운 해피엔드" "만화에나 나올 법한 스토리" "단순한 연애소설(청춘의 독서 중)로 위장하고 있다하니 고전이라면 머리에 쥐부터 나는 나도 호기심이 일었던 것이다. 더 정확히는 그가 소개해 준 많은 책들 중 유일하게 만만히 접근하여 완독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본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17살이 된 뾰뜨르 안드레예비치 그리뇨프는 늙은 하인 사벨리치와 함께 변방의 벨로고르스끄 진영으로 가는 중이다. 그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근위 중사로 등록되어 있었으며 국가에 충성하는 신실한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실제로도 군인이 되었다. 음주와 노름, 시와 결투, 게으름 등 모든 철없는 짓들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써야 원치 않은 일이었겠으나 거대하고도 강력한 손아귀를 가진 아버지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었고 그리하여 부임하게 된 땅에서 소설의 제목인 대위의 딸, 마리야 이바노브나를 만나게 된다. 애칭의 연유야 알 수 없으나 마샤로 불리는 마리야와 뾰뜨르는 젊은 애들닮게 일찍히 사랑에 눈을 뜨고 입맞춤을 하며 결혼을 약속하지만 가난한 대위의 딸에 대한 아버지의 반대는 뜨겁고 삼각관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살인병사 쉬바브린의 사악한 농간도 적지 않다. 청춘이야 불타오르든 말든 예카테리나 2세가 통치하는 제정 러시아의 역사 또한 고달프기 그지없다. 이민족과 농민, 농노의 반란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중이었고 마치 조선의 임꺽정 같은 존재가 지방에서 들고일어나 야금야금 땅 따먹기를 하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뿌까쵸프. 한 때 걸인으로 폭설 속에 갇힌 뾰뜨르와 만나 뾰드르 주머니에서 보드까 한 잔과 토끼 외투를 털어낸 남자이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황제를 참칭하며 뾰뜨르와 마샤가 있는 진영으로 진격해오니 딸이 겁낸다는 이유로 하나밖에 없는 대포까지 애들 놀이감으로 던져줬을만큼 기강없고 허약한 벨로고르스끄는 채 오분도 버티지 못한 채 반란군을 그 가슴에 활짝 품는다. 뾰뜨르의 마샤의 애정전선에 바야흐로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말라, 이 시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만 같은 인물들이 소설 속에 대거 등장한다. 귀족가의 방약한 도련님 뾰뜨르와 그의 늙은 하인 그리뇨프 그리고 반란군 황제 뿌까쵸프까지. 사기를 당하고 칼에 찔리고 억울하게 누명을 써도 잠깐 속 쓰려 했다가 다시 허허실실 사랑에 집중하는 도련님이나 아무 죄 없이 그 도련님에게 화풀이 당하고도 지옥까지 당신을 쫓아가겠노라 도련님의 옷도 챙기도 돈도 챙기고 다기세트도 챙기고 급기야 도련님의 여자까지 챙기는 그리뇨프의 우스꽝스러움이 재미있다. 제 비위를 맞추는데 여념없지만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땐 얼마든지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는 믿을 수 없는 부하들과 질 것이 뻔한 싸움 속 개죽음을 예상하면서도 물러서지 못하는 남자 뿌까쵸프가 참형 당하기 직전의 짧은 순간에 우정을 나눈 친구에게 보이는 눈인사도 명예롭다. 뿌쉬낀의 내면에 자리하는 모든 삶의 긍정이 이 작품 안에 다 쏟아진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폭설과 가난과 병마와 전쟁이 슬프지 않다. 노엽지도 않다. 그래서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라는 그의 긍정을 믿게 된다. 그의 시를 믿을 수 밖에 없는 증거들을 여기 그의 유일한 장편 소설 속에서 찾아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게 고전이 주는 즐거움일까.  

덧붙여 이 작품은 강력한 전제군구였던 니꼴라이 1세의 검열 속에서 출간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애쓰며 집중했지만 러시아 역사에 무지하다 보니 유시민 작가의 충고대로 "검열이 없었더라면 달라졌거나 소설에 아예 등장하지도 않았을 것들이 무엇인지 살피면서 읽는 것"은 영 어려운 일이었다. 단지 낭만적으로 비추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이를테면 뾰뜨르와 마샤의 파랑새 같은 역할을 해주는 예카테리나 대제의 명령 등, 군주의 한 마디에 별 조사도 없이 판결이 뒤엎어져 버리는 사태 등을 미약하게나마 느꼈을 뿐인데 깊이 있는 분석과 통찰은 그냥 포기하고서라도 재미로만 읽어도 좋을 쉬운 고전이다. 러시아 문학에 막 발을 들이려는 독자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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