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중년의 여교사 에이바는 남편 짐과 이혼 수속 중에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문득, 부부의 침실에서 곤히 잠들었다 깨어난 남자가 그 잠이 채 깨기도 전에, 눈가의 잠기운을 다 물리치기도 전에, 부스스한 뒷머리칼조차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20년을 넘어 함께 해온 아내에게 말해온 겁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그 여자와 살고 싶다. 그리곤 부리나케(까지는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짐을 꾸려 나가 버립니다. 낯 모르는 독자도 이렇게나 손이 떨리고 화가 나는데 사랑한다, 불륜을 깨라, 상담을 받자, 우리는 헤쳐나갈 수 있다 메달린 에이바의 심경은 어땠을까요. 짐이 다먹은 과자 봉지 터트리듯 가정을 박살내고 나갔음에도 그녀는 그녀 등의 짐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에이바의 생활은 혼란해지고 우울해지고 다시 격려하며 용기를 냈다가 여린바람처럼 무력해집니다. 파괴본능이 일었다가 후회를 했다가 그 옛날을 그리워했다가 헤어짐을 복기하는 등으로 홀로 괴로워하던 그녀를 사람들 사이로 이끈 것은 북클럽이었습니다. 친한 친구가 속한 북클럽에 때마침 빈자리고 있었고 어쩌다보니 그 해의 주제 "내 인생 최고의 책"의 11월의 주인공으로 뽑혀 책 한 권을 추천하게 됩니다. "클레어에서 여기까지". 어린 시절 여동생이 죽고 어머니가 자살한 뒤 낯 모르는 여인이 그녀 손에 쥐어주었던 책 한 권, 여러 낮과 여러 밤을 몇 번이고 페이지를 돌려 그 책을 읽었던 이후로 그녀에게서 독서의 즐거움을 단절시켜 버렸던 그 때 그 책. 갑자기, 문득, 그 책이 에이바의 영혼 속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 에이바의 그 때 그 책을 프랑스 작은 서점에서 잡게 되는 또다른 여인이 있습니다. 에이바의 딸 매기. 어려서부터 음주, 마약, 섹스로 몸과 마음을 망가트린 아이입니다. 매기를 보며 세상의 어떤 아이들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영혼의 어느 부품이 망가진 채로 조립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화목한 가정, 정력적인 아버지, 다정한 어머니, 이해와 아량을 가진 오빠. 가족을 사랑하고 인생에 별다른 고난이 없고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를 동경하고 작가를 꿈꾸는 어린 소녀가 어떻게 해서 인생의 불합리성을 깨치기도 전에  술과 남자와 약에 빠져드는지 그 경로를 이해하지 못하여 매기를 바라보는 내내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에이바의 삶이 책과 함께 희망으로 종주하는 느낌이었다면 매기의 삶은 마약들과 함께 소멸로 폭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에이바가 밝아지는 내내 매기는 니코틴과 알콜, 대마, 헤로인으로 넋을 놓았고 늙거나 젊거나 처음 보거나 위험한 남자로의 섹스로 휘청이고 있었으니까요. 원인을 모르는 방황, 평범한 삶과 괴리된 절망, 약을 떨치기엔 너무나 나약한 의지, 무엇이 이 빈 영혼을 붙들어 줄 수 있을까 싶던 걱정은 결국 에이바 때와 마찬가지로 독서와 책으로 종식됩니다. 왠지 모르게 편안한 서점과 어린 시절의 책, 어머니의 책, 그리고 서점 주인이 가져다 준 영혼을 매료시키는 한 권의 책. 에이바에게 그랬듯이 이 책은 매기의 손에도 열쇠를 쥐어 줍니다. 대체 무슨 사연으로? 어떤 깊은 인연이 있기에 책 한 권이 모녀를 이토록이나 구원하는 걸까요?

<내 인생 최고의 책>은 어머니 에이바의 북클럽, 딸 매기의 작은 서점, 북클럽 회원들의 다양한 애환과 역사가 담긴 추천책들과 클레어를 쓰고 잠적해버린 작가 로절린드 아든의 미스터리가 얽힌 낭만적이고도 매력적인 책입니다. 무엇보다 책 속에 또 다른 책으로 가는 문이 자그마치 10개나 있다는 것이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안나 카레니나와 백 년 동안의 고독, 앵무새 죽이기, 브루클린에는 나무가 자란다, 호밀밭의 파수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제5도살장. 엘리자베스의 자부심과 개츠비의 푸른등불과 남편을 기억하려는 레베카의 의지와 앵무새의 순수와 브루클린 나무에 돋아나는 새싹과 삶의 반대편에 갇혀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호밀밭의 파수꾼과 존재의 가벼움 속 자유에의 갈망과 전쟁의 포화 속 트랄파마도어 행성을 꿈꾼 커트 보니것을 헤아리며, 그리고 우리가 결코 읽을 수 없는 가공의 소설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를 상상하며 독서와 책에 대한 낭만과 사랑과 깊은 애정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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