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 우주.지구.생명.인류에 관한 빅 히스토리
월터 앨버레즈 지음, 이강환.이정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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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지구과학이든 지리든 물리든 뭐 하나 좋아해본 적이 없다. 달달달 암기하여 점수획득에 애를 썼지만 결과를 보고 나면 난 정말 과학은 체칠이 아닌가봐 했는데 이제는 자발적으로 이런 책도 다 읽고 나이는 먹고 볼 일이다. 그런데 문과생은 문과생인지 나는 과학도 낭만으로 읽는다. 빅뱅과 지구의 생성뿐만 아니라 대륙이 이동하고 지각의 변동 속에 산맥이 치솟고 북유럽과 이탈리아 사이에 있던 바다가 대륙의 이동에 눌려 사라지고 그 흔적을 단층 사이에 숨긴 알프스 산맥에 철도가 생기고 노새마부는 천문대 공사에 쓰일 목재를 산꼭대기로 지고 나르고! 그리하여 우주는 유한하여 역사를 가진다는 발견을 이룩하는 등의 여러 지구 속  풍경들이 어쩐지 환상적으로만 느껴진다. 판타지 같애. 올해 본 그 어떤 사랑 소설보다 이 책으로 마주하는 우리 인류라는 존재가 더욱 로맨틱! 성공적! 으로 느껴졌던 시간. 교양과학서가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아니면 나.. 취향이 좀 이상해진걸까? 

태양계 대부분은 수소와 헬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구에는  암석을 구성하는 산소, 마그네슘, 규소, 철이 많단다. "왠지 지구는 태양계에서 희귀한 원소들 몇가지를 선별적으로 축적했다"(p76) 책은 어째서? 어떻게?를 설명하는데 실은 똑똑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내가 그렇지 뭐는 자기비하가 아니라 자기 인정이다ㅡ.,ㅡ 대신에 문과생 나름의 상상력으로 부족한 과학지식을 채운다. 규소가 산소, 마그네슘, 철과 동맹을 맺고 무수한 네크워크망을 형성해 광물입자를 만드는 모습 같은 거. 젊은 태양이 훅훅 숨을 뿜으면서 기운을 장풍처럼 쏘아 지구 어깨를 들이 받고 혜성들이 지구 궁둥이를 둘러차는 와중 버텨버텨 끙끙 응차응차 힘내 하면서 대륙이 달이 중력과 바다와 공룡이 생긴다. 다시 공룡이 멸종하고 지각이 움직이고 침식하고 융기하는 시간들이 한숨처럼 느리게 흘러간다. 일개미 같은 인간들이 무수히 생겨나고 진화하여 바글바글 문명을 만들고 휘어진 산맥을 돌아 누군가는 정복하고 누군가는 정복 당하는 역사가 생성된다. 젊은 해양의 판 위를 작은 배를 타고 달음박질쳐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는 세상도 열린다. 지구 밖과 보이는 지구의 안과 보이지 않는 지구의 안이 하나하나 채워지는 여정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인류, 태어나는 우리. 이 모든 것이 정말로 기막힌 우연이었구나!!  

"지금까지 살다 간 모든 인간이 그랬듯 우리는 한평생 그대로인 지구를 보아 왔기 때문에 이 멋진 지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먼 과거를 빅 히스토리 관점으로 보면 그토록 격렬하고 불확실한 역사가 삶을 영위하기에 이처럼 완벽한 곳을 우리에게 제공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고마울 따름이다."(p68) 

91년 밈브랄 노두에서 지질학자이자 빅 히스토리를 연구하는 이 책의 저자 월터 앨버레즈는 대멸종과 관련한 기적같은 발견을 한다. 공룡을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만든 미스터리의 키, 후추알만한 크기로 모래층 사이사이에 박혀있는 소구체를 찾은 것이다. 그 키가 지구 열쇠에 꽂히지 않았다면 지금 빅 히스토리를 읽고 있는 건 내가 아닌 어느 공룡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농담 같은 상상을 하며  책을 덮는다. 공룡이 멸종되지 않았다면 50그람 밖에 안되었다는 초기 포유류들 사이에서 우리 인류는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기 역사를 남긴 것도 우리 인류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모든 소멸과 탄생의 우연을 건너뛰어 우리가 지구와 함께 생존해있다. 오늘 내 발을 스쳐간 돌멩이도 지구 역사의 훌륭한 기록자일지 모른다는 상상, 고대 바람의 방향을 쫓아 흘러온 퇴적층 위를 내가 디디고 선 것일지 모른다는 경이 앞에 시야에 닿는 모든 것들과 먼지 같다고 생각한 나란 존재까지 어여쁘고 사랑스럽다.


덧) "나는 암석을 사랑해" 라는 에세이를 썼다는 월터 앨버레즈 작가의 제자 넘 귀여운 거 아님??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으면 가당찮게 지질학자를 꿈 꿨을지도.
덧) 작가님이 인터넷에서 비어슈타트의 낭만주의 그림 [마터호른]을 찾아보라고 두 번이나 말했지만 검색 능력의 부족인지 안유명한 작품인지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에 이 산이 마터호른 산이라는 걸 알게 됐다.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로고. 뾰족한 턱 같은 저길 빙하가 돌려갂기 했다고 생각하니 우습다 ㅋㅋ

 

 

파나마운트 영화사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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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한 잘난 척에 교양 있게 대처하는 법 - 심리학으로 분석한 잘난 척하는 사람들의 속마음
에노모토 히로아키 지음, 강수연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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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속 여성의 표정,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거죠??
턱을 단단하게 괴고서 입꼬리는 삐쭉 올라가 있고 눈은 땡그랗게 콕콕! 
자못  의기양양해 보이는 저 태도 왠지 재수없군요.
은근한 잘난 척에 교양 있게 대처하는 법 좀 안다고
이거 또 은근하게 잘난 척 중인 거 아냐?ㅡ.,ㅡ

라고 생각하는 저 같은 사람은 스스로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나 혹시 "인지 왜곡" 중인 거 아닐까?
더 전문적인 용어로 "적대적 귀인 편향"인 것은 아닐까??
뭘 해도 삐딱하게 보이고 무슨 말을 해도 과민반응을 하며 비꼬아 생각하고
평범한 타인의 삶에 부아가 치밀고 상대의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잘난 척 같고.
이 모든 증상에 내가 해당된다면 어필 감수성이 매우 높은 것일 수 있어요.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열등감이 잠재해있다 상대의 어떤 특징에 도드라진 것일 수도 있구요.
무시당할까봐 불안한 심리가 반격하듯 타인 공격적으로 나타나는 걸 수도 있다는군요.

전 뭐 그렇습니다.
은근하게 잘난 척 하든 대놓고 잘난 척 하든 남한테 피해 끼치는 거 아니면

그냥 예쁘게 봐주고 싶어요.
예쁘다는 말 듣고 싶어서 나 못생겼다고 하면 어이구 너님 예쁘십니다 열두번쯤 말해주고
무슨 말만 하면 가르치는 동기는 니예니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신공 발휘
혼자 바쁘다고 유난떠는 선배 앞에선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컴터하며 놉니다.
나님은 빨라서 일 다끝냈으니까. 아휴 이 잘난 척 ㅋㅋㅋ
애인에게 사랑받는다고 자꾸만 말하는 친구는........ 이건 용서할 수 없군요.
인지왜곡에 적대적 귀인 편향, 예민 감수성 끝판왕이 되어 때찌때찌.
사랑하고 사랑받고 조옿겠다 아주! 유유.

남자친구가 잘생겨서 여자친구가 예뻐서 내 새끼 세상 제일 귀해서 
다이어트를 했는데 5키로쯤 살이 쏘옥 빠지고 맨얼굴인데도 꼭 화장한 것만 같고 
 여행 간 곳의 하늘이 아름답고 새 명품 운동화가 발에 가볍고
근사한 식당에서 밥도 먹고 여러 남자에게 데쉬 받고
연예인과 친하고 방송국 취업도 척척하고 
어떤 통로로든 다양한 행복을 매일 같이 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 지금 같은 세상이
 샘나고 피곤할 수도 있지만요.
동시에 그걸 막 알리고 싶은 마음 보여주고 싶은 마음 자체는 귀엽기도 하거든요.
나 행복해요 나 잘났어요~ 티 좀 내면 어떻습니까.
잘난 척이든 뭐든 행복한 사람 잘난 사람 많을 수록 좋은 세상이죠 뭘. 

교양있는 대처의 핵심은 둥글게 둥글게! 
잘난 척 하는 사람도 잘난 척 하고 싶은 오늘의 나도 너그럽고 관대하게 봐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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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6 - 5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6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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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속의 죽음은 언제나 순식간이다. 난데없고 별안간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는 토지 속에 없다. 5부 1권, 16편의 시작도 그랬다. 창씨개명이 언급됐으니 1940년 또는 그 이후. 수세에 몰린 일본의 발악이 시작된 가운데 조선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다. 관수는 그런 시절의 독립운동가였고 윗선의 지시에 따라 집을 나가있는 참이었다. 아들의 존경을 바라 폭탄을 터트리며 죽기를 못내 소망했던 송관수. 백정의 사위로 백정 딸의 남편으로 평생을 그 굴레를 벗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속정 깊은 사내는 그러나 호열자로 사망한다. 허망한 죽음이었다. 태생을 부정하며 집을 나간 큰아들 영광과의 재회는 한줌 가루가 되어 이루어졌다. 영광의 품에 안겨 진주땅을 밟은 밤. 재가 된 그의 혼도 진주에 따라왔을까. 아들과 아내와 친우 강쇠의 창자가 끊어지는 울음을 들었을까. 그 울음을 뒤로하며 스님이 된 지감의 천도기도를 따라 승천했을까. 영광은, 평생이 고독할 상이라는 그의 아들은 대면한 아비의 죽음 뒤로 남은 삶을 어떻게 꾸려갈런지. 

그리고 또 한명, 박효영의 죽음. 최씨네 집안의 주치의였던 남자의 자살 소식을 서희는 듣게 된다. 일찍이 그가 서희를 사랑했고 그를 숨기지 않았으며 그러나 예술합네 하는 여인과 재혼하며 보낸 인고의 세월을 서희는 모르지 않았다. 그의 생에 대해 느끼는 남모를 죄책감 그 이상으로 서희는 슬퍼한다.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을지언정 문 앞에서 서성이는 그를 영영 내쫓지는 못한 탓이다. 받아주지도 않으면서 물리치지도 않은 사랑. 젊은 그 시절과 한치 다름없는 이기심엔 살짝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뒤늦은 사랑의 자각에 서희는 몸서리치며 운다. 별당아씨의 인생을 처음으로 이해한다. 어머니의 인생은 사랑으로 성공한 것이 아닌가 부러운 마음도 인다. 통곡하는 아내를 보는 길상의 분노와 회환은 되려 조금 얄팍하더라. 마치 어린 누이의 떼를 보는 것과 같이. 서희라는 여자를, 길상이라는 남자를, 어쩌면 책의 끝까지 이해 못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했다.   

가장 놀라웠던 인물은 조준구, 최치수를 살해하고 서희를 몰아냈던 그가 여직 살아있다는 거였다. 그 많은 인물을 잊지 않고 생의 끝까지 알려주시는 박경리 선생님에 대한 놀람과 감탄으로 가슴이 찌르르. 조준구의 삶은 임이네와 판박이다. 임이네와 한치 다를 바 없이 그렇게 악마적으로 끊임없이 생을 갈구하는지 그가 가진 생에 대한 집착을 보며 등골이 서늘했다. 사람 같지가 않다. 타인의 생을 갉아먹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오히려 떠나는 길, 모두의 삶에 한주먹 손해라도 더 끼치겠다는 악념으로 드글드글. 열정이고 집념이랄 수도 있을 집착은 도무지 어디로부터 시작하는 것일까. 아들에게 송장 썩은 물을 구해오라는 아버지, 대변을 손에 쥐고 있다 치워주려 들어오는 아들의 면상에 집어던지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있는 삶을 사는 조군구의 아들 병수. 신선처럼 눈이 맑고 아이처럼 천진한 남자가 며느리를 보고 손자를 보는 나이가 되어서도 부모라는 벗어날 수 없는 억겁에 고통받는다는 것이 애잔하다. 효라는 굴레에 영영 묶여버린 것만 같은 병수. 조준구가 죽으면 또 그 효 때문에 저런 놈 제사까지 지내겠지. "참말로 하늘이 있나 없나" 하던 영팔 노인의 말씀에 그른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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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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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식으로든지 세상을 떠도는 유목민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이민자가 나이거나, 내 동생이거나, 내 엄마이거나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니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p79, <라스트 북스토어> 중)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대학을 다른 시로 가기는 했는데 아침에 통학버스를 타면 길 막힘 없이 5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어요. 옆동네 마실 가는 수준이라 타향살이의 고달픔은 아예 모르는 사람으로 커버렸습니다. 다른 지역권의 남자랑 결혼이라도 하면 모를까 아마도 저는 죽는 날까지 우리 고향 우리 집 근처로만 오며가며 살 심심한 인생 같습니다. 실은 거기에 별 불만도 없는 태평한 성격이지만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여기 9가지 단편 속 인물들은 저와 정 반대의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떠돌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죠. 미국 국적의 이민자이지만 다시 한국행을 택한 사람들, 이민을 가 청춘을 다바쳐 집을 장만한 부부, 미국인 남편을 만나 이민 왔지만 냉장고만은 따로 쓰는 여자, 남편과의 이혼 후 그와 다른 언어를 찾아 미국에 간 여자, abcd라는 쪽지 한장 들고 미국으로 입양됐던 할아버지, 어머니의 집을 찾아 여행하는 삼남매, 어머니를 만나러 한국에 와 공항에 발이 묶인 청년. 이민, 이주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되는 인생의 굴곡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미국인이랄 수도 없는 각종 위화감과 다시 한국인이 되기 위해 돌아온 땅에서 느끼는 소외감들, 타국에의 귀속에 온생애를 다바쳤다는 허무가 소설 면면에서 느껴졌어요. 작가인 임재희님이 하와이 이민자이기에 그 혼란을 더 깊게 통찰하고 글로 옮길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동시에 본인이 그 깊은 혼란을 깨치고 글을 쓰는 작가로 성장했기에 자기비하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을 그릴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구요. 하소연으로 시작하는 것만 같던 모든 단편의 말미가 어딘지 긍정적이거든요.

"제 몸 어딘가에서 잔뿌리들이 뻗어 나와 흙을 가르고 축축한 곳을 찾아 스스로 내려가고 있는 것만 같았던" (p34) 동희나 "세상의 끝, 어떤 순간의 마지막을 배웅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사람"(p89)을 알아보는 '나'와 "묻지 않아도 될 것과 알지 않아도 될 것들 속에서도 삶이 완전체로 흘러갈 것"(p116)을 믿는 또다른 '나'. 그리고 노래하는 로사의 "누군가는 찾으려 하고, 누군가는 숨기려 하고, 숨박꼭질은 계속되고, 열쇠는 처음부터 내 마음속에 있었고..."(p141)의 흥얼거림 같은 것을요. "그들이 잘 지내야 엄마가 잘 지낼 것만 같아"(p220)라고 차분히 소망할 줄 아는 폴, "콧등이 낮고 주근깨가 많았던 우리의 누이를"(p193) 기억해달라던 압시드의 깊은 연민엔 어여쁜 웃음과 눈물이 함께 일기도 했습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나를 동정할 때도 있지만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품고 더 많은 웃음과 울음과 인생을 알게 된 이들이 차분히 이야기하는 소설입니다. 떠나는 사람에게도 돌아오는 사람에게도 저처럼 내내 머무르기만 하는 사람에게도 위로와 감흥을 주는 책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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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부인의 남자 치치스베오 - 18세기 이탈리아 귀족 계층의 성과 사랑 그리고 여성
로베르토 비조키 지음, 임동현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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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치스베오란

<이탈리아대사전>은 치치스베오를 "18세기에 발달했던 관습에 따라 남편이 부재중일 때 귀부인을 따라다니며 그녀의 모든 활동을 챙기고 돕는 시종기사"로 정의한다.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베네치아, 피사, 제노바 같은 대도시 지역 안에서 독특하게 부흥했던 이런 문화는 흔히 추정 가능한 공인된 삼각관계, 프랑스적 자유로운 이성교제 안에 머무르지 않았다. "성적인 방종이나 외도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한 여성에게 다른 남성의 접근이 "공식적으로" 허락됐다는 사실"(p42)에서 자유연애와 유사하지만 그보다 포괄적인 개념 안에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2. 계몽주의와 남성귀족의 연대가 만들어낸 귀부인의 남자들

"우리 가문과 아무런 유대가 없는 젊은 미혼 남성이 남편이 부재중인 밤은 물론이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다른 남자의 아내를 방문하는 일을 유행이라고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p77, 1708년 <즐거운 운문> 중, 귀부인의 시아버지가 아들의 관대함을 불평하며 하는 말)

"이 증오스러운 치치스베오라는 족속은 귀부인의 남편보다 열 배는 더 그녀와 가깝게 생활한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랑스럽게 추파를 던지는 어린 귀부인 리치와 교제할 기회가 있었지만, 파올로 보르게세가 실 한 가닥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p93, 1739년 고전학자 샤를 드 브로스의 편지 중)

"그녀는 절대 귀족이 아닌 남성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귀족이라도 의회의 회합에 참설할 수 없는 사람도 안된다. 그리고 정치적 모의를 꾸밀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이 있는 가문 출신이 아니면 안 된다." (p193, 1740년 베네치아에서 활동하는 시종기사의 현황 중)

""부인, 그렇다면 남편은 아이들이 친자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녀가 대답했다. "아내의 아들이라는 것만 알 수 있으면 된 것이지요.""

(p434, 1794년 영국인 여행자 넬슨 브룩이 귀부인과 나눈 대화의 기록 중)

"다른 왕국의 아버지와 비교해볼 때 베네치아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거의 애정을 갖고 있지 않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공화국의 아이다. 그들은 법적인 아버지의 아이가 아니다."

(p435, 섀무얼 샤프)

17세기 초에서 18세기로 넘어오는 사이 이탈리아 여성의 의무는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일으켰다. "남편에 대한 복종, 가사에 대한 집중, 사회생활에 대한 부정"(p54) 오로지 안주인으로서만 역할했던 그들에게 사교문화의 전파는 안팎으로의 공공연한 출입, 여가활동에의 욕구를 일으켰다. 유행을 따르지 못하는 남성이 비문명화된 존재로 여겨졌으므로 사교는 여성의 역할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맥락을 공인시켰다. 제도권 하에서의 부분적 여성 해방. 귀족여성들에게 자유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녀들을 통제하는 안전장치로써 남편과 사회가 시종기사의 역할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적인 행위에 있어 모든 귀부인과 치치스베오들이 배제되었다고 할 순 없지만 이탈리아 밖에서 돌았던 소문만큼 방종하지는 않았으며 치치스베오가 부부의 결혼서약에 서명했다는 것은 전혀 증거가 없는 루머임도 밝힌다. 또한 치치스베오와 남편은 배척관계이기보다 삼각의 협력관계인 경우가 훨씬 많았다. 때때로 그것이 귀부인의 자녀에게 상속을 하는, 남편 가문의 재산을 늘려주는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치치스베오가 남편이나 귀부인보다 연장자이며 직분이 높은 경우 서포터즈이자 스폰서의 역할을 도맡기도 했는데 일례로 가문의 결속을 강화하는 방편으로써 시동생, 삼촌, 네 명의 사촌을 치치스베오로 둔 귀부인이 존재했으며 치치스베오들로 하여금 남편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을 만들게끔한 부인 등도 등장한다. 

그러나 치치스베오를 귀족의 집단적 생식활동의 일환으로 보는 해석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장자상속에 따른 차남 이하들의 독신 유행 및 대단히 높았던 사망률에 따라 대가 끊기는 도시 귀족들이 속출했던 것이다. 멸문의 위기 나아가 귀족 계급의 후퇴나 자멸의 위험 속에 재산 상속이라는 과제를 껴안은 귀족들의 연계가 치치스베이스모를 이끌었다는 여러 증거가 남아있다. 기혼 여성의 순결을 가문의 명예로 삼지 않았던 그 시절 이탈리아의 독특한 사회 분위기는 결국 여성의 지휘 향상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혈통 보다 가문을 우선하겠다는 배타적 귀족 남성의 이해관계가 이중적이고도 기형적으로 깔려있는 판 위의 위선이었을 뿐.

3. 치치스베오가 시사하는 것

"우리는 여성에게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선한 쾌락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확고하게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성에게 모든 종류의 공연을 보러 극장에 갈 수 있고 카페나 사교 모임, 아카데미 등 공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p268, 1791년 계몽주의자 주세페 콤파뇨니의 변호문 중)

"얘야, 사람들은 단 한 번만 결혼을 하는데, 세상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란다." "오! 할머니 할머니. 사람들은 단 한번만 사랑할 수 있다고요." 할머니는 분개해 외쳤다. "모두 천박한 부류의 사람, 속된 부류의 사람이 됐어. 혁명 이후 세상은 너무 많이 바뀌어버렸어. 모든 행동을 과장하는가 하면 삶의 구석구석에 지루한 의무를 배치해 놓았지. 얘야, 내 시절에는 어떤 남성이 마음에 들면 그에게 시동을 보냈단다. 그리고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면 즉시 먼저 만나던 남자를 풀어주었지. 두 남자 모두와 함께 있고 싶어 하지 않는 한 말이야." 창백해진 소녀가 중얼거렸다. "그 시절에 여성은 명예를 몰랐군요.""(p440,1880년 모파상의 소설 <옛시절> 중)

"권리에는 성별이 없다. 남성에게든 여성에게든 자유와 선택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권리다. 자유와 선택은 충실함의 동반자이며, 독립과 평등을 기초로 한다." 

(p517, 1791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권의 옹호> 중)
 
남편 아닌 남성들과 다양한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 설령 그 안에 육체적 방종의 의미가 담겨있다 할지라도 그 일을 거부하는 것이 정직하거나 지조있는 행위로 여겨지지 않은 시대와 국가가 존재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치치스베오를 터부하는 것이 되려 귀부인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일로 평가받고 이혼의 사유까지 될 수 있었다니. 책을 덮고도 여전히 어리둥절한 것은 그만큼 내가 이 사회의 고정관념에 꽉 묵여있는 사람이라는 뜻일테다. 귀부인의 남자라는 제목에서 관능만을 유추했던 초반엔 꽉 찬 글밥이 힘겨웠다. 그러다 여러 편지와 문서, 희곡, 소설들 속에 드러난 그들의 개방성에 흥미가 일었고 그 개방성에 숨겨진 강제성을 깨달은 후엔 여성이 또다른 사회규범 안에 예속되었을 뿐인거냐며 자조도 했다. 계몽주의 이전의 이탈리아 사회를 몰랐기에 가능한 비난이었다. p306-307에 등장한 총리 베르나르도 타누치의 편지로 확인한 그 시절 귀부인의 생활은 감옥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남편의 허가없이는 극장에 가는 최소한의 외출조차 불가능인 시대. 치치스베오라는 이 이중적 규범조차 상대적으로 숨통 트이는 자유였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치치스베이스모조차 몰락의 길을 걷는다. 시민혁명이 발발한 것이다. 혁명의 거센 바람에 치치스베오는 이름만을 남긴 채 금지당했다. 이탈리아 여성들은 또다시 정절의 의무를 강요당했고 희생적인 어머니, 현명한 안주인의 위치로 재배속된다.

책을 읽는 내내 치치스베오는 사회와 도덕, 규범, 의무, 관습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익과 관계한 사회의 줄다리기 속에 자유의 확대와 자유의 축소를  모조리 경험한 할머니의 기억을 두고 그 시절 여성들은 명예를 몰랐다고 단정적으로 경멸하는 손녀에게서 내 모습을 보기도 했다. 나는 줄리언 반스의 작품 <연애의 기억> 속 19세 소년과 48세 여성의 사랑에 왜 그렇게까지 진저리를 쳤을까. 배우자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가진 지금의 결혼제도는 정말로 올바른 일일까. 극단적인 비유지만 화려한 사교문화에 빠진 어머니의 자식이 되거나 아버지 없이 공화국의 아이가 되는 것은 원치 않으므로 나는 앞으로도 배우자에 대한 유일 권한을 가지는 배타적 부부관계의 열성적 지지자일 것이다. 그러나 좋은 딸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아들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에 대해, 연애와 결혼과 의무에 관하여 우리사회가 주입한 이미지를 재고해야 할 필요성은 분명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옳다 라고 믿고 있는 이 가치가 정말 옳은 것인지 누군가의 자유와 선택이라는 권리를 나보다 힘있는 자가 깔아놓은 배치로 의심없이 제한하고 배척 중인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18세기의 귀부인과 그녀의 남자 치치스베오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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