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6 - 5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6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 속의 죽음은 언제나 순식간이다. 난데없고 별안간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는 토지 속에 없다. 5부 1권, 16편의 시작도 그랬다. 창씨개명이 언급됐으니 1940년 또는 그 이후. 수세에 몰린 일본의 발악이 시작된 가운데 조선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다. 관수는 그런 시절의 독립운동가였고 윗선의 지시에 따라 집을 나가있는 참이었다. 아들의 존경을 바라 폭탄을 터트리며 죽기를 못내 소망했던 송관수. 백정의 사위로 백정 딸의 남편으로 평생을 그 굴레를 벗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속정 깊은 사내는 그러나 호열자로 사망한다. 허망한 죽음이었다. 태생을 부정하며 집을 나간 큰아들 영광과의 재회는 한줌 가루가 되어 이루어졌다. 영광의 품에 안겨 진주땅을 밟은 밤. 재가 된 그의 혼도 진주에 따라왔을까. 아들과 아내와 친우 강쇠의 창자가 끊어지는 울음을 들었을까. 그 울음을 뒤로하며 스님이 된 지감의 천도기도를 따라 승천했을까. 영광은, 평생이 고독할 상이라는 그의 아들은 대면한 아비의 죽음 뒤로 남은 삶을 어떻게 꾸려갈런지. 

그리고 또 한명, 박효영의 죽음. 최씨네 집안의 주치의였던 남자의 자살 소식을 서희는 듣게 된다. 일찍이 그가 서희를 사랑했고 그를 숨기지 않았으며 그러나 예술합네 하는 여인과 재혼하며 보낸 인고의 세월을 서희는 모르지 않았다. 그의 생에 대해 느끼는 남모를 죄책감 그 이상으로 서희는 슬퍼한다.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을지언정 문 앞에서 서성이는 그를 영영 내쫓지는 못한 탓이다. 받아주지도 않으면서 물리치지도 않은 사랑. 젊은 그 시절과 한치 다름없는 이기심엔 살짝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뒤늦은 사랑의 자각에 서희는 몸서리치며 운다. 별당아씨의 인생을 처음으로 이해한다. 어머니의 인생은 사랑으로 성공한 것이 아닌가 부러운 마음도 인다. 통곡하는 아내를 보는 길상의 분노와 회환은 되려 조금 얄팍하더라. 마치 어린 누이의 떼를 보는 것과 같이. 서희라는 여자를, 길상이라는 남자를, 어쩌면 책의 끝까지 이해 못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했다.   

가장 놀라웠던 인물은 조준구, 최치수를 살해하고 서희를 몰아냈던 그가 여직 살아있다는 거였다. 그 많은 인물을 잊지 않고 생의 끝까지 알려주시는 박경리 선생님에 대한 놀람과 감탄으로 가슴이 찌르르. 조준구의 삶은 임이네와 판박이다. 임이네와 한치 다를 바 없이 그렇게 악마적으로 끊임없이 생을 갈구하는지 그가 가진 생에 대한 집착을 보며 등골이 서늘했다. 사람 같지가 않다. 타인의 생을 갉아먹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오히려 떠나는 길, 모두의 삶에 한주먹 손해라도 더 끼치겠다는 악념으로 드글드글. 열정이고 집념이랄 수도 있을 집착은 도무지 어디로부터 시작하는 것일까. 아들에게 송장 썩은 물을 구해오라는 아버지, 대변을 손에 쥐고 있다 치워주려 들어오는 아들의 면상에 집어던지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있는 삶을 사는 조군구의 아들 병수. 신선처럼 눈이 맑고 아이처럼 천진한 남자가 며느리를 보고 손자를 보는 나이가 되어서도 부모라는 벗어날 수 없는 억겁에 고통받는다는 것이 애잔하다. 효라는 굴레에 영영 묶여버린 것만 같은 병수. 조준구가 죽으면 또 그 효 때문에 저런 놈 제사까지 지내겠지. "참말로 하늘이 있나 없나" 하던 영팔 노인의 말씀에 그른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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