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부인의 남자 치치스베오 - 18세기 이탈리아 귀족 계층의 성과 사랑 그리고 여성
로베르토 비조키 지음, 임동현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1. 치치스베오란

<이탈리아대사전>은 치치스베오를 "18세기에 발달했던 관습에 따라 남편이 부재중일 때 귀부인을 따라다니며 그녀의 모든 활동을 챙기고 돕는 시종기사"로 정의한다.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베네치아, 피사, 제노바 같은 대도시 지역 안에서 독특하게 부흥했던 이런 문화는 흔히 추정 가능한 공인된 삼각관계, 프랑스적 자유로운 이성교제 안에 머무르지 않았다. "성적인 방종이나 외도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한 여성에게 다른 남성의 접근이 "공식적으로" 허락됐다는 사실"(p42)에서 자유연애와 유사하지만 그보다 포괄적인 개념 안에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2. 계몽주의와 남성귀족의 연대가 만들어낸 귀부인의 남자들

"우리 가문과 아무런 유대가 없는 젊은 미혼 남성이 남편이 부재중인 밤은 물론이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다른 남자의 아내를 방문하는 일을 유행이라고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p77, 1708년 <즐거운 운문> 중, 귀부인의 시아버지가 아들의 관대함을 불평하며 하는 말)

"이 증오스러운 치치스베오라는 족속은 귀부인의 남편보다 열 배는 더 그녀와 가깝게 생활한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랑스럽게 추파를 던지는 어린 귀부인 리치와 교제할 기회가 있었지만, 파올로 보르게세가 실 한 가닥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p93, 1739년 고전학자 샤를 드 브로스의 편지 중)

"그녀는 절대 귀족이 아닌 남성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귀족이라도 의회의 회합에 참설할 수 없는 사람도 안된다. 그리고 정치적 모의를 꾸밀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이 있는 가문 출신이 아니면 안 된다." (p193, 1740년 베네치아에서 활동하는 시종기사의 현황 중)

""부인, 그렇다면 남편은 아이들이 친자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녀가 대답했다. "아내의 아들이라는 것만 알 수 있으면 된 것이지요.""

(p434, 1794년 영국인 여행자 넬슨 브룩이 귀부인과 나눈 대화의 기록 중)

"다른 왕국의 아버지와 비교해볼 때 베네치아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거의 애정을 갖고 있지 않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공화국의 아이다. 그들은 법적인 아버지의 아이가 아니다."

(p435, 섀무얼 샤프)

17세기 초에서 18세기로 넘어오는 사이 이탈리아 여성의 의무는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일으켰다. "남편에 대한 복종, 가사에 대한 집중, 사회생활에 대한 부정"(p54) 오로지 안주인으로서만 역할했던 그들에게 사교문화의 전파는 안팎으로의 공공연한 출입, 여가활동에의 욕구를 일으켰다. 유행을 따르지 못하는 남성이 비문명화된 존재로 여겨졌으므로 사교는 여성의 역할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맥락을 공인시켰다. 제도권 하에서의 부분적 여성 해방. 귀족여성들에게 자유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녀들을 통제하는 안전장치로써 남편과 사회가 시종기사의 역할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적인 행위에 있어 모든 귀부인과 치치스베오들이 배제되었다고 할 순 없지만 이탈리아 밖에서 돌았던 소문만큼 방종하지는 않았으며 치치스베오가 부부의 결혼서약에 서명했다는 것은 전혀 증거가 없는 루머임도 밝힌다. 또한 치치스베오와 남편은 배척관계이기보다 삼각의 협력관계인 경우가 훨씬 많았다. 때때로 그것이 귀부인의 자녀에게 상속을 하는, 남편 가문의 재산을 늘려주는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치치스베오가 남편이나 귀부인보다 연장자이며 직분이 높은 경우 서포터즈이자 스폰서의 역할을 도맡기도 했는데 일례로 가문의 결속을 강화하는 방편으로써 시동생, 삼촌, 네 명의 사촌을 치치스베오로 둔 귀부인이 존재했으며 치치스베오들로 하여금 남편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을 만들게끔한 부인 등도 등장한다. 

그러나 치치스베오를 귀족의 집단적 생식활동의 일환으로 보는 해석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장자상속에 따른 차남 이하들의 독신 유행 및 대단히 높았던 사망률에 따라 대가 끊기는 도시 귀족들이 속출했던 것이다. 멸문의 위기 나아가 귀족 계급의 후퇴나 자멸의 위험 속에 재산 상속이라는 과제를 껴안은 귀족들의 연계가 치치스베이스모를 이끌었다는 여러 증거가 남아있다. 기혼 여성의 순결을 가문의 명예로 삼지 않았던 그 시절 이탈리아의 독특한 사회 분위기는 결국 여성의 지휘 향상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혈통 보다 가문을 우선하겠다는 배타적 귀족 남성의 이해관계가 이중적이고도 기형적으로 깔려있는 판 위의 위선이었을 뿐.

3. 치치스베오가 시사하는 것

"우리는 여성에게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선한 쾌락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확고하게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성에게 모든 종류의 공연을 보러 극장에 갈 수 있고 카페나 사교 모임, 아카데미 등 공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p268, 1791년 계몽주의자 주세페 콤파뇨니의 변호문 중)

"얘야, 사람들은 단 한 번만 결혼을 하는데, 세상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란다." "오! 할머니 할머니. 사람들은 단 한번만 사랑할 수 있다고요." 할머니는 분개해 외쳤다. "모두 천박한 부류의 사람, 속된 부류의 사람이 됐어. 혁명 이후 세상은 너무 많이 바뀌어버렸어. 모든 행동을 과장하는가 하면 삶의 구석구석에 지루한 의무를 배치해 놓았지. 얘야, 내 시절에는 어떤 남성이 마음에 들면 그에게 시동을 보냈단다. 그리고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면 즉시 먼저 만나던 남자를 풀어주었지. 두 남자 모두와 함께 있고 싶어 하지 않는 한 말이야." 창백해진 소녀가 중얼거렸다. "그 시절에 여성은 명예를 몰랐군요.""(p440,1880년 모파상의 소설 <옛시절> 중)

"권리에는 성별이 없다. 남성에게든 여성에게든 자유와 선택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권리다. 자유와 선택은 충실함의 동반자이며, 독립과 평등을 기초로 한다." 

(p517, 1791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권의 옹호> 중)
 
남편 아닌 남성들과 다양한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 설령 그 안에 육체적 방종의 의미가 담겨있다 할지라도 그 일을 거부하는 것이 정직하거나 지조있는 행위로 여겨지지 않은 시대와 국가가 존재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치치스베오를 터부하는 것이 되려 귀부인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일로 평가받고 이혼의 사유까지 될 수 있었다니. 책을 덮고도 여전히 어리둥절한 것은 그만큼 내가 이 사회의 고정관념에 꽉 묵여있는 사람이라는 뜻일테다. 귀부인의 남자라는 제목에서 관능만을 유추했던 초반엔 꽉 찬 글밥이 힘겨웠다. 그러다 여러 편지와 문서, 희곡, 소설들 속에 드러난 그들의 개방성에 흥미가 일었고 그 개방성에 숨겨진 강제성을 깨달은 후엔 여성이 또다른 사회규범 안에 예속되었을 뿐인거냐며 자조도 했다. 계몽주의 이전의 이탈리아 사회를 몰랐기에 가능한 비난이었다. p306-307에 등장한 총리 베르나르도 타누치의 편지로 확인한 그 시절 귀부인의 생활은 감옥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남편의 허가없이는 극장에 가는 최소한의 외출조차 불가능인 시대. 치치스베오라는 이 이중적 규범조차 상대적으로 숨통 트이는 자유였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치치스베이스모조차 몰락의 길을 걷는다. 시민혁명이 발발한 것이다. 혁명의 거센 바람에 치치스베오는 이름만을 남긴 채 금지당했다. 이탈리아 여성들은 또다시 정절의 의무를 강요당했고 희생적인 어머니, 현명한 안주인의 위치로 재배속된다.

책을 읽는 내내 치치스베오는 사회와 도덕, 규범, 의무, 관습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익과 관계한 사회의 줄다리기 속에 자유의 확대와 자유의 축소를  모조리 경험한 할머니의 기억을 두고 그 시절 여성들은 명예를 몰랐다고 단정적으로 경멸하는 손녀에게서 내 모습을 보기도 했다. 나는 줄리언 반스의 작품 <연애의 기억> 속 19세 소년과 48세 여성의 사랑에 왜 그렇게까지 진저리를 쳤을까. 배우자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가진 지금의 결혼제도는 정말로 올바른 일일까. 극단적인 비유지만 화려한 사교문화에 빠진 어머니의 자식이 되거나 아버지 없이 공화국의 아이가 되는 것은 원치 않으므로 나는 앞으로도 배우자에 대한 유일 권한을 가지는 배타적 부부관계의 열성적 지지자일 것이다. 그러나 좋은 딸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아들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에 대해, 연애와 결혼과 의무에 관하여 우리사회가 주입한 이미지를 재고해야 할 필요성은 분명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옳다 라고 믿고 있는 이 가치가 정말 옳은 것인지 누군가의 자유와 선택이라는 권리를 나보다 힘있는 자가 깔아놓은 배치로 의심없이 제한하고 배척 중인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18세기의 귀부인과 그녀의 남자 치치스베오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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