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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 우주.지구.생명.인류에 관한 빅 히스토리
월터 앨버레즈 지음, 이강환.이정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 지구과학이든 지리든 물리든 뭐 하나 좋아해본 적이 없다. 달달달 암기하여 점수획득에 애를 썼지만 결과를 보고 나면 난 정말 과학은 체칠이 아닌가봐 했는데 이제는 자발적으로 이런 책도 다 읽고 나이는 먹고 볼 일이다. 그런데 문과생은 문과생인지 나는 과학도 낭만으로 읽는다. 빅뱅과 지구의 생성뿐만 아니라 대륙이 이동하고 지각의 변동 속에 산맥이 치솟고 북유럽과 이탈리아 사이에 있던 바다가 대륙의 이동에 눌려 사라지고 그 흔적을 단층 사이에 숨긴 알프스 산맥에 철도가 생기고 노새마부는 천문대 공사에 쓰일 목재를 산꼭대기로 지고 나르고! 그리하여 우주는 유한하여 역사를 가진다는 발견을 이룩하는 등의 여러 지구 속 풍경들이 어쩐지 환상적으로만 느껴진다. 판타지 같애. 올해 본 그 어떤 사랑 소설보다 이 책으로 마주하는 우리 인류라는 존재가 더욱 로맨틱! 성공적! 으로 느껴졌던 시간. 교양과학서가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아니면 나.. 취향이 좀 이상해진걸까?
태양계 대부분은 수소와 헬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구에는 암석을 구성하는 산소, 마그네슘, 규소, 철이 많단다. "왠지 지구는 태양계에서 희귀한 원소들 몇가지를 선별적으로 축적했다"(p76) 책은 어째서? 어떻게?를 설명하는데 실은 똑똑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내가 그렇지 뭐는 자기비하가 아니라 자기 인정이다ㅡ.,ㅡ 대신에 문과생 나름의 상상력으로 부족한 과학지식을 채운다. 규소가 산소, 마그네슘, 철과 동맹을 맺고 무수한 네크워크망을 형성해 광물입자를 만드는 모습 같은 거. 젊은 태양이 훅훅 숨을 뿜으면서 기운을 장풍처럼 쏘아 지구 어깨를 들이 받고 혜성들이 지구 궁둥이를 둘러차는 와중 버텨버텨 끙끙 응차응차 힘내 하면서 대륙이 달이 중력과 바다와 공룡이 생긴다. 다시 공룡이 멸종하고 지각이 움직이고 침식하고 융기하는 시간들이 한숨처럼 느리게 흘러간다. 일개미 같은 인간들이 무수히 생겨나고 진화하여 바글바글 문명을 만들고 휘어진 산맥을 돌아 누군가는 정복하고 누군가는 정복 당하는 역사가 생성된다. 젊은 해양의 판 위를 작은 배를 타고 달음박질쳐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는 세상도 열린다. 지구 밖과 보이는 지구의 안과 보이지 않는 지구의 안이 하나하나 채워지는 여정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인류, 태어나는 우리. 이 모든 것이 정말로 기막힌 우연이었구나!!
"지금까지 살다 간 모든 인간이 그랬듯 우리는 한평생 그대로인 지구를 보아 왔기 때문에 이 멋진 지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먼 과거를 빅 히스토리 관점으로 보면 그토록 격렬하고 불확실한 역사가 삶을 영위하기에 이처럼 완벽한 곳을 우리에게 제공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고마울 따름이다."(p68)
91년 밈브랄 노두에서 지질학자이자 빅 히스토리를 연구하는 이 책의 저자 월터 앨버레즈는 대멸종과 관련한 기적같은 발견을 한다. 공룡을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만든 미스터리의 키, 후추알만한 크기로 모래층 사이사이에 박혀있는 소구체를 찾은 것이다. 그 키가 지구 열쇠에 꽂히지 않았다면 지금 빅 히스토리를 읽고 있는 건 내가 아닌 어느 공룡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농담 같은 상상을 하며 책을 덮는다. 공룡이 멸종되지 않았다면 50그람 밖에 안되었다는 초기 포유류들 사이에서 우리 인류는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기 역사를 남긴 것도 우리 인류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모든 소멸과 탄생의 우연을 건너뛰어 우리가 지구와 함께 생존해있다. 오늘 내 발을 스쳐간 돌멩이도 지구 역사의 훌륭한 기록자일지 모른다는 상상, 고대 바람의 방향을 쫓아 흘러온 퇴적층 위를 내가 디디고 선 것일지 모른다는 경이 앞에 시야에 닿는 모든 것들과 먼지 같다고 생각한 나란 존재까지 어여쁘고 사랑스럽다.
덧) "나는 암석을 사랑해" 라는 에세이를 썼다는 월터 앨버레즈 작가의 제자 넘 귀여운 거 아님??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으면 가당찮게 지질학자를 꿈 꿨을지도.
덧) 작가님이 인터넷에서 비어슈타트의 낭만주의 그림 [마터호른]을 찾아보라고 두 번이나 말했지만 검색 능력의 부족인지 안유명한 작품인지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에 이 산이 마터호른 산이라는 걸 알게 됐다.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로고. 뾰족한 턱 같은 저길 빙하가 돌려갂기 했다고 생각하니 우습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