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페이지를 만났습니다 -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심리코칭
김은미 지음 / 꼼지락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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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몸짓은 바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p234)

날이 너무 더우면 혹은 날이 너무 추우면 저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영 기운이 없는데 뭔가 읽었다는 기분을 내고 싶은 그런 때
계몽사 세계의 동화, 세계의 명작을 내키는대로 읽고 꽂고 합니다.
책장 제일 아랫칸을 떠억하니 차지한 앞에 드러누워 뒹굴뒹굴 하면서요.
어떨 때는 그림만 멍 때리면서 보기도 하는데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그냥.
그냥,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그냥 게으름 피우긴가?하고 이때껏 생각했는데 
<마음이 머무는 페이지를 만났습니다>를 읽고 나니 혹시 나름의 치유시간이었나 싶습니다.

이 책이 그림책으로 마음을 치유한 사람들의 이야기거든요.
누구보다 그림책으로 마음처방에 힘썼던 김은미 작가님 본인의 이야기기도 하구요.
가난한 어린 시절, 대학시절 돌아가신 아버지,
영화 속 장면처럼 완벽했던 결혼생활,
남편의 배신, 별거, 
홀로 아들을 키워낸 시간이 25편의 그림책과 함께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도서관>, <여기보다 어딘가>, <행복한 청소부>,
<빨간 나무>, <책먹는 여우>,
<리디아의 정원>, <이렇게 멋진 날> 25편 중 제 기억에 남은 동화책들은 이렇게 손꼽을 수 있겠어요.
책만 읽어도 괜찮을걸까? 라는 질문에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아도 괜찮다 ,
나의 모든 것이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할 때 성장하는 내 모습을 알려주는 책.
지나치게 웃을 필요도 필요 이상으로 친절할 의무도 없음을 느끼게 하는 책.
무엇보다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작은 팁 "나의, 지금 여기에 감사하는" (p180) 요령을 깨치게 하는 책. 

아는 책과 모르는 책 사이를 요모조모 오가며 장바구니를 채웁니다. 
외롭거나 슬프거나 배신감을 느끼거나 실패하거나 내가 싫고 세상이 끔찍할 때
그래도 이겨내서 내일을 잘 버텨내고 싶을 때 한권씩 꺼내 읽어보겠습니다.
그림책으로 마음이 머물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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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새소설 1
배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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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 작가님은 온갖 곳에 이 책을 들고 다녔다는데 그럼 아마도 화장실에도 가져가서 읽었을텐데 나는 비위상 그냥 화장실을 참고 읽었다. 저녁도 굶은 상태로. 이 책을 끊고 밥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짜증이 나서 밥 먹자는 동생에게도 버럭버럭 했다. 퇴근 후에 학교를 다니고 있는 동생이 나오라고! 빽 하고 맞고함을 질러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시험기간이라 예민하다는 걸 잊었다. 젠장. 먹고 들어오라고 할걸. 차려주는 밥도 마다할만큼 나는 시트콤이 고팠다.

1.  사람들이 너를 내버려두면 삶은 아름다울 거야 ㅡ 찰리 채플린

연아의 경우엔 사람들일 필요가 없다. 엄마 한 명만 그녀를 내버려둔다면 그녀 인생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전교 1등 이연아. 이제껏 한번도 엄마에게 반항해 본 적이 없다. 시키는대로 공부했고 버티라는만큼 책상에 붙어있었다. 몇 십개의 학원을 뺑뺑이 치며 분초를 엄마의 공부 계획표대로 성장하는 동안 공부 밖에 모르는 벌레 같은 인간으로 자라버렸다. 그리고 엄마는 이연아를 서울대에 보내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다. 이연아를 포르말린에 박제시켜야 한대도 아이가 서울대만 갈 수 있다면 엄마는 드럼통 안으로 이연아를 빠트렸을 거다. 그래서 이연아는 달아난다. 맨발로 거리를 뛰고 신호등 없는 6차선의 거리를 돌진한다. 죽음이 코 앞인데 오히려 웃음이 터진다. 아이는 이미 미친 것 같다.

2. 결국 모든 것은 우스개다ㅡ 찰리 채플린 

상담실 안으로 숨어든 비슷한 키에 시야가 꼭 알맞은 아이들. 남자애는 바지를 풀어내렸고 여자애는 교복 상의 단추를 연다. 곧장 누군가가 들이닥치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테이블 아래로 숨지 않고 상담실 쇼파에서 거사를 치뤘을 거다. 아이들의 못다한 일들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다음 타자로 들어온 남녀 교사가 입을 맞추고 옷을 벗는다. 이 과감한 어른들도 그러나 바삐 옷을 주워들어 테이블보를 들어올린다. 연아의 담임이 연아의 엄마와 함께 상담실로 들어온 탓이다. 젊고 헐거벗은 남녀 교사가 어리고 헐거벗은 고등학교 1학년 제자들과 테이블 아래서 시선이 마주친다. 증오하듯 서로를 보지만 곧 비좁은 테이블에 함께 숨기 위해 남남 여여로 끌어안고 포개지며 눕는다. 뭐 이런 병딱 같은 시트콤의 시작은 내가 재미없게 써서 그렇지 실은 포복절도다. 미쳤다 미쳤어를 염불처럼 읊으며 웃고 또 웃었다. 그리고 끝의 끝에 다다를 때까지 이 황당했던 시작과 결말이 어떻게 이어질지 어째서 표지가 이런 모양인지 실은 감도 잡지 못했다. 십대들의 성, 원조교제, 무면허 운전, 각종 비행 , 일등 제일주의, 이미 사회에 찌들어 내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지나쳤을지 모를 기타등등의 이야기가 개별적인 단편일 줄 알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연결된다. 시작과 중간과 끝이 돌고 돌아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결국 모든 게 다 우스개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웃다가 울었다.

3.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러므로 나는 멀리 보려 노력한다 ㅡ 찰리 채플린


"아..... 왜 살지?”
연아는 나비를 쫓으며 놀고 있는 개를 구경하면서 생각했다.
사람들은 뭘 하면서 사는 걸까?
왜 그걸 하면서 사는 걸까?
왜 그렇게들 사는 걸까?
왜 사는 걸까? (p99)


어느만큼 멀리에서 본걸까. 대략 8854km, 찰리 채플린의 영국에서부터 작가 배준의 제주도 고향만큼의 거리일까. 그 정도 거리에서 대한민국과 십대를 보면 이런 희극이 또 이런 비극이 쓰여질 수 있는걸까. 배준의 시야를 가늠해보려 애쓰다 픽 웃고 말았다. 나 같이 의미찾고 뭐 찾고 하는 독자를 위해 찰리 채플린이 또 일찍이 답을 내놨던 것이다. "왜 굳이 의미를 찾으려 하는가? 인생은 욕망이지, 의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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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 24시 - 상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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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들로 뒤덮인 봉화 보루. 장소경을 포함해 기껏 열 셋 밖에 남지 않은 8군단 병사들은 이백에 가까운 돌궐 늑대 전사들에 맞서 싸운다. 누군가는 떠나자고 했지만 전장에서 조국을 위해 몸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문무기와 소규의 강한 집념이 장소경과 병사들에게 전염되며 그들은 마지막 전투를 치른다. 단 세 명만이 살아남았다. 지원병 없이 버텨낸 끝에 오직 셋만이. 조국을 지킨 그들의 삶은 이후 어떠하였던가. 아홉 번 죽어도 후회 없다는 병사들을 위해 조국은 무엇을 해주었는가. 문무기는 장안 자신의 집에서 살해 당했다. 싼값에 가게 터를 사들이려는 귀족의 음모였다. 가게는 산산조각 났고 고명딸 문염은 감옥에 끌려간다. 소규는 여동생을 겁간하고 가족을 몰살시킨 귀족을 고발한 후 마적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장소경이라고 다를 바 없다. 9년 넘게 장안 불량수로 성실하게 근무했지만 문염을 지키려다 사형수가 되었고 해를 지나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돌궐족 늑대전사들이 장안을 잿더미를 만든 음모를 꾸미고 숨어들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의 죽음과 남은 인생이 조금은 수월했을까?차라리 사형수로 마감하는 편이 더 편안한 인생이지 않았을까? 그런 의문이 들만큼 그의 앞에 펼쳐지는 24시간의 고난은 너무나 괴로운 것이었다. 

이필이 사면을 제안하며 수사관 자리를 제안했을 때 장소경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황제 나부랭이도 귀족도 지키고 싶지 않았다. 퇴역 후 당한 배신이 산처럼 쌓인 상태였고 생에 어떤 집착도 없었다. 그런 그가 움직였다. 감옥을 나와 정월의 추위 속에서 얼음장 같은 물을 뒤집어쓰며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초원의 전사들을 찾기 위해. 대테러를 막기 위해. 오로지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 그들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치는 것도 아깝지 않았으니까. 그런 그의 걸음을 막은 이는 누구였던가. 정안사의 최고지위 하감이었다. 그는 사형수 장소경을 씀으로 해서 정안사의 뒷배인 태자가 비난 받을 것을 두려워했다. 황제의 12번째 아들 영왕이었다. 그는 문염을 탐내다 장소경에게 고문 당했다. 죽지 않는 장소경이 저주스러웠으리라. 태자의 반대편에서 세력을 구축 중인 우효위였다. 태자의 흠을 잡아 그의 세력을 죽이려는 이들에게 장소경은 좋은 빌미거리다. 그리고 장소경을 감옥에서 끄집어낸 이필이었다. 그는 진실이라 착각한 무언가에 근접했을 때 차라리 장소경이 죽었기를 바랐다.

이득을 위해 지위를 위해 권력을 위해 적이 된 장안의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장소경은 칼에 찔리고 폭발에 휩쓸리고 화상을 입고 얼음물에 떨어지고 자기 손가락을 자르고 두피가 뜯기고 살이 찢기며 구르고 밟히고 고문 당한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적이 물을 때 나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첩자가 되고 수배자가 되고 기어이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기까지 했는데 그가 장안을 위해 적을 무찔러야 하는가. 저 썩을 놈의 세상 차라리 뿌리부터 싹 다 타버리는 게 옳지 않나. 적의 유혹 앞에선 장소경의 선택, 그 선택에 내가 공감하고 있는지 아닌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그 남자 장소경을 존중한다. 현종과 양귀비의 시대에 그들이 아닌 단 한 줄 역사로 이름을 올린 남자를 이만큼이나 가공해낸 작가에 대해서도. 중국 역사 엔터테인먼트 소설로 이보다 흥미롭고 이보다 가독성 높은 소설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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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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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녀석을 만났다. 아주아주 멋진 녀석이다. 옆에 있다면 꼬옥 끌어 안고 힘껏 사랑하고 싶어지는 대단히 멋지고 멋진 녀석. 이름은 아오야마. 보고 듣고 겪고 느끼는 모든 걸 필기하는 메모광이자 노트 애호가다. 바지 주머니 속에서도 필기하는 메모 장인은 연구광이기도 해서 우주, 생물, 구름, 로봇, 스즈키 제국관찰이라는 인간관계의 역학까지 두루 해독하는 괴짜다. '다른 사람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어제의 나 자신에게 지는 건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를 좌우명으로 삼고 매일매일 성실하고 끈기있게 훌륭해지고 있다. 지나치게 훌륭해져서 큰일이 나면 어쩌지 걱정하는 마음이 백분 이해가 갈 정도로 기특한 녀석은 안타깝게도 초등학생이고 젖니가 빠지는 중인 4학년이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마음을 접지만 소녀들이여 책을 펼쳐라. 제목은 <펭귄 하이웨이>. 어리지만 근사한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동생과 함께 하는 등교길. 아오야마의 걸음이 멈춘다. 눈 앞의 상황이 믿기지 않아 얼떨떨하다. 코 앞에서 움직이는 저건 뭘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윤기 흐르는 까만 털에 몽실몽실 하얀 배, 장식처럼 달린 지느러미 같은 날개와 짧은 다리는 누가 봐도 펭귄이다.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니고 떼로 걸어다니는 남극의 깡패 아델리 펭귄 무리! 평화로운 일본 소도시, 외롭게 자판기가 선 공터 옆의 주택가, 습도는 60 퍼센트, 날씨는 쾌청, 지금은 5월의 아침이다. 눈앞의 펭귄떼와 아오야마의 등교길은 너무 매치가 안된다. 차라리 까마귀가 유전자 변이를 일으켰다고 보는 게 더 신빙성 있는 가설 아닐까? 단체 멘붕에 빠진 초딩들이 침묵에 잠긴 사이 해님은 따뜻하게 온기를 뿜고 바람은 살랑살랑 공터를 휘돌아나간다. 113일 동안 진행될 아오야마의 연구와 그가 겪게 될 모든 모험의 여정은 이렇듯 황당하고 어딘지 눈부시게 시작이 됐다.


 

"이 수수께끼를 풀어봐. 어때, 할 수있겠니?"(p55)

 

 

 

<펭귄 하이웨이>라니. 제목부터 최고다. 펭귄이 좋아서. 어제보다 이 책을 다 읽은 오늘 펭귄이 더 좋아졌음은 말할 것도 없고. 아장아장 걷고 파닥파닥 날개를 펄럭이고 끼우끼우 울면서 지구를 지키는 펭귄 특공대. 그러나 이 소설, 펭귄 특공대와 소년의 우정을 그린 그렇게 만만한 소설이 아니다. 영화가 개봉됐기 때문에 쏠랑 들어가 버린 얘기지만 개정 전에는 "SF 대상 수상작"이라는 명판이 크게 붙어있는 책이었다. 그래서 SF구나 하고 읽기 시작하면 이거 좀 이상하다. 외계인이 우주선을 타고 내려와 아델리 펭귄 무리를 도시에 뿌리고 간다고 생각하면 뭔가 벙찌지 않나. 더구나 아오야마 소년이 목격한 펭귄의 탄생도 대단히 기이했다. 첫사랑 치과 누나가 자판기에서 뽑은 콜라캔으로 소년의 젖니를 뽑아주려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캔이 펭귄으로 뿅 하고 변신해 버리니까. 판타지인데 생각하면서 읽다 보면 다시 SF고 그러다 역시 판타지인가 헷갈리는 소설은 장르가 어찌됐든 재.미.있.다. 모험과 성장이 함께하는 소설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니까. 더군다나 누나, 펭귄, 재버워크(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괴물)의 숲에 나타난 '바다'의 정체 외에도 아오야마의 일상과 학교, 여름방학이 하나 같이 웃기고 귀엽다. 우주소년 우치다, 체스소녀 하마모토, 과학의 아이 아오야마가 갈릴레오 뺨치는 관찰로 진실에 다가설 때는 중력이 사라진 듯 엉덩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무중력 체험 재미라니. 다시 생각하니 이거 완벽하게 SF인데? 

<펭귄 하이웨이>의 주인공이 어리다고 얕보지 말 것. 애니화된 이유가 있다고, 젖니가 두 개나 빠진 소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를 거라고 새끼 손가락 걸고 약속한다. 나란 독자는 재미있는 책이 아니면 이렇게 길게 리뷰를 쓰지도 않으니까:) 완벽한 결말 뒤로 3888일이 지난 어느 날에 새하얗게 빛나는 영구치를 가지고 누군가의 앞에서 활짝 웃을 아오야마를 그린다. 훌륭하고 훌륭하고 또 훌륭한 남자 어른이 되어서 그 때야말로 사랑의 중차대한 결심을 완성하리라. 아니 근데 이 행복한 결심 앞에 나는 왜 이렇게 눈이 시리지. 콧물도 좀 나는 것 같고. 이만큼 신나게 웃음 줬으면 됐지 괜히 감동까지 주고 난리다. 하여튼 꼭꼭꼭 영화까지 찾아볼 것! 아오야마 너란 소년에게 하트 백만개를 날려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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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13
앨런 알렉산더 밀른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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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니 더 푸가 만든 아침 운동 노래가 있습니다. 우선 두 팔을 위로 쭉 펴구요. 주문을 외워요. "트랄ㅡ랄ㅡ라 트랄ㅡ랄ㅡ라" 다시 아래로 손이 발에 닿도록 몸을 숙이며 "트랄ㅡ랄ㅡ라 트랄ㅡ랄ㅡ라". 윽, 배가 나와서인지 손이 발에 안닿아요. 아직 푸 만큼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길. 어쩌면 좋지 라는 생각보단 너무 아픈데 라고 체념한 후 다시 자리에 앉아 푸와 크리스토퍼 로빈의 이야기를 들어요. 운동은 조금 후에 다시. "럼ㅡ텀ㅡ텀ㅡ티들ㅡ엄" 당장은 우리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꿀과 연유를 무척 좋아하는 본인 피셜 '머리가 나쁜 곰' 위니 더 푸는 똑똑하진 않아도 다정하고 상냥한 친구입니다. 친구들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좋아하는 꿀단지도 양보할 줄 알아요. 물론 들고가는 길에 누굴 주려 했는지 까먹고 뚜껑만 열지 않는다면요. 아주아주 몸집이 작아서 크리스토퍼 로빈의 주머니에 숨어 학교에 따라갈 수도 있는 피글렛은 수줍고 내성적인 아기 돼지에요. 워낙 소심해서 단지를 뒤집어쓴 푸를 헤팔룸푸로 오해하는 소동도 벌이지만 대체로 의리있는 녀석이지요. 이요르는 성실하게 우울한 친구입니다. 매일매일의 기분이 축축 처져있죠. 그의 명언(?)이랄까요. "잘 지내는 게 뭔지 한참 잊고 지낸 것 같아"(p50)에 저도 같이 고개를 끄덕끄덕. 똑같은 일상이 이어지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죠. 이요르는 곰돌이 푸 속 가장 어른 같은 캐릭터에요. 읽을 수록 그의 불평과 우울함에 정이 갑니다. 그래 맞아. 꼭 나 같아요. 자랑은 아니지만요. (어쩐지 수줍 :))  세상에서 푸를 가장 사랑하는 것만 같은 사랑스러운 인간 친구 크리스토퍼 로빈, 앞문을 막아버린 푸의 뒷발을 수건걸이로 사용할 줄 아는 이제 보니 아주 마음 넓은 친구였던 래빗, 똑똑한 채 하기 좋아하는 올빼미, 자신을 골탕먹인 친구들에게 영리한 대응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엄마 캥거와 말썽쟁이 루 그 모든 친구들이 있는 이야기가 읽을 수록 새롭습니다. 지금까지 사랑받고 영화로 만들어지고 다양한 출판사에서 여러 모양새로 번역되는 이유도 새삼 알 것 같아요. 천진난만하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단순한 푸의 낙천적인 사고와 고민없음이 책을 읽는 내내 부러웠거든요. 푸를 따라 피글렛의 손을 잡고 크리스토퍼 로빈의 파란대문 집 앞으로 달려가고 싶었어요. 로빈의 풍선을 빌려 저도 푸처럼 나무 꼭대기까지 날아가고 팠구요. 북극을 찾아 도시락과 따끈한 커피를 싸서 '팜험'도 떠나고 싶어요. 용감하게 물에 빠져서 루처럼 어푸어푸 나 수영 잘 하죠? 하고 소리치는 황당무개한 일도 벌려보고 무엇보다 그냥, 그냥 막 숲을 달려보고 싶습니다. (생각만 하고 안움직이는 건 뭐람 ㅎㅎ) 애시다운 숲을 뛰어노는 아들을 보고 이 책을 쓴 앨런 알렉산더 밀른의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아마 그도 크리스토퍼 로빈처럼 아이들처럼 그렇게 걱정없이 신명나게 뛰어놓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읽으니 푸와 친구들이 더욱 애틋해요.
 
그리고 이 책이요. 번역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번역가님이 누군가 보니 전하림님. 작년에 감동적으로 읽은 <브로크백 마운틴>의 역자님이시더라구요! 참고로 브로크백 마운틴의 번역도 무척 아름답다는 사실! 제가 읽어본 푸는 현대지성의 <곰돌이 푸 이야기 전집> 뿐이라 비교대상이 적긴 하지만 또 저는 영어를 못해서 원작과 대조하는 지성을 발휘할 수도 없지만 전하림님의 곰돌이 푸는 꽤 재치가 있고 음률이 살아있달까요. 가독성이 좋아요. 예를 들어 푸와 크리스토퍼 로빈이 우산을 뒤집어 쓰고 피글렛을 찾아가기 직전의 장면이랑 푸가 로빈에게 필통을 선물 받는 장면인데요.

현대지성
 
"그럼 더 좁아지네, 아, 푸 베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자 이 곰이, 푸 베어이며, 위니 더 푸이며, 피ㅡ친(피글렛의 친구)이며 래ㅡ동(래빗의 동료)이며, 북ㅡ발(북극의 발견자)이며, 이ㅡ위이자 꼬ㅡ찾이(이요르에게 위안을 주는 친구, 꼬리를 찾아준 친구), 그러니까 푸가 말이야, 너무나 영리한 말을 해서, 크리스토퍼 로빈은 입을 헤벌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푸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는데," (p126)

보물창고

"그거게. 그러니 더 안 되지. 아, 푸 곰아,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바로 그때, 이 곰, 푸 곰이라 하기도 하고 위니 더 푸라고 하기도 하는, 또 피친(피글렛의 친구)이기도 하고 토동(토끼의 동무), 극발자(극을 발견한 자), 이위자(이요르를 위로하는 자) 및 이꼬자(이요르의 꼬리를 찾아 준 자)이기도 한 푸가 예상치도 못한 너무도 기발한 생각을 해냈어. (p163)

현대지성

그건 특별한 필통이었어. 곰을 뜯하는 "기역"자가 새겨진 연필들과, 도움을 주는 곰을 뜻하는 "디귿 기역"자가 새겨진 연필들과, 용감한 곰을 뜻하는 "이응 기역"자가 새겨진 연필들이 있었지. (p138)

보물창고

선물은 특별 제작된 필통이었는데, 그 안에는 여러 종류의 연필이 가득 담겨 있었어. 우선 '곰(Bear)'을 의미하는 B가 새겨진 연필, '도움을 주는 곰(Helping Bear)'를 의미하는 HB 연필, '용감한 곰(Brave Bear)'를 의미하는 BB연필이 있었고.." (p179)

어떤가요? 뭔가 차이가 좀 느껴지나요?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게는 보물창고 쪽이 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오리지널 컬러 일리스트에 아기 호랑이 "티거" 그리고 원작 동화 2권 "위니 더 푸"와 "푸 코너에 있는 집"을 모두 보고 싶은 분께는 현대지성의 <곰돌이 푸 이야기 전집>을, <위니 더 푸>만 있고 원작 삽화 등은 없지만 아이들과 가볍게 푸를 만나고 싶은 분께는 보물창고의 <곰돌이 푸>를 추천합니다. 물론 어느 쪽의 푸든 푸는 항상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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