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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ㅣ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13
앨런 알렉산더 밀른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8년 10월
평점 :
위니 더 푸가 만든 아침 운동 노래가 있습니다. 우선 두 팔을 위로 쭉 펴구요. 주문을 외워요. "트랄ㅡ랄ㅡ라 트랄ㅡ랄ㅡ라" 다시 아래로 손이 발에 닿도록 몸을 숙이며 "트랄ㅡ랄ㅡ라 트랄ㅡ랄ㅡ라". 윽, 배가 나와서인지 손이 발에 안닿아요. 아직 푸 만큼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길. 어쩌면 좋지 라는 생각보단 너무 아픈데 라고 체념한 후 다시 자리에 앉아 푸와 크리스토퍼 로빈의 이야기를 들어요. 운동은 조금 후에 다시. "럼ㅡ텀ㅡ텀ㅡ티들ㅡ엄" 당장은 우리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꿀과 연유를 무척 좋아하는 본인 피셜 '머리가 나쁜 곰' 위니 더 푸는 똑똑하진 않아도 다정하고 상냥한 친구입니다. 친구들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좋아하는 꿀단지도 양보할 줄 알아요. 물론 들고가는 길에 누굴 주려 했는지 까먹고 뚜껑만 열지 않는다면요. 아주아주 몸집이 작아서 크리스토퍼 로빈의 주머니에 숨어 학교에 따라갈 수도 있는 피글렛은 수줍고 내성적인 아기 돼지에요. 워낙 소심해서 단지를 뒤집어쓴 푸를 헤팔룸푸로 오해하는 소동도 벌이지만 대체로 의리있는 녀석이지요. 이요르는 성실하게 우울한 친구입니다. 매일매일의 기분이 축축 처져있죠. 그의 명언(?)이랄까요. "잘 지내는 게 뭔지 한참 잊고 지낸 것 같아"(p50)에 저도 같이 고개를 끄덕끄덕. 똑같은 일상이 이어지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죠. 이요르는 곰돌이 푸 속 가장 어른 같은 캐릭터에요. 읽을 수록 그의 불평과 우울함에 정이 갑니다. 그래 맞아. 꼭 나 같아요. 자랑은 아니지만요. (어쩐지 수줍 :)) 세상에서 푸를 가장 사랑하는 것만 같은 사랑스러운 인간 친구 크리스토퍼 로빈, 앞문을 막아버린 푸의 뒷발을 수건걸이로 사용할 줄 아는 이제 보니 아주 마음 넓은 친구였던 래빗, 똑똑한 채 하기 좋아하는 올빼미, 자신을 골탕먹인 친구들에게 영리한 대응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엄마 캥거와 말썽쟁이 루 그 모든 친구들이 있는 이야기가 읽을 수록 새롭습니다. 지금까지 사랑받고 영화로 만들어지고 다양한 출판사에서 여러 모양새로 번역되는 이유도 새삼 알 것 같아요. 천진난만하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단순한 푸의 낙천적인 사고와 고민없음이 책을 읽는 내내 부러웠거든요. 푸를 따라 피글렛의 손을 잡고 크리스토퍼 로빈의 파란대문 집 앞으로 달려가고 싶었어요. 로빈의 풍선을 빌려 저도 푸처럼 나무 꼭대기까지 날아가고 팠구요. 북극을 찾아 도시락과 따끈한 커피를 싸서 '팜험'도 떠나고 싶어요. 용감하게 물에 빠져서 루처럼 어푸어푸 나 수영 잘 하죠? 하고 소리치는 황당무개한 일도 벌려보고 무엇보다 그냥, 그냥 막 숲을 달려보고 싶습니다. (생각만 하고 안움직이는 건 뭐람 ㅎㅎ) 애시다운 숲을 뛰어노는 아들을 보고 이 책을 쓴 앨런 알렉산더 밀른의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아마 그도 크리스토퍼 로빈처럼 아이들처럼 그렇게 걱정없이 신명나게 뛰어놓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읽으니 푸와 친구들이 더욱 애틋해요.
그리고 이 책이요. 번역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번역가님이 누군가 보니 전하림님. 작년에 감동적으로 읽은 <브로크백 마운틴>의 역자님이시더라구요! 참고로 브로크백 마운틴의 번역도 무척 아름답다는 사실! 제가 읽어본 푸는 현대지성의 <곰돌이 푸 이야기 전집> 뿐이라 비교대상이 적긴 하지만 또 저는 영어를 못해서 원작과 대조하는 지성을 발휘할 수도 없지만 전하림님의 곰돌이 푸는 꽤 재치가 있고 음률이 살아있달까요. 가독성이 좋아요. 예를 들어 푸와 크리스토퍼 로빈이 우산을 뒤집어 쓰고 피글렛을 찾아가기 직전의 장면이랑 푸가 로빈에게 필통을 선물 받는 장면인데요.
현대지성
"그럼 더 좁아지네, 아, 푸 베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자 이 곰이, 푸 베어이며, 위니 더 푸이며, 피ㅡ친(피글렛의 친구)이며 래ㅡ동(래빗의 동료)이며, 북ㅡ발(북극의 발견자)이며, 이ㅡ위이자 꼬ㅡ찾이(이요르에게 위안을 주는 친구, 꼬리를 찾아준 친구), 그러니까 푸가 말이야, 너무나 영리한 말을 해서, 크리스토퍼 로빈은 입을 헤벌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푸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는데," (p126)
보물창고
"그거게. 그러니 더 안 되지. 아, 푸 곰아,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바로 그때, 이 곰, 푸 곰이라 하기도 하고 위니 더 푸라고 하기도 하는, 또 피친(피글렛의 친구)이기도 하고 토동(토끼의 동무), 극발자(극을 발견한 자), 이위자(이요르를 위로하는 자) 및 이꼬자(이요르의 꼬리를 찾아 준 자)이기도 한 푸가 예상치도 못한 너무도 기발한 생각을 해냈어. (p163)
현대지성
그건 특별한 필통이었어. 곰을 뜯하는 "기역"자가 새겨진 연필들과, 도움을 주는 곰을 뜻하는 "디귿 기역"자가 새겨진 연필들과, 용감한 곰을 뜻하는 "이응 기역"자가 새겨진 연필들이 있었지. (p138)
보물창고
선물은 특별 제작된 필통이었는데, 그 안에는 여러 종류의 연필이 가득 담겨 있었어. 우선 '곰(Bear)'을 의미하는 B가 새겨진 연필, '도움을 주는 곰(Helping Bear)'를 의미하는 HB 연필, '용감한 곰(Brave Bear)'를 의미하는 BB연필이 있었고.." (p179)
어떤가요? 뭔가 차이가 좀 느껴지나요?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게는 보물창고 쪽이 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오리지널 컬러 일리스트에 아기 호랑이 "티거" 그리고 원작 동화 2권 "위니 더 푸"와 "푸 코너에 있는 집"을 모두 보고 싶은 분께는 현대지성의 <곰돌이 푸 이야기 전집>을, <위니 더 푸>만 있고 원작 삽화 등은 없지만 아이들과 가볍게 푸를 만나고 싶은 분께는 보물창고의 <곰돌이 푸>를 추천합니다. 물론 어느 쪽의 푸든 푸는 항상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