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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ㅣ 새소설 1
배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9월
평점 :
백민석 작가님은 온갖 곳에 이 책을 들고 다녔다는데 그럼 아마도 화장실에도 가져가서 읽었을텐데 나는 비위상 그냥 화장실을 참고 읽었다. 저녁도 굶은 상태로. 이 책을 끊고 밥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짜증이 나서 밥 먹자는 동생에게도 버럭버럭 했다. 퇴근 후에 학교를 다니고 있는 동생이 나오라고! 빽 하고 맞고함을 질러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시험기간이라 예민하다는 걸 잊었다. 젠장. 먹고 들어오라고 할걸. 차려주는 밥도 마다할만큼 나는 시트콤이 고팠다.
1. 사람들이 너를 내버려두면 삶은 아름다울 거야 ㅡ 찰리 채플린
연아의 경우엔 사람들일 필요가 없다. 엄마 한 명만 그녀를 내버려둔다면 그녀 인생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전교 1등 이연아. 이제껏 한번도 엄마에게 반항해 본 적이 없다. 시키는대로 공부했고 버티라는만큼 책상에 붙어있었다. 몇 십개의 학원을 뺑뺑이 치며 분초를 엄마의 공부 계획표대로 성장하는 동안 공부 밖에 모르는 벌레 같은 인간으로 자라버렸다. 그리고 엄마는 이연아를 서울대에 보내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다. 이연아를 포르말린에 박제시켜야 한대도 아이가 서울대만 갈 수 있다면 엄마는 드럼통 안으로 이연아를 빠트렸을 거다. 그래서 이연아는 달아난다. 맨발로 거리를 뛰고 신호등 없는 6차선의 거리를 돌진한다. 죽음이 코 앞인데 오히려 웃음이 터진다. 아이는 이미 미친 것 같다.
2. 결국 모든 것은 우스개다ㅡ 찰리 채플린
상담실 안으로 숨어든 비슷한 키에 시야가 꼭 알맞은 아이들. 남자애는 바지를 풀어내렸고 여자애는 교복 상의 단추를 연다. 곧장 누군가가 들이닥치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테이블 아래로 숨지 않고 상담실 쇼파에서 거사를 치뤘을 거다. 아이들의 못다한 일들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다음 타자로 들어온 남녀 교사가 입을 맞추고 옷을 벗는다. 이 과감한 어른들도 그러나 바삐 옷을 주워들어 테이블보를 들어올린다. 연아의 담임이 연아의 엄마와 함께 상담실로 들어온 탓이다. 젊고 헐거벗은 남녀 교사가 어리고 헐거벗은 고등학교 1학년 제자들과 테이블 아래서 시선이 마주친다. 증오하듯 서로를 보지만 곧 비좁은 테이블에 함께 숨기 위해 남남 여여로 끌어안고 포개지며 눕는다. 뭐 이런 병딱 같은 시트콤의 시작은 내가 재미없게 써서 그렇지 실은 포복절도다. 미쳤다 미쳤어를 염불처럼 읊으며 웃고 또 웃었다. 그리고 끝의 끝에 다다를 때까지 이 황당했던 시작과 결말이 어떻게 이어질지 어째서 표지가 이런 모양인지 실은 감도 잡지 못했다. 십대들의 성, 원조교제, 무면허 운전, 각종 비행 , 일등 제일주의, 이미 사회에 찌들어 내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지나쳤을지 모를 기타등등의 이야기가 개별적인 단편일 줄 알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연결된다. 시작과 중간과 끝이 돌고 돌아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결국 모든 게 다 우스개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웃다가 울었다.
3.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러므로 나는 멀리 보려 노력한다 ㅡ 찰리 채플린
"아..... 왜 살지?”
연아는 나비를 쫓으며 놀고 있는 개를 구경하면서 생각했다.
사람들은 뭘 하면서 사는 걸까?
왜 그걸 하면서 사는 걸까?
왜 그렇게들 사는 걸까?
왜 사는 걸까? (p99)
어느만큼 멀리에서 본걸까. 대략 8854km, 찰리 채플린의 영국에서부터 작가 배준의 제주도 고향만큼의 거리일까. 그 정도 거리에서 대한민국과 십대를 보면 이런 희극이 또 이런 비극이 쓰여질 수 있는걸까. 배준의 시야를 가늠해보려 애쓰다 픽 웃고 말았다. 나 같이 의미찾고 뭐 찾고 하는 독자를 위해 찰리 채플린이 또 일찍이 답을 내놨던 것이다. "왜 굳이 의미를 찾으려 하는가? 인생은 욕망이지, 의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