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중심은 나에게 둔다 - 싫은 사람에게서 나를 지키는 말들
오시마 노부요리 지음, 황국영 옮김 / 윌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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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일희일비하는 나! 너무 지쳤어요"라고 성토하는 많은 사람들. 어? 저 사람 표정이 왜 저렇지? 혹시 내 말에 기분이 나빴나? 또는 나한테 왜 이런 말을 하지? 혹시 나 무시하나? 라는 고민을 물론 나도 할 때가 있다. 대체로는 오해겠지 아님 혹시 나 자의식 과잉? 하며 픽 웃고 말지만 하루가 다 지날 때까지도 그 생각에 골몰하며 끙끙 앓을 때도 없지는 않다. 감정적 과습 내지는 범람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습윤지 같은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발생할 경우 내 안에서 잘못을 파악하고 해법을 찾으려 애쓴다. 자존감을 높이고 나를 아끼는 각종의 트레이닝법으로 무장하려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자존감이란 단어가 이 책에선 한번도 등장하지를 않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등장했대도 아마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비중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기억 못하는 걸거다. 틀림없어.

25년간 8만 여명을 상담한 심리 전문가 오시마 노부요리는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자존감이나 자기긍정이 아니라 "뇌 네트워크"라고 말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보호자와 함께 링크되는 우리 뇌의 네트워크가 태생적으로 또는 보호자와의 잘못된 관계로 인해 지나치게 긴장도가 높게 형성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네트워크의 감도가 높은 사람들은 네트워크의 하위에 서서 타인의 스트레스까지 모두 떠안을 확률이 높은데 그 사례로 든 것이 바로 100마리의 개미들이었다. 100마리의 개미를 연구했더니 게중 20마리만 열심히 일하고 60마리는 일하는 척만 하고 나머지 20마리는 전혀 일을 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독특한 해석이 나온다. 뇌 네트워크를 통해서 일하는 개미의 스트레스가 60마리의 일하는 척하는 개미들을 거쳐 일하지 않는 개미들로 전달되어 일하는 개미들은 더 활발하게 일을 하고 일하지 않는 개미들은 그들 대신 짊어진 스트레스로 계속해 일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내가 잘나서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네가 못나서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이건 그냥 우리 뇌의 네트워크 작용에 의한 결과다 뭐 그런 내용인데 대체 뭘까? 이 독특한 발상은? 눈치보는 나의 내면의 문제가 아니라 내 눈치 보라고!! 강력하게 뇌 네트워크로 정보를 쏟아내는 상대의 문제일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결심한 다이어트조차 실은 내 욕망의 반영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이 정도 뚠뚠은 괜찮다가 솔직한 마음인데 그 마음을 덮어버릴만큼 강력한 뇌 네트워크로 다이어트를 바라는 친구의 욕망과 스트레스에 반사 감정이 작용한다. 내게 스트레스를 전달한 친구는 다이어트에 박차를 가하고 나는 (하고 싶지도 않은) 다이어트를 실패했다는 좌절감에 몸서리치며 우울해한다는 거다. 누구는 '어디서 남탓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내 탓만 하다 당당하게 남탓 하는 책을 보니 신선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분노와 불안이 실상 타인의 감정에 링크된 것뿐이라는 상상은 그 자체로 톡톡한 안심을 준다. 사실인지 아닌지 나로서는 판단이 안되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해법은 간단해서 뇌 네트워크를 끊거나 긍정적으로 반사시키는 등의 습관을 키우면 되는데 상세한 방법은 책으로 만나보는게 더 좋을 것 같다. 책으로 영혼을 구원받는다거나 심리적 한계를 극복하게 됐다는 마법 같은 결말은 믿지 않지만 색다른 유형의 심리 에세이므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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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의 생물학 여행 - 지구의 생명 속으로 떠나는 영국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
헬렌 스케일스 지음, 이충호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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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지구의 생명 속으로 떠나는 영국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입니다. 이벤트성 일회 강연이 아니라 1825년에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진 세계적으로 꽤 인기있는 강연이래요. 대중과 젊은이를 위한 강연이라고 되어있지만 실제론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인 것 같고 책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군요. 첫번째 책은 <열세 번의 시공간 여행> 천문학 강연 모음집이었대요. 어린이 친구들에겐 역시 천문학의 인기가 최고였던거겠죠? 

영국왕립연구소의 다양한 강의 중 생물학은 크게 인기가 있는 과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19세기가 끝날 때까지 주제가 생물학이었던 강의가 꽤 희소했다니까요. 처음엔 이해가 안갔어요. 다윈의 진화론처럼 대중들에게 친숙하고 흥미로운 소재가 가득한데 어째서 여러 강의가 성사되지 않았던걸까 하구요. 진화론이 1991년에 가서야 처음으로 다뤄졌다는 사실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강의 후 반응으로 계속해 조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요. 자그마치 1991년에!! "하지 축제 같은 이교도 축일에 맞춰 강의를 열고, 이름도 '왕립연구소 하지 강의'"로 하라는 제안을 받았을 정도라니 원. 그 시절 진화를 강의했던 리처드 도킨스 박사는 "이 강연들은 순록과 선물, 겨우살이 보다 결코 더 비기독교적인 것은 아닙니다"(p148)라고 응대한 모양인데 이 밖으로도 여러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아서 호기심 반 아쉬움 반이었어요. 페이지의 한계로 리처드 도킨스 박사의 얘기는 여기서 딱 끝이 났거든요. 줄리언 헉슬리 박사는, 어쩐지 이름이 낯익지 않습니까? 헉슬리 헉슬리 들어는 봤는데 분명.. 하고 강연자 소개를 보니 어이쿠야, <멋진 신세계>를 쓰신 올더스 헉슬리의 형님 되시더군요. 물론 전 <멋진 신세계>를 아직 못읽어봤지만요. 부모님이 형제를 키우고 많이 뿌듯하셨겠어요 ㅎㅎㅎ 아래는 과알못인 저도 충분히 이해가 갈만큼 쉽고 재미나게 펼쳐진 강의들의 목록입니다.

"동물의 어린 시절, 동물의 서식지, 곤충의 습성에 관해, 희귀한 동물과 야생 동물의 멸종, 동물은 어떻게 이동하는가, 동물의 행동, 동물의 언어, 우주에서 성장하기, 우리 뼈에 숨어있는 역사, 지구의 끝: 남극의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3억 년 동안의 전쟁."

강의 내용을 백퍼센트 따온 것은 아니고 편집자가 적절하게 추려서 정리했습니다. 인기가 이해가 갈만큼 진행되는 하나하나의 강연이 모조리 환상적이고 재치있고 즐거웠어요. 문과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갖가지 소재들로 생물학자님들이야 말로 판타지 작가나 SF 작가가 되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리고 가볍게 생물학을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전 <열세 번의 시공간 여행>도 곧 만날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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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후작 에놀라 홈즈 시리즈 1
낸시 스프링어 지음, 김진희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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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시리즈를 탐독하지 않아서 그에게 실제로 여동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이 책 <사라진 후작>의 주인공 에놀라 홈즈는 셜록과 마이크로프트 형제의 여동생입니다.
아주 나이차가 많이 나고 어머니가 달라서 그닥 친근한 사이는 아니지만 말이죠.
에놀라는 자신이 집안의 수치스런 존재라 오빠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레이디 유도리아 버넷 홈즈가 자신의 14살 생일에 사라지지 않았다면
결코 먼저 용기내어 그들에게 연락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레이디 유도리아 버넷 홈즈가 누구냐구요?
 
상속권이 없는 자신과 어린 딸을 위해 셜록과 마이크로프트 형제로부터 돈을 횡령한 여자죠. 성장기 딸의 허리 사이즈를 줄이기 위해 코르셋을 입히는 대신 헐렁한 반바지를 허락한 여자구요. 딸을 교양 있는 어린 숙녀로 만들려고 기숙사에 보내는 대신 펜델 홀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는 모든 책 셰익스피어와 새커리, 영국의 여권운동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에세이를 읽게 하고 수영과 자전거를 가르친 여자입니다. 딸의 생일에 암호책을 선물이랍시고 남기고 사라져버린, 그래서 누군가는 비정하다고 욕할지도 모를 이 여자가 ,
바로 에놀라 홈즈의 어머니입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1888년의 영국에서 살아남기에는 지나치게 앞선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에놀라 홈즈 또한 집을 나섭니다. 순종을 강요하는 마이크로프트의 눈을 피해, 여자의 뇌를 땅콩 크기 정도로 가늠하는 것 같은 셜록을 등지고서요. 내 말을 들어! 넌 기숙사에 가서 교양머리를 배워야 해! 하는 큰오빠에  대항해 코르셋과 허리받이 안에 어머니가 안배한 돈과 가출물품들을 숨긴 채 달려가는 에놀라의 모습은 어찌나 통쾌하던지요.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은 아마 영국에도 있는 모양이지요? 두 형제의 앞마당 런던으로 향하는 길. 에놀라 홈즈가 맞이한 소공자의 실종사건! 이 때부터 에놀라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해요. 홈즈가에 흐르는 탐정의 피가 끓어오른달까요. 남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어머니의 인형처럼 키워진 소공자 터키를 우연처럼 마주한 순간엔 에놀라 홈즈의 허리에 칼이 들이밀어져 있었습니다. 에놀라를 따라다니는 것만 같은 말썽들, 셜록과는 또다른 방식으로 영리하게 사건을 파헤치는 14살 소녀의 대담함에 주먹을 불끈 쥐었어요. 처음엔 어머니와의 조우만이 궁금했을 뿐이지만 나중에는 이 친구가 얼마나 더 대단하게 성장할지, 여성에게 주어진 영국 사회의 갖가지 편견과 억압을 벗어던지고 성큼 뛰어오를 높이를 알고 싶더군요. 에놀라의 남은 모험 모두에 힘껏 응원을 보냅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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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
무레 요코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김현화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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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지도 사랑스러운 애묘인이라니요♡
<카모메 식당>과 <모모요는 아직 아흔살>의 작가 무레 요코씨를 그야 아주 다정다감하고 상냥한 여성으로 상상해 왔지만요. 이렇게 엉뚱발랄 하고 귀여운 분이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외할머니 모모요의 남다른 깜찍함과 동물에 대한 애호를 고스란히 닮은 모습이었어요. 조손이 똑닮은 자매 같을 정도에요 ㅋㅋ

표지의 아주 작은 눈, 더블더블한 몸, 줄무늬가 호사스런 뚠뚠이 고양이는 이름이 시마짱인데요. 무레 요코씨가 키우는 고양이가 아니라 종종 찾아와 밥을 먹고 가는 길고양이에요. 무레 요코씨 댁의 반려묘 시이가 낯을 가리기 때문에 녀석이 없는 틈에 찾아와 시이가 남긴 밥을 쓱싹 먹고 사라지지요. 남긴 걸 준다고 해서 편견 갖지 않기! 시이가 정량 보다 작은 고양이라 남은 캔샤료에 새 캔을 따서 함께 주는 거랍니다. 시이가 먹는 캔은 하루에 하나, 시마짱이 먹는 캔은 네 개에서 여섯 개 사이. 결코 차별한다고 할 수 없어요. 오죽하면 시마짱이 온 뒤로 캔 구입비만 10만엔을 찍어을까요. 인터넷 사이트의 골든 회원이 되었다는 말에 작가님 수입이 빵빵하기를 빌어 드렸습니다. 고양이들 먹이려면 잘 버셔야 해요.

처음엔 시마짱과 시이의 얘기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애묘인이면서 딱 잘라 고양이에게만 관심 가진 사람은 잘 없는 것 같아요. 무레 요코씨도 강아지와 곰, 물개, 쥐, 원숭이 등의 각종 동물들을 좋아해요. 동물 관련 프로그램, 다큐, 사진 모으기가 취미구요. 쥐를 보러 먼데 설치류 전시회를 찾거나 원숭이 동물원에서 원숭이와 악수하기 위해 줄을 서기도 한답니다. 판다를 보려고 몇 번이나 줄을 서던 모모요씨와 아주 똑같이요. 아기 생쥐의 핑크빛 뽀솜함에 감탄하는 마음에는 도무지 공감할 수 없었지만 생쥐를 아이돌 팬처럼 좋아하는 그 모습만큼은 무지무지무지 귀여웠어요. 엄마뻘 인생 선배님인데도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고 싶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그 밖으로도 사료를 받으면 꼭 다섯알을 남겨뒀다가 자기 전에 먹는 녀석(비매견 무화가 뱉어놓는 녀석 에피소드에선 코가 찡끗) 등 등 따뜻하고 신기하고 귀염뽀짝한 동물 친구들의 얘기가 잔뜩 나오니까요.  동물을 좋아하고, 동물들과 대화하는 걸 즐기고, 무엇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애묘인들은 이 책 반드시 찜콩 하시길 바래요.  표정도 마음도 해실해실, 순식간에 무레 요코씨와 시마짱 시이에게 반하게 될 거라 장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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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의 세계
듀나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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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포함해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봤자 우린 모두 우연의 파도 위에 생긴 거품일 뿐이다.
거대한 야망을 품은 가볍고 하찮은 거품들.
그래도 그 거품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지." (p229)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초능력자가 되었다?! 원자력 발전소처럼 무궁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배터리, 배터리의 에너지를 끌어쓰는 염동력자와 정신감응자, 배터리의 움직임을 적으로부터 은폐할 수 있는 최상위권의 정신감응자 마법사들. 이런 초능력자들이 팩을 형성해 날뛰는 어지러운 대한민국 속 민트팩은 국가 초월 대기업 LK에 항전하며 알 수 없는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민트는 누구인가? 민트팩을 구성하는 의문의 인물들은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가? LK가 비밀리에 연구 중인 과제를 해체하여 민트팩이 얻으려는건 또 무엇인가? 시작부터 끝까지 의문이었고 놀람의 연속인 SF 소설을 소개한다. <민트의 세계>, 작품만큼이나 미스터리한 작가 듀나의 6년만의 신간이다. 

정신감응력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지식을 고스란히 스캔하는 게 가능해진 세상. 아이들은 더는 공부하려는 목적으로 학교를 가지 않는다. 배터리의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물리력 또한 상상초월이라 과학자의 역할이 유명무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선 무인 우주선을 배터리의 힘만으로 달까지 날려보냈다. 정상이 아니다. 어딘가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대한민국 속에도 악당은 있다. LK는 가난한 초능력자 아이들을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사육하며 감금, 집단화 시킨다. 스스로를 초싸이언인 정도로 생각하는 LK의 회장은 새로운 배터리를 원한다. 평범한 인간이어선 안되겠기에 각종의 동물실험도 행해진다. 돼지와 개, 박쥐 등 등. 처음엔 여기 LK의 타도에 소설의 목적이 있는 줄만 알았다. 반전은 LK 회장이 뭔짓을 하든 곧 있으면 지구종말이라는 것. 쫑! 끝! 디 엔드! 

배터리들은 살아있는 핵폭탄이다.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들이 계속계속 증폭한다. 결국은 한 명 한 명이 터져나갈 것이고 지구는 끝장난다는게 학자들의 전망이다. 과학자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다름 아닌 사춘기 아이들 말이다. 북한군도 무서워한다는 중2병. 수험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더니 대신에 종말 스트레스가 넘어온 세상에서 내일 지구가 끝난다고? 오케이! 사과나무 개박살 내고 근방을 불로 싸질러 버리겠다를 넘어 폭탄 같은 자신의 몸을 끌어안고 LK로 달려가 펑펑 터져죽는 아이들이 있다. 어차피 죽는 거 화끈하게 가겠다는 그들의 기치 앞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할렘화 된 인천에 모인 요즘 것들 중엔 그 녀석 민트도 있었다. LK의 특수학교에서 달아난 반항아. 의문의 팩을 결성해서 LK의 실험실 속 동물들을 구출하고 이후로도 꾸준히 LK에 대항하다 하루 아침에 몸 속에서부터 불이 붙어 학교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소녀. 대체 그 소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를 2049년 이후를 살아가는 어느 전지적 작가가 차례차례 의문을 해소시키며 재구성 해준다.

무척 기발하고 즐거운 상상초월의 SF 판타지이다. 초반 상상력을 총동원해도 세계가 잘 구성되지 않는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어느 순간 동화 같고 어느 시대에는 신화가 됐을 이야기들이 매우 사랑스럽다. 한국을 배경으로 해서 가깝게 느껴졌고 한국이라 상상이 어렵기도 했던 2049년. 작가는 새로운 세계를 이룩하는 청년들을 얘기하지만 난 새세계가 도래하기까지 불안하고 초췌한 상태에서도 구세계를 유지해나간 어른들에 더 마음이 갔다.  누구는 어리석다 할지 몰라도 내일을 예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아이를 낳고 학교에 보내는 사람들. 여전히 즉석밥을 데워먹고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9시까지 출근을 하고 또 퇴근하는 사람들. 누구를 무언가를 책임지는 사람, 바로 어른 말이다. 그 어른이 있었기에 무민 에코팩을 들고 영화도 보러 가던 아이가 우주까지 꿈을 펼칠 수 있었던 게 아닐까?무민 에코백이라니.. 토베 얀손은 핀란드의 이 트롤 녀석이 지구 종말까지 살아남을 줄은 꿈에서도 생각 못했겠지?사과나무를 심는 스피노자들과 콩알탄처럼 콩콩 터져나가는 칼 세이건들이 있는 세상, 민트의 세계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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