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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의 세계
듀나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평점 :
"나 자신을 포함해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봤자 우린 모두 우연의 파도 위에 생긴 거품일 뿐이다.
거대한 야망을 품은 가볍고 하찮은 거품들.
그래도 그 거품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지." (p229)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초능력자가 되었다?! 원자력 발전소처럼 무궁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배터리, 배터리의 에너지를 끌어쓰는 염동력자와 정신감응자, 배터리의 움직임을 적으로부터 은폐할 수 있는 최상위권의 정신감응자 마법사들. 이런 초능력자들이 팩을 형성해 날뛰는 어지러운 대한민국 속 민트팩은 국가 초월 대기업 LK에 항전하며 알 수 없는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민트는 누구인가? 민트팩을 구성하는 의문의 인물들은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가? LK가 비밀리에 연구 중인 과제를 해체하여 민트팩이 얻으려는건 또 무엇인가? 시작부터 끝까지 의문이었고 놀람의 연속인 SF 소설을 소개한다. <민트의 세계>, 작품만큼이나 미스터리한 작가 듀나의 6년만의 신간이다.
정신감응력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지식을 고스란히 스캔하는 게 가능해진 세상. 아이들은 더는 공부하려는 목적으로 학교를 가지 않는다. 배터리의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물리력 또한 상상초월이라 과학자의 역할이 유명무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선 무인 우주선을 배터리의 힘만으로 달까지 날려보냈다. 정상이 아니다. 어딘가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대한민국 속에도 악당은 있다. LK는 가난한 초능력자 아이들을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사육하며 감금, 집단화 시킨다. 스스로를 초싸이언인 정도로 생각하는 LK의 회장은 새로운 배터리를 원한다. 평범한 인간이어선 안되겠기에 각종의 동물실험도 행해진다. 돼지와 개, 박쥐 등 등. 처음엔 여기 LK의 타도에 소설의 목적이 있는 줄만 알았다. 반전은 LK 회장이 뭔짓을 하든 곧 있으면 지구종말이라는 것. 쫑! 끝! 디 엔드!
배터리들은 살아있는 핵폭탄이다.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들이 계속계속 증폭한다. 결국은 한 명 한 명이 터져나갈 것이고 지구는 끝장난다는게 학자들의 전망이다. 과학자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다름 아닌 사춘기 아이들 말이다. 북한군도 무서워한다는 중2병. 수험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더니 대신에 종말 스트레스가 넘어온 세상에서 내일 지구가 끝난다고? 오케이! 사과나무 개박살 내고 근방을 불로 싸질러 버리겠다를 넘어 폭탄 같은 자신의 몸을 끌어안고 LK로 달려가 펑펑 터져죽는 아이들이 있다. 어차피 죽는 거 화끈하게 가겠다는 그들의 기치 앞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할렘화 된 인천에 모인 요즘 것들 중엔 그 녀석 민트도 있었다. LK의 특수학교에서 달아난 반항아. 의문의 팩을 결성해서 LK의 실험실 속 동물들을 구출하고 이후로도 꾸준히 LK에 대항하다 하루 아침에 몸 속에서부터 불이 붙어 학교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소녀. 대체 그 소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를 2049년 이후를 살아가는 어느 전지적 작가가 차례차례 의문을 해소시키며 재구성 해준다.
무척 기발하고 즐거운 상상초월의 SF 판타지이다. 초반 상상력을 총동원해도 세계가 잘 구성되지 않는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어느 순간 동화 같고 어느 시대에는 신화가 됐을 이야기들이 매우 사랑스럽다. 한국을 배경으로 해서 가깝게 느껴졌고 한국이라 상상이 어렵기도 했던 2049년. 작가는 새로운 세계를 이룩하는 청년들을 얘기하지만 난 새세계가 도래하기까지 불안하고 초췌한 상태에서도 구세계를 유지해나간 어른들에 더 마음이 갔다. 누구는 어리석다 할지 몰라도 내일을 예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아이를 낳고 학교에 보내는 사람들. 여전히 즉석밥을 데워먹고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9시까지 출근을 하고 또 퇴근하는 사람들. 누구를 무언가를 책임지는 사람, 바로 어른 말이다. 그 어른이 있었기에 무민 에코팩을 들고 영화도 보러 가던 아이가 우주까지 꿈을 펼칠 수 있었던 게 아닐까?무민 에코백이라니.. 토베 얀손은 핀란드의 이 트롤 녀석이 지구 종말까지 살아남을 줄은 꿈에서도 생각 못했겠지?사과나무를 심는 스피노자들과 콩알탄처럼 콩콩 터져나가는 칼 세이건들이 있는 세상, 민트의 세계는 그런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