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독자의 여행 - 형과 함께한 특별한 길
니콜라스 스파크스 지음, 이리나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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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니컬러스 스파크스는 다섯 아이의 아빠입니다. 각각 열 두 살, 열 살, 네 살된 아들이 있구요. 곧 세 살이 되는 쌍둥이 공주님들도 있어요. 둘째 아이는 자폐랄지 발달장애랄지 아직 병명이 확실치 않은 어려움을 안고 있어 보통 아이들의 배는 힘이 듭니다. 오죽하면 장인어른이 애들을 봐주러 왔다가 사위한테 그러겠어요. "부디 행운이 함께하기를. 자네한텐 그거라도 있어야 살 수 있을 것 같네." 다행이 완벽한 아내이자 어머니로서는 더욱 완벽한 캐시가 있어 일상이 그럭저럭 흘러가는 것 같아요. 종종 아내가 성자인지 그도 아니면 정신병자인지 헷갈리기는 하지만요. 유머입니다 ㅎㅎ

분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며 글쓰기와 다섯 아이들 돌보기에 빠져사는 니키가 남미, 에티오피아, 호주, 인도, 노르웨이, 캄보디아 등의 세계여행에 오른 건 2002년이었어요. 집에 도착한 우편 책자 한 권이 계기가 됐죠. 많이 자야 다섯 시간 보통은 세 시간도 채 못자는 남자의 일상에 내 생활이 있을리 만무. 아이들 때문이라도 3주 동안 지속되는 여행은 무리였는데 어쩐 일인이 니키의 아내는 남편과 형이 함께 하는 이 여행을 허락합니다. 캐시뿐만이 아니었어요. 형 미카에게는 이제 겨우 생후 두 달 된 딸이 있었는데 형수님도 거뜬히 이 여행을 수긍해요. 저는 잠깐 책을 덮고 속물적으로 생각했어요. '남편이 영화 "노트북"의 원작자잖아. 벌어놓은 돈이 어마어마할텐데 애들이야 뭐 보모도 있을테고 한 3주 허락 못할 것도 없지' 하구요. 설마하니 한 사람의 일생에 이토록 아픈 여러가지 사연이 숨어있을 줄을 미처 예상못한 추측이었음을 부끄럽게 또 계면쩍게 생각합니다.

여행 내내 추억하는 어린 시절 형제의 얘기가 재미나요. 우리 속담에 한 어미 자식도 아롱이 다롱이라고 하잖아요. 니키와 형 미카, 여동생 데이나가 딱 그렇습니다. 성격이 제각각인데다 개성이 뚜렷해서 6, 70년대 미국 분위기와 어울려 악동들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즐거움을 줍니다. 이야기가 언제나 유쾌한 것만은 아니어서 속도위반으로 너무 일찍 결혼한 학생 부부의 어려움을 직면할 때면 속상하기도 하고 화도 났어요. 부부싸움에 세 남매가 겁먹고 울 때나 피를 철철 흘릴만큼 다친 아이에게 반창고 하나 붙여주고 마는 장면 같은거요. 니키는 추억보정으로 웃으며 얘기하는데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는 저 아이들이 무탈하게 큰 건 순전히 운이었다는 생각밖에 안들었거든요. 사고뭉치 팔방미인 미카, 연년생으로 태어나 형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던 범생이 니키, 존재감은 없지만 감탄이 나올만큼 상냥한 데이나. 똘똥 뭉쳐 성장한 세 남매의 이야기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았는데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끊임없이 불행이 닥쳐들어요. 니키와 미카는 세 번이나 때를 달리한 상실을 경험합니다. 차례차례 어머니와 아버지, 데이나를 잃어요. 어떤 때는 사고였고 어떤 때는 병이었고 어떤 때는 원인도 불명이었어요. 각자 가정을 이루었지만 이들 형제의 원 가족은 이제 서로뿐. 아내들이 형제의 여행을 응원한데는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던 거에요.

페루 대성당의 구운 기니피그가 자리를 차지한 최후의 만찬 같은 여행 에피소드도 재미나지만요. 핏줄을 잃어버린 형제가 채 극복 못한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이 상처가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어떻게 회복해가는 중인지를 이야기하는 시간들이야 말로 이 여행의 진정한 묘미 같아요. 이 상처가 존재할 수 있는 나라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를 고민하던 시간 끝에서 마주한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도 애틋하구요. 물론 평생의 사랑이라던 캐시와는 2015년에 이미 이혼을 한 상황이었습니다만 이 책을 쓸 때의 마음은 진심이었을거라 믿어요. 2002년과 2015년의 간극이 그만큼 컸던 것 뿐. 오래 사랑하고 더욱 건강하면 좋겠습니다. 누구든 누구나가 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책을 덮으며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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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노래
미야시타 나츠 지음, 최미혜 옮김 / 이덴슬리벨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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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의 좋은 추억 중의 하나에요. 축제와 함께 진행됐던 합창대회. 이렇게 좋은 날에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했던 "꽃밭에서"를 불렀는데요. 꽃밭에서 하면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심는다는 얘기 밖에 몰랐던 저는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냐는 노래가 왜 그렇게 간질간질 하던지 노래만 하면 웃음이 터져서 혼났지 뭐에요.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음악 선생님한테 혼이 많이 났어요. 장난치려던 마음은 정말 없었는데 가랑잎만 굴러가도 웃음이 나는 소녀 감성을 저격 당했던 모양이에요. 물론 지금은 정훈희씨 "꽃밭에서"만 들으면 울지만요. 선생님 저도 이렇게 나이를 먹었습니다!

예전의 저처럼 영 어렵게 합창대회를 준비 중인 친구들이 있어요. 메이센여고 2학년생인 미케모토 레이와 그녀의 급우들인데요. 웃음이 터져서 큰일이야는 아니고 반대로 합창대회라니 진짜 싫다 왜 이런 걸 하는 거야 라고 비관하는 쪽이에요. 실은 메이센여고가 설립된지 얼마 안되어 도내에서 크게 인지도도 없고 1지망에서 떨어진 아이들이 후순위로 들어오는 학교이다 보니 분위기가 좀.. 패배주의에 빠져있달까요? 음악학교에서 떨어진 레이나 우동집 딸이지만 피아노를 치고 싶었던 치나츠나 소프트볼 에이스 투수였던 사키 등등 대다수의 아이들은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과정 상의 실패 또는 좌절로 스스로를 구겨진 빨래 더럽혀진 빨래라고 생각을 한답니다. 좌절감 한켠에는 실수로 이 바구니에 던져진 것뿐 난 다른 애들과 달라! 라는 생각도 없진 않구요. 다르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온 이상 내 인생은 끝이야라는 절망감에 절절한 거지요. 봄처럼 들뜨고 아름답고 눈부셔야 할 학창시절을 온몸 온마음을 꽁꽁 싸맨 채 아이들은 겨울처럼 흘려보내요. 친구조차 사귀지 않으면서요. 그렇게 아까운 2년의 시간을 다 채워갈 즈음 느지막히 시작된 합창대회와 마라톤 대회 그리고 졸업생을 위한 무대를 거치며 아이들은 겨울잠 자던 개구리처럼 꿈틀꿈틀 깨어나고 개굴개굴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가사처럼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고 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 개굴개굴 노래하는 일도 즐겁구나 그런 게 인생이구나 하고 깨달아가는 과정이 사춘기 소녀들의 감성과 함께 매우 잔잔하게 펼쳐져요. 이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청소년 시절엔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어느 새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저를 부끄럽게 만드는 여러 부모님들도 등장해 반성을 재촉해요.

<기쁨의 노래>는 성장소설답게 아이들의 모습이 반짝반짝 눈부신 책이에요.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아이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렇게나 긴 겨울을 보내고도 "우린 이제부터야" 하고 말할 수 있는 나이와 시간이 샘나더라구요. 아직은 내 인생도 여름의 어디 즈음이야 위안하며 책을 덮고 나니 어떤 노래라도 듣고 싶어 "꽃밭에서"를 틀었습니다. 여지없이 눈물이 뚝뚝. 그때로 돌아가 다시 한번 선생님께 혼이 나도 즐겁기만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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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지하철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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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장소경의 숨막히는 추격전을 펼쳐보였던 <장안 24시>의 작가 마보융이 돌아왔다. <용과 지하철>, 배경은 전과 다름없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인데 제목에서부터 추측이 되듯 이번에는 판타지 소설이다. 표지 속 용의 수염에 매달려 날아오르는 소년은 대장군 이정의 아들 나타다. 어리광쟁이지만 모험심이 강하고 군것질을 좋아하는 말썽꾸러기 소년은 공주 옥환을 따라 수도 구경을 나섰다가 장안 경제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지하룡들의 거처에 숨어들어간다. 철로 된 상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용이 끌어가는 지하터널의 세계. 장안의 사람들은 용들의 빠르고 거대한 운송력에 힘입어 장안을 세계 최대의 도시로 부흥시켰고 이를 위해 호구폭호(하필이면 이름까지 호구야)를 거슬러 오른 잉어가 용이 되는 순간 주술을 걸어 압박하고 잡아들이기를 서슴치 않는다. 푸르고 푸른 하늘을 높이 더 높이 날아올라야 할 용들은 햇빛 한점 들지 않는 터널에서 죽기 직전까지 사람과 물자를 실어나르고 죽어서도 거대 지하 동굴에 던져져 원한을 쌓는다. 용이 되기 위해 치러야 했던 억겁의 시간이 장안 지하기둥에 사슬로 묶였기에 용들은 역린을 떨치고, 똘똘 뭉친 역린의 집념이 뭉쳐 장안을 파괘할 악룡을 탄생시킨다. 달콤한 과자, 다정한 마음, 하늘과 자유에 대한 동일한 갈망으로 용들의 친구가 된 나타는 지하룡 막대사탕과 식탐이, 매화반점과 천둥을 설득해 장안을 구하려 하지만 용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인간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리 만무한 용들은 차라리 장안이 무너지길 바란다.

플랫폼에서 기다리면 뜨거운 콧김을 뿜는 지하룡이 칙칙 폭폭 달려오는 고대 중국의 장안, 소 힘줄로 프로펠러를 돌리는 비행기들이 하늘을 날고 잉어가 용이 되는 등용문에는 오늘도 갓 태어난 용들을 보려고 사람들이 우후죽순 몰려있다. 주술사들이 무지개빛 주문을 외우고 반대편에선 공군의 비행기가 포탄을 날리는 동양마법과 과학이 혼재한 세상 속 소년의 모험과 성장이 얼마나 낭만적인지 또 지하룡 막대사탕과 나타의 우정이 어찌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벅차올랐다. 작명까지 어여쁜 용용이들과 능구렁이 같은 공군대장 심문약, 사내대장부 저리 가라하게 용감한 옥환공주의 로맨스가 알콩달콩하고 악당인듯 악당 아닌 청풍과 명월이 찐찐하다. 역린이 떨어져나간 자리에 녹아내린 막대사탕 자욱을 묻히고 츤츤하는 용은 정말 너무 좋다. 완전 취향이얌>▽< 책을 읽는 내내 꿈결같이 홀려버린 시간. 쪽빛하늘을 날아오르는 막대사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해 그저 글일 뿐인데도 가슴이 확 트였다. 배부른 돼지로 살고 싶은 인간들이 거스르는 자연의 섭리가 어떤 후폭풍으로 돌아오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라 교훈적이기도 하고. 지브리 애니매이션 붉은돼지와 원령공주 그리고 나오미 노빅의 테메레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특별히 좋아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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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들 예언의 시작 편 1 : 야생으로 전사들 1부 예언의 시작 1
에린 헌터 지음, 서나연 옮김 / 가람어린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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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고양이 러스티는 달콤한 심장 소리로 유혹하는 쥐를 뒤쫓다 잠에서 깨어난다.

꿈을 꾼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두발쟁이의 품 속에서 안전한 먹이와 안락한 잠자리, 상냥한 애정을 받는 일이 싫진 않지만

본능인냥 핏속의 무언가가 숲속으로 자꾸만 그를 이끈다.

밥그릇에 다르르르 부어지는 건조먹이가 아니라

척추를 따라 흐르는 흥분을 느끼며 혀가 아리게 맛있을 것 같은 생생한 피맛을 보고 싶다.

잠깐의 꿈에 더 큰 허기를 느꼈을 때 러스티는 숲속으로 모험을 떠났고

그곳에서 야생고양이 천둥족의 전사들을 만나게 된다.

거세를 당하고 두발쟁이의 품속에서 허약한 집고양이가 될 것인가 집을 떠나 야생에 운명을 맞길 것인가.

러스티는 단 하루의 고민 끝에 천둥족의 영역에 발을 들이고

파이어포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아 예비전사의 삶을 시작한다.

두발쟁이의 집과 비교할 수 없이 위험한 숲 속 생활,

전사들의 맹약을 어기고 영역을 침투해 전쟁을 벌이려는 그림자족의 야망,

어린 고양이들을 위협하는 천둥족 삼인자 타이거클로의 음모.

외줄을 타듯 아슬아슬한 야생의 정세 속에서 애완고양이에 대한 종족의 경멸과 편견을 넘어

천둥족의 전사고양이로 성장해가는 파이어포의 집념과 의지가 흘러넘치는 성장 판타지!!

톰, 체셔고양이, 장화 신은 고양이, 가필드, 펠릭스, 고양이 백작 바론, 마네키네코 등

우리 역사 속 이름을 남긴 훌륭한(?) 고양이들이 많지만

글래디에이터의 발톱과 브레이브하트의 영혼으로 이토록 눈부시게 빛났던 고양이는 없었다고 장담한다.

자유에 대한 신념은 그것이 고양이의 것이라도 위대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준

그러나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 파이어포의 모험을 읽고 나면

이불 밖이 더는 무섭지 않을 것이다.

프리덤!!!!!!!

** 고양이들이 글을 못읽는 게 아쉽다.

고양이 서점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베스트셀러였을텐데.

내 고양이가 한글을 좀 읽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들거든 꼭 숨어서 이 책을 읽으시길.

파이어포에 자극받은 반려묘들이 스트리트로 쏟아지면 안되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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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마누엘레 피오르 그림,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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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에 읽었던 첫 책을 올해도 다시 읽는다. <자기 앞의 생> 유독 무겁고 가혹한 무게로 삶을 시작한 소년 모모의 이야기이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 단 한번도 충분히 어렸던 적이 없었던 소년은 어느 창녀의 아들로 태어나 더 오래전에 창녀였던 로자 아줌마에게 맡겨져 성장했다. 열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중이지만 대신에 힘센 비극 속에서 삶을 배워간다. 힘들거나 괴로울 때면 침대 밑에 숨겨둔 히틀러의 사진을 보며 삶이 아직은 괜찮다는 사실을 깨닫는 유대인 로자 아줌마와 함께. 그녀는 평생을 엉덩이로 벌어먹었고 그 일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을 땐 엉덩이로 벌어먹는 여자의 아이들을 돌보며 삶을 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7층 언저리를 씨근덕씨근덕 오르내리며 경찰청장을 키웠고 포주를 키웠고 지금은 모모를 키우고 있다. 모모야말로 그녀 생의 마지막 아이다. 사랑이 지나쳐 때때로 거짓말까지 해야했지만 그 사랑이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모모 역시도. 그래서 그녀가 돈을 받고 자신을 키운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세상이 떠나가라 울기도 했더랬지.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나요?"(p12) 라고 물었던데엔 돈이 주는 배신감 보다 로자 아줌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욱 압도적이었을거다. 모모 인생에 있어 최초의 사랑이었고 최초의 커다란 슬픔이었던 로자 아줌마. 그런 그녀가 지금 모모의 곁을 떠나려한다. 모모 홀로 돌보기엔 너무나 육중한 몸이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고, 깜빡깜빡 정신을 놓고, 영혼이 아주 달아난 듯 널부러진다. 프랑스의 법은 안락사를 인정하지 않기에 그녀를 병원으로 수송하려던 밤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그녀의 유대인 동굴로 피신시켰다. 모모에게도 로자 아줌마에게도 드디어 안전한 자리가 주어진 그 때, 자꾸만 꺼지는 초에 거듭거듭 불을 밝히던 모모에 나는 왜 그리 눈물이 났을까. 로자 아줌마가 그렇게 바라던 순간을 그녀가 완벽하게 꿈꾸던 시간을 그녀의 둥지에서 맞이했을 뿐인걸. 이제야말로 시간을 되돌려 꽃의 날로 되돌아갔을지도 모를 일인데 말이다. 

다시 읽어도 눈부시고 찬란한 소설이다. 문학동네의 배려로 더해진 일러스트가 큰 힘을 발휘하는건 아니지만 새로운 판형으로 읽어 설레기도 했고. 연초가 되면 이룬 것도 없이 한살 더 먹었다는 사실에 괜스레 울적해지곤 하는데 자기 앞의 생을 읽고는 이런 스스로에게 피식 웃음이 나버렸다. 열살인 줄만 알았던 모모는 정신병자 아버지의 등장으로 시간을 껑충 뛰어넘어 하루아침에 열네살이 되었는데 그깟 한살. 감당 못할 것도 없는 숫자지 싶어서. 이제 열네살이 되었지만 사는 게 어떤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모를 보며 투정 부리듯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거라고 말했던 나날들에도 부끄러움이 인다. 모모의 생에 비교하면 로자의 삶에 대입하면 내것은 얼마나 솜사탕 같은 인생이었는지. 무서운 일과 슬픈 일, 아픈 일들을 살아있는 증거랍시고 내세우기엔 너무나 서글프다. 하지만 그 증거마저 훼손되고 증발하는 날이 온다는걸 로자의 삶으로 깨닫고 나니 오늘의 삶이 덜 고달프게 느껴진다. 조금은 달콤한 듯도 싶고.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서가 아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서이다. 더욱 아름다워질 시간이 내게도 아직 남아있다는 감사함 때문이다.

19년 1월 1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해가 뜬 오늘의 아침이 어제와 다를 게 없을지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 하루. 자기 앞의 생을 읽으며 새삼 결심한다. 새해의 시간이 막연하고 두렵지만 모모의 말처럼 사랑하자고. 더욱 사랑할 한해를 만들어 가자고.

마즐토프, 인샬라,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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