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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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의 8주기를 추모하는 28인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 모음집입니다. 오마주라는 말에 꽂혀서 초반 애를 좀 먹었어요. <나의 아름다운 이웃> 속 대사와 장면들을 일일이 찾아가며 읽으려고 했거든요. 젊은 작가님들의 개성이 상당히 강렬하고 하나하나 찾아가며 읽기엔 힘에 부쳐 결국 포기했어요. 그러고 나니 다시 맘 편하게 술술 읽히더라구요.

제가 한국 소설은 썩 많이 읽은 편이 못되어놔서 이름이 익숙하거나 좋아하는 이기호, 김종광, 정세랑, 정용준 작가님 작품부터 먼저 읽고요. 궁금하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님을 만나고, 그 다음부턴 페이지대로 차례차례 책을 읽었습니다. 완독 후 좋았던 작품들을 목차에서 하나씩 체크해 봤는데요. 이거이거 의외로 지각변동이 좀 있었지 뭐에요. 제일 크게 웃으며 잼나게 읽은 작품은 조남주 작가님의 "어떤 전형". 조남주 작가님의 전작들이 작품 특성으로 인해 워낙에 명성도 높고 그만큼 호불호도 크잖아요. 별점도 하나에서 다섯까지 널뛰기를 하는데다 관련한 소란들에 어쩐지 좀 피곤하달까요. 주변 관심이 사그라들면 그 때 가서 읽어야지 했는데 지금은 일본에서 맹활약 중. "어떤 전형" 속 다정한 모녀 관계도 좋았고 친근하지만 팡 튀는 유머감각에 배꼽 빠졌어요. 82년생 김지영까지 엄청 굼금해졌습니다. 민폐 갑 지질한 남자가 저주로 담배가 되는 정용준 작가님의 "연기가 되어"도 장르적 느낌이 은은하게 깔려서 완전 매력적이에요. 작가님 장편은 <유령> 밖에 읽은 적이 없는데 줄거리가 아니라 느낌이 아주 비슷합니다. 안쓰럽지만 용납하기엔 찝찝한 캐릭터, 대쪽같은 결말 같은? 김종광, 이기호 두 작가님의 글들은 가족 밀착형 생활 에세이 같은 느낌으로 여기서도 친근하고 따뜻했어요. 제목도 김종광 작가님은 "쌀 배달", 이기호 작가님은 "다시 봄"이에요. 가장 공감하며 읽은 소설은 윤이형 작가님의 "여성의 신비". 이십여도 안되는 쪽수 앞에서 가슴이 터질 듯이 울렁울렁, 심장이 덜컹덜컹,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마 많은 여성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물론 저는 가정을 꾸린 여성들이 사회와 가정 안팎에서 겪는 그 치열함을 뼛 속 깊이 느껴본 적이 없지만요. 사는 게 대체 뭔가 고민하며 옆자리의 사람들을 질투한 적이 있어놔서, 질투로 끝내지 못하고 지혜와 슬기처럼 멀어진 관계들도 있어놔서, "응, 괜찮아, 이해했어, 지혜야" 하고 토닥이는 슬기의 말에도, "우리 당분간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어떨까?" 라며 관계를 정리하는 말에도 아프게 동의했어요. 조금 더 건강해지고 조금 덜 못나지면 연락하겠다는 그 약속, 언젠가는 꼭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정세랑 작가님 단편 "아라의 소설"은 하나의 의문으로 마무리가 되었는데 아직 답을 못찾았어요. 박완서 작가님이 글쎄 어느 SF 작가님께 빛과 같은 평가를 내리셨다는 거에요. 그래서 다수 SF 작가님이 박완서 작가님을 흠모한다구요. 그 작품이 대체 뭔가요? 제 검색실력의 한계로 "박완서의 작품에서 미스터리 소설이 보인다"라는 문동 미스테리아 편집장님 기사만 한편 얻어 걸려 읽었습니다;; 저 넘나 옛날 사람인가 봐요. 검색 넘나 못해. 아니면 이 모든 게 다 그냥 소설인걸까요?ㅠㅠ

멜랑콜리 해피엔딩을 완독하고 보니 표지가 진짜 완벽하 거 있죠? 여느 단편모음집들이 다들 그렇긴 하지만 우유에 요구르트에 커피에 계란에 쿨피스가 있는 쇼케이스라니 취향껏 네 맘대로 골라 읽어라 이거구나 싶어서요. 마냥 쉽게 읽혔던 박완서 작가님의 글들과는 달리 젊은 작가들의 작품 몇 몇은 좀 꽈배기 같아서 매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모든 작가에게 읽기 쉬운 글, 마음이 후련해지는 글, 단박에 이해가 가는 글, 위트있는 글을 써달라고 요청할 수는 없겠죠. 그것도 어찌보면 독자의 갑질이자 취향에 대한 독재니까요. 얇은 창호지가 아니라 두껍고 질긴 창호지라 구멍이 검지만한 게 아니라 새끼 손가락만하게 났다고 상상하며 읽으니 참을성이 생겼습니다. 물론 너무너무 취향인 글들은 참지 못하고 창호지를 박박 찢어낸 후 어깨까지 들이밀고 쳐다보기도 했지욤. 한 작가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출판사 작가정신과 젊은 작가들의 잔칫상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애정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책입니다. 추모제 같은 엄숙한 느낌 절대절대 아니니까 겁먹지 않으셔도 되요. 박완서 작가님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과 젊은 작가들의 <멜랑콜리 해피엔딩>을 초대장처럼 들여놓고 일상이 숨막힐 때, 공감받거나 위로 받고 싶을 때, 우리 다같이 책 속으로 놀러 가면 좋겠습니다. 책을 덮을 즈음엔 다시 시작하는 하루에 해피엔딩을 꿈꿀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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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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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저는 박완서 작가님께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의외로 무척 유머러스한 글을 쓰는 분이시구나 라는 게 <나의 아름다운 이웃> 속 첫 단편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이었거든요. 의.외.로라니 작가님 작품을 제대로 읽어 본 적도 없으면서 의외로라니. 네가 대체 뭘 안다고 말이야 하고 자체 반성 시간을 잠깐 가졌습니다. 괜스레 뜨끔하고 부끄럽더라구요. 그야 작가님은 제가 처음 작가님의 이름을 알게 된 중학생 때부터 이미 할머니셨고 한국 할머니의 소설은 1500년대나 1600년대 하다못해 1800년대 쓰여진 책들보다 지루하거나 대단히 교육적일 거라는 생각을 도통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었지만 좁은 시야를 근거로 한 같잖은 핑계죠 뭐. 쓰고 보니 한층 낯이 뜨거워지네요.

화장품 회사의 사보에 올리기 위해 쓰여졌다는 <나의 아름다운 이웃들> 속 단편은 우선 짧습니다. 짤막짤막한 토막글은 요즘으로 치면 웹소설 하루이틀치 연재분이면 딱 맞을 것 같은 분량이라 속 편히 읽기에 얼마나 좋던지요. 한 편에 8 페이지 9 페이지 남짓한 글들이 거의 다니까요. 출근하기 전 남는 짬에 잠깐, 퇴근하고 나서 옷 갈아입기 전에 한숨 돌리며 또 잠깐. 폰으로 이럭저럭한 글들 찾아읽는 시간에 단편 하나를 후루룩 뚝딱 읽고 또 그렇게만 읽어도 책 한 권을 금방 독파하니까 분량만으로도 힙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또 모조리 70년대에 쓰여진 작품들인데 배경이나 말투는 옛것일지언정 구닥다리 유물 같은 사유로 가슴 꽉 막히게 만드는 정서는 거의 보이지가 않습니다. 엊그제 쓰여진 거래도 믿을 것만 같은 이야기 속엔 연애, 낙태, 결혼, 자식교육, 맞벌이, 고부갈등, 아파트 문화, 왕래없이 소원한 이웃들과의 한토막 사연이 담겨있는데요. 마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만국공통의 정서처럼 2019년의 독자와도 높은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처음으로 집에 전화를 들인 일이나 서울 땅 백평을 백만원을 주고 산다거나 창경원 패밀리랜드에 놀러 가기 좋아하는 아이는 너무나 낯설지만요. 슈퍼마켓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척 하는 이웃들, 시댁 오는데 일하기 쉬운 간편한 옷 안입고 왔다고 구박하는 남자,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냐는 시어머니와 더는 안속는다 어머니 백살은 더 사실거다 지청구 놓는 며느리, 자식의 사춘기를 일식이라 믿고 오늘도 애면글면 뒷바라지 하는 부모님, 사람을 마음대로 골라쓸 수 있는 상품 취급하는 갑의 행태, 이건 참 낯설지가 않잖아요? 하나 같이 내 얘기거나 내 친구 얘기거나 아는 언니 얘기거나 우리 엄마 얘기 같았어요. 남일 같지 않았다는 거죠. 거기다 심각하게 논파하고 투쟁하듯 비난하고 눈물로 호소할 수도 있는 소재를 살짝살짝 꼬집으며 폭풍웃음을 주니 맞는 얘기에도 팩 돌아서고 싶을만큼 마음이 꼬인 요즘 시대에 더욱 요긴할 재능 같달까요. 애니 커트 써세느 커트 얘기엔 침대 위를 구르며 웃었구요. 임신한 엄마가 믿을 사람이 오로지 아빠 한 명 뿐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고. 엄마가 아빠 대신 세상의 따뜻한 인심만 믿을 수 있었어도 뱃속의 나는 죽지 않았을 거라는 태아의 얘기엔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구구절절이 틀린 말이 없어서요.

작가님은 꽁트를 쓰는 재미를 창호지에 구멍 내고 바깥 세상을 엿보는 일로 비유하셨어요. 작가님 뽕뽕 뚫어놓은 구멍에 눈을 대고 엿본 세상이 이다지도 유쾌하고 흥미진진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한때 창호지에 구멍 여럿 내본 사람으로써 이 작은 쾌감에 매우 공감합니다. 작은 구멍으로도 이십년 삼십년쯤 훌쩍 건너 저 먼 세상을 내다보고 썼다는, 그게 우연일지라도, 작가님의 치기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고요. 이런 의미 저런 의미를 떠나 아주 후련하고 단연코 재미있는 단편집이기에 추천해요. 독자 입장에서 그보다 중요한 게 또 뭐가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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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세상의 모든 딸들 1~2 세트 - 전2권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홍익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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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읽었던 책을 성인이 되어 다시 읽는 이 맛을 아는 독자님도 있고 모르는 독자님도 있겠지요? 제게도 재독, 삼독이 아주 없는 일은 아니지만요. <세상의 모든 딸들>은 또 좀 새로운 기분입니다. 출간 30주년을 기념하며 스페셜 에디션이 출간된거라 표지가 옛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산뜻하고 예뻐졌거든요. 그렇다고 30주년 표지 문구에 제 나이를 오해하심 안되욧 ㅎㅎ 중학생 때 어쩌면 고등학생 때일 수도 있지만 실은 읽은 시기만은 가물가물한 이 책을 저는 흙색 표지본으로 대여해 읽었습니다. 총 세 권 짜리 책이었는데 주인공이 달라진 3권은 읽으나 마나였지만 앞의 1, 2권은 처음으로 읽는 구석기 시대 배경의 책이라 남다른 충격을 받았더랬죠. 책 읽느라 밤을 새는 게 흔했던 시절이니 이 책을 읽을 당시에도 저는 틀림없이 밤을 지새웠을 거에요. 장담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1권 읽고 연달아 2권까지 읽느라 제가 어제도 밤을 꼴딱 넘겼거든요. 다시 읽어도 어찌나 재밌는지 시간 가는 줄을 몰랐어요.

성격이 강한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책을 보면 우리는 흔히 빨강머리 앤을 떠올리잖아요? <세상의 모든 딸들>의 주인공 야난도, 특별히 머리색 묘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틀림없이 빨강머리겠는 걸 하고 생각했더랬어요. 그것도 마구마구 불타오르는 듯한 새빨강이요. 성격도 하는 행동도 앤과 똑닮아서요. 꼬리에 불 붙은 망아지마냥 성마르고 난폭해서 아주 사소한 오해로도 부르르 화를 내고요. 고집이 아주 세요. 자기 주장도 강하고요. 타협이 없죠. 대신에 용감하고 신체 건강하고 자립심이 높은 건 장점입니다. 가족이 모두 죽고 어린 동생 메리와 둘 밖에 남지 않았을 때 야난은 아버지의 무기로 사냥을 하고 덫을 놓고 풀뿌리를 케어 먹으며 길을 더듬어 예전에 헤어진 부족과 약혼자를 찾아갑니다. 어느 오두막에선 어미 늑대와 동맹을 맺고 겨울을 나기도 했죠. 겉잡을 수 없는 추위와 배고픔은 끔찍했지만 늑대와의 협업으로 순록을 잡고 남자처럼 사냥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먹고 살아가는 시간은 야난의 자긍심을 채워주었어요. 그러나 어미늑대마저 무리로 돌아갔을 때 그들은 다시금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렵만으로 먹고 살아야 했던 시절, 계절을 따라 이동하는 동물들을 따라잡지 못하면 굶어죽기 십상이니까요. 메리의 손을 잡아끌며 모든 지혜와 인내심을 풀어내어 일족의 품으로 돌아간 야난. 그러나 이들이 마주한 미래는 아름답지도 매끄럽지도 순탄하지도 않았어요. 사나운 매머드 사냥꾼들과 사귀며 난폭해진 남자들은 여자나 아이를 때리려 들었고 야난은 결코 이에 순응하지 않았거든요. 무엇보다 야난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일족의 성숙한 여인 틸이 있었지만 어머니만큼 섬세하진 않았죠. 임신의 기미조차 알아채지 못한 야난은 굶주림과 추위, 호르몬의 불안정한 작용에 휘둘려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 버립니다. 동생 메리의 약혼을 파기하고 사랑하는 남편 티무와도 겉잡을 수 없는 싸움을 벌인 후 이혼을 선언해요. 시부모님의 거듭된 회유 앞에 마음이 흔들리면서도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티무에 자존심이 상한 야난은 결국 일족을 떠나버리죠. 그리곤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을 단지 홧김에 또한번 저질러 버립니다. 잠깐의 쾌감과 길고 긴 자책의 무게를 그 순간 저울에 달아볼 수만 있었더라면. 야난은 두고 두고 이 일을 후회하지만 풀리지 않은 매듭처럼 인생은 갈수록 엉켜버리더군요. 길버트의 머리를 칠판으로 내리쳐 두 동강이 내었지만 끝끝내 그와 함께 행복해졌던 앤처럼 저는 야난의 결말도 평화롭기만을 바랐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구석기 시대 광폭한 대자연 앞에서 오로지 생존만을 향해 뛰었던 조그맣고 약한 인간들의 단순하면서도 투쟁적인 삶에 매료되었어요. 저보고 가서 살으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겠지만요. 티비 속 자연인에게 품곤 하는 동경을 막연하지만 야난에 대입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오로지 먹고 자는 일에만 몰두하는 삶 말이에요. 동물적이고 본능 우선적인. 조그마한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알력이나 다툼을 보는 것도 물론 흥미진진 하구요. 굶주림 속에서 하루하루 예민해져 가는 사람들이 한 오두막 안에서 어떻게 겨울을 나는지를 엿보는 일은 아주 긴장감 넘치거든요. 또 반항적인 야난이 어머니가 남긴 유언을 거부하지 못하고 종내 따라가는 삶에 슬프기도 했지요. "사람은 이렇게 살고, 이렇게 죽는 거란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나처럼 이렇게 살았어. 호랑이를 따르는 까마귀처럼 남편을 따르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사는 법이란다."(p135) 남자와의 잠자리도 결혼도 출산도 바라지 않았던 아이가 결국 세상 모든 딸들이 걸어온 길에 들어서고야 마는 과정은 왠지 석연치 않고 조금은 끔찍하더군요. 구석기 시대라 결여된 낭만 때문에 더욱 적나라할 수 밖에 없었지만 티무와 사랑을 나누고 티무를 욕망하고 임신을 하고부터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바람은 차근차근 어긋나 버리거든요. 출산과 양육은 세상의 모든 딸들이 걸어온 길의 밑바탕이니까요.

그러나 책을 덮은 후엔 그 끔찍함마저 깜쪽같이 잊어버렸습니다. 지금은 단지 뜨겁고 바삭바삭한 해를 먹어보고 싶을 뿐이에요. 얼마나 배고팠으면 죽은 후 해를 먹는 세계를 꿈꾸었을까. 기름덩이로 활활 타오르는 해를 꿈꾸고 그 해에 창을 던져 잡아먹는 세계를 꿈꾸었을까 싶어 안쓰러운 한편으로 입을 데어가며 해 한덩이를 호호 불어 먹는 상상을 해봅니다. 지상에서 겪은 모든 아픔과 슬픔과 울화가 해의 싱싱한 뜨거움에 사르르 녹아없어지는, 그러한 상상에 황홀해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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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노래
미야시타 나츠 지음, 최미혜 옮김 / 이덴슬리벨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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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정을 원한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내는 열정. 그건 재능이나 개성, 노력이나 소실, 가능성, 환경, 유전, 기회화는 별개인 것 같지만 실은 대단히 비슷한, 불투명한 미래에 맞서는 유일한 무기가 아닐까. 어디에 열정이 있을까. 어떻게 그걸 불태워야 할까."ㅡ 미키모토 레이

"'그때'가 나를 압박한다. 상처 내고 좀먹고 있다. 이미 타협한 과거인데도 어떤 계기가 있을 때마다 떠오른다. 만약 그때 그랬더라면, 하고 상상하면서 '그때'가 특히 강조된다. 그때의 반짝임은 과장되어 점점 더 빛나고 그때 이후의 인생은 그림자가 된다."ㅡ 나카미조 사키

"한가한 리가 없다. ㅡ 하지만 뭐가 그리 바쁜지, 뭐 때문에 이렇게 초조한지 잘 모르겠다. 다만 언제나 붕 떠있는 혼란한 기분이다. 뭘 하는 것도 아니면서 양손을 깍지 낀 채 책상 앞에서 앉아 있다. 생각하는 것 같지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멍하니 있고 싶어도 정말로 멍하게는 있을 수 없다. 뭔가에 집중할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다. 그저 감정이 굳어져 점점 무겁게 몸속으로 가라앉는다. 숨이 막힐 듯 답답해서 의자에서 일어난다. 좁은 방 안을 비슬비슬 돌아다니다가 침대에 앉아 천장을 보고 드러눕는다. ㅡ 요시코

현실의 아이들도 그렇지만 소설 속의 아이들도 어쩜 이렇게 빨리 클까요. 원치 않았던 고등학교로의 진학과 꿈, 재능, 우정, 가족, 사랑으로 고민하며 합창대회를 치르고 마라톤을 하며 울고 웃던 메이센 여고의 아이들 레이와 치나츠, 히카리와 사키, 요시코 등을 다시 한번 만날 기회를 얻었어요. <기쁨의 노래>를 이어 출간된 <끝나지 않은 노래>!! 후속편이 빠르게 나와주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기쁨의 노래를 함께 하며 사춘기의 한 고비를 넘기고 해피엔딩..인 것만 같았던 우리 아이들. 그러나 아이들의 고민이 결코 거기서 끝날 리가 없습니다. 현실에서도 그렇잖아요. 고등학생 때면 대학만 가면 뭐든 내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고 살 수 있을 것 같고 문제거리 하나 없을 것만 같은데 실상은 고딩이었을 적이 좋았지 하게 되는 그런 거요. 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느끼는 혼란도 예상 밖으로 너무 컸고 환상과 너무 다른 대학생활도 암담했고 졸업은 왤케 빨리 다가오며 취직은 남의 나라 일만 같이 멀기만 한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연애까지 대혼란. 뭐 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었죠. 물론 저와는 달리 완벽하게 빛나는 청춘을 일구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만 돌이켜보면 그 친구들 속이라고 마냥 좋았겠냐 싶어요. 고민 하나 없는 청춘이 어디있으려구요. 메이센 여고 졸업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악이라는 길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도전했지만 결코 1등은 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좌절하는 레이. 가족경영의 우동집을 물려받기를 거부하고 뮤지컬 배우로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치나츠. 6년이나 목을 멘 짝사랑 상대로부터 꽉 차게 거절당한 요시코. 어른이 되어서도 가장 빛나던 중학생 시절을 그리워하는 중인 사키. 저마다 성격도 꿈도 사연도 다른 아이들이지만 이 친구들의 고민 어느 한 구석마다 틀림없이 공감할 거리가 있었어요. 한 때의 내 얘기 같고 내 감정 같은 말들에 가슴께가 찌르르 하기도 하고 '앜 ㅋㅋㅋㅋ' 웃으며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뚜렷히 기억하는 흑역사에 허공에 발길질 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젊음마저 허무해지는 무기력한 나날을 떠올리며 눈물이 찔끔 나기도 하구요. '지금 네 고민 그거 진짜 별 거 아니야. 시간이 다 해결해준다, 걱정하지마' 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돌이켜보니 어른들께 이런 말을 들으면 속으로 궁시렁궁시렁. 암것도 모르면서 잘난 척 한다고 마구 심술을 부리거나 입이 댓발은 나와서 문 쾅을 시전하곤 했지요. 그때의 나 창피햇! 그러나 모두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다 같이 성장하는 거겠죠?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작가님이 소녀 감성을 참 잘 포착하고 끄집어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입니다. 여기저기의 마음에 공감하다 보면 부끄러운 나의 20대 초반 모습까지 떠오르게 되고 그리워하게 되고 재미있게 추억하게 되더라구요. 지나치게 전형적이지 않나 싶은 만화 같은 결말 앞에서도 코가 찡. 남다르게 빼어난 소설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전 장르의 성격을 배신하지 않는 이런 작품을 좋아해서 비슷한 취향을 가진 독자분들께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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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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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인권자문위원 장 지글러가 손녀 조라와 자본주의의 병폐와 관련해 대화하는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무겁고 아픈 제목에 걸맞게 자본주의가 불러온 재앙을 서술하고

'손녀가 자본주의의 종말을 보게 되기를 기도하며' 같은 자본주의의 완전 파괴!! 라는 강렬한 바람을 담았다.

점진적 개혁이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완전파괴! 완전멸망!을 주장한다.

정기적으로 식수를 조달받지 못하는 20억명의 사람들,

비타민A 결핍으로 4분마다 1명이 시력을 잃는 세상,

10살 미만 어린이 11만 2,000명이 배를 곪아 목숨을 잃고 (2015년 기준)

소수자들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뼈를 갈아넣으면서도 결코 배부르게 살지 못하는 인류 4분의 3을

장 지글러는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하는 중에 목격한다.

도저히 같은 하늘 아래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그들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장 지글러가 자본주의에 느끼게 된 적대감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자본가에게 느끼는 증오가 얼마나 무쓸모한지도.

자본주의가 지구상에 색다른 종류의 '식인풍습'을 만들어냈다는 주장에 느꼈던 처음의 거부감도

책을 덮은 지금엔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

소수의 물질적 향락을 위해 다수의 살인적인 궁핍을 눈감고 용인하는 세상이란 점에서

식인풍습이란 말은 잔인하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단어였으니까.

콩고의 광산에서 휴대전화와 게임기, 비행선 등에 이용되는 콜탄을 캐다 죽어가는 어린이들.

321원의 임금을 받으며 영양실조 속에서 옷을 만들다 무너지는 건물 더미에 깔려죽은 방글라데시의 봉제공들.

네슬레와 델몬트가 장악한 땅에서 뼈빠지게 일하면서도 배 곯는 남미의 농부들.

비축 옥수수까지 팔아 빚을 갚으라 독촉하는 영국 법원의 결정으로 기근에 목숨을 잃은 수만명의 말라위 사람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국가와 함께 빈곤을 되물림받는 국민들,

이 모든 것이 내 일이었을 수도 있다.

여기 대한민국이 아니라 가난한 남반구 어느 땅에서 태어났다면

내가 캐는 게 내가 심는 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뭔지도 모른 채

오로지 일만 하다 십대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을지도...

잊지 말아야지.

나의 값싼 소비에 피 흘리고 있을지 모를 사람들을.

어쩌면 누군가의 부에 기여하기 위해 나 또한 피흘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관련한 사회학책을 여럿 읽은 사람들에겐 별 다르게 새롭거나 색다른 내용은 아닐지 모르지만

자본주의로 안락함을 누리는 우리에게 자본주의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또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소화하기 좋은 책이라는 점에서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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