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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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의 8주기를 추모하는 28인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 모음집입니다. 오마주라는 말에 꽂혀서 초반 애를 좀 먹었어요. <나의 아름다운 이웃> 속 대사와 장면들을 일일이 찾아가며 읽으려고 했거든요. 젊은 작가님들의 개성이 상당히 강렬하고 하나하나 찾아가며 읽기엔 힘에 부쳐 결국 포기했어요. 그러고 나니 다시 맘 편하게 술술 읽히더라구요.

제가 한국 소설은 썩 많이 읽은 편이 못되어놔서 이름이 익숙하거나 좋아하는 이기호, 김종광, 정세랑, 정용준 작가님 작품부터 먼저 읽고요. 궁금하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님을 만나고, 그 다음부턴 페이지대로 차례차례 책을 읽었습니다. 완독 후 좋았던 작품들을 목차에서 하나씩 체크해 봤는데요. 이거이거 의외로 지각변동이 좀 있었지 뭐에요. 제일 크게 웃으며 잼나게 읽은 작품은 조남주 작가님의 "어떤 전형". 조남주 작가님의 전작들이 작품 특성으로 인해 워낙에 명성도 높고 그만큼 호불호도 크잖아요. 별점도 하나에서 다섯까지 널뛰기를 하는데다 관련한 소란들에 어쩐지 좀 피곤하달까요. 주변 관심이 사그라들면 그 때 가서 읽어야지 했는데 지금은 일본에서 맹활약 중. "어떤 전형" 속 다정한 모녀 관계도 좋았고 친근하지만 팡 튀는 유머감각에 배꼽 빠졌어요. 82년생 김지영까지 엄청 굼금해졌습니다. 민폐 갑 지질한 남자가 저주로 담배가 되는 정용준 작가님의 "연기가 되어"도 장르적 느낌이 은은하게 깔려서 완전 매력적이에요. 작가님 장편은 <유령> 밖에 읽은 적이 없는데 줄거리가 아니라 느낌이 아주 비슷합니다. 안쓰럽지만 용납하기엔 찝찝한 캐릭터, 대쪽같은 결말 같은? 김종광, 이기호 두 작가님의 글들은 가족 밀착형 생활 에세이 같은 느낌으로 여기서도 친근하고 따뜻했어요. 제목도 김종광 작가님은 "쌀 배달", 이기호 작가님은 "다시 봄"이에요. 가장 공감하며 읽은 소설은 윤이형 작가님의 "여성의 신비". 이십여도 안되는 쪽수 앞에서 가슴이 터질 듯이 울렁울렁, 심장이 덜컹덜컹,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마 많은 여성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물론 저는 가정을 꾸린 여성들이 사회와 가정 안팎에서 겪는 그 치열함을 뼛 속 깊이 느껴본 적이 없지만요. 사는 게 대체 뭔가 고민하며 옆자리의 사람들을 질투한 적이 있어놔서, 질투로 끝내지 못하고 지혜와 슬기처럼 멀어진 관계들도 있어놔서, "응, 괜찮아, 이해했어, 지혜야" 하고 토닥이는 슬기의 말에도, "우리 당분간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어떨까?" 라며 관계를 정리하는 말에도 아프게 동의했어요. 조금 더 건강해지고 조금 덜 못나지면 연락하겠다는 그 약속, 언젠가는 꼭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정세랑 작가님 단편 "아라의 소설"은 하나의 의문으로 마무리가 되었는데 아직 답을 못찾았어요. 박완서 작가님이 글쎄 어느 SF 작가님께 빛과 같은 평가를 내리셨다는 거에요. 그래서 다수 SF 작가님이 박완서 작가님을 흠모한다구요. 그 작품이 대체 뭔가요? 제 검색실력의 한계로 "박완서의 작품에서 미스터리 소설이 보인다"라는 문동 미스테리아 편집장님 기사만 한편 얻어 걸려 읽었습니다;; 저 넘나 옛날 사람인가 봐요. 검색 넘나 못해. 아니면 이 모든 게 다 그냥 소설인걸까요?ㅠㅠ

멜랑콜리 해피엔딩을 완독하고 보니 표지가 진짜 완벽하 거 있죠? 여느 단편모음집들이 다들 그렇긴 하지만 우유에 요구르트에 커피에 계란에 쿨피스가 있는 쇼케이스라니 취향껏 네 맘대로 골라 읽어라 이거구나 싶어서요. 마냥 쉽게 읽혔던 박완서 작가님의 글들과는 달리 젊은 작가들의 작품 몇 몇은 좀 꽈배기 같아서 매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모든 작가에게 읽기 쉬운 글, 마음이 후련해지는 글, 단박에 이해가 가는 글, 위트있는 글을 써달라고 요청할 수는 없겠죠. 그것도 어찌보면 독자의 갑질이자 취향에 대한 독재니까요. 얇은 창호지가 아니라 두껍고 질긴 창호지라 구멍이 검지만한 게 아니라 새끼 손가락만하게 났다고 상상하며 읽으니 참을성이 생겼습니다. 물론 너무너무 취향인 글들은 참지 못하고 창호지를 박박 찢어낸 후 어깨까지 들이밀고 쳐다보기도 했지욤. 한 작가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출판사 작가정신과 젊은 작가들의 잔칫상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애정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책입니다. 추모제 같은 엄숙한 느낌 절대절대 아니니까 겁먹지 않으셔도 되요. 박완서 작가님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과 젊은 작가들의 <멜랑콜리 해피엔딩>을 초대장처럼 들여놓고 일상이 숨막힐 때, 공감받거나 위로 받고 싶을 때, 우리 다같이 책 속으로 놀러 가면 좋겠습니다. 책을 덮을 즈음엔 다시 시작하는 하루에 해피엔딩을 꿈꿀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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