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간절함조차 아플 때가 있었다 -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순간들에 관하여
강지영 지음 / 빅피시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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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에세이보다 소설을 자주 읽곤 하는데 그럼에도 에세이를 읽게 되는 이유는 위로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기분이 바닥이거나 슬럼프를 헤매고 있을 때에는 그 위로가 더 간절해진 곤한다. 최근 눈에 띄는 에세이인 모든 꽃이 봄에 피지 않는다이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등 대부분의 에세이가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으니까. 우스갯소리로 인스타그램이나 다른 SNS에서는 모두 행복해 보이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란 생각이 들 때에도 이런 종류의 에세이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때로는 간절함조차 아플 때가 있다는 최근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대고 있던 중에 발견한 책이다. JTBC의 강지영 아나운서가 쓴 에세이라고 하는데 지은이보다 제목에 먼저 꽂힌 셈이다. 최근 12년이라는 연재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아직까지 묵직하게 남아있는 윤태호 작가의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의 말과 비슷해 보였다. 평생 해 온 바둑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장그래는 다른 변명을 하지 않고 담담히 말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알바를 했기에 당일 극도로 컨디션이 안 좋았기에 란 말은 사절이다

……

나는 능력이 부족해서 실패한 것이다. 그래야 아프지 않으니까


아프지 않게 능력 부족을 인정하는 장그래나 간절함조차 아프다고 말하는 저자의 모습이 비슷하게 보였다.


눈에 띄는 제목만큼이나 이야기를 시작하는 프롤로그에서도 인상적인 구절을 발견하였다.


아프리카에서는 강을 건널 때,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무거운 돌을 머리나 가슴에 지고 건넌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이렇게 받아들였다. 방황하는 시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무거운 고민을 지고 건너는 수밖에 없다고.

지금은 모든 게 무겁게 느껴져도, 그게 나를 휩쓸리지 않게 도와줄 거라고.

깊은 물 속을 지나기 위해서는 더 큰 무게가 필요했다. 때로는 너무 무거워 몇 걸음 걷지 못할 것도 같았다. 하지만 무게를 감당하는 힘이 생길수록 고민의 시간을 지나기는 점점 수월해졌다.(프롤로그 중에서)


예전 대학 강의에서 한 교수님은 요즘 학생들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고 걱정을 한 적이 있었다.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생기고 실패의 복기도 가능한데 조금의 어려움이 있으면 바로 해답을 찾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셨다. 정작 대학을 다닐 때에는 학점을 핑계로 고민보다는 해답을 찾는 실행을 더 했었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을 벗어난 요즘 고민하는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느끼곤 한다.


때로는 간절함조차 아플 때가 있다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회계를 전공한 저자가 어떻게 아나운서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는지 신생 방송국에 입사를 하여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매일 시청자들에게 가장 반듯하고 빈틈이 없이 보이는 직업 중 하나인 아나운서이기에 겪는 어려움도 적지 않게 묘사되어 있었다. 하지만 비단 아나운서나 방송 계통의 업을 가진 이들만이 아니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이 될 만한 이야기도 많이 있다.


결과를 내는 사람이라는 장의 한 구절이다.


흔히 프로라고 하면 경력이 많거나 오래된 사람,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일을 하며 여러 사람을 보면서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는 태도라고 생각하게 됐다. 일을 바라보는 태도, 일을 대하는 태도, 일을 해내는 태도 말이다.


야구 예능인 최강 야구의 김성근 감독은 간단하게 프로를 정의했다. 은퇴한 선수라도 어딘가에서 돈을 받으면 프로라며 프로의 정신으로 뛰어야 한다고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던 잘하는 일을 하던 그것에 대하여 대가를 받는다면 그 사람은 프로의 정신으로 일을 해야 하는 셈이다. 그와 비슷하게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을 태도로 규정하는 저자의 정의도 인상적이었다. 아마추어와 구분 짓는 프로만의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으로 보였다.


프로의 정의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릇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사람을 그릇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저 사람은 나보다 그릇이 크다, 작다는 등으로 비교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가며 고민을 하고 노력하는 것은 모두 자신만의 그릇을 키우려고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릇을 키우는 것... 나에게는 자기 계발과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키울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 본이 적은 것 같았다. 이에 저자는 그릇을 키우는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그릇이 커지려면, 그릇이 찢어져야 한다. 매번 감당할 만한 일만 하고, 견딜 만한 고민을 하면서는 성장할 수 없다. 감내할 수 없는 일, 마주치기 싫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나서야 겨우 단단해진다.


그릇이 커지기 위해서는 그릇을 찢어져야 하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불교 법어에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말이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말인데 말만 들어도 불교라는 종교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부처라는 관념과 조사라는 권위에 미혹 당하지 말고 스스로를 구속하는 것들부터 해방되어 자주적인 깨달음을 얻으라는 말이다. 그릇을 키우기 위해 자신의 그릇을 찢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구속하는 것으로부터 해방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당당해 보이는 저자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부끄러웠던 모습까지 표현하고 있기에 조금 더 인간적이고 공감이 가는 때로는 간절함조차 아플 때가 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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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2024년 성장 에디션) - 최인아 대표가 축적한 일과 삶의 인사이트
최인아 지음 / 해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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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를 하곤 한다. 49.195Km라는 긴 거리를 뛰어야 하는 만큼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물론 뛰는 중에는 힘이 되는 급수대와 많은 사람들의 응원도 존재한다. 단지 먼 거리를 달리는 단순한 운동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 스포츠가 마라톤이다. 우리의 삶도 매일 비슷한 것 같지만 그 속에 온갖 희로애락이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 중 마라톤 경기에서 달리기와 같은 것이 우리 삶에서는 일인 것 같다.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쓴 최인아 대표는 이런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밝히고 있다.

 

일이란 무엇일까요? 정의를 내리는 일은 어렵습니다. 이럴 때 좋은 방법은 반대말을 생각해 보는 겁니다. …… 자신이 원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의 반대말은 여가나 놀이가 아닌 나태예요. (39쪽)

 

일과 나태...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것 같다. 특히나 일과 삶의 밸런스를 중시하는 워라밸이 존중받는 최근에는 더 그렇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곤 일에 대한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의 의미는 찾은 이는 덜 흔들릴 수 있다고 하면서...

 

긴 시간 일하다 보면 때때로 흔들리는데, 내가 찾은 내일의 의미는 그럴 때 뿌리까지 흔들리진 않도록 우리를 잡아줍니다. 의미를 찾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할 확률은 낮지만 파도가 덮쳐올 때 덜 흔들릴 수 있어요. (51쪽)

 

그럼에도 일은 도통 좋아하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취미가 일이 되면 그 취미생활의 즐거움이 반감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말이다. 그 마음도 저자는 알고 있는 것 같다. 일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낭만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마음은 무언가를 시작하게 하지만, 그 일이 끝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마음 이면의 지속하는 마음도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른이라면 말입니다. (241쪽)

 

난 주어지는 권리보다 더 큰 책임을 다하는 이를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어른과 성인이라는 용어를 구분해서 쓰는 편이다. 주위에 법적으로 미성년을 벗어난 성인은 많지만 어른이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어른은 좋아하는 마음 외에 지속하는 마음까지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기 참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하다보면 소진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매슬로가 말하는 자아실현이라는 인간의 최상단의 욕구는 어느덧 멀리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것을 해라라고 말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역시 막상 하려면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유명하고 아마 앞으로도 가장 유명할 것 같은 캐치프레이즈인 나이키 사의 ‘Just do it’과 일맥상통한 것 같다.

 

저는 해야 할 바, 바로 그것을 하라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해야 할 일은 많은 경우 지름길과 거리가 멉니다. 아득할 때도, 끝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하는 수밖에요. (261쪽)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방부제에 관한 견해이다.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 방부제라고 생각합니다. 조그만 성공에 취해 쉬이 허물어지거나 망가지지 않도록 자신을 엄정히 돌아보고 심가는 것.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는 것.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 이런 자세야말로 자신을 온전하게 지키는 방부제입니다. 소금 같은 방부제가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하듯 자기 자신에게 방부제를 잘 작동시키면 자신을 담금질해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52쪽)

 

자신을 돌아보고 삼가기, 해야 할 일을 점검하기 등 어쩌면 앞으로 발전하기 위한 요소일 것 같은데 이를 과욕이나 권태 등에 자기 자신이 상하지 않도록 하는 방부제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썩는 것을 막는 다소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으나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방부제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생계를 위해 혹은 꿈을 이루기 위해 등 다양한 이유로 하루의 많은 시간을 일을 하면서 보낸다. 이렇게 이왕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의미를 찾으며 일의 본질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된다면 책의 제목처럼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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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글쓰기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딱 4주 만에 완성하는 브랜딩 블로그
정경미(로미)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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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처음 읽었던 책은 핑크팬더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는 이재범 작가의 파워블로거 핑크팬더의 블로그 글쓰기였다. 적어도 많은 이들이 보는 블로그를 쓰는 이가 건네는 조언이라면 따라해서 손해 볼 것을 없으니까. 저자는 처음부터 책의 초반부터 직설적으로 말한다.


설마 당신 스스로를 톨스토이나 하루키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편하게 마음먹고 써라.”


맞는 말이다. 운동을 할 때면 운동화를 신는 것이 가장 어렵듯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노트북을 켜는 것이 가장 어렵다. 블로그가 취미 생활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요즘 예전만큼 부지런히 글을 못 쓰고 있다. 초심을 잃어버린 것 같아 다시금 블로그 글쓰기에 관한 책을 찾던 중 발견한 책이 블로그 글쓰기 전문강사인 리블로그팀의 블로그 글쓰기는 어떻게 삶은 무기가 되는가이다.

 

4명의 저자들이 같이 쓴 책으로 브랜딩 블로그와 블로그의 수익화를 네이버 블로그를 중심으로 자세히 설명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4명의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블로그의 글을 쓰면서 자신들의 삶에 변화가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진입장벽을 크게 생각하지 말고 글을 써보라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 한 이재범 작가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주제와 글감을 잡기가 어렵다면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자기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조언을 한다. 이를 두고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적는 것은 일기가 아닐까란 반론도 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에 대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소소한 내 이야기를 글로 적는 시간은 하찮은 일이 아니었어요. 내 삶의 중심축을 외부에서 나에게로 옮겨오는 과정이었지요.

 

일기라고 할 수 있는 내 이야기를 글로 적는 것이 내 삶의 중심축을 외부에서 나에게로 옮겨오는 과정이라는 말이 블로그 글쓰기를 시작하는데 진입장벽을 한 층 더 낮춰주는 것 같았다. 게다가 매일 아침 써봤니?의 저자인 김민식 PD가 블로그라는 아카이브 덕분에 글감을 모으기가 수월했다는 말을 인용하여 일상 이야기를 쓰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정리하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카이브archive자료나 소장품 따위를 디지털화하여 한데 모아서 관리하고 그것들을 간편하게 검색할 수 있도록 모아둔 파일이라고 해석됩니다. 특히 특정 단체나 개인이 자신이 만들어낸 수많은 기록들 중에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따로 모아 보관하는 기록물이나 그 장소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치관이 있고,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으며, 기록은 결국 나 자신이 된다고들 말합니다. ‘에 대한 기록이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관찰하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기록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록의 중요성을 인지한 사람들은 일상에서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기록하고 분류하면서 스스로를 뾰족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기록을 하고 분류하면서 나의 정체성 및 캐릭터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뭐라도 써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감상을 남기든, 영화를 보고 자신의 별점을 남기든, 여행, 맛집을 가서 기록을 남기든 그것도 아니라면 어제와 다른 오늘의 이야기를 풀어내듯 무엇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 바로 블로그이니까. 그 시작을 네이버 블로그에서 한다면 도움이 될 만한 블로그 글쓰기는 어떻게 삶은 무기가 되는가이다. 끝으로 블로그를 시작하려는 이들 뿐 아니라 블로그를 한창 하고 있는 이들도 점검과 생각을 해 볼만한 리스트를 옮겨본다.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

일단 쓰고 보자.

블로그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나는 지금 아주 작은 돌을 쌓는 것이다.

그 돌에 집착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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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틴 4teen
이시다 이라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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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고등학생과 같은 대우를 받고 싶지만 그들은 끼워주지 않고, 초등학생으로는 가기 싫은 어쩌면 진정한 주변인의 시기가 아닌가 한다. 심지어 중2병이라는 말도 익숙한 것처럼 중학생은 과도기적인 시기라는 성격이 강한 것 같다. 한창 사고도 많이 치고 아프면서 단단해지는 그런 청소년기를 누구나 겪지만 주인공인 데츠로, , 나오토, 다이처럼 그것도 1년에 몰아서 다양한 일을 겪는 것도 드물 것이다. 아마도 소설속의 이야기라서 그렇겠지만 웬만한 사람이 평생 동안 겪기도 어려운 일을 다양하게 겪으면서 커가는 과정을 소설 포틴은 그리고 있다.

 

베르너 증후군이라는 조로증을 앓고 있는 나오토는 병원을 자주 들락거리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이다. 마지막 비밀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밝히듯 나오토는 다른 사람의 3배나 빠른 삶을 살고 있는 셈이지만 그 속도를 잡아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친구들이었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어려운 가정형편에서도 꿋꿋하게 잘 먹어서 가장 덩치가 큰 다이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잠시 엇나가긴 하지만 결국 친구들에게 돌아오고, 머리가 좋고 공부도 잘 하는 준은 불륜사이트에서 만난 유부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엉뚱하게도 그녀의 고민을 해결해주기도 합니다. 물론 화자인 데츠로도 장기 결석생인 루미나와의 사건이 있다. 자칫 엉뚱하게 흘러갈 수 있는 사건들을 겪지만 친구들이 뒤처리를 말끔하게 해준다.

 

이렇듯 조로증을 앓는 친구, 거식증으로 인한 장기 결석, 병원에서 탈출한 말기 암 환자와의 만남, 게이임을 밝히는 반 친구, 한 친구의 아버지 죽음, 도심 탐험으로 변한 친구들과의 여행 등 사건 하나하나가 흔히 겪는 일이 아닌 일생을 통해 한번이라도 겪기 쉽지 않은 일 들이 일어난다. 학교를 갔다 학원을 가는 것으로 하루일과가 끝이 났던 나의 중학교 시절과는 사뭇달라 이상하기까지 하였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 부분이다.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지만, 어느새 신주쿠 도심을 여행하자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었고, 그들은 도심의 밤 문화를 마음껏 누리게 된다. 하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대목은 지금 저도 절실히 느끼고 있는, 데츠로의 비밀의 말이다.

 

난 변한다는 게 무서워. 다들 조금씩 변하다가, 어느 순간 오늘 여기서 우리가 느꼈던 이 기분을 깡그리 잊어버리는 거. 우리 모두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될 거야. 세상에 나가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이런 시절을 무시해버릴지도 몰라. 그건 중딩 시절의 놀이였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였다고. 그렇지만 그럴 때일수록 지금의 마음을 되새겨야 해. 변해서 좋은 게 있고, 변해서 안 좋은 게 있어. (326쪽)”

 

변해서 좋은 게 있고, 변해서 안 좋은 게 있다는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벅차다는 요즘 학창시절의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그때의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인 문제보다 꿈과 친구가 전부였던 그때를 돌아볼 수 있게 한 포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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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개미지옥
모치즈키 료코 지음, 천감재 옮김 / 모모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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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으로 살해당한 젊은 여성 둘이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피해자는 둘 다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가고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않는 미혼모였다. 문제는 성매매 여성의 연쇄살인사건이지만 피해자의 사회적 배경이 논란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생각에 매스컴의 보도는 교모하기 그것을 가린다. 그 결정을 내리게 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생각할 것이 많아 보이는 문장이었다.


피살자가 즉석만남 게시판에서 영업을 하던 성매매 여성이라는 정보가 흘러 나갔다가는 곧바로 문제가 있으니까 죽었겠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나중에는 죽어도 싸다하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면 세상에는 그런 여자는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라는 인식이 퍼지고 그런 발상을 허용했다가는 범죄에 대한 사회적 역치가 내려간다. 풍기가 문란해진다는 말이다. 치안이 흐트러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조건 법을 어기는 것은 악이라고 못 박아 두는 편이 공중도덕을 위해 바람직하다. 그 때문에 피해자는 언제나 절대적인 피해자여야만 한다. (49-50쪽)

 

그리고 얼마 후 어느 식품공장에 협박문이 도착한다. 세 번째 희생자를 내기 싫으면 돈을 준비하라는 협박문으로 다음 범죄를 예고하는 것이다. 도시락을 주요 상품으로 생산하는 이 식품기업은 오랫동안 블랙컨슈머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이었다. 또한 사건관련 방송 도중 범인으로 주장하는 자가 연락을 취해 피해자에 대해 제대로 보도한다면 돈을 포기하겠다는 거래를 제안한다. 프리랜서 기자 미치코는 이에 연쇄살인과 식품기업 협박사건을 연결하여 경찰 수사와는 다른 사건의 이면을 보여준다.

 

최근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범죄가 많이 일어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사건의 가해자들이 특별한 동기도 없이 그냥 누군가를 해하고 싶었다는 말을 해 더 충격적이었다. 출생지, 개미지옥에서도 사건의 범인이 지목되고 기자인 미치코와 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범인은 미치코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그 여자들은 죽어서야 처음으로 권리라는 것을 손에 넣었어요.

당신은 진심으로 내가 그 여자들을 죽인 죗값을 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생명에는 숭고한 생명과 그렇지 않은 생명이 있어요. 그 여자들도, 나도 내 어머니도 숭고하지 않은 생명이에요. 부정해도 소용없어요. 살해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인권을 부르짖을 수 있는 인간은 듣기 좋은 소리나 지껄이는 카나리아나 마찬가지고, 일그러진 사회의 일면을 알린다는 의미에서만 그 죽음이 문제가 될 뿐이에요 그러니 아무도 그 여자들의 진실에는 관심이 없었죠. 사람으로는 인정받지 못한 거예요. (470쪽)

 

어쩌면 권총의 방아쇠는 범인이 당겼지만 피해자들은 사회가 죽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까 피해자를 왜곡하는 사회와 죽어서야 피해자들이 권리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범인의 말이 계속 대비가 되는 것 같았다. 자신이 행한 범죄의 이유를 이야기하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것은 미스터리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범죄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어서가 아닐까? 소위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로 분류되는 이러한 소설을 읽을 때면 재미와는 상반되게 묵직한 돌을 가슴에 얹힌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그 느낌이 유독 크고 오랫동안 간 출생지, 개미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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